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21일 노옥희 당시 울산교육감(왼쪽)이 아프간 특별기여자 자녀의 손을 잡고 첫 등굣길에 오르던 모습은 오랫동안 회자됐다. ⓒ노옥희 교육감 페이스북 갈무리

차창 밖으로 아파트 단지가 쉴 새 없이 휙휙 지나가더니 어느 순간 풍경이 달라진다. 공장 굴뚝이며 조선소 크레인들이 울산대교 너머로 솟아 있다. 바닷가 선적 부두에는 자동차 수천 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한반도 동남쪽 끝자락, 울산 동구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공업도시를 채운 건 외지인들이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세계적 규모의 조선소 두 곳이 있었다. 타 지역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곳으로 왔다. 아파트와 학교가 하나둘 생겨났다. 하지만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0년대 조선업 불황이 시작되었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3만명 넘는 인구가 떠났다. 그 자리엔 ‘소멸 우려 지역’이란 이름이 남았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던 울산 동구의 이야기다.

2022년 2월 이후로 새롭게 쓰이는 이야기가 있다. 그 시작엔 또 다른 외지인들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아프간) 특별기여자와 그 가족 158명이 울산 동구 서부동의 한 아파트로 이주했다. 거센 반발과 갈등이 불거졌다. 주민들은 한국인 자녀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이슬람 동네’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울산 동구 주민들에게는 분명 예년과 다른 해였다. 무슬림(이슬람교도), 노동자, 이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누가 갈등을 해결할 것인가. 간단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시사IN〉은 2월 중순 울산 동구에 닷새간 머물면서 그 시간들을 취재했다. 상처도 컸지만, 드물게 이웃이 되기도 했다. 거기엔 다문화 사회가 던진 갈등을 피하지 않고 해결하려 애썼던 사람들이 있었다.

울산 사람들은 “다가올 미래를 먼저 경험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울산 동구만의 것이 아니다. 시작은 외지인이지만, 그 끝은 한국인들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울산은 왜 달랐나?’ 질문을 받은 각 기관 실무자들에게서 한 사람의 이름이 나왔다. 고 노옥희 당시 울산교육감. “교육감님이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김호산나 아프간어 통역가).” “교육감님이 확고한 의지가 있으셨기 때문에 저희도 정면돌파할 수 있었다(김창유 현대중공업 동반성장지원부 책임).” “아이들이 한국어가 빠르게 늘 수 있었던 건 울산교육청 덕분이다(이정숙 울산 동구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서로 다른 현장마다 그의 유산이 조금씩 남았다.

노옥희 교육감은 지난해 12월8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재선에 성공한 울산의 첫 진보 여성 교육감이었다. 교육청은 물론이고 아프간인 정착 지원에 관여한 모든 관계자들이 충격에 빠졌다. 아프간 특별기여자를 둘러싼 반발이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까지 번지지 않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존재가 컸다. 지난해 3월, 아프간인 자녀의 손을 잡고 첫 등굣길에 오르던 노 교육감의 모습은 오랫동안 회자됐다. 그의 손을 잡고 등교했던 아스마도 교육감을 추모했다. “(교육감님이) 학교에 잘 갔다 와요, 공부 열심히 해요, 그렇게 말했어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네, 열심히 할 거예요.’” 아스마는 올해 서부초등학교(서부초) 5학년이 되었다.

반대 여론이 불거진 건 지난해 2월 아프간 아이들 28명이 서부초에 일괄 배정되면서다. “그때 비디오를 찍어놓고 리얼하게 한번 보여드렸어야 하는데, 정말 매일매일이 난리였다.” 장영복 울산교육청 교육협력담당관실 팀장은 그런 반발을 처음 겪어봤다. 교육청 내 다문화 가정의 학생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었지만 민원이 예상치 못한 수준으로 빗발쳤다. 결국 교육협력담당관실이 총괄해달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교육감 직속 부서였다.

지난해 3월 21일 노옥희 당시 울산교육감의 손을 잡고 등굣길에 올랐던 아스마가 2월 10일 남목청소년 문화의집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이 ‘노옥희 업적’

당시 서부초 학부모들은 인근 외국인 학교나 외부 시설에서 아프간 학생들을 받아달라고 요구했다. 울산교육청에 따르면, 현실적으로도 법적으로도 불가능했다. 외국인 학교는 중공업 바이어의 자녀들이 임시로 다니는 곳이라서 아프간 학생을 한꺼번에 받을 여건이 되지 않았다. 서부초는 아프간 아이들의 거주지와 가장 가까운 학교였다. 원칙대로라면 서부초 입학은 문제가 없었다. 무엇보다 공교육 제도 안에서 아이들의 정착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노 교육감의 기본 뜻이었다. 장영복 팀장은 “공무원들이 흔들림 없이 원칙대로 일하려면 수장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데, 교육감이 그런 역할을 했다”라고 말했다.

울산교육청 교육협력담당관실의 장영복 팀장(왼쪽)과 김정헌 주무관.ⓒ시사IN 김영화

가장 큰 문제는 언어였다. 일단 말이 통해야 친구도 사귀고 정착도 앞당길 수 있었다. 노옥희 교육감은 아이들의 한국어 교육을 집중적으로 지원해달라고 당부했다. 아프간 자녀들이 배정된 유·초·중·고 17개 학교마다 ‘특별반’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학생들이 가장 많은 서부초에는 세 개 반이 생겼다. 별도의 한국어 교사가 고용돼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직접 가르쳤다. 교육청의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한국어 교사부터 장애인 돌봄교사, 처우개선 교사, 통역가 등 지원 인력만 90명에 이르렀다. 울산교육청 예산으로 25억원이 들었다. 후에 교육부가 18억7000만원을 지원했다.

그 덕에 아프간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은 빠르게 향상됐다. 한국 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친해졌다. 서부초에서 근무하는 김호산나 아프간어 통역가는 “한국 친구들이 아프간 친구들 반에 맨날 놀러온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해 11월5일 ‘전국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에서 서부초 6학년 워헤드가 초등부 은상을 받기도 했다. 이곳에서 워헤드는 다리어와 한국어로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저희 아프가니스탄 가족들이 한국에 왔을 때 모두 반갑게 맞이해주시고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한국에서 모두가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아프가니스탄 넘버원 경찰이 되고 싶습니다.”

이정숙 울산 동구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은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이 ‘고 노옥희 교육감의 업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받을 수 있는 한국어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였다. 교육청 산하 다문화교육지원센터가 주관했다. 하지만 울산 지역에는 다문화 가정 자녀가 전교생의 10% 이상 되는 학교가 생길 정도로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아프간 학생 28명을 위해 인력이 대거 투입됐으니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학교 안에서 매일 수업을 듣는 것과 일주일에 두 번 따로 수업을 받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크겠나. 만약 학부모의 반발이 없었다면, 혹은 아프간 기여자들이 울산에 오지 않았다면 그 많은 인력이 학교마다 배치될 수 없었을 거다.” 아프간 학생과 같은 중학교를 다니던 다른 다문화 가정 자녀도 ‘덕’을 보게 되었다고 이 센터장은 덧붙였다.

“결국 아프간 분들이 한국 사회에서 건강한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사회적 갈등이 커지면 그땐 비용이 더 들어요. 그걸 생각하면 초기 비용은 훨씬 싼 편이에요.” 한국어가 빠르게 향상된 아프간 아이들을 보며, 정착 지원에 공력을 들일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프간에서 남편과 세 아이와 함께 한국으로 온 사지아 씨가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쓴 글을 보여주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울산 정착은 다른 다문화 갈등 사례에 비해 모범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무엇보다 갈등을 다루는 과정에서 학부모 소통 협의체, 한국어 특별반, 유관기관과 협조 체계 등 이전에 없던 매뉴얼이 생겨났다. 장영복 팀장의 말이다. “단순히 ‘법적으로 문제없으니 학부모들이 이해해주세요’ 이렇게 하지는 않았다. 우려와 반발을 이해했고 대안을 선제적으로 제시했다. 저희가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이니까 학부모들도 나중엔 좀 안심이 되지 않았나 싶다.” 학교와 교육청에 쏟아지던 민원도, 반대하던 학부모들의 수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다른 현장에서도 울산에 관심이 많았다. ‘대구 북구 이슬람사원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에서도 지난해 9월 울산교육청에 연락해왔다. 울산의 사례를 공유받고 싶어 했다. 대구 북구 대현동에서는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두고 이슬람 유학생과 지역주민 사이의 갈등이 2년째 지속되고 있다. 최근 주민들이 돼지머리 시위에 이어 바비큐 파티를 벌여 논란이 더욱 커졌다.

울산교육청 측이 강조한 것은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소통’이었다. “그분들을 배척해버리면 안 된다. 문제를 풀기 위해선 이해관계자들과 소통을 활발히 했던 게 도움이 많이 됐다.” 장영복 팀장은 “어떤 갈등이든지 현장에 답이 있는 것 같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각 주체가 제 역할을 하면 다문화 사회의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울산의 시도는 보여준다.

열여덟 살 워리스는 한국어 연습을 한 메모를 집 한편에 붙여놓았다.ⓒ시사IN 신선영

노옥희 교육감의 갑작스러운 부고로 현장에서는 동력이 떨어지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된다. 수장이 누가 오느냐에 따라 교육청 ‘기조’가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울산교육감 보궐선거는 4월5일 치러진다. 장영복 팀장은 나름의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대답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터졌을 때도 ‘혹시나’ 하고 긴장했다. 또 비슷한 일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한 번 겪어봤다. 시스템이라는 게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일이더라.”

“어떤 갈등이든 현장에 답이 있는 것 같다”

울산교육청의 노력 덕분에 올해도 아프간 학생들은 등굣길에 오를 수 있다. 유치원 18명, 초등학교 27명, 중학교 15명, 고등학교 20명, 특수학교 4명까지 총 84명이다. 지난해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일곱 명이 무사히 졸업했다. 6명은 울산과학대에 합격했고, 1명은 현대중공업 협력업체에 취직했다.

달라지는 게 있다면 이번 학기부터 아프간 아이들이 한국반에서 수업을 듣게 된다는 점이다. 아스마는 5학년 2반에 배정됐다. 한국 친구들과 한 반이 되는 게 “조금 부끄럽다”라고 하다가도 “재밌을 것 같다”라고 기대했다. 1년 전보다 한국어 실력도 자신감도 높아졌다. 노옥희 교육감은 생전 〈시사IN〉과 인터뷰하면서 “아프간 학생과 한국 학생이 섞일 수 있는 수업을 만드는 게 남은 숙제”라고 말했다. 노옥희 교육감이 떠난 자리에, 울산 교육청의 새로운 도전이 남았다.

기자명 울산·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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