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8일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가 선거유세를 하고 있다.ⓒAP Photo
2023년 12월8일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가 선거유세를 하고 있다.ⓒAP Photo

11월5일 미국 대선을 앞두고 연초부터 대선주자들의 행보가 분주하다. 1월 중순 아이오와주를 시작으로 코커스(당원대회) 또는 프라이머리(예비선거)를 통해 후보를 가려내는 선출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선언한 민주당보다는 공화당 경선을 향한 관심이 훨씬 뜨겁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포함해 전현직 주지사 등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후보들이 맞붙었다. 특히 지난 연말부터 정치적 돌풍을 일으키며 부동의 1위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다음 자리를 넘보고 있는 니키 헤일리(51) 전 유엔 대사의 약진세가 크게 주목받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법 리스크로 좌초할 경우 그를 대신할 최적 후보로 떠올랐다.

인도계인 헤일리 전 대사는 1월15일 대의원 40명이 배당된 아이오와주 코커스 선거에서 선전한 뒤 여세를 몰아 일주일 뒤 열리는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에서 트럼프를 누르거나 적어도 2위를 차지하는 게 목표다. 2월에는 자신이 한때 주지사를 지낸 사우스캐롤라이나주(대의원 50명) 경선이 열린다. 1·2월 경선에서 선전해, 15개 주 동시 경선이 치러지는 3월5일 슈퍼 화요일까지 양강 구도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헤일리는 전국 지지도에서는 트럼프에게 크게 밀리지만 ‘대선 풍향계’로 이름난 뉴햄프셔주에선 트럼프를 바짝 추격 중이다. 1월9일 CNN 여론조사에 따르면, 뉴햄프셔주 공화당 유권자 가운데 39%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헤일리도 32%를 얻었는데, 이는 지난해 11월보다 무려 12%포인트나 오른 수치다. 반면 지난해 트럼프의 대항마로 주목받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지지율 5%에 그쳤다.

공화당 대선주자가 공식 후보로 지명받으려면 50개 주 전체 대의원(2429명) 가운데 과반인 1215명 이상의 지지가 필요하다. 숫자로만 따지면 대의원 수가 고작 40명과 22명에 불과한 아이오와주나 뉴햄프셔주의 경선 결과는 후보의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일주일 간격으로 치르는 두 주의 경선 결과가 주목받는 건 다른 주보다 가장 먼저 경선을 실시해 ‘풍향계’ 구실을 해왔기 때문이다.

헤일리는 전직 주지사, 유엔 대사 경력에 트럼프와 달리 온건 보수 이미지를 가졌다. 지지율 상승세에 따라 공화당 거액 기부자들의 후원금도 늘어나고 있다. 헤일리 선거본부 측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에 2400만 달러(약 316억원)를 모금했다. 3분기에 비해 배가 훨씬 넘는다. 또한 트럼프 후보 지명 저지에 명운을 건 억만장자 기부가 찰스 코크가 운영하는 정치후원 조직 ‘번영을 위한 미국인(AFP)'이 자금뿐만 아니라 200만여 풀뿌리 회원들을 동원해 선거운동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얼마 전까지도 디샌티스를 집중 공략하던 트럼프가 헤일리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상치 않은 기세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선거캠프는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를 앞두고 헤일리를 겨냥해 500만 달러 이상의 비난 광고를 퍼붓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연초부터 아이오와주를 방문해 헤일리가 ‘국경 개방 지지자’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불법 이민 문제에 민감한 보수 유권자들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불법 이민자 문제 해결을 위해 국경 장벽을 공약한 자신에 비해 헤일리는 반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다. 또한 “헤일리가 기득권 부자 기부자들의 영향권 안에 있다”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최근 적지 않은 기업가들의 후원금이 헤일리 캠프에 몰리는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트럼프를 ‘적당히’ 공격하는 까닭

이에 헤일리도 수세적 태도에서 벗어나 공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녀는 첫 경선지 아이오와주에서 “트럼프가 또다시 집권하면 미국은 4년 내내 혼란에 빠질 것이다. 더 이상 미국과 세계를 혼란 속에 살게 할 수는 없다. 새로운 보수 지도자가 필요하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도 트럼프에게 가장 아픈 대목인 ‘의회 폭동 사건 관련 기소’ 건에 대해서는 비판을 자제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트럼프가 향후 유죄판결을 받아 낙마할 경우 그의 지지자들을 흡수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한다. 경선에서 패배해 트럼프가 대권후보가 된 이후 러닝메이트로 지명받기 위해 헤일리가 몸을 사리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가 경선에서 승리하고 경쟁자인 헤일리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최근 CBS에 따르면, 헤일리가 급부상하기 시작한 지난해 12월 트럼프는 측근에게 그녀를 러닝메이트로 택하는 데 따르는 득실을 자문했다. 한때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활동했던 전략가 스티븐 배넌은 언론 인터뷰에서 "헤일리를 러닝메이트로 삼을지 말지를 두고 트럼프 측근들끼리 내분이 상당히 격화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절대 안 된다’는 인식을 가진 15%의 공화당 유권자를 붙잡기 위해서도 헤일리가 꼭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쟁자 디샌티스는 “헤일리는 트럼프의 러닝메이트가 되려고 대선에 출마했다”라며 공격하고 나섰다. ‘러닝메이트’ 변수에 대해 헤일리는 펄쩍 뛰면서도 말끝을 흐린다. 1월5일 NBC 인터뷰에서 헤일리는 “대선후보로 나온 사람을 두고 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 출마한 것처럼 얘기하는 게 상당히 불쾌하다. 난 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 출마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러닝메이트설을 자신의 지지율을 깎아내리기 위한 ‘꼼수’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도 ‘러닝메이트 제의가 와도 거부할 건가?’라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 러닝메이트의 길을 열어놓은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헤일리 캠프는 최근 현안으로 급부상한 ‘트럼프의 출마 자격’ 문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콜로라도주 대법원이 트럼프의 주 예비경선 출마 자격을 박탈했다. 내란에 가담한 인사의 공직 출마를 금지한 수정헌법 제14조 3항을 근거로 들었다. 트럼프는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을 부추긴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트럼프 측이 불복해 소송을 걸었다. 연방 대법원은 공화당 대선후보의 윤곽이 드러나는 3월5일 이전에 최종 결론을 낼 것으로 보인다. 콜로라주 말고도 최소 15개 주에서 비슷한 소송이 진행 중이라 연방 대법원의 최종 결정에 따라 트럼프의 정치적 운명도 판가름 날 상황이다. 연방 대법원이 출마 자격을 제한해 트럼프가 낙마한다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강성 보수인 디샌티스를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헤일리에겐 반드시 희소식만은 아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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