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동네 사는 은영씨네 집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오랜만에 코코를 보기로 한 날이다. 코코는 2년 전 한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혼자 남겨졌던 고양이다. 구조를 하러 갔을 당시 경계심이 너무 강해 포획조차 쉽지 않았다. 다행히 고양이 두 마리가 있던 은영씨 집에 새 가족으로 합류한 뒤 살뜰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으며 살게 되었다.
땅콩만 하던 녀석이 어느새 훌쩍 컸다. 언니 고양이와 덩치가 비슷해진 것을 보니 뭉클했다. 코코는 이 언니 고양이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늘 곁에 붙어 있으려 하고 뭐든 따라 하려 한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경계심은 아직 조금 남아 있다. 계절이 몇 차례 바뀌는 동안 새집과 가족에 꽤 적응했는데도, 세상 앞에 마음을 완전히 놓기는 쉽지 않은가 보다.
우리 집 요다도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길에 살던 겁 많은 고양이 요다는 내가 집에 데려와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행거 밑 구석으로 숨어들어 며칠이고 나오지 않았다. 며칠은 곧 몇 주가 되었다. 억지로 끌어내지 않고 요다가 스스로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밤마다 행거와 가까운 침대가 아니라 멀찍이 떨어진 바닥에 이부자리를 펴고 잤다. 성큼성큼 걸어 다니면 움직임이나 발소리가 위압감을 줄까 봐 낮에도 웬만하면 기어 다녔다.
신중하기 그지없는 요다는 밤에 몰래 얼굴을 내밀고 행거 앞에 둔 사료를 연명할 정도로만 먹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장난감을 흔들면 앞발을 내밀며 호기심을 보였다. 시간이 더 흐르자, 살금살금 걸어 나와 3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요다는 〈어린 왕자〉에 나오는 사막여우처럼 매일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왔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거리를 좁히던 녀석이 내 곁에 와서 조심스레 코를 대기까지 무려 3개월 반이 걸렸다.
집고양이가 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요다는 아직도 초인종 소리만 나면 숨는다. 요다의 가슴께에는 뼈가 부러졌다 아문 흔적이 있다. 아마도 길에 살던 어린 시절 행인에게서 얻었으리라 짐작되는 그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이 동물이 품은 오랜 불안의 깊이를 헤아려보곤 한다.
인간이라고 다를까 싶다. 무섭고 아픈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은 이에게는 타인에 대한 불신을 거두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삶을 한 발씩 앞으로 전진시킬 수 있는 건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며 관계의 속도를 맞춰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을 때 아닐까?
오늘도 결국 코코를 쓰다듬어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많이 발전했다. 저번에 갔을 때는 코빼기도 안 보여주더니 이번에는 다섯 시간 만에 얼굴을 보여줬으니. 코코는 멀찌감치 앉아서 낯선 손님을 빤히 바라보다가 은영씨 애인의 등 뒤에 숨어서 야금야금 밥도 먹었다. 귀여운 코코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믿을 수 있는 이들의 등짝을 징검다리 삼아 한 뼘씩 걸어 나오기를,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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