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기밀문서 유출 혐의로 특검 수사를 받게 됐다. ⓒEPA

미국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전·현직 대통령이 기밀문서 유출 혐의로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76·공화당)과 조 바이든 대통령(80·민주당)이다. 둘은 내년 11월 대선에서 맞붙을 공산이 커 향후 특검 수사의 향방에 따라 정치적 운명도 갈릴 전망이다.

유출된 기밀문서 분량이나 이를 회수하려는 사법 당국에 대한 협조 측면에서 바이든과 트럼프는 차이가 있다. 바이든은 소량의 기밀이 발견된 즉시 이를 당국에 알리고 회수 작업에 협조했다. 반면 트럼프는 협조를 거부하다 자택 압수수색까지 당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을 보는 미국민의 여론은 비슷하다. 최근 퀴니팩 대학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0%가 바이든이 기밀을 부주의하게 취급했다고 보았지만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은 37%에 그쳤다. 트럼프의 경우 응답자의 59%가 그의 부주의를 탓했지만 ‘기소’ 의견은 41%에 불과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1월2일 워싱턴 DC에 있는, 자신의 이름을 딴 싱크탱크 사무실에서 기밀문서 10건을 발견한 직후 이를 즉각 국립문서보관소와 법무부에 알리고, 회수 조처에 적극 협조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20일, 올해 1월14일, 1월20일에도 기밀문서 여러 건이 사저에서 추가로 발견되자 ‘바이든이 처음부터 솔직하지 못했고, 뭔가 숨기려는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증폭되었다. 트럼프와의 차별화 전략이 크게 퇴색한 것이다. 1월12일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이 진상 조사를 위한 특검을 전격 발표한 것도 사안의 심각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바이든 법률팀은 최초 기밀문서를 발견한 직후 이를 바이든 대통령의 ‘단순 부주의’ 정도로 취급하고, 법무부와 긴밀히 협조하면서 사안을 조용히 마무리하려 했다. 닷새 뒤 의회 중간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라 입단속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CBS 뉴스가 1월9일 이 사실을 폭로하고, 이틀 뒤엔 NBC 뉴스가 ‘지난해 12월20일 바이든 사저에서 기밀문서 추가 발견’이라고 보도하면서 백악관도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됐다. 더구나 갈런드 법무장관이 한국계 로버트 허 전 연방검사를 특검으로 발표한 뒤에도 바이든 사저에서 1월14일과 1월20일에 기밀문서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특검의 칼날이 바이든 대통령을 정조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런 문건이 발견돼 나도 놀랐다”라면서 사법 당국에 협조를 다짐했지만,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의회 차원의 대대적 조사를 벼르고 있다.

퇴임 후 기밀문서 유출과 관련해 이미 지난해 11월 특검 수사를 받게 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난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지만 바이든은 다르다”라며 공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트럼프는 퇴임 전 대통령 자격으로 자신이 보관 중이던 문서의 기밀을 모두 해제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고수해왔다. 국립문서보관소 측은 트럼프가 퇴임하고 1년이 흐른 지난해 1월에야 플로리다주에 있는 그의 골프 리조트 겸 자택 마러라고에서 기밀문서 180건 이상을 회수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6월에 기밀문서 30여 건을 자진 반납하기도 했다. 이후 법무부가 기밀문서를 추가로 회수하기 위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소환장을 발부했고, 그가 거부하자 8월에 FBI 수사요원들이 그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기밀문서 100건 이상을 더 회수했다.

자신의 자택에 기밀문서 수백 건을 보관하다 수사를 받게 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AP Photo

‘의도’를 검증해야 하는 특검팀

법률 전문가들은 대부분 기밀문서를 고의로 은폐하고 당국의 회수 노력을 방해한 트럼프에 비해 바이든의 사안은 경미하다고 본다. 관련 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방첩법(Espionage Act)’에 따르면, 트럼프처럼 기밀문서 반환을 요청받고도 ‘고의적으로’ 돌려주지 않으면 기소 대상이 된다. 게다가 그는 법무부가 발부한 소환장을 거부해 공무집행방해 혐의까지 받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서는 기밀문서 취급 시 ‘중대한 부주의’를 처벌하도록 한 방첩법 관련 조항이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바이든이 고의로 기밀을 부주의하게 취급했다는 ‘의도’를 특검이 입증해야 한다. 사실상 기소는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바이든은 해당 기밀문서가 사저에 있었는지도 몰랐다는 입장이다.

주요 언론은 백악관이 최초 기밀문서 존재 사실을 파악한 지난해 11월2일 이후부터 올해 1월9일 CBS 뉴스가 폭로할 때까지 왜 두 달 넘게 쉬쉬했으며, 그 기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주목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기밀문서 최초 발견 직후 밥 바우어 변호사를 포함한 바이든의 변호인단 5명은 일반에 알리지 않고 법무부와 협조하며 자체 해결하는 방법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지난해 12월 델라웨어주에 있는 바이든 사저의 차고에서 기밀문서가 또다시 발견됐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바이든의 변호사가 기밀문서를 자체적으로 발견했다.

공교롭게도 이 시점은 갈런드 장관의 요청으로 존 라우시 연방검사가 특검 도입 여부에 대한 검토 작업을 진행하던 때였다. 기밀문서 추가 발견을 계기로 라우시 검사가 특검 도입을 건의하기로 결심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물론 라우시가 특검을 건의해도 바이든 변호인단이 기밀문서 회수에 협조적이었던 점을 감안해 갈런드 장관이 건의를 수용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갈런드 장관은 1월12일 특검을 전격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잭 스미스 전 연방검사를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밀문서 유출 건을 수사할 특검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공정성 차원에서 바이든에 대한 특검을 임명하는 게 불가피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변호인단이 지난해 11월 기밀문서를 최초 발견한 이후 자체 조사를 통해 모든 기밀문서를 찾아냈다면 특검까지 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변호인단이 여러 차례에 걸쳐 바이든 대통령 사저 등에서 부통령 시절(2009~2017)은 물론이고 상원의원 시절(1973~2009)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기밀문서를 찔끔찔끔 찾아냈고, 이를 사법 당국에 알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특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많다.

1월20일 4년 임기의 반환점을 돈 바이든 대통령은 2월7일 신년 국정연설을 한 뒤 적당한 시점을 택해 내년 11월 재선 출마를 선언할 계획이다. ‘기밀문서 특검’의 수사 결과가 대선 가도의 변수로 등장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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