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에서 빌라 283채를 사들여 대규모 전세 사기를 벌인 ‘화곡동 강씨’가 구속 기소됐다. 피해자들이 전세 사기 사실을 알아차린 지 3년10개월 만이다. 서울남부지검은 1월4일, 임대업자 강 아무개씨와 공범 조 아무개 공인중개사, 조씨의 동업자 김 아무개 공인중개사를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강씨를 지난해 12월27일 구속했다. 조씨와 김씨는 구속영장이 기각되어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의 기소 사실만 놓고 보면 장기간에 걸친 ‘화곡동 강씨’ 전세 사기 사건 수사가 마무리된 듯하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검찰이 시간을 끄는 바람에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 중 일부에 대해 죄를 묻기 어려워졌고(공소시효 경과), 전세 사기에 적극 가담한 다른 일당에게는 면죄부가 부여됐다.

2019년부터 ‘화곡동 강씨’ 사건을 추적한 〈시사IN〉은 최근 이 사건의 배후를 쫓으며 사건의 다른 측면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은 화곡동 강씨가 아니라 공범 ‘중개사 조씨’로 의심된다는 점이다.

특히 중개사 조씨는 최근 사망한 ‘빌라왕’ 김대성과도 연결고리가 존재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종로구 한 모텔에서 지병으로 사망한 채 발견된 김대성은 서울 강서구와 인천 미추홀구 등지에서 빌라 1139채를 사들여 세상에 충격을 안긴 인물이다. 그동안 김대성의 빌라 매입(2019~2022년)은 화곡동 강씨의 매입 시점(2015~2018년)과 달라 별개 사건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최근 김대성과 중개사 조씨의 인연이 확인되며 두 사건이 연결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전세 사기에 적극 가담한 공인중개사 조씨(왼쪽)와 그의 밑에서 중개보조원으로 일했던 ‘빌라왕’ 김대성.

조씨는 화곡동 강씨의 전세 사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운영하던 중개사무소를 폐업하고 종적을 감췄다. 〈시사IN〉은 사라진 조씨의 행방을 쫓으며 최근까지 조씨가 부동산 관련 사업을 크게 벌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 시작:낯선 공인중개사의 등장

2013년 8월, 서울 강서구 강서로17길 한편에 위치한 한 상가에 ‘희○공인중개사사무소’라는 간판이 새로 걸렸다. 대표 공인중개사는 당시 44세 조 아무개씨, 이미 있던 중개사무소를 인수해 새로 동네에 나타난 인물이었다. 당시까지 강서구 화곡1동 일대 임대시장은 ‘호황과 불황이 따로 없는 동네’였다. 저렴한 임차료 덕분에 서민들이 모이고 빠져나가길 반복했다. 자산이 얼마 없는 사회 초년생들이 특히 이 지역으로 많이 모였다. 지하철 2·5호선 까치산역을 이용하기 편리해 출퇴근도 용이했다. 임대주택 수요는 늘 한결같았다.

당시 이 동네는 ‘뉴타운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2000년대 ‘화곡 뉴타운’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오랫동안 고치지 않은 낡은 주택이 많았다. 경사가 높고 고도제한(인근 김포공항 영향)이 걸려 있는 이곳에서 뉴타운 추진은 지지부진했다. 결국 2013년 11월, 화곡1동 424번지 일대의 정비예정구역이 해제되었다. 조씨가 당시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차린 곳도 해제된 정비예정구역 바로 앞이었다.

정비예정구역 해제 이후 이곳에는 ‘빌라 붐’이 일어난다. 낡은 집 두세 채를 합쳐 4~5층짜리 빌라(다세대 주택)를 짓는 게 유행처럼 번져갔다. 자연스럽게 신축 빌라 매물이 늘었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분양업자들이 기대하는 분양가가 터무니없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매물들이 소화되고, 점점 신축을 짓기 위한 토지 비용도 급격히 상승하게 됐다. 신축 빌라를 분양가보다 높은 가격에 전세로 계약하는 사례가 늘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수완이 좋았던 인물이 바로 조씨다. 조씨의 공인중개사 사무실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라고 말했다.

조씨가 처음부터 전세 사기를 노렸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공인중개사의 주 수입원은 중개수수료다. 이른바 ‘복비’라고 불리는 중개수수료는 가격이 정해져 있어 큰 수입을 내기 어렵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조씨는 여타 공인중개사처럼 평범한 전세·월세 중개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조씨의 네이버 블로그에는 당시 내놓은 임대주택 소개 글이 남아 있다.

2015~2018년 조씨는 신축 빌라 전세 사기를 통한 리베이트 수입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조씨의 블로그도 2014년 11월 이후 게시글이 끊겼다. 한 공인중개사는 당시 조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조씨에게 한 차례 공동중개를 제안한 적이 있다. 건축업자가 구축 단독주택을 매입하는 거래를 돕는 일이었는데, 중개수수료 수입이 수백만 원 나오는, 평범한 공인중개사 입장에서 꽤 쏠쏠한 일감이었다. 그런데 조씨는 ‘그런 일은 신경 쓸 게 많고 돈도 안 된다’며 거부하더라. 당시 조씨는 신축 빌라 분양업자들에게 신규 전세 세입자를 잘 알선하기로 이름났다. 분양업자에게 리베이트를 더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신축 빌라 전세 사기에서 통상 공인중개사가 건축주로부터 받는 리베이트는 건당 ‘열 장(1000만원)’ 정도다. 신축 빌라를 분양가보다 비싸게 전세로 내주면 일종의 차액이 생기고, 이 차액을 분양업자와 공인중개사 등이 나누어 갖는 구조다. 조씨는 이 동네 공인중개사들 중에서도 신규 임차인을 데려오는 수완이 좋아 분양업자보다 우위에 서곤 했다.

조씨의 영업 비결 중 하나는 ‘부동산 플랫폼’이었다. 부동산 앱에 깔끔하게 정리된 신축 빌라 사진을 올려 임차인들을 끌어오고,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방문한 임차인들을 차에 태워 신축 위주로 구경시켜 거래를 이끌어냈다. 〈시사IN〉이 만난 ‘화곡동 강씨’ 피해자 대부분도 이런 부동산 앱을 통해 조씨를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들 피해자 가운데 다수가 2015~2017년에 지은 신축 빌라에 2억원 넘는 돈을 주고 전세로 들어와 있었다.

‘건축주-분양업자-공인중개사-임차인’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에서 조씨의 영향력은 컸다. 신규 빌라 물량이 조씨가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사무소로 몰렸다. 순수하게 중개수수료 수입만 올리려는 정직한 공인중개사들 입장에서는 속 쓰린 일이 반복됐다. 이 지역에서 전세 사기가 확대될수록 건축주나 분양업자들이 원하는 ‘분양가’나 ‘전세가’도 따라서 올랐기 때문이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건축주나 분양업자에게 ‘그 가격에는 못 판다’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조씨가 그 물량을 해소해줬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 ‘화곡동 강씨’와 ‘빌라왕 김대성’

임대인(집주인) ‘화곡동 강씨’는 2015년부터 조씨와 공모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공모 과정에서 ‘더 많은 몫’을 가져가는 쪽은 조씨였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신축 빌라 전세 사기를 통해 강씨와 조씨가 가져가는 리베이트는 약 500만원에서 1500만원 수준이다. 강씨는 이 중 100만~150만원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조씨와 또 다른 공인중개사 김 아무개씨가 챙겼다. 사실상 강씨는 조연일 뿐, 더 많은 이익을 취하는 건 중개사 조씨였다(〈그림〉 참조).

검찰은 강씨와 조씨가 신축 빌라를 통한 전세 사기에 집중했다고 설명하지만, 〈시사IN〉 취재 결과 두 사람은 저렴한 노후 빌라를 통한 전세 사기에도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전세 임차인이 살고 있는 빌라를 강씨가 ‘갭투자’ 하면, 조씨가 이전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새로운 임차인들에게 전세 계약을 안내하는 식이다. 빌라는 아파트와 달리 정확한 전세 시세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중개사무소에서 ‘부르는 게 값’이었다. 피해자 김장훈씨(가명)가 대표적 사례다. 김씨는 2018년 6월, 1997년에 지은 빌라 반지하에 1억3500만원 전세로 입주했는데, 실상 강씨가 2015년 11월 이 집을 매입한 금액은 1억1500만원에 불과했다.

인근 주민들은 조씨의 사무실에 조씨 외에도 직원들이 많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조씨는 중개보조원을 여럿 두고 일했다. 그런데 이들 중 한 명이 훗날 또 다른 전세 사기의 주인공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바로 빌라 1139채를 매입한 상태로 지난해 사망한 ‘빌라왕’ 김대성이다.

김대성이 조씨와 일을 한 시점은 2018년 9월께로 추정된다. 김대성이 생전 운영하던 블로그와 네이버 카페에는 이 시기 화곡동 일대 빌라 매물을 소개하는 글이 남아 있다. 당시 김대성은 스스로를 ‘희○공인중개사사무소 중개보조원 김대성 과장, 대표자 공인중개사 조○○’로 소개하며 웹용 명함을 공개해두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조○○이 바로 화곡동 강씨 사건으로 기소된 공인중개사 조씨다.

그런데 김대성이 조씨와 일한 시점은 마침 조씨와 강씨가 쌓아 올린 전세 사기가 무너지던 때였다. 화곡동 강씨는 2018년 연말부터 임차인들의 전세보증금을 되돌려주지 못하고 연락이 두절되었다. 당시 강씨를 찾던 전세 임차인들이 조씨를 찾아갔고, 조씨는 임차인들에게 “강씨가 어떤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었는데, 그 세입자가 은행에 전세대출금을 갚지 않고 도망쳐서 강씨의 현금흐름에 문제가 생겼다”라고 설명했다.

조씨 역시 이 무렵 중개사무소를 폐업할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 조씨는 2019년 3월, 임차인들에게 강씨가 전세보증금을 되돌려주지 못할 것이라고 통보하며 “저 또한 이런 일이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워서 폐업 준비 중에 있습니다. 폐업 전까지는 도움이 될 일이 있으면 도와드리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졌다.

지난해 12월20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대성은 2019년 한 부동산업자로부터 빌라 40채가량을 ‘선물’받으며 전세 사기에서 임대인 역할을 시작했다. 이 시점은 강씨가 사라지고 조씨가 중개사무소를 폐업한 시점과 겹친다. 〈시사IN〉은 김대성씨가 ‘선물’받았다는, 임대인 명의를 넘겨받았다는 빌라가 혹시 강씨가 소유하던 빌라가 아닌지 확인해보았다. 강씨가 소유한 283채 가운데 〈시사IN〉이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사례는 총 54채, 그러나 2023년 1월3일에 확인한 이들 주택의 등기부등본에서 김대성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사IN〉이 확인하지 못한 나머지 229채 가운데 몇몇 주택이 김대성에게 넘어갔을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 사라진 조씨는 여전히 동네에 있었다

화곡동 강씨 피해자들은 강씨와 조씨를 고소했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강서경찰서는 2020년 8월 서울남부지검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그러나 이후 이 사건은 2년4개월 동안 검찰에 묶여 있었다.

이 사이 조씨는 중개사무소를 폐업하고 연락처를 바꾼 뒤 잠적했다. 피해자들은 조씨의 행방을 찾을 길이 묘연했다. 그런데 〈시사IN〉 취재 결과, 조씨는 폐업한 중개사무소로부터 불과 880m 떨어진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사무실을 차리고 부동산 개발업과 부동산 임대업을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조씨는 2020년 10월 부동산 개발과 중개를 하는 ‘주식회사 J’를, 2021년 2월에는 ‘주식회사 S’를 차례로 설립했다. 비교적 최근인 2022년 8월에는 추가로 ‘E 건설’을 만들었다. 세 회사 모두 소재지가 조씨가 소유한 신월동 건물로 기록되어 있었다.

조씨는 지난해 9월, 19억원을 들여 이 건물을 매입했다(담보대출은 14억6400만원). 1월4일 〈시사IN〉은 이 건물 3층에 위치한 조씨 사무실을 찾았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문 안에서 사무실 직원은 “조○○이라는 사람은 없다”라고 소리치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이 건물 상가를 임차 중인 상인들은 조○○의 사진을 보며 “작년에 새로 바뀐 건물주가 맞다”라고 답했다.

조씨는 이들 상가 세입자들에게 각기 다른 법인명으로 임대료를 받고 있었다. 한 상인에게는 ‘주식회사 S’ 이름으로 내용증명을 보냈고, 다른 상인에게는 ‘E 건설’ 명의로 세금계산서를 보내주기도 했다. 법인등기상 세 회사 모두 부동산 개발업, 또는 부동산 임대업을 주업으로 삼고 있었다.

〈시사IN〉은 이들 중 ‘주식회사 S’의 신용평가 보고서를 확보해 살펴봤다. 이 회사의 자산은 2021년 연말 기준 총 92억7400만원, 순자산(자본)은 1억1200만원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보고서에는 이 회사의 사업 유형을 “건물 건설공사를 일괄 도급하여 주거용 건물을 건설하고, 이를 분양·판매하는 산업활동. 구입한 주거용 건물을 재판매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희O공인중개사사무소를 정리한 조씨가 매입한 건물. 그가 새로 설립한 부동산 회사 소재지다. ⓒ시사IN 김동인

이들 법인의 영업 활동을 고려했을 때, 283채 전세 사기의 공범으로 지목된 조씨는 잠적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부동산 관련 사업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화곡동 강씨’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벌써 3년10개월이 지났지만, 그동안 숨어 지냈을 것이라 추정된 중개사 조씨는 바로 옆 동네에서 여전히 더 큰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시사IN〉 취재 내용을 접한 한 피해자는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조씨가 이렇게 버젓이 부동산 사업을 벌일 수 있었던 데에는 검찰의 늑장 수사가 한몫했다. 서울남부지검은 경찰로부터 사건을 받은 이후에도 별다른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중간에 담당 검사가 바뀌기도 했다. 검찰의 늑장 수사·기소는 조씨가 법망으로부터 빠져나갈 길도 마련해줬다. 검찰은 조씨에 대해 공인중개사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으나, 막상 조씨의 공인중개사법 위반은 2022년 5월19일 공소시효가 지나 기소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조씨는 사기죄로만 불구속 기소되었을 뿐,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되었다. 조씨 밑에서 중개보조원으로 일하며 함께 수사선상에 오른 문 아무개씨에 대해서도 검찰은 ‘단순 직원’으로 판별했다. 임대인 강씨와 조씨의 공모 사실이나 이익분배 구조에 대해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며 기소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만약 강씨와 조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빠르게 진행되고 이들에게 재판과 처벌이 이뤄졌다면, ‘빌라왕 김대성’의 전세 사기 규모도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었을 수 있다. 늑장 수사·기소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검찰은 “전세 사기 사건을 적극적으로 수사해왔고, 앞으로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1월4일 보도자료)”이라고 밝혔다. 전세 사기 피해자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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