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디지털 패권경쟁
김상배 지음, 한울 펴냄

“신흥 기술과 관련된 디지털 패권경쟁은 ‘국가안보’의 문제로 비화되는 성격을 지닌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의 제재가 중국에 반드시 불리한 결과로 나타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중국 산업의 대미 의존도를 줄이며 독자적 생태계를 형성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국이 제로섬 게임을 벌이게 될 것이란 전망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미·중 간에 ‘상호 의존 관계’가 이미 구조적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결국 미국과 중국 간에 ‘공생적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하며 한국의 전략을 모색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은 양국과 협력하되 의존하지 않는 태도로 자체적 기술 역량을 키우고, 한쪽과의 협력이 다른 쪽과의 대립으로 기울지 않는 유연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먹는 것과 싸는 것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펴냄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워했던 시기가 있다. 당연했다. 걸을 수 있는 사람만 거리를 오갔을 테니.”

‘변비’라는 이름은 너무 가벼웠다. 괴로움은 예상을 초과했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생긴 변비는 끊임없이 내 자존감을 시험했다. 나는 변기에 앉아 울면서 다섯 개가 한 줄로 포장된 요구르트를 비닐도 뜯지 않은 채 빨대를 꽂아 마셨다. 제발 똥이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몇 년 전 일이지만 나는 그 시간을 매우 촘촘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책을 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저자는 희귀질환인 궤양성 대장염으로 13년간 투병했다. 이쪽은 설사다. 아무 데서나 싸버릴까 봐 두렵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다.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버린 삶에는 질문이 고인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아픈 삶’과 문학에서 건져낸 답이다.

 

 

 

 

 

약탈자들
게리 하우겐, 빅터 부트로스 지음, 최요한 옮김, 옐로브릭 펴냄

“가난의 본질은 날마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약탈적 ‘폭력’이다.”

르완다 대학살 조사를 위해 은타라마 교회를 찾은 저자는 무릎높이만큼 쌓인 시체와 마주한다. 죽은 이들도, 아직 살아 있는 이들도, 가난한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운명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거대한 악만큼이나 일상적인 폭력과 위협이 희망을 빼앗아간다는 사실이었다. 강간, 감금, 구타, 성폭력과 강제노역. 이런 ‘보편의’ 폭력은 애써 쌓아올린 삶의 기반들을 끝없이 약탈해 갔다. 심지어 혼돈을 막을 사법체계마저 유린되고 있었다.
읽다 보면 지천에 널린 폭력에 기가 질린다. 하지만 진실을 파헤치고, 희망을 상상하는 저자의 뚝심은 단단하다. 그래서 그의 말대로 “이것은 가능한 싸움”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언어가 삶이 될 때
김미소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부술 수 없다.”

저자는 미국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일본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10대와 20대 초반을 베트남 출신 새어머니와 보냈고 한국·미국·일본을 오가며 언어를 배우고 가르쳤다. 응용언어학 박사인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언어 세계에 대한 단상을 보여준다. 한영 이중언어자인 동시에 현지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젊은 외국인 여자라는 정체성이 겹쳐질 때 저자는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주변부로 밀려나는 느낌이다. 하지만 언어와 언어의 틈 사이에 서보고야 경험할 수 있는 게 있었다. 언어의 원래 주인들이 쓰지 못했던 방식으로 언어를 전복시키는 힘도 거기에서 나왔다.

 

 

 

 

 

위험한 숫자들
사너 블라우 지음, 노태복 옮김, 더퀘스트 펴냄

“숫자는 측정하는 순간 이미 객관성을 잃는다.”

공정과 상식의 시대다. 그 어떤 논리보다 눈에 보이는 수치가 더 강력한 힘을 갖는다. 하지만 그 수치는 정말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진실일까? 네덜란드의 혁신적인 언론사 〈드 코레스폰덴트〉에서 수학 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는 저자 사너 블라우는 모든 숫자를 의심한다. 머리말 제목부터 ‘숫자는 거짓말을 한다’이다. 왜냐하면 “숫자가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때에는 그 숫자를 나쁘게 이용하려는 동기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는 수치를 이야기하는 전달자가 누구인지, 표준화된 수치인지, 데이터가 어떻게 수집되고 분석되었는지, 숫자를 어떻게 제시했는지 등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말 어휘력 사전
박영수 지음, 유유 펴냄

“아름답다와 예쁘다, 삼총사와 트로이카 따위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어울리게 골라 쓸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어휘가 풍부해지기는커녕, 쓰는 어휘의 수가 줄어드는 것 같다. 어휘만 제대로 알아도 문장과 대화가 달라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건 알지만 쓸쓸하다, 외롭다, 고독하다는 말의 차이가 뭐냐는 책의 첫 문장부터 답하기가 어렵다. 감에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용어의 어원을 풀이한 책이다. 비슷한 단어 두세 개를 묶어 유래를 밝히고 어감 차이를 설명했다. 가엾다와 불쌍하다의 차이는 뭘까? 가엾다는 심정적으로 동정을 담은 마음 상태이고 불쌍하다는 ‘눈으로 보기에 처지가 안 됐다’는 시각적 언어다. ‘안타깝다, 측은하다’도 있다. 적확한 언어생활을 위해서는 평생 공부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다시 한번 얻는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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