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뉴요커〉에서 ‘대단한 청탁’을 받은 한 작가가 있다. 작가는 글을 쓰기 전부터 자신의 이야기가 실릴 지면을 떠올리며 벅찬 감동을 느낀다. “〈뉴요커〉 폰트로 보면 어떤 모습일까? 삽화가 있을까? 어떤 삽화일까? 아버지의 옛날 사진을 달라고 할지도 몰라.” 그러는 동안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한 그는 상상하는 데 싫증이 난 나머지 마침내 글을 써 내려간다. 몇 년이 지난 뒤 그가 〈뉴요커〉에 실렸던 자신의 글을 떠올릴 때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폰트도, 삽화도, 사진도 아니었다. “해가 뜨기 전 새벽, 침실 책상 아래쪽 브로드웨이를 지나는 차들의 불빛과 어둠 속에서 빛나던 컴퓨터 화면이다.”
매주 기사를 마감하는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다만 내 기사가 실릴 지면을 떠올릴 때마다 ‘벅찬 감동’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새어 나가는 한숨’을 느끼곤 한다. 한숨을 쉬는 데 질려버린 나머지 겨우 한 글자씩 적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게 아니야.’ ‘문단 순서가 이상하지 않아?’ ‘뭐야, 무슨 나무위키를 베낀 것 같잖아.’ 조롱과 불신이 쏟아지면 이를 회피하려고 어느새 의자에서 일어나 서성이는 나를 보게 된다. ‘쓰레기통이 꽉 찼네?’ ‘청소기 돌릴 때가 됐는데.’
대니 샤피로는 말한다. “파도가 다가와 당신을 덮칠 것이고, 그러고 나서 물러날 것이다. 당신은 여전히 그대로 앉아 있을 것이다. … 만약 어느 순간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던 당신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 앉아서 튤립을 심고 있거나, 제일 좋아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왜 그러고 있는지 모른다면, 그 파도가 승리한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글을 쓸 때 겪는 거의 모든 증상을 알고 있다. 그리고 단 한 가지 처방을 내린다. “계속 쓰기:나의 단어로.”
“하지만 글을 쓰는 삶은 답을 주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좋은 면은, 글을 쓰는 당신이 무언가를 이룰 수 있으리라고 안심시켜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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