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4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플로리다주 팜비치 국제공항 인근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AFP PHOTO
4월4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플로리다주 팜비치 국제공항 인근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AFP PHOTO

요즘 미국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인물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17년 전에 있었던 포르노 영화배우와의 성관계 입막음 의혹 등 ‘중범죄’ 혐의로 전직 대통령 가운데 처음 기소됐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자신을 기소한 검사가 민주당 소속이란 점을 부각하며 이번 기소를 자신의 대선 출마를 방해하기 위한 ‘정치적 박해’로 규정했다.

3월4일 뉴욕 맨해튼 지검의 앨빈 브래그 지검장이 트럼프에 대해 제기한 기소 혐의는 무려 34가지다. 하지만 혐의 모두 그가 입막음 대가로 지불한 돈과 관련이 있다. 부정한 회계 처리, 문건 조작 등이다. 브래그 지검장은 공소장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불리한 정보와 불법행위를 유권자들에게 숨기기 위해 반복적 사기 방법으로 자신이 대표로 있는 기업의 영업 문건을 조작했다”라고 기소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만큼 치열한 법정 공방이 불가피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특히 이번 기소를 “앨빈 브래그 검사는 급진 좌파 조지 소로스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 기소는 미국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선거 개입”이라며 전면 투쟁을 다짐했다. 재판은 내년 상반기 중 시작되리라 보인다. 내년 1월은 공화·민주 양당 대선주자들의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는 시점이다. 트럼프가 현재 공화당의 유력 대선주자임을 감안할 때 재판 결과에 따라 공화당 대선 구도는 물론 전체 대선 판도에도 엄청난 파장이 불가피하다.

공소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2016년 대선 출마에 나선 트럼프가 2006년 7월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한 호텔에서 동침한 포르노 영화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의 입을 막기 위해 벌인 일련의 범법 행위다. 트럼프는 이 여성이 자신과의 성관계를 언론에 폭로하려 한다고 보고 대선이 치러지기 2주 전,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을 통해 13만 달러(약 1억5000만원)를 주고 입을 막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입막음’용으로 13만 달러를 지급한 것 자체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가 대표로 있는 트럼프 기업(Trump Organization)이 코언 변호사에게 트럼프 명의로 된 13만 달러 수표를 지급하면서 이를 ‘법률 자문료’로 회계장부에 기록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부정이 주법을 위반한 것이다. 주법상 이런 회계 부정은 ‘경범죄’에 속한다. 하지만 브래그 지검장의 지적대로, 트럼프가 대선 출마에 끼칠 부정적 영향을 감안해 의도적으로 이런 부정을 저질렀다면 연방 선거법에 걸린다. CNN의 법률 분석가인 엘리 호니그는 “트럼프가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영업 문건을 조작했는지, 검찰이 그 의도를 밝혀낼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34개 각각의 혐의에 대한 트럼프의 의도를 입증해야 한다. 결코 쉽지 않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트럼프는 ‘입막음’용으로 자기 명의의 수표를 발급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문제의 여성과 성관계를 한 적도 없고, 영업 문건을 조작한 적도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이미 이 건과 관련해 연방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코언 변호사의 증언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신뢰를 잃은 그의 증언이 향후 배심원단의 마음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을지 속단할 수 없다. 이번 공소장에는 트럼프가 대니얼스 말고도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모델 출신인 캐런 맥두걸과 트럼프에게 사생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주장한 트럼프 타워 건물의 경비원에게 ‘입막음’용으로 각각 15만 달러, 3만 달러를 건넸으며,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기업 문서를 위조했다는 점도 적시돼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기소 건 말고도 다른 혐의 3건으로도 기소될 위기에 놓여 있다. 그는 퇴임 후인 2021년 1월 하순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 있는 자신의 리조트에 100여 건의 기밀문서를 불법으로 유출한 혐의, 2021년 1월6일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을 배후에서 선동한 혐의로 특검 수사를 받고 있다. 또 2020년 11월 대선 투표 결과 자신이 패한 것으로 드러난 조지아주에서 개표 결과를 변경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의혹과 관련해서도 수사를 받고 있다.

사법 리스크로 앞길이 캄캄한 상황에서 트럼프가 끝까지 대선 경주를 할 수 있을까. 트럼프가 기소됐다고 해서 대선에 출마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 출마 요건으로 ‘35세 이상의 미국 시민으로 미국 거주 14년 이상’이라고만 규정돼 있다. 뉴욕대 법대 애나 코민스키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범죄 혐의가 있다고 해서 트럼프의 대선 출마를 막을 수 없다. 설령 유죄가 확정되어도 출마 자격이 없어지지 않는다. 기소되거나 유죄 확정을 받은 사람의 출마 제한과 관련해 헌법에 명시적 규정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4월4일(현지 시각) 자택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34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AFP PHOTO

출마하더라도 완주할 수 있을까

기소된 이후 대선 출마를 한 정치인들도 있다. 이를테면 권력남용 혐의로 기소된 릭 페리 전 텍사스 주지사가 2016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대선주자 대열에 합류했다. 1920년 사회당 대선후보인 유진 데브스는 간첩죄 혐의로 연방 교도소에 수감 중 옥중 출마해 전국적으로 3.4%(약 91만9000표)를 득표한 바 있다. 탈세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는 린든 라루체는 1976년부터 2004년까지 군소정당 후보로 빠짐없이 대선에 출마했다.

대다수 정치 분석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도 대선 출마를 강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오히려 이번 기소를 대선의 호재로 삼아 지지층을 더욱 규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이번 기소를 ‘정치적 마녀사냥’이라 규정한 트럼프에 대한 친공화당 유권자들의 지지는 압도적이다. 트럼프는 기소된 지 하루 만에 정치자금을 무려 400만 달러 이상 모금하기도 했다. 그의 정치적 위상을 보여준다.

법적으로 출마는 가능하지만 그가 내년 중에 수감되면 선거운동에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부에선 ‘트럼프 완주 회의론’이 나온다. 트럼프가 투옥되면 공화당 내 친트럼프, 반트럼프 세력 간의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상황에서 대선 승패의 향방을 가를 무당파 유권자들이 그를 지지할 수 있을까.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 당시 민주당 후보가 공화당 트럼프 후보를 여유 있게 누를 수 있었던 데는 비도심권 지역의 유권자들 못지않게 무당파 유권자들의 지지가 결정적이었다. 당시 무당파 유권자는 전체 유권자의 24%를 차지했을 정도로 비중이 높았다. 퓨리서치 여론조사센터에 따르면 당시 무당파 유권자 가운데 52%가 바이든, 43%가 트럼프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무당파 유권자들의 표심이 사법 리스크로 범벅이 된 트럼프에게 향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퀴니피액 대학이 트럼프가 기소되기 직전에 실시한 가상 대결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불과 2%포인트 뒤졌다. 반면 트럼프의 대안으로 급부상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바이든을 2%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가 커질수록 친트럼프 열성 지지자들을 제외한 대다수 친공화 유권자들이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트럼프 기소’로 공화당 대선 경선의 함수가 한층 복잡해졌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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