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명 떨고 있나? 공수처 사용 설명서
  • 장일호 기자
  • 호수 644
  • 승인 2020.01.21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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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법 통과까지 23년이 걸렸다. 수사 대상은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 약 7000명이다. 공수처 소속 검사의 범죄는 검찰이 수사한다. 정권 입김에 휘둘리지 않도록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시사IN 조남진지난해 12월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이 통과되고 있다.

‘검찰’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하지만 ‘권력기관’이라는 말이 겨누고 있는 곳은 명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7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2019년 12월30일 국회를 통과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수처법)을 언급했다. 공수처법을 “누구나 법 앞에서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평등하고 공정하게 법이 적용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라고 설명했다.

이만큼 오기까지 23년이라는 지난한 시간이 필요했다. 공수처법은 1996년 참여연대 입법청원을 시작으로 15대 국회부터 지속적으로 발의됐지만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공수처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함께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검찰개혁 핵심 방안이었다. 공수처가 ‘조국 수사’ 때문에 갑자기 도입된 게 아니라는 의미다. 1월9일 검경 수사권 조정을 골자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면서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 집권 4년 차를 맞이한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입법이 모양새를 갖춰나가는 중이다.

문 대통령은 1월7일 정부로 넘어온 공수처법 공포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속도감 있게, 빈틈없이 준비해달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이에 따라 이르면 7월부터 공수처 설치·운영이 가능하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처럼 공수처 역시 입법·사법·행정에 속하지 않는 별도 독립기구 지위를 가진다. 인권위가 법적 강제성이 약한 ‘권고’로만 사건에 개입할 수 있는 반면, 공수처는 검찰이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래 독점적으로 쥐고 있던 수사 및 기소권을 역사상 처음으로 일부나마 나눠 갖는다.

7000명 중 5000명이 검사와 판사

일각에서는 이 ‘족보 없는’ 기구가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다고 비판하지만, 다른 나라에 공수처와 비슷한 기관이 있는지 사례를 살펴보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 김선수 대법관은 변호사 시절인 2017년 <권력과 검찰>(창비)에 실린 인터뷰를 통해 공수처 자체에 ‘한국적’ 특수성이 있다고 말한다. “검찰이 직접수사를 하면서 공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예는 세계 어디에도 없죠.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막강한 검찰 권력을 개혁하고 견제하기 위해서는 과도기적으로 세계에서 입법 예가 없는 방법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특수성이 있는 거죠.”

공수처 수사 대상은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을 포함해 약 7000명이다. 대통령, 국무총리, 장차관, 국회의원,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판사, 검찰총장 및 검사, 광역시장·도지사, 교육감, 경무관급 이상 경찰 등을 망라했다. 퇴직 이후에도 재직 당시 범죄가 밝혀지면 기간 제한 없이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 가족에는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이 포함되고, 대통령은 이에 더해 4촌 이내 친족까지 대상 범위가 넓어진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가 물거품이 된 원인 중 하나로 ‘국회의원을 포함시킨 것’으로 꼽았지만, 이번에 국회가 통과시킨 공수처법은 국회의원도 포함되어 있다. 공수처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그만큼 강력했다.

ⓒ연합뉴스공수처법 표결이 진행되는 가운데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수사 대상 7000여 명 중 약 5000명이 판검사다. 문 대통령이 말한 ‘특권을 누린’ 집단이다. 법을 다루는 사람일수록 법망을 잘 피해간다. 법조계는 내부 비리가 드러날 때마다 셀프 개혁을 다짐해왔다. 공수처는 그 믿음이 번번이 깎여나간 자리에서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왔다. 2019년 10월29일 법무부가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4~ 2018년 검사를 대상으로 접수된 고소·고발 사건 중 검찰 처분이 이뤄진 사건은 모두 9903건이다. 이중 기소가 이뤄진 사건은 14건, 기소율은 약 0.14%다. 판사에 대한 기소율도 0.16% 정도로 알려졌다. 일반 형사사건 기소율은 어떨까. 대검찰청 검찰연감에 따르면 비슷한 기간 일반 형사사건 기소율은 34.8%였다.

대검찰청은 사건 성격 자체가 다르다고 주장한다. 사건 관계인이 사건 처리에 불만을 품고 민원성 고소·고발을 남발해 각하 처분되는 사건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통계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형사사법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권한인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한 검사는 수사를 한 다음 피의자를 재판에 회부할 수도 있고 회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검찰 권력은 이처럼 재판을 제외한 형사사법 절차를 지배하는 기소편의주의에서 나온다. 특히 고위공직자 비리와 관련된 인지사건은 처리 기한에 제한이 없다. 이른바 ‘캐비닛’에 넣어둔 사건은 언제든 봐주기 수사나 표적 수사로 변질될 수 있다.

검찰·경찰과 더불어 제3 수사기관의 지위를 얻은 공수처는 권한을 나눠 지고 서로를 견제하도록 설계됐다. ‘옥상옥’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검찰과 공수처의 수사 대상 자체가 구분된다. 또 공수처 수사 범위는 형법 제122~133조에 규정된 고위공직자 뇌물 수수, 직권남용, 피의사실 공표죄 등으로 제한된다. 무엇보다 공수처의 기소권은 예외적으로만 인정된다. 판검사나 경무관급 이상 경찰이 기소 대상에 포함된 경우에만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공수처는 원칙적으로 수사권과 영장청구권만 갖는다.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이의가 있을 경우 법원에 판단을 구하는 재정신청 정도를 할 수 있다. 또 공수처 소속 검사의 범죄 혐의는 검찰이 수사하도록 정했다. 김선수 대법관은 2017년 “공소기관은 검찰로 단일화할 필요가 있지만, 수사기관은 복수이면서 서로 견제하는 게 좋다”라고 말하기도 했다(<검찰과 권력>).

ⓒ연합뉴스윤석열 검찰총장이 1월7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만난 뒤 법무부 건물을 나서고 있다.

공수처가 정권 입김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역시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공수처법 제3조 3항은 ‘대통령, 대통령비서실의 공무원은 수사처의 사무에 관하여 업무보고나 자료제출 요구, 지시, 의견 제시, 협의, 그 밖에 직무수행에 관여하는 일체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공수처처장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 의결 기준도 높였다. 애초 재적위원 5분의 4 이상의 찬성을 위원 7명 중 6명이 찬성해야 의결 가능하도록 바꿨다. 추천위는 법무부 장관과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여당 추천 인사 2명, 야당 추천 인사 2명으로 구성되는데, 야당 추천 위원이 후보자를 비토할 경우 의결이 불가능한 구조다.

이 때문에 공수처장 임명을 ‘지연’하는 방식으로 공수처 출범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는 1월7일 인사청문회에서 “공수처장 임명을 지연하는 방식으로 법을 무력화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공수처장은 추천위가 최종 추천한 2명 중에서 대통령이 1명을 지명한 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한다.

검찰에 비해 100분의 1 규모

공수처 규모는 검찰 조직과 비교하면 100분의 1 정도다. 검찰청 구성원은 검사 2100여 명과 수사관 7000여 명인 반면 공수처는 처장 1명과 차장 1명을 포함한 검사 25명 이내, 수사관 40명 이내로 구성된다. 물론 규모가 작다고 해서 파급력까지 작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례로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특검 당시 파견 검사 20명을 포함해 총 60명 규모였다. 하지만 특검이 정해진 기간 내에 단일한 사건을 수사하는 것과 달리 공수처는 수사 대상과 수사 범위 자체가 훨씬 폭넓다.

공수처 조직 규모가 크지 않은 만큼 사건 인지와 관련해 다른 수사기관과 협력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공수처법 제24조 2항은 검찰이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는 내용이다. 공수처법 수정안이 공개된 직후인 2019년 12월26일 대검이 입장문과 반대 의견서를 내며 ‘독소조항’으로 알려졌다. 공수처 이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 범죄를 인지한 경우 공수처에 통보하도록 규정돼 있다. 또 수사가 중복되는 경우 공수처장은 사건 이첩을 요청할 수 있고, 검찰이나 경찰은 이에 따라야 한다. 한 검사는 “‘통보’ ‘이첩’ 같은 표현이 검찰 내부를 자극했다. 칼을 휘두를 줄만 알았지 빼앗겨본 적이 없으니 당황스러울 거다. 검찰 입장에서는 공수처가 눈엣가시인 만큼 견제는 확실히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공수처와 검찰은 필연적으로 불화할 수밖에 없는 기관이다. 공수처법 신설 이유가 곧 ‘무소불위’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와 전관예우를 통한 사법 거래를 견제하려는 목적과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공수처 등장으로 앞으로 어쩌면 더 자주 ‘그랜저 검사’ ‘벤츠 검사’ ‘스폰서 검사’와 유사한 사건이 드러날 수도 있다. 다단계 사기범에게 돈 받은 부장검사도, 대학 동창에게 공짜 주식을 받은 검사장도 발붙이기 어려워졌다. 적어도 노골적으로 검찰 내부에서 사건을 은폐하기는 어려워졌다. 김학의 전 차관은 2013년과 2014년 부실한 검찰 수사로 인해 2019년 구속되고도 공소시효 만료로 법망을 비켜갔지만 이런 풍경은 공수처법 통과와 함께 이제 ‘과거’로 갈 가능성이 높다. 이 밖에도 아버지가 검사장을 지낸 ‘귀족 검사’ 성추행 사건 당시 감찰을 게을리한 검찰, 공문서(고소장)를 위조하고도 징계를 받지 않은 검사 등 임은정 검사의 내부고발로 드러난 검찰의 ‘선택적 정의’가 공수처라는 시험대에 올랐다. 임은정 검사는 공수처법이 통과된 12월30일 페이스북을 통해 “공수처의 도움으로 검찰의 곪은 부위를 도려내고 건강한 검찰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적었다.

개혁은 그 사회 수준에 맞게 이뤄진다. 처음부터 완벽한 제도는 없다. 일단 만들어진 제도는 그 자체로 생명력을 발휘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필요한 부분을 보완해나가는 과정을 거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1월3일 취임사에서 “국민적 염원 속에 통과된 검찰개혁 법안이 법무 현장에서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가 출범하기까지 약 6개월, 시행령과 시행규칙 제정 등 공수처 설립을 위한 더 중요한 과정이 남았다. 준비 작업은 법무부가 하겠지만 공수처가 독립기구인 만큼 2001년 인권위 설립 때와 마찬가지로 별도로 준비위원회가 꾸려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인회 교수(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는 법률 통과는 검찰개혁의 종착점이 아니라 국가적 역량을 동원해야 하는 또 다른 출발점이라고 지적한다(<시사IN> 제638호 ‘패스트트랙 이후의 검찰개혁’ 기사 참조). 실패를 바라는 집단은 개혁 취지가 실무에 매끄럽게 정착되지 않는 빈틈을 노린다. 1월9일 자유한국당 공약개발단은 4월에 치를 21대 총선 ‘1호 공약’으로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공수처 폐지를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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