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찌꺼기를 뿌려 키운 파프리카. ⓒ채민재 제공

몇 달째 나는 친구와 일주일에 두세 번씩 동네를 뛰거나 빠르게 걷는다. 걷기운동을 꾸준히 하는 친구를 따라 나도 걷는 습관을 들이고 싶었다. 그러다 말로만 많이 들은 친구의 텃밭을 구경하게 되었다.

내가 집에서 식물을 기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친구도 식물을 기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레몬 몇 개의 씨를 틔워 텃밭에 심었다. 텃밭이라 해도 원래 식물을 기르라고 만들어둔 공간이 아니었다. 그가 사는 빌라 건물을 둘러싼 좁은 공간이었는데, 그곳에 식물을 심은 것이다. 다른 주민들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곳이라서 가능했다.

주로 집 안에 화분을 두고 식물을 키우는 나와 달리 친구는 텃밭을 가꿨다. 식물만 가져다 심은 게 아니라 아예 토질 자체를 바꾸어갔다. 카페에서 일이나 공부를 하다가 나올 때면 커피 찌꺼기를 받아서 들고 와 텃밭에 뿌리고, 집에서 생긴 음식물 쓰레기도 모두 텃밭에 파묻었다. 그의 집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릴 일이 거의 없어졌다. 대신 흙과 벌레들이 쓰레기를 해결해줬다.

나도 그를 따라 하고 싶었지만, 내가 사는 빌라 단지는 주민도 더 많고 이곳에서는 화단을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전에도 우리가 심어둔 무화과나무가 댕강 잘린 채 발견된 적이 있었다. 이후 화단에 무언가를 심기가 두려워져서, 과일을 먹다 남은 씨앗 정도만 흩뿌릴 뿐 그 이상으로 무언가를 신경 써서 기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런 차이로 인해 하늘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나는 식물을 기른 후로 비가 오는 게 좀 더 싫어졌다. 식물이 햇빛을 충분히 받아야 하는데, 비가 오면 습도가 올라가니까 물을 줄 때도 평소와 똑같은 주기나 양으로 하기 어려웠다. 집에 있는 화분 대부분이 분재여서 이런 미세한 변화들이 더 불안으로 다가왔다.

“비가 쏟아지면 너무 좋아. 애들이 쑥쑥 클 거 생각하면.”

친구는 비가 오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지금 그의 텃밭에는 파프리카·가지·고추·레몬이 잘 자라고 있다. 이미 줄기들이 튼튼하게 목질화되어 열매도 많이 열렸다. 이런 상황에 쏟아지는 비나 날카로운 햇볕은 문제가 되기보다 ‘오히려 좋았다’. 햇빛이 너무 강하면 때로 잎이 타고 비가 쏟아지면 과습이 될 수 있어서 식물들을 집 안으로 들여놔야 하는 우리 집과 상황이 많이 달랐다. 햇빛도, 비도, 그에게는 모두 위험이 아닌 양분이었다.

아직 친구네 텃밭의 레몬은 열매가 열리지 않았지만, 다른 녀석들은 종종 수확해서 먹는다. 나에게도 여러 번 수확한 것을 나누어주었다. ‘커피 마시고 자란 파프리카’라고 소개하는 그의 말에 식물들을 잘 길러낸 뿌듯함이 묻어났다. 그는 자신이 이만큼 길러냈다고 말할 때 항상 벌레들도 언급했다. ‘얘네들은 쉬지도 않고 일한다’며, 음식물 쓰레기를 분해하고 토질을 좋게 만들어주는 벌레들에게 항상 감사했다.

식물을 키우는 일도 참 다양하다. 집에서 기르는 것과 집 밖에서 기르는 것, 집 밖에서 길러도 화분에서 자라는 것과 텃밭에서 자라는 것. 텃밭은 작아도 얕지 않다. 그 흙의 깊이에 온갖 벌레가 함께 살고 빗물도 적절히 스민다. 텃밭을 가꾸는 일이란 하늘에서 내려오는, 땅 안팎에서 사는 것들과 적극적으로 함께하는 일인 것 같다.

기자명 안희제(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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