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0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수석급 이상 참모진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원 남성이다. ⓒ대통령실 제공

5월21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워싱턴포스트〉 기자에게서 돌발 질문을 받았다. 이날 기자회견의 마지막 질문이었다. 기자는 “내각에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은 선진국 중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적은 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렇게 물었다. “대통령은 성평등을 위해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나?” 윤석열 대통령은 고개를 저으며 7초간 침묵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인선에서 지역·성별 안배 대신 ‘능력’을 강조했다. ‘능력주의 인사’가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을 거라고도 낙관했다. 4월10일 장관 후보자 8명을 지명한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이다. “각 부처를 가장 유능하게 맡아서 이끌 분을 지명하다 보면 지역·세대·남녀 다 균형 있게 잡힐 거라 믿고 있다.”

‘대통령의 믿음’이 실현됐을까? 〈시사IN〉 취재 결과 ‘윤석열 정부 100대 요직’에 발탁된 여성 고위공직자 수는 8명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했던 능력은 영남(35명)·수도권(31명) 출신, 서울대 졸업(52명), 관료 출신(54명), 50대(67명), 남성(92명) 편중으로 귀결됐다.

5월21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성평등 대책을 묻는 〈워싱턴포스트〉 기자. ⓒjtbc 라이브 방송 화면 갈무리

‘윤석열 정부 100대 요직’에 이름을 올린 여성 8명은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한화진 환경부 장관,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 백경란 질병관리청장,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이기순 여성가족부 차관, 이노공 법무부 차관이다.

오유경 처장과 이기순·이노공 차관을 제외한 5명은 윤석열 대선후보 캠프나 인수위 등에서 활동했다. 법무부 최초 여성 차관으로 발탁된 이노공 차관은 수원지검 성남지청 검사 시절 윤석열 대통령과 ‘카풀 멤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던 2018년, 서울중앙지검 4차장으로 기용됐다.

이 중 윤 대통령과 함께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여성 장관은 18개 정부 부처 장관 중 3명(17%)이다. 김은혜 홍보수석을 제외하면 대통령실 수석급 이상 참모진(실장 2명·수석비서관 6명·국가안보실 차장 2명·경호처장 1명)은 모두 남성이다.

전 정부에 비해 ‘유리천장’이 두꺼워진 걸까. 문재인 정부 인선을 살폈다. ‘문재인 정부 100대 요직’에 발탁된 여성은 9명이었다(2018년 11월 기준, 〈시사IN〉 제586호 ‘문재인 정부의 100대 요직 분석해보니’ 기사 참조).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 이은정 경찰청 경무인사기획관이다. ‘100대 요직’에서 일하는 여성의 수는 윤석열 정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을 제외하면 청와대 수석급 이상 참모진 역시 모두 남성이었다.

내각 구성에서 차이가 보였다. 문재인 정부는 ‘여성 장관 30%’ 공약을 내걸었다. 첫 조각에서 장관 18명 중 여성은 5명이었다. 여성 장관 비율은 28%로 공약에 미치지 못했지만, 역대 정부에서 가장 높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달리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8월11일 〈여성동아〉 인터뷰에서 정치권에 여성할당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해외에서 발표하는 ‘성 격차 지수(GGI, Gender Gap Index)’에서 유독 낮은 순위를 기록하는 이유가 여성이 정치권에서 적어서이다. 정치권에서는 여성의 권한이 더 강화돼야 하고 여성이 더 대표돼야 한다.” 김 장관은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비례대표 13번을 받아 국회에 입성한 바 있다.

뒤늦게 늘린 여성 장관 후보자도 줄줄이 낙마

문재인 정부는 외교부, 국토교통부, 교육부 등 핵심 부처에 여성 장관을 배치했다. 〈시사IN〉이 조사한 ‘문재인 정부 100대 요직’ 중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조현옥 인사수석은 각 직책을 맡은 최초의 여성이었다. 윤석열 정부에서 여성가족부를 제외하면 장관급 인사에 여성이 배치된 곳은 중소벤처기업부와 환경부 두 곳이다.

다시 5월21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장으로 돌아가서, 〈워싱턴포스트〉 기자의 질문을 듣고 7초간 침묵한 뒤 윤석열 대통령은 이렇게 답했다. “공직사회에서 내각의 장관 그 직전 위치까지 여성이 많이 올라오지 못했다. 각 직역에서 여성에게 공정한 기회가 더 적극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한 지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보장할 생각이다.”

닷새 뒤인 5월26일 윤석열 대통령은 ‘남성 편중’ 지적을 의식한 듯 장관 후보자 2명을 잇달아 여성으로 지명했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박순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와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출신 김승희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 모두 낙마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을 받던 김승희 후보자는 7월4일 자진 사퇴했다. 6월2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김 후보자를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였다.

박순애 후보자는 음주운전, 논문 표절과 함께 교육 관련 이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가 됐지만 7월5일 장관으로 임명됐다. 그러나 8월8일 결국 박순애 장관은 ‘만 5세 입학’ 학제 개편 추진이 큰 반발에 부딪히자 취임 35일 만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9월7일 윤석열 대통령은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조규홍 보건복지부 1차관을 지명했다. 조 후보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기획재정부 출신 관료다. ‘능력주의’를 강조한 윤석열 정부는 앞선 후보자들(정호영·김승희)이 모두 낙마한 뒤 공석 상태인 보건복지부 장관 자리에 기재부 출신 관료를 앉혔다. “대통령은 성평등을 위해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나?”라는 물음에 윤석열 대통령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기자명 이은기 기자 다른기사 보기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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