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 당선 이후 노후 아파트 재건축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구조안전진단을 통과한 서울 목동 5단지 아파트의 모습. ⓒ시사IN 조남진

새 서울시장이 취임하자 재건축을 노리는 고가 아파트의 가격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10년 만에 복귀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후보 시절 공약대로 재건축·재개발 관련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공공이 주도해 재건축·재개발의 활로를 찾겠다는 중앙정부의 방침과는 다른 접근이다. 규제를 풀고 민간사업자들에게 주도권을 넘김으로써 주택시장 가격 조정을 시장에 맡긴다는 원칙은 보수정당의 오랜 기조다. 오 시장이 과거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2006~2011년에 수많은 뉴타운·재개발단지가 지정된 바 있다.

하지만 10년 사이에 서울을 둘러싼 환경이 변했다. 현재 오 시장이 시도할 수 있는 정책 수단에도 한계가 있다. ‘서울 부동산 문제’는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까지 해결된다기보다는 정치적 의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일부 언론은 ‘공공성을 중시하는 중앙정부’와 ‘민간을 중시하는 서울시’라는 대립 구도로 주택정책의 충돌을 예상한다. 그러나 사실 양측의 부동산정책을 유심히 살펴보면 ‘서울의 고밀화가 필요하다’는 패러다임을 공유하고 있다. 여기서 ‘고밀화’는 특정 지역 내의 주택공급을 늘리도록 허용한다는 의미다. 마침 2021년은 정부의 주택정책이 공급 중심으로 선회하는 시점이기도 했다. 오 시장의 주택정책 기조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면밀하게 대조해보면, 다가오는 대선과 지방선거의 ‘전선’이 어슴푸레하게 드러난다.

서울 집값 끌어올리는 마중물

먼저 전임 박원순 시장의 도시정책을 복기해보자. 박원순 전 시장이 재임한 9년(2011~2020년) 동안 서울시의 부동산정책은 ‘정상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기존 주택을 허물고 새 주택을 대량 공급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한 아파트 단지를 허물고 새로 지으면 ‘재건축’이고, 서로 이웃한 노후주택들을 한데 묶어 신규 주택(주로 아파트 단지)을 건설하면 ‘재개발’이다. 이런 재건축·재개발 단지가 여럿 모여서 ‘미니 신도시’급으로 조성되는 사업을 ‘뉴타운’이라고 부른다. 지금의 야권 세력의 전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2007년 대선 및 2008년 18대 총선을 성공적으로 경유하며 일종의 뉴타운 붐을 일으켰다. 당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의원·지자체장들이 주도한 각종 뉴타운 사업은 수많은 지역에 재건축·재개발 조합을 양산했다. 그러나 모든 조합이 새 아파트를 짓기만 하면 큰 이익을 봤던 것은 아니다. 재건축·재개발도 일종의 ‘사업’이다. 손해를 입고 실패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가장 큰 리스크(위험)는 미분양이다. 지금은 서울 아파트에 미분양이 생긴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서울시내 아파트 미분양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2014년 1월 기준 서울시 미분양 아파트는 2905가구에 달했다. 서울뿐 아니라 수도권 전체 미분양도 3만2697가구에 이르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뒤이은 부동산 경기 침체가 원인이었다.

이 기간에 사업 추진이 중단된 재개발 단지가 많다. 조합들이 순조롭게 새집을 짓고 일정한 이익을 보려면 부동산 호황이 전망되어야 유리하다. 조합원들이 호황의 혜택을 기대할수록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합의’에 적극적으로 호응할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부동산 경기 침체는 조합들을 곤경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결국 사업 추진이 어려운 조합들의 해산을 돕고, 도시 공간을 허물어버리기보다 재생하는 데 역점을 두는 정책이 박원순 시장 재임 초기부터 과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거치는 동안 서울시의 주택정책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2010년대 들어 전례 없는 저금리 환경이 이어졌고 시장 유동성은 크게 늘었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 때의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주도한 ‘초이노믹스(부동산 대출 규제완화)’는 부동산을 경기부양의 도구로 삼았다. 2010년대 중반부터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2017년부터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가격 상승을 막기 위해 대출 규제, 다주택자 규제, 보유세 강화, 양도세 중과 등을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재건축과 재개발은 서울 집값을 더욱 끌어올리는 마중물’이라는 관점이 사실상 정부 정책의 기본 전제로 굳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안정적인 주거환경 조성’에 초점을 두었다. 당시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의 핵심 정책인 ‘주택임대사업자’ 제도를 통해 민간 임대사업자를 제도권으로 포섭하려고 시도했다. 투기 수요를 억누르기 위해 부동산 대출을 다시 조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주택임대사업자 제도가 오히려 투기 세력에게 우회로를 만들어주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상당수 시민들이 ‘안정적인 임대’보다 ‘꾸준히 가격이 오르는 자가 자산’을 선호했다.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오를 가능성이 있는 주택 한 채’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이는 서울 고가 주택의 가격을 더욱 끌어올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서울 용산구에서 바라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전경. ⓒ연합뉴스

결국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2020년, 공급 확대라는 시장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지난해 봄과 여름쯤에는 여권 일각에서도 서울 내 유휴 부지를 중심으로 한 고밀화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이 무렵 박원순 시장이 사망한다.

시장 없는 서울시의 주택정책 기조를 새로 정립한 것은 중앙정부다. 2020년 12월29일 취임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공급 확대’를 주문한다. 주택은 공급량을 단시간에 늘릴 수 있는 재화가 아니다. 그러나 신규 주택의 공급 계획은 무주택자에게 기대감을 품게 만든다. 주택 공급량이 향후 몇 년 사이에 급격하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면, 실수요자들은 주택 구입 시기를 늦추는 쪽으로 선택할 수 있다. 당초 정부는 경기도 고양시 창릉, 남양주시 왕숙, 하남시 교산 등 3기 신도시를 통해 실수요자들의 이런 기대감이 작동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에서 서울 쏠림현상은 더욱 극심해졌다. 올해 들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실망한 시민들이 정치적 경보를 울리면서, ‘시장 없는 서울시’의 미래는 ‘고밀화’의 길을 가게 된다. 그 결과가 바로 지난 2월4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공공 주도 3080+’ 정책이다.

여기서 ‘공공 주도’란 전문성 있는 공공기관이 공동 시행사로 참여해 재개발 사업의 속도를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통상 민간에서 추진되는 재개발은 ‘주민 간 합의’가 중요하다. 하지만 조합 내 갈등이나 사업성(기대이익)에 대한 견해 차이로 원활한 합의가 어렵다. 주민들 중 일부는 재개발 대신 현 상태 유지를 더 선호할 수도 있다. 영세 상인이나 월세 수입에 만족하는 이들이 대표적이다. 민간에서 이해관계 조정에 시간이 걸리다 보니 아예 공공기관이 나서서 중재를 돕고 월세 수입 의존 고령자, 영세 상인 등을 지원해 최종 합의를 빠르게 이끌어낸다는 것이 공공 주도의 장점이다. 반면 민간 재개발은 이런 공공의 도움 없이 조합을 구성해 합의를 알아서 이끌어내는 식이다. 민간 재개발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공공재개발에 비해 새 주택(아파트)의 형태나 평수, 건설사 선택 등에서 좀 더 자유롭다.

크지 않은 서울시장의 권한

이른바 ‘2·4 공급대책’으로 불리는 이 계획은 5년 이내에 서울에 32만 가구를, 전국적으로 83만 가구를 공공 주도로 빠르게 공급한다는 내용이다. 1기 신도시(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가 공급되던 당시 전체 물량이 29만4000가구였다. 이보다 많은 주택을 서울 내에서 5년 이내에 공급하겠다는 계획은 주택시장에 ‘물량 쇼크’를 주겠다는 의미다. 동시에 서울을 대규모 공사현장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에 가깝다. 주요 사업 대상지는 노후주택 단지, 이른바 ‘빌라촌’으로 불리는 역세권 난개발 지역이다.

민간에서 재개발·재건축 조합이 공공의 도움 없이 해당 지역 주민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고, 분담금을 결정하며, 최종적으로 아파트를 지어 올리는 데에는 평균 13년이 소요된다. 이 과정에서 공공이 주민 합의를 적극적으로 돕고, 토지 소유주에게 민간 재개발 사업보다 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해 사업 시행 속도를 높인다는 게 ‘공공재개발’의 핵심 아이디어다. 여기에는 민간 재개발에 비해 용적률을 높여 공공임대주택을 추가로 짓는 것도 포함된다. 다만 공공부문이 민간사업자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방식이라 민간사업자의 시장 참여를 제한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문제가 불거지면서 수행 주체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오세훈 시장은 민간 부문의 재건축·재개발 규제완화에 초점을 맞춘다. 오 시장은 한강변 아파트를 35층까지만 지을 수 있게 하는 규제를 풀겠다고 약속했다. 재개발구역 지정을 완화해 민간 차원에서 재건축·재개발 조합을 활발하게 결성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하면 서울시 차원의 규제완화만으로도 향후 5년 동안 18만5000가구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게 오 시장의 주장이다. 서울시는 그동안 법령에서 허용하고 있는 주거지역 용적률을 30%까지 낮게 설정했는데, 이를 허용 가능한 최대치까지 끌어올려 법적으로 허용된 최대치 공급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의 유명 재건축 후보지인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내걸린 재건축 관련 현수막. ⓒ연합뉴스

이 때문에 재건축·재개발 조합 입장에서는 “공공이 인센티브도 더 많이 주고, 용적률도 확 풀어준다고 하는데 아예 사업을 공공에 맡겨볼까”라고 생각하거나 “서울시가 노후 주거지 정비구역 지정을 빠르게 처리해준다고 하는데, 괜히 이익을 공공과 나누지 말고 우리끼리 민간사업자를 통해 추진해볼까”라고 고민하게 된다. 언뜻 보기에는 ‘공공성을 중시하는 정부’와 ‘민간 이익 극대화를 외치는 서울시’ 중 양자택일하는 문제인 것 같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건축이냐 재개발이냐에 따라 정책의 유인책이 다르다. 그런데 재건축·재개발 문제에서 서울시장의 권한은 그리 크지 않다.

오 시장은 재개발보다는 노후 아파트 재건축을 먼저 활성화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오 시장이 직권으로 개별 아파트에 부과할 수 있는 ‘인센티브’의 규모가 크지 않은 셈이다. 아파트 재건축에선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와 ‘안전진단’이 중요하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란 재건축을 통해 상당한 이익이 나올 경우, 이 중 일부를 국가가 환수하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분담금을 과징하는 제도다. 주택가격 상승분을 초과하는 이익 부분에서 최대 50%까지 걷는다. 실현되지 않은 이익을 미리 걷는 방식이라 재건축을 통해 최대한 많은 이익을 얻고 싶은 조합들이 반발하는 규제다. 법률로 규정된 이 제도를 서울시장 혼자서 개편할 수는 없다. 또한 재건축 여부가 결정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 안전진단 역시 국토교통부 소관이다.

반면 정부는 재건축 부문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2020년 8월 정부는 ‘공공재건축’ 제도를 발표하면서 공공이 개별 노후 아파트 재건축을 주도하되 ‘종 상향’을 통해 용적률을 높이는 유인책을 주겠다고 밝혔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한국에서 ‘땅’은 각종 용도에 맞게 ‘용도지역’을 구분해 각종 규제가 적용된다. 도시 주거지역은 크게 네 단계(1종·2종·3종·준주거)로 나뉘는데, 단계가 높아질수록 법이 허용하는 용적률이 달라진다. 가령 1종 일반주거지역은 최대 용적률이 200%인 반면, 준주거지역은 500%까지 높여서 지을 수 있다. 정부가 ‘공공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재건축을 선택할 경우, 2종은 3종으로, 3종은 준주거로 올려주어(‘종 상향’해서) 용적률을 늘려주겠다. 대신 추가로 짓는 가구 일부를 임대주택으로 만들라’고 유도하는 셈이다.

고가 아파트 단지들은 ‘공공재건축’에 부정적 반응을 보인다. 재건축 이익의 상당 부분을 공공이 가져가고, 임대가구가 섞이는 것이 아파트의 상품성을 낮춘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4월7일 공공재건축 선도사업 후보지 5곳을 발표했지만 각각 213~511가구인 소규모 단지에 불과했다.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처럼 유명 대규모 단지나 강남 지역 고가 아파트 단지는 공공재건축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 유명 재건축 후보 단지는 사업성과를 극대화하는 그들만의 민간 재건축을 요구하고 있고, 오세훈 서울시장의 규제완화에 기대감을 갖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표심에서 드러났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은 대치2동 제2투표구(은마아파트)에서 득표율 79.4%를, 압구정동 제1투표구(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득표율 93.8%를 기록했다.

이들 지역의 기대감은 호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1977년에 지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는 3.3㎡(평)당 1억원이 넘는 단지가 등장하기도 했다. 네이버 부동산 정보에 따르면, 지난 2월 40억원에 거래되던 압구정동 현대 4차아파트(전용면적 117㎡)의 경우에 최근 호가가 45억원까지 상승했다.

이처럼 들썩이는 부동산 가격은 오세훈 시장에게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에 대한 심판론을 오 시장 당선의 배경으로 꼽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오 시장의 당선 이후 강남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모습이 전개될 경우 내년 선거에서 야권에 불리하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 시장도 후보 시절 “시장 되면 일주일 안에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겠다”라고 말했지만, 4월13일 언론 인터뷰에서는 “1주일 내 시동 걸겠다는 말은 제 의지의 표현이었다. 일부 지역에서 거래가 과열되는 현상도 나타나서 신속하지만 신중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라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재건축 이슈와 달리 재개발 사업은 정부 주도 사업에 탄력이 붙고 있다. 제도 발표 두 달 만에 서울시내 283개 지역에서 사업신청서를 제출한 공공재개발 사업은 4월14일까지 총 36개 지역이 선도사업 후보지로 지정되었다(그림 참조). 이들 후보지는 서울 도봉·영등포·은평·강북구에 몰려 있는데, 목표대로 공공재개발이 이뤄질 경우 이들 지역에만 총 3만8000여 가구가 들어서게 된다. 국토교통부가 매달 신규 지정 구역을 추가로 발표할 예정이기 때문에 전체 공급 가구수는 늘어날 전망이다(총 32만 가구 목표).

정부는 공공재개발, 서울시는 민간 재건축

공공재개발이 노후 주거지를 중심으로 지정되면서 오세훈 시장의 재건축 활성화 계획과는 지역적인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재건축 이슈는 주로 사업성이 좋은 강남, 서초, 송파(잠실), 양천(목동), 영등포(여의도) 등지에서 발생한다. 반면 공공재개발은 저밀도 지역을 새로 갈아엎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가시적인 물량 효과는 일부 단지의 재건축보다 재개발 지역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정부의 대규모 공공재개발 사업과 동시에 오 시장의 규제완화에 따른 고가 아파트 재건축도 빠르게 추진될 수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민간 재건축과 공공재개발이 혼재된 대규모 공사현장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서로 주목하는 분야(공공재개발과 민간 재건축)는 다르지만, 모두 서울이라는 도시를 아파트 중심으로 고밀화하려 시도한다는 점은 같다. 도시 고밀화는 ‘주택 공급을 빠르게, 그리고 많이 이뤄야 한다’는 시장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동시에 피할 수 없는 대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혁신·선도 기업 대부분이 지식노동·정보노동 중심으로 변했고, 자연스럽게 많은 기업이 지방 생산기지 대신 수도권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런 산업생태계의 변화로 인해 서울에 거주하려는 이들도 늘고 있다. 서울이 오래된 도시를 빠르게 교체해 나갈수록, 전임 박원순 시장이 중시하던 ‘도시재생’의 흔적은 차츰 지워지게 될 터이다. 중앙정부나 오세훈 시장 모두 2010년대와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서울시를 바라보고 있다.

4월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의힘·서울시 부동산정책 협의회’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정부와 지자체(서울시)가 엇박자를 낼 경우, 양 정책이 모두 꽉 막히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후인 4월8일, ‘주택 공급은 행정절차상 중앙정부나 광역지방자치단체, 기초지자체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호 협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2·4 주택공급 대책(공공재개발)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말이었지만, 오 시장이 주장하는 민간 중심 재건축·재개발을 견제하는 발언으로도 해석되었다. 결국 중앙정부와 지자체(서울시)의 협력이 유기적이지 않을 경우, 어떤 정책도 속도감 있게 전개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럴 경우 중앙정부와 야당 시장의 공방이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까지 뒤따를 여지가 생긴다. 오세훈 서울시의 재건축 규제완화와 문재인 정부의 공공재개발 모두 내년 선거 전까지 뚜렷한 성과를 거두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정부도, 오세훈 시장도 모두 각자의 주택정책 시행 기간을 5년으로 상정하고 있다. 정권을 재창출해야, 시장에 재선되어야 실현시킬 수 있는 정책이다.

여야 모두 미완성 상태인 상대방의 정책을 비판하며 네거티브 선거전을 펼치는 것도 가능하다. 결국 내년 선거도 ‘부동산 선거’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만약 올해에도 서울시 부동산의 가격이 오를 경우, 그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는 양상이 펼쳐질 수 있다. 서울의 부동산 문제는 앞으로 1년 내내 이해득실을 따져야 하는 정치적 문제가 되고 말았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