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크라이나 여성이 쓴 일기가 있다. 임지영 기자에게 이 얘기를 들은 게 6월 초다. 저 멀리 우크라이나인이 쓴 원고가 러시아 기자를 거쳐 〈시사IN〉에 도착했다. 번역 원고를 읽었다. 전쟁이 한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개인이 겪는 감정 변화가 생생했다. 〈시사IN〉에 게재하자는 판단은 빨리 했는데, 분량이 문제였다. 200자 원고지로 100장에 가까웠다. 한 번에 다 실을까, 3회에 걸쳐 나누어 실을까. 팀장들에게 원고를 공유하고, 회의를 열었다. 금세 결정되었다. 한 번에 다 싣기로.
이미지는 어떻게 하지?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원고를 보냈다. 그림 두 개를 보내왔다. 한 여성이 유모차에 탄 아이와 함께 복도에 서 있는 모습. 그리고 식탁 위에 놓인 케이크 한 조각. 왜 이 그림을 그렸을까. 원고를 다시 읽어보았다. 이 일기를 쓴 스베틀라나 씨는 전투기 소리가 들리면 4개월 된 딸 베라를 안거나 유모차에 태워 복도로 나간다. 폭탄이 떨어지면 언제라도 뛰어나갈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의 도시 하르키우에 머물던 그녀는 장소를 밝힐 수 없는 곳으로 피란을 간다. 피란 간 곳에서 친척들이 나폴레옹 케이크를 사왔다. 그녀가 좋아하는 케이크다. 하지만 그녀는 ‘케이크 한 조각에서도’ 전쟁을 느낀다. “나는 전쟁이 끝난 후에나 케이크를 먹기로 했어. 지금은 단 한 조각도 삼킬 수가 없거든.” 일러스트레이터가 왜 이 그림을 그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복도와 케이크는 전쟁과 맞닿아 있었다.
그녀는 2월24일부터 4월26일까지 일기를 썼다. 그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달력을 살펴보았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했고, 취재원과 점심을 먹었고, 동네 이웃과 여행을 다녀왔고, 부모님 댁을 찾았고, 대학 친구를 만났고, 지인의 장례식을 다녀왔고, 인천으로 짧은 여행을 갔다 왔다. 내가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동안, 스베틀라나 씨는 전쟁으로 일상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번 〈시사IN〉 제772호를 만들기 위해 이 일기를 다섯 차례 읽었다. 그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독자 여러분도 한 번 읽고, 두 번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이번 호에 작은 연재를 마련했다. 코너명이 ‘경제가 어려운 당신에게’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자산시장 폭락 등 경제 뉴스가 쏟아지는 시절이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질문 14개를 추려 Q&A 형식으로 쉽게 설명하며 3회 연재한다. 경제를 알고 싶은데, 경제 기사들이 너무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세계는 우리와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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