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갯소리가 하나 있다. 사람이 함께 살 고양이를 고르는 게 아니라 고양이가 사람을 간택하는 것이란다. 살다 보니 확실히 ‘묘연(猫緣)’이라는 게 있기는 한 것 같다. 내가 오랫동안 꿈꾸던 반려 고양이는 흔히 ‘치즈’라 불리는 노란색 고양이였다. 어렸을 때 잠시 돌보던 고양이가 치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쩐지 치즈와는 연이 닿지 않았다. 지금 나는 짙은 회갈색 무늬의 ‘고등어’ 둘, 흰 바탕에 밤색과 황색의 반점이 있는 ‘삼색이’ 하나와 함께 살고 있다.
이들과 가족이 된 후, 자세히 봐야 보이는 것들이 비로소 보였다. 고등어 무늬라고 다 똑같은 무늬가 아니고, 어떤 색의 고양이는 성격이 어떠하다는 세간의 통념이 꼭 맞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내 고양이들의 매력에 빠지니 다른 고양이들이 지닌 다양한 매력에도 눈이 뜨였다. ‘턱시도’를 등에 걸친 고양이, 여러 색깔이 얼굴에 뒤섞인 ‘카오스’, 하얀 고양이, 검은 고양이, 회색 고양이, 갈색 고양이, 딱히 뭐라 분류할 수 없는 자기만의 무늬를 가진 고양이. 하나하나 다 멋져 보였다.
인간은 색깔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하다. 안타깝게도 검은 고양이는 검다는 이유만으로 오랜 세월 미신과 편견의 대상이었다. 중세 시대에는 마녀의 분신으로 여겨지거나 흑사병의 원인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영국의 고양이 보호 단체 ‘캐츠 프로텍션’의 연구에 따르면 검은 고양이는 다른 색 고양이에 비해 입양하기까지 시간이 평균 22%나 더 걸린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핼러윈 시즌이 돌아오면 검은 고양이 학대 사건이 늘어나서, 다수의 동물 단체들이 10월 한 달간 검은 고양이 입양을 규제한다. 한국에도 검은 고양이를 불길함의 상징으로 보는 시선이 적잖이 남아 있다.
피부색은 사람 사이에서도 차별과 갈등을 낳아왔다. 세상이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지금도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이 작동하지 않는 시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태양 주변을 도는 행성의 거주자다. 인류의 다양한 피부색과 머리색은 거주지역의 위도에 따른 자외선 양과 멜라닌 분비가 만든 자연스러운 변이의 결과다. 수많은 세대의 자연선택을 거친 환경적응의 증거일 뿐, 피부색은 사람의 특성이나 우열을 나타내는 요소가 아니다.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체내에 생성된 색소세포의 양에 따라 다른 빛깔과 무늬가 나타날 따름이다.
2018년 마블 영화 〈블랙 팬서〉가 개봉한 뒤 미국에서는 검은 고양이 입양이 갑자기 증가했다고 한다. 검은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이런 반짝 유행 또한 반갑기만 한 현상은 아니다. 유행 따라 동물을 입양했다가 시들해지면 유기하는 행태가 일종의 패턴으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동물을 만나 둘도 없이 다정한 친구이자 평생의 가족이 되는 기쁨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행운이다. 그러나 그 행운은 특정 외모나 품종의 유행을 좇아서는 찾을 수 없다. 그것은 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나 아닌 존재의 생명을 책임지려는 용기, 서로의 고유한 매력을 발견하며 함께 쌓아나가는 긴 시간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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