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욱 공수처장이 2022년 8월26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공수처 현판 제막식 후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연합뉴스
김진욱 공수처장이 2022년 8월26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공수처 현판 제막식 후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연합뉴스

“족보도 알 수 없는 남의 집 자식입니다. 호적에 올리겠다는 것 같은데, 우리는 이미 수십 년간 키워온 친자가 있습니다.” 족보도 모르는 남의 집 아이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가리킨다. 친자는 검찰을 지칭한다. 검찰이라는 ‘적자’가 있는데 새로운 사정기구를 또 만들려 하느냐는 뜻이다. 2017년 2월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공수처법) 등 검찰개혁 방안 논의를 위해 열린 공청회에서, 검찰 측이 밝힌 속내였다.

검찰 권력의 핵심은 기소권에 있다. 누군가를 재판에 넘길 수 있는 권한(형사소송법 제246조)은 재판에 넘기지 않을 수 있는 권한(제247조)과 결합해 사회 권력의 한 축으로 작동했다. 기소권은 1949년 검찰청법이 만들어진 이후 오직 검찰만이 가지고 있는 권한이었다. 공수처가 설치되면 검찰은 기소권 일부를 내줘야 했다. 세상에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 혼자 휘두를 수 있었던 칼을 ‘족보도 없는’ 기관이 쥐고 자신을 겨냥한다는데 반가울 리 없다. 검찰 안팎에선 업무 중복과 옥상옥 논란, ‘검찰이 해오던 못된 짓’이란 것을 공수처가 똑같이 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있느냐는 지적 등이 끊임없이 나왔다.

법을 만들어 공수처를 낳아야 할 정치권은 둘로 쪼개졌다. 공수처 설립을 추진하는 쪽은 검찰개혁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반대하는 쪽은 새로운 사정기관이 오히려 개혁의 반대편으로 나갈 수 있다고 맞받았다. 1996년 시민단체 참여연대의 공수처 신설 입법 청원부터 2021년 1월21일 공식 출범까지 25년 동안, 검찰의 반대와 정치권의 반목이 반복됐다.

공수처는 올해 출범 2주년을 맞았다. 설립 직전까지 공수처를 향하던 우려는 이제 없다. 1주년 기념식부터 비공개로 치를 만큼 위상이 초라해졌다. 손에 꼽기도 민망할 정도의 성과에 ‘빈손의 공수(空手)처’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고위공직자 관련 의혹을 담은 고발장이 공수처가 아닌 검찰로 향하기도 한다. 출범 이후의 검찰·정치 권력 견제 기여도를 묻는 대신 ‘계속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먼저 답하라고 다그친다.

검찰의 기소 독점 체제를 허문다는 헌정사적 의미를 가지고 탄생한 기관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군림하면서 정작 권한을 쥐여준 국민의 민주적 통제에서는 벗어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검찰의 힘을 분산하고, 존재만으로도 견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정치권력의 영향으로 가려졌던 권력형 비리를 뿌리 뽑는다는 시대적 사명도 안고 있다.

공수처는 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나. 그동안 공수처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시사IN〉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권인숙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실, 전현직 공수처 관계자 인터뷰, 공수처가 외부 기관에 연구용역을 맡겨 발간한 보고서 등을 종합해 공수처의 현재를 들여다봤다.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공수처 대변인실 직원이 행정업무 부서에 발령됐다. 휴직한 행정직원을 대신하기 위해서다. 행정직원은 출산이 임박할 때까지 근무했다가 출산 직후 곧바로 복귀했다. 처리해야 할 현안 업무가 있었고, 대체 투입된 대변인실 직원은 그가 담당해온 업무를 할 수 없었다. 육아휴직을 받은 건 그보다 한참 뒤의 일이다. 대변인실 직원은 소속 부서로 복귀하지 못했다. 개인 사유로 휴직한 다른 행정직원의 빈자리를 채웠다.

병가를 냈던 공수처 수사팀 소속 직원이 조기 복귀했다. 수술과 입원 치료를 받고 장기 병가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던 직원이다. 빈자리를 채워줄 직원이 없었다. 만약 누군가 자신의 자리를 대신한다고 해도,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지원 근무를 하게 될 직원은 원래 자신의 업무도 해야 한다. 업무량이 두 배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업무 과중으로 누군가가 공수처를 ‘또’ 떠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통원 치료를 받으며 근무했다.

권인숙 의원실이 공수처로부터 취합해 재구성한 사례 일부다. 권 의원실에 모인 사례는 총 12건.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 행정직 및 공무직 직원들이 근무하면서 겪었던, 또 겪고 있는 일들이다. 취재 과정에서 당사자들은 구체적인 내용은 보도를 통해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알려왔다.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이야기들이라고 한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올해도, 지난해에도 공수처 출범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고개를 숙였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한 사과였다. 그러면서도 목소리에 힘을 줄 때가 있었다. 공수처가 지적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한 배경과 원인을 설명할 때다. 올해도, 지난해에도 김 처장은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그 배경을 설명하고 강조했다. 그가 진단한 1차적 배경은 ‘일할 수 있는 환경’, 특히 인력 부족이다. 주어진 임무와 사명, 권한에 비해 검사와 수사관, 행정직원 모두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공수처 정원은 85명이다. 검사 25명, 수사관 40명, 행정직원 20명으로 구성됐다. 2023년 3월9일 기준 공수처 검사는 23명이다. 정원보다 두 명 적다. 수사관도 38명으로 정원에 못 미친다. 행정직원 역시 19명이 일하고 있다. 지금의 직원 수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에서야 본격적으로 채워졌다. 첫 채용부터 미달이었다. 공수처는 출범 이후 한 번도 정원을 채운 적이 없다.

문제의 핵심은 숫자가 아니다. 기관 ‘전체 인력’ 자체가 적고, 이로 인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부작용이다. 공수처 검사들은 업무 집중이 어려운 수준이라고 토로한다. 시간과 인력이 필요한 인지수사는 시도부터 쉽지 않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공수처가 검찰과 경찰, 감사원 등으로부터 이첩·수사 의뢰된 사건에 기대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손이 부족해 검찰에 사건을 이첩한 경우도 있다. 신생 수사기관이라 축적된 수사 관련 자료와 정보, 데이터 등이 없는 만큼 검찰에서 2명이 할 일을 5명이 붙어 처리해야 한다. 한 공수처 검사는 “단순히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수사 실무를 담당하는 수사관들은 이미 과부하가 걸려 있다. 검찰은 통상적으로 검사 한 명당 수사관 2~3명을 배치하고 있다. 공수처는 검사 한 명당 수사관이 1.6명이다(검사 정원 25명, 수사관 정원 40명). 다수의 수사관들은 소속 부서 총무 역할, 수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행정 업무까지 직접 처리해왔다.

공수처법 처리에 반대하며 본회의장에서 농성하는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들. 공수처법은 2019년 12월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시사IN 조남진
공수처법 처리에 반대하며 본회의장에서 농성하는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들. 공수처법은 2019년 12월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시사IN 조남진

공수처는 출범 초기 다수의 TF(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현안 수사를 위한 TF부터 조직 운영 시스템 정비 및 수립 등을 위한 TF 등 명목은 다양했다. 수사부와 행정부서가 함께 구성한 TF도 있다. 대부분의 수사관들이 TF들에 소속됐다. 일부 수사관은 한 번에 9개 TF에 소속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까지 공수처에서 근무한 수사관은 “출범 초기부터 수사관들이 소속된 부서 업무 외에 복수의 TF팀 지원 근무를 했다. 점차 업무 연속성도, 소속감도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부서별로 업무가 명확히 구분되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라고 말했다.

검사와 수사관을 지원하고 기관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행정직원들의 사정은 더 좋지 않다. 공수처도 ‘가장 급한 불’은 행정직원이라고 강조한다. 공수처에서 정원이 가장 적은(20명) 행정직원들은 비서·감사·예산·인사·급여·계약·지출·결산·기록관리 등 조직 운영 업무 전반을 맡는다. 각 분야당 지정된 담당자는 ‘1명’이다. 공수처가 수사만 하는 기관이 아닌 중앙행정기관인 것을 고려하면, 행정직원들의 손은 열 개라도 부족하다는 게 공수처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행정부서의 ‘지원 대상’인 검사와 수사관에게 오히려 손을 빌리는 이유다.

공수처는 행정부서 지원을 위해 중앙·지자체·공공기관에서 정원 외 파견 직원을 받고 있다. 검찰과 경찰로부터 지원받는 수사 인력과는 별개다. 파견된 행정직원들은 통상 6개월~1년 단위로 근무하지만, 원소속 기관과 지자체 사정에 따라 기간이 달라진다. 파견을 나왔다가 업무가 익숙해질 즈음 소속 기관에 복귀하는 일이 적지 않다. 공수처와 원소속 기관 사이 물리적 거리가 있어서, 교체 시기 인수인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공수처 내부는 천천히 곪아가기 시작했다. 검사, 수사관, 행정직원 가릴 것 없이 업무에 부하가 걸리면서 피로도가 높아졌다. 효율은 줄고 목표한 성과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정해진 검사 임기(3년)와 검찰 출신 검사가 적다는 것을 이유로 ‘우수한 인재가 없다’ ‘수사 못하는 이유가 있다’는 등의 외부 지적은 공수처에 큰 뜻을 품고 지원한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공수처의 ‘비전’에 대해 고민하는 직원들이 나왔다. 불만과 불신이 싹텄다.

곪은 부위는 큰 상처를 내면서 터졌다. 검사와 수사관들이 줄사표를 냈다. 지난해 6월 감사원 출신 검사가 처음으로 사직서를 내밀었다. 이후 4개월간 검사 5명이 공수처를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수사관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지휘부의 만류와 설득, 사직서 제출이 반복됐다.

방치하거나, 다그치거나

지난해 5월 공수처는 한국정책능력진흥원에 수사 및 조직 역량 강화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연구 결과를 담은 보고서(공수처 조직 역량 강화 방안 마련 정책연구)는 같은 해 10월 발간됐다. 보고서를 보면, 검찰과 경찰, 해외 수사기관 인력과 공수처 수사·행정 인력 비교, 공수처에 기대되는 조직 역량과 실제 역량 사이 괴리가 분석돼 있다. 연구 결과, 공수처는 수사기관이자 중앙행정기관으로서의 정상적인 기능 수행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공수처 입법 취지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조직 규모를 확대해 조직체계의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수처 정원은 85명에서 170명으로 2배가량 늘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분석됐다. 검사(공수처장·차장 포함)는 부장검사 5명·부부장검사 7명·검사 26명 등 총 40명이 필요하고, 수사관은 검사 인력의 두 배인 80명, 행정직원은 50명이 적정 인력으로 판단됐다. 확대된 인력을 통해 수사 조직을 전문화 및 세분화하는 등 직제의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게 보고서의 골자다.

그러나 공수처 인력을 늘리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정원을 확대하려면 법을 바꿔야 한다. 이미 국회에는 공수처 정원을 늘리는 법안 등 관련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권인숙 의원안은 수사관을 40명에서 80명, 행정직원을 20명에서 50명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았다. 기동민 의원안은 검사를 25명에서 40명으로 늘리는 방안이다. 권인숙 의원은 “정부기관의 정원은 대부분 직제에 규정돼 있지만 공수처는 법률로 규정되어 있다. 육아휴직과 병가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내몰려 있다. 인력 증원은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들이 2021년 9월13일 공수처의 압수수색이 재개된 국회 의원회관 내 김웅 국민의힘 의원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관계자들이 2021년 9월13일 공수처의 압수수색이 재개된 국회 의원회관 내 김웅 국민의힘 의원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개정안이 언제 통과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공수처를 향한 국회의원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가혹할 만큼 비판적이거나, 관심이 없거나. 국민의힘은 공수처 도입부터 반대했다(2019년 당시 자유한국당). 민주당이 공수처 설치 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에 태우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입장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수사 성과도 내지 못하는 기관에 인력을 더 늘릴 이유가 있느냐” “존재 가치부터 먼저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실적으로 정원 확대를 설득하라는 뜻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공수처에 큰 관심이 없다. 국회에서 공수처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공수처 관련 예산을 배정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의원들은 민주당 의원들뿐이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정치권 안팎에선 대부분의 민주당 의원들이 공수처에서 고개를 돌린 시점은 2021년 공수처 1호 수사 대상과 검사 사건 1호 수사 대상이 알려졌을 때로 지목된다. 1호 사건은 감사원이 수사 의뢰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사건이었다. 2호 수사 대상은 대통령 직속 검찰 과거사위원회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이던 이규원 검사였다. 이들이 공수처 첫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민주당에서는 강도 높은 비판이 공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공수처 설치 법안 통과 과정 초기부터 참여했던 민주당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공수처가 겪고 있는 인력 문제는 공수처법의 ‘애매함’에서 나왔다. 공수처 설치에 반대하는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을 설득하면서 공수처 규모와 권한이 대폭 조정됐다. 조직이 너무 커서도 안 됐고 너무 작아서도 안 됐다. ‘검찰색’은 빼면서도 검찰만큼의 수사력은 가져야 한다는 딜레마가 겹쳤다. 학계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설계한 공수처법 원안이 이 과정에서 대폭 수정됐다. 민주당의 최우선 목표는 공수처 출범이었다. 일단 공수처를 만들어두고 추후 법 개정을 통해 손보자는 계획이었다. 과정이 어떻든 여야가 함께 낳은 아이(공수처)다. 지금은 양육하는 대신 방치하거나, 태어난 이유를 증명하라고 다그치고 있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수처 수사관과 행정 직원을 확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는 ‘공수처가 제기능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설명했다. 권인숙 의원실 제공

공수처가 인력 문제 해소를 위한 법 개정 추진 동력을 스스로 깎았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2021년 불거진 ‘황제 조사’ 논란과 통신 사찰, 이듬해까지 이어진 고발 사주 사건 수사 때문이다.

황제 조사와 통신 사찰 논란은 공수처가 과거 검찰의 행태를 답습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논란은 2021년 3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 사건’에 연루된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소환조사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김진욱 처장이 자신의 관용차를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같은 해 4월 언론 보도로 알려지며 ‘황제 조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공수처는 6월 공식 사과했다. 이후 공수처는 최초 보도한 기자에게 검찰이 CCTV 등을 제공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를 수사했다. 이 과정에서 다수 기자의 통신자료까지 확인한 사실이 알려지자 논란에 불이 붙었다.

황제 조사 논란의 배경은 ‘청사 문제’였다는 말이 공수처 안팎에서 나온다. 공수처는 단독 청사가 없다. 정부과천종합청사 5동에 2개 층을 쓴다. 청사 부지가 넓고 수사기관으로 설계된 공간이 아니어서 참고인, 또는 피의자가 고스란히 노출된다. 공수처는 조사 대상자의 요청이 있으면 민원인 주차장에서 만나 공수처가 위치한 건물 앞까지 관용차로 데려오고 있다. 황제 조사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공수처가 운용하던 관용차는 2대였다. 공수처는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보안상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하면서도 이 같은 내용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대신 수사를 앞세워 정보 유출자와 취재기자를 조사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고발 사주 사건은 공수처가 ‘명운을 걸겠다’며 7개월 동안 수사를 벌였지만 사실상 실패한 수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사건과 관련된 구속영장·체포영장 등이 모두 기각됐다. 문제의 ‘고발장 작성자’도 결국 특정하지 못했다. 그 밖에 공수처 1호 기소 사건인 김형준 전 검사 뇌물수수 혐의 사건 역시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수사에도 영향 미치는 ‘법 설계’ 문제

공수처법 문제는 인력에 그치지 않는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은 제한적이고 불규칙하다. 이를 두고 공수처 출범 당시에도 법조계에서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해괴한 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과도한 권한 부여를 경계해 수사 범위를 축소하고 제한한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들도 “실무적으로 들여다보면 사실상 할 수 있는 수사가 거의 없다”라고 말한다.

공수처 수사 대상은 판사, 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공무원, 정무직 공무원 및 고위공무원단 이상(대체로 2급 이상)과 가족이다.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정보원, 감사원, 금융위원회 등의 경우 3급 이상 공무원까지 수사 대상에 속한다. 공수처가 수사할 수 있는 범죄는 △직무유기, 직권남용, 뇌물범죄 등 △허위 공문서 작성, 강요, 공갈, 횡령·배임, 알선수재 등 △변호사법 위반, 정치자금 부정수수, 정치관여, 공무원 등의 선거 관여, 국회 위증 등이다.

고위공직자 비리는 통상 민간 비리와 얽혀 복잡한 구조와 양상을 보일 때가 많다.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범죄를 딱 잘라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공수처법은 법으로 정한 수사 대상과 범죄만 수사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예를 들어 특정 민간기업의 비리가 고위공직자 뇌물 의혹과 연관된 경우, 검찰과 경찰 등 다른 수사기관은 뇌물 사건에서 주로 공여자인 민간인 조사를 먼저 시작해왔다. 뇌물 공여자의 자금 흐름을 먼저 파악하고, 연루된 공무원 실무자 등을 거쳐 ‘윗선’인 고위공직자의 혐의를 확인하는 순서다.

그런데 이를 공수처법에 따라 수사하려면, 사실상 ①고위공직자 본인이 ②부하 직원 또는 실무자를 거치지 않고 ③민간인으로부터 직접 뇌물을 받았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고위공직자의 부하 직원이 사건에 연루된 경우 그가 공수처 수사 대상인 3급 이상 공무원이 아니라면 수사를 제한적으로 하거나(‘관련 사건’으로 분류), 사건을 분리해 검찰에 이첩해야 한다. 민간인도 마찬가지다. 수사 과정에서 수사 대상 기업의 업무상 횡령, 비자금 등이 발견돼도 수사를 이어나가지 못하거나 최소한으로 제한된다. 사실상 공수처는 검찰·경찰과 달리 거꾸로 ‘윗선’부터 수사를 시작해 아래 단계로 내려가야 한다는 뜻이다. 실패 가능성이 높고 명확한 증거 없이는 시도조차 하기 힘든 수사 방식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차이도 크다. 공수처는 대법원장 및 대법관, 검찰총장, 판사 및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만 재판에 넘길 수 있다. 수사를 해도 기소 대상이 아니라면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이첩해야 한다. 공수처가 고발 사주 사건에서 손준성 검사의 공범으로 판단했던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적이다. 김 의원은 사건 당시 변호인 신분이었다. 고위공직자가 아니라서 손준성 검사와 따로 떼어내 ‘관련 사건’으로 수사한 뒤 검찰에 이첩했다. 검찰은 불기소 처분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공수처가 수사하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이후 검찰이 재판을 담당했다.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 손준성 검사. 공수처는 손준성 검사를 수사하면서, 공범으로 지목한 김웅 의원 사건은 따로 떼어내 검찰에 이첩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시사IN 이명익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 손준성 검사. 공수처는 손준성 검사를 수사하면서, 공범으로 지목한 김웅 의원 사건은 따로 떼어내 검찰에 이첩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시사IN 이명익

수사 대상과 수사권, 기소권 역시 공수처 설치법을 둘러싼 국회 여야 합의 과정에서 원안이 수정됐다. 다만 법 설계 문제는 공수처 안팎에서도 신중히 검토한 뒤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데 힘이 실린다. 공수처 권한 확대와 직결되는 만큼 학계와 전문가, 관계 기관, 국회 등과 협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공수처는 최근 서울경찰청 A 경무관의 금품수수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A 경무관은 지난해 강원경찰청에 근무하면서, 대우산업개발 이상영 회장 측으로부터 수사 무마 청탁과 함께 1억2000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이 회장은 대우산업개발 회계 부정 및 배임 등 혐의로 고발돼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의 수사를 받고 있었다.

이 사건은 검찰·경찰 등에서 넘어온 이첩 사건이 아니다. 공수처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사건을 인지해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대상의 직급은 경무관으로 공수처법상 수사 및 기소 대상에 포함된다. 공수처는 A 경무관과 이 회장 측이 뇌물과 관련해 대화를 주고받은 녹취록을 비롯해 관련 증거들을 다수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공수처가 수사를 통해 혐의 입증에 성공하면, 공수처 출범 이후 ‘첫 번째 자체 실적’이 된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을 “여러 의미로 소중한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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