내년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은 벌써부터 열기가 뜨겁다. 공화·민주 양당의 유력 후보들이 최근 잇따라 대선 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3월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76)이 대권 도전을 선언했고, 한 달 뒤에 조 바이든 대통령(80)이 재선 출마를 밝혔다. 여기에 ‘중대 변수’가 등장했다. 공화당의 아성 플로리다주의 론 디샌티스 주지사(44)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한때 ‘트럼프 총아’로까지 불리던 디샌티스의 출마로 그의 행보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지난 5월31일 플로리다주의 론 디샌티스 주지사가 아이오와주 카운실블러프스에서 연설을 마친 후 유권자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AP Photo
지난 5월31일 플로리다주의 론 디샌티스 주지사가 아이오와주 카운실블러프스에서 연설을 마친 후 유권자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AP Photo

지난 5월24일 디샌티스는 트위터를 통해 “최근 몇 년 동안 공화당에 만연한 패배주의 문화를 끝내야 한다. 위대한 미국의 복귀를 주도하겠다”라며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공화당 내 경쟁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정치 분석가들은 그의 선언문에서 ‘행간’을 읽어냈다. 그가 ‘패배주의’를 언급했는데, 이는 트럼프의 2020년 11월 대선 패배와 (트럼프 입김 때문에) 의회 선거 및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이 거둔 초라한 성적표를 지적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패배주의를 극복하겠다는 선언은 트럼프를 겨냥한 ‘정치적 화살’이라는 것이다.

디샌티스는 예일 대학 사학과와 하버드 법대를 나온 엘리트 정치인이다. 무명의 3선 공화당 하원의원이던 그는 2018년 공화당 아성인 플로리다주의 주지사 자리에 올랐다. 2022년에 압도적으로 재선된 뒤 친보수 정책을 내세우며 전국적 지명도를 얻었다. 2021년 8월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공공기관의 문을 닫고 백신접종과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는데 디샌티스 주지사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이 조치로 그는 보수 유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때문에 전국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환자가 플로리다주에 발생하기도 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성적 지향성과 성적 정체성에 관한 초·중·고 교육 금지, 임신 6주 이후 낙태 금지, 불법 이민자 색출, 총기 소유권 강화 등 보수적 유권자들이 환영할 만한 조치를 잇따라 내놓았다.

특히 그는 대선 출마의 변에서 ‘워크(woke)’라는 용어를 소환했다. 워크는 지난 몇 년 동안 진보적 유권자들 사이에서 크게 붐을 이뤄온 인종적·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자각 운동을 일컫는다. 그는 ‘워크 바이러스’ ‘워크 폭도’ ‘워크 이데올로기’ 같은 자극적 표현을 써가며 진보층을 겨누었다. 공화당 대선후보로 대선에서 승리하면 반워크 ‘문화 전쟁’에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처럼 그는 보수 가치의 옹호자이자 대변자로 자신의 이미지를 한껏 고양시키고 있다. 사법 리스크 등 문제를 겪고 있는 트럼프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하려는 것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디샌티스는 지난해 말 한때 트럼프 턱밑까지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가 트럼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공화당 대선후보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는 2018년 11월 선거에서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 덕분에 처음으로 플로리다주 지사직을 거머쥘 수 있었다. 트럼프에게 ‘정치적 빚’을 진 상태다. 공화당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호감도 조사에서도 트럼프에 비해 약세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도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가 과거 포르노 여배우에게 ‘입막음’용으로 13만 달러를 불법으로 지급한 사실이 폭로되고, 지난 3월 기소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트럼프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기소되자, 보수 유권자들 사이에서 ‘트럼프 동정론’이 부각되며 디샌티스의 지지율이 급속히 떨어졌다. 그의 대선 출마 직전인 지난 5월 중순 CNN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율이 53%였다. 디샌티스는 26%를 얻는 데 그쳤다.

트럼프에게 지지세가 밀리는 가운데 디샌티스의 선거 전략가들이 짜낸 전략이 ‘트럼프 없는 트럼피즘(Trumpism without Trump)’이다. 트럼프와 연관된 부정적 이미지는 벗되 트럼프가 표방하던 극우적 노선·정책(트럼피즘)은 계승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지사로서 자신이 걸어온 극우적 행보를 부각시킨다. 〈워싱턴포스트〉는 “디샌티스가 트럼프를 직접 공격하기는 힘든 만큼 오히려 자신이 트럼프보다 더 나은 제2의 트럼프라는 이미지를 심는 게 선거 전략상 최선”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사진)이 기소되자, 보수 유권자들 사이에서 ‘트럼프 동정론’이 부각되며 디샌티스의 지지율이 급속히 떨어졌다. ⓒAFP PHOTO

‘트럼프 없는 트럼피즘’ 전략

이런 가운데 디샌티스를 지지하는 세력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그를 지지하는 후원 조직으로 ‘절대 물러서지 마’라는 뜻을 가진 ‘네버 백 다운(Never Back Down)’이 내년 공화당 예비선거가 치러지는 첫 18개 주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 단체는 오는 9월4일 노동절 이전까지 선거운동원 2600명 이상을 확보하고, 뉴햄프셔·네바다·사우스캐롤라이나주 등에서 친(親)디샌티스 유권자들의 집을 최소한 4회 이상 방문하며 지지를 호소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단체는 선거운동원 동원, TV 광고, 지지 우편물 발송 등을 위해 2억 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다. 대선 자금 경쟁에서 이미 상당액을 모은 것으로 알려진 트럼프에게 뒤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디샌티스가 공식 출마를 선언한 만큼 향후 국내외 현안과 관련해 본격 검증의 무대에 서게 됐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미국 국익에 중요하지 않은 ‘영토분쟁’이라고 폄하해 외교 분야의 ‘무식함’을 드러낸 바 있다. 낙태 금지 문제에 대해선 초강경 입장을 보여 많은 여성 유권자들의 분노를 샀다. 또한 그는 디즈니사가 공화당 주의회가 발의한 ‘성적 지향성·정체성에 관한 초·중·고 교육 금지 법안’에 반대하자, 보복 차원에서 디즈니사에 대한 특혜를 박탈하기도 했다(디즈니는 플로리다주의 대표적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이는 ‘친기업’을 표방하는 공화당 정강과 반대되는 조치로 기업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디샌티스 선거본부 측은 첫 예비선거가 치러지는 내년 초까지 이런 취약점을 극복하고 트럼프를 꺾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공화당 예비선거가 본격화하는 내년 초부터 트럼프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는 것도 호재로 여긴다. 트럼프가 표방한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옹호하는 보수 유권자들의 표심이 디샌티스에게로 어느 정도 향할까. 디샌티스는 ‘트럼프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대선으로 가는 공화당 후보 경선이 흥미로워졌다는 점이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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