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9일 코로나19 예방접종 피해보상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는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집 첫 장에 ‘감염병 대응체계 강화’ 방안을 실었다. 집권 100일 안에 코로나19 대응체계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약속했다. 키워드는 ‘과학 방역’이었다. 현 정부(문재인 정부)의 방역 정책에 대해 “과학적 대응의 기초인 코로나19 DB조차 구축하지 못했”고 “원칙 없는 거리두기로 불필요한 경제적 피해를 유발”했으며 “준비 안 된 위드코로나로 코로나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급증”했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앞으로 백신접종 피해자 재평가, 실내 바이러스 저감장치 설치, 자가용을 포함한 코로나19 환자 이송체계 전면 개편 등 “과학과 데이터에 근거한 코로나 방역조치를 실행”하겠다고 공약했다.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고 약속한 집권 100일도 지났다. 감염병 대응체계가 ‘과학과 데이터에 근거해’ 전면 개편되었는가?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방역 부문에 생긴 굵직한 변화들을 살펴보자. 맨 먼저,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이 직을 떠났다. 정 전 청장은 2020~2021년 코로나19 방역의 대명사와도 같은 인물이었다. 백경란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교수가 새 질병관리청장으로 취임했다. 코로나19 방역과 의료 대응 전체를 총괄하는 보건복지부 장관 자리는 여태 공석이다. 정호영 전 경북대병원장, 김승희 전 국회의원이 장관 후보자에서 낙마한 이후 지금까지 이기일 2차관, 조규홍 1차관이 장관 직무를 나눠서 대리로 수행하고 있다(윤석열 대통령은 9월7일 조규홍 1차관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8월5일부터는 대규모 코로나19 항체 양성률 조사가 개시되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지역별·연령별 ‘표적’ 방역을 펼칠 수 있다고 본다(그런데 항체를 갖고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일의 효용성에 의문을 표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항체는 생겼다가도 금세 사라지기도 하고 항체가 없다고 꼭 감염되지도, 항체가 있다고 꼭 감염이 예방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감사원은 올 하반기 감사 대상에 지난 정부 질병관리청(질병청)의 코로나19 백신 도입 정책을 포함했다. 해외에서 백신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생긴 계획 변경과 지연에 대해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19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다시 한번 ‘과학 방역’을 강조했다. “감염병 대응도 정치 방역에서 전문가 의견과 데이터에 근거한 표적 방역, 과학 방역으로 전환하라.”

국민들은 이런 윤석열 정부의 방역을 얼마나 신뢰할까? 〈시사IN〉은 2009년부터 국민들이 각 국가기관들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조사해왔다.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된 2020년부터는 조사 대상 국가기관 리스트에 ‘질병청’을 추가했다. 2020년 조사에서 질병청은 전무후무한 점수를 받았다. 10점 만점에 7.39점, 〈시사IN〉 신뢰도 조사 역사상 최고 점수였다. 2021년에는 6.69점으로 다소 떨어졌지만 이 역시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점수다.

올해, 윤석열 정부에서의 질병청은 신뢰도 점수 5.12점을 받았다(〈그림 1〉 참조). 절대 점수로는 나쁘지 않다. 어쨌든 5점보다 높으니 ‘신뢰받는 편’이라 해석할 수 있다. 다른 국가기관들, 용산 대통령실(3.42)·국회(3.32)·검찰(3.66)에 비해서도 성적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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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이상, 국민의힘 지지자, 보수층이 신뢰

하지만 시계열로 비교해보았을 때, 질병청의 신뢰도 하락 폭은 그 어떤 국가기관보다 크다(〈그림 2〉 참조). -1.57점, 한 해 사이 이 정도의 낙폭을 보인 사례는 신뢰도 조사 역사상 매우 드물었다. 최서원(최순실) 비선 의혹이 번지던 2016년 9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신뢰도가 전해보다 1.23점(4.85→3.62점) 떨어진 게 이전까지 기록된 최고 낙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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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점수가 나왔을까? 윤 정부의 질병청을 누가 더 신뢰하고 누가 덜 신뢰하는지를 보며 연유를 찾아보자. 2022년 현재 질병청을 가장 신뢰하는 그룹은 연령별로는 70세 이상(6.54), 지지 정당별로는 국민의힘 지지자(6.21), 정치 성향으로는 보수층(5.8)이다. 가장 불신하는 그룹은 40대(4.11), 더불어민주당 지지자(4.2), 진보층(4.28)이다. 이들 각각은 현 정부와 전 정부의 핵심 지지 세력이기도 하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그 두 해는 40대·더불어민주당 지지·진보 성향일수록 질병청에 신뢰 점수를 높이 주었고, 60세 이상·국민의힘 지지·보수 성향일수록 신뢰 점수를 낮게 주었다.

질병청이라는 특정 국가기관 신뢰도가 아닌, ‘윤석열 정부의 방역 정책 신뢰도’로 포괄해 물었을 때 그 현상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그림 3〉 참조). 당시 정부의 방역 정책에 신뢰 점수(10점 만점)를 매겨달라고 했을 때,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8.11점을 줬다. 1년 뒤 다시 물었을 때, 그 집단은 똑같은 질문에 2.47점을 매겼다. ‘매우 신뢰’에서 ‘매우 불신’으로 바뀐 것이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2021년 정부의 방역 정책에 대해 ‘불신하는 편’(4.52점)에서 2022년 ‘신뢰하는 편’(6.03점)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신뢰→불신’ 그룹의 점수 하락 폭이 ‘불신→신뢰’ 그룹의 점수 상승 폭보다 훨씬 커서 전체 신뢰도 평균 점수는 2.2점 하락했지만, 그룹별 정치적 입장에 따라 방역 정책에 대한 평가가 확연히 갈리고 또 변화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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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이라는 순전히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듯 보이는 분야가, 사실은 얼마나 정치적이고 가치판단이 개입되는 영역인지 국민들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2년 사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배웠다. ‘방역=과학’은 성립하지 않는다. 과학은 좋은 방역 정치의 기반이기도, 나쁜 방역 정치의 핑계이기도 하다. 좋은 방역 정책이란 과학을 기반으로 좋은 정치적 판단을 행할 때 나오는 것이다. “정치 방역에서 과학·표적 방역으로 전환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가 공허하고 비현실적인 까닭을 이번 신뢰도 조사 결과가 설명해주고 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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