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기밀문서 유출 사건 특별검사를 맡은 로버트 허 전 메릴랜드주 연방지검장. ⓒREUTERS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기밀문서 유출 사건 특별검사를 맡은 로버트 허 전 메릴랜드주 연방지검장. ⓒREUTERS

재선 시 81세, 퇴임 시 86세. 11월5일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나이다. 현역 최고령 대통령인 바이든에겐 3년 전 취임 직후부터 잦은 말실수와 불안한 걸음걸이 때문에 고령 문제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고령이 그의 재선을 가로막을 변수로 작용해왔다. 최근 그의 나이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적 아킬레스건인 고령과 기억력 감퇴 문제를 정치 한복판으로 끌어낸 주인공은 로버트 허 특별검사(51)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2017년 1월 부통령 퇴임 시 가지고 나온 기밀 서류를 자택과 사무실에 불법으로 보관하다 유출한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지난해 1월 특검에 임명됐다. 로버트 허 특검은 지난 2월8일 345쪽짜리 보고서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기밀을 고의로 보유하고, 내용을 공개했다”라면서도 기소하기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이 보고서에서 그는 바이든 대통령의 기억력 감퇴를 거론했다. 바이든 대통령을 기소한다고 해도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팔순 넘은 정치인에 대해 판단을 내려달라고 배심원들을 설득하기는 어려우리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지난해 10월8일과 9일 이틀간 백악관에서 연방수사국(FBI) 수사관이 입회한 가운데 5시간 동안 바이든 대통령과 인터뷰했는데, 여기서 현저한 기억력 감퇴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첫날 인터뷰 때 언제 부통령을 퇴임했는지 물었는데 바이든이 얼버무렸고, 둘째 날 인터뷰 때는 언제 부통령을 시작했는지 물었는데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허 특검은 바이든이 2017년 회고록을 집필할 때 대필 작가와 대화할 때에도 ‘기억력이 상당히 제한됐다’고 지적했다.

한국계인 허 특검은 보고서 곳곳에 ‘어렴풋한(hazy)‘ ‘흐릿한(fuzzy)‘ ‘틀린(faulty)’ ‘빈약한(poor)’이란 표현을 동원해 바이든의 기억력 문제를 부각했다. 허 특검은 바이든을 가리켜 ‘선의를 가졌으나 기억력이 나쁜 노인’으로 규정했다. 본질인 기밀 유출 건보다 불기소 결정을 촉발한 기억력 문제로 초점이 옮겨간 것이다. 이 발표 이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허 특검의 보고서에 “정치적 동기”가 깔려 있다고 맹비난했다. 허 특검의 당적이 공화당이고,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의해 메릴랜드주 연방지검장으로 임명됐다.

민주당 일각에선 허 특검을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과 빗대어 비판한다. 2016년 대선 당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기밀이 담긴 이메일 서버를 자신의 집에서 사용해온 혐의를 잡고 FBI가 수사에 나섰는데, 코미 국장이 그해 7월 클린턴을 기소하는 대신 ‘극도의 부주의’만을 지적해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민주당 측에선 코미 국장의 이 발언이 클린턴 후보의 패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백악관 비서실 차장을 지낸 짐 메시나는 엑스(X·옛 트위터)에 “2016년 당시 코미 FBI 국장이 이런 짓을 했는데 이번엔 넘어가선 안 된다. 평생 공화당원인 허 특검은 바이든을 기소하진 않았지만 그의 기억력 문제를 공격하면 어떤 정치적 피해가 갈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라고 비판했다.

2021년 6월12일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P Photo
2021년 6월12일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P Photo

참모들의 수세적 ‘바이든 구하기’ 전략

공화당은 바이든의 약점을 잡았다며 맹공세에 나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허 특검의 불기소 결정을 두고 ‘선택적 기소’라고 비난하면서도 “바이든이 처벌을 면했는데 이는 그가 정신적 쓰레기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로나 맥대니얼 공화당 전국위원회 공동의장은 “중요한 날짜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측은한 노인이 다시 백악관에 들어간다면 미국은 이전보다 덜 안전할 것이다”라고 날을 세웠다. 공화당은 허 특검을 청문회에 불러 바이든 대통령의 기억력 문제를 증언하게 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바이든은 2월8일 특검 보고서가 나온 직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내 기억력은 멀쩡하다(fine)”라며 반박했다. 그런데 그 뒤 바이든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에 관해 설명하다 이집트 대통령의 이름을 멕시코 대통령으로 혼동해 기자회견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특검 보고서가 나오던 주에도 그는 두 번이나 외국 지도자 이름을 혼동해서 구설에 올랐다. 보고서가 나오기 하루 전날 뉴욕에서 열린 모금행사 때 그는 2021년 G7 정상회의 당시 만난 독일 총리를 회고하면서 앙겔라 메르켈이 아닌 헬무트 콜(2017년 사망)을 만났다고 말해 참석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또 대통령 당선 이후 G7 정상회의에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아니라 미테랑 대통령(1996년 사망)을 만났다고 말해 입길에 올랐다.

바이든의 고령과 이런 말실수 탓에 백악관 참모들은 일찌감치 ‘위기관리’를 해왔다. 바이든이 전용기를 탈 때는 계단이 적은 탑승대를 쓰게 했다. 기자회견을 할 땐 질문을 빨리 끝내도록 하고, 언론 인터뷰도 가급적 피하도록 유도해왔다. 최대 스포츠 행사인 슈퍼볼 경기 직전에 역대 미국 대통령이 전통적으로 인터뷰를 하는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생략했다. 이를 두고 백악관의 고육지책이라는 말이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이 말실수를 하거나 걷다가 넘어지는 일을 막기 위해 백악관 참모들이 촘촘한 방어벽을 구축해놓았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백악관 참모진의 수세적 ‘바이든 구하기’ 전략이 대선 경쟁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특검 보고서가 나온 다음 날 ABC 방송이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이 다시 대통령을 하기엔 너무 늙었다는 답변이 무려 86%를 차지했다. 지난해 가을 〈뉴욕타임스〉 조사에서는 70%였는데, 그보다 늘어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바이든에게 정공법을 주문한다. 바이든이 대통령직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보여주는 게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정치 칼럼니스트 미셸 골드버그는 “바이든은 고령에 따른 도전 과제에 대해 솔직해야 한다. 바이든이 앞으로 더 많이 인터뷰하고, 국내외 정책과 관련한 행사를 열어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비전을 확실히 제시해 고령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허 특검 보고서가 당파적이란 지적도 있지만 바이든은 지금껏 꺼리던 일을 해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라고 썼다. 짜인 각본에 따라 유세장에 들러 유권자들을 만나는 일을 줄이고, 유권자들과 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타운홀 미팅을 자주 개최하며, 정기적인 기자회견을 더 많이 열어 현안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이든이 이런 충고를 받아들일지 두고 볼 일이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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