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방
정시우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맞아요. 그 ‘좆밥 근성’으로 몇 년을 버틴 거예요.”

잘나가는 배우 박정민의 입말이다. 인터뷰어도 인터뷰이도 직선이다. 날것의 향연이다. 프리랜서 영화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박정민·천우희·오정세·고두심 등 배우 10인과 한 인터뷰를 엮었다. 성남시청공원(박정민), 만화방(김남길), 감귤 창고(고두심) 등 배우들이 ‘나’로 돌아가는 공간을 동행하며 인터뷰했다. 저자는 ‘시간을 보낸 공간이 그 사람을 만든다’고 믿는다. 배우들의 공간을 포착한 사진도 담겼다. 힘들 때면 친구들에게 ‘성시 발령(성남시청공원으로 오라)’을 내렸던 무명 시절 박정민. 그가 소리치며 울다 공원에서 잠든 사진인데, 베개로 사용한 어떤 ‘물건’이 우리의 청춘을 떠올리게 한다.

 

 

 

 

 


 

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
백설희·홍수민 지음, 들녘 펴냄

“여자아이들은 처음으로, 스크린 속에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겨울왕국〉 ‘엘사’의 테마곡 제목을 살펴보자. 1편은 ‘Let It Go’, 2편은 ‘Into the Unknown’이다. 자신을 내버려두라고 하더니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겠다고 한다. 공주의 주장이라고 하기엔 터프하고 저돌적이다. 그래서 이상한가? 아니다. 이 책은 이전의 공주들과 다르기 때문에 ‘엘사’가 디즈니의 프린세스 브랜드를 되살렸다고 평가한다. ‘엘사’는 소녀들에게 권능을 되돌려준 캐릭터다. 왕족임에도 늘 유약하고 수동적인 공주(소녀)들은 드디어 자신의 힘을 깨닫게 됐다.
이 책은 ‘소녀’를 바라보는 이중 잣대처럼 ‘소녀 콘텐츠’를 대상화해 소비하는 익숙한 문화를 꼬집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동네책방
이춘수 외 지음, 사계절 펴냄

“‘마을’과 ‘그림책’은 수상한책방의 큰 정체성이자 두 축입니다.”

홈페이지? 없다. 주문 링크? 그것도 없다. 서점은? 친구 작업실이다.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수상한책방’은 작업실 책방이라고 불린다. 전체 이름은 ‘마을그림책가게 수상한책방’이다. 마을과 학교 축제가 열리면 길바닥 책방을 열고, 날이 좋으면 갯골에 돗자리를 펴고 그림책과 만화책을 깐다. ‘매일 그림책이나 읽으면서 세상 만만한 할머니로 늙고 싶다’는 수상한책방 하명욱 대표의 글을 읽다 보면, 책과 함께 사람들이 보인다. 전국 23곳 동네책방 대표들의 에세이다.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가 ‘서툰 솜씨나마 정성껏’ 그린 그림도 담겼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공동체’를 꿈꾸는 동네책방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

 

 

 

 

 

지적 행복론
리처드 이스털린 지음, 안세민 옮김, 윌북 펴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가지고 있는 것과 함께 늘어납니다.”

통일 직전과 통일 25년 후를 비교해, 동독 사람들의 행복도는 더 커졌을까? 생활이 윤택해졌으니 더 행복해졌으리라고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데이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조사는 소득, 건강, 가정생활 만족도를 수치화했는데 통일 후 더 낮아졌다. 사회안전망이 붕괴된 데 따른 것이었다. 서구 연구자들이 비판한 동독 체제에서 보건·보육·노동 만족도가 더 높았다. 실업이 늘고,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사람들은 불행해졌다. ‘일정 소득을 넘어서 기본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더 증가해도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저자의 주장을 ‘이스털린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한없이 가까운 세계와의 포옹
수시마 수브라마니안 지음, 조은영 옮김, 동아시아 펴냄

“만지는 행위는 한 인간이 세계를 탐구하는 첫 번째 수단이다.”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1960년대 출산장려책을 폈다. 아이를 4명 이상 낳지 않는 부부는 제재하고, 인공유산을 금했다. 그러나 당시 루마니아 경제 사정으로는 이렇게 많은 가족을 부양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아이를 보육원에 보냈는데, 다수 시설은 ‘위생에 중점을 둔 관리 표준’을 시행했다. 접촉을 금지한 것이다. 차우셰스쿠 몰락 후 루마니아에는 말이 서툴고 몸을 떨며 감정이 없어 보이는 아이들이 발견됐다. 연구자들은 이들이 신체 접촉이 제한된 보육시설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신체 접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올바른 스킨십을 위한 규칙을 제시한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면
변진경 지음, 아를 펴냄

“아이들을 보호하자. 아이들을 죽이지 말자.”

‘당연한’ 이야기를 설득하기 위해 수개월 이상 자료를 모으고 발품을 팔다 보면 서글퍼지곤 했다. 당연한 이야기를 전략적으로, 설득력 있게 해야 하는 현실이 그만큼 자주 막막했다. 마음 쓰이는 질문을 쥐고 따라다니며 쓴 글을 모았다. 모아 보니 학대당하는 아이들, 굶는 아이들, 가난한 아이들에 관한 것이었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음소거’한 어린 목소리들을 공들여 발굴한다. 묻는 사람의 필요와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증명하는 글을 따라 읽다 보면 한 사회의 미래와 책임에 대해 고민하고 다짐하게 된다. 작고 약한 마음에 기어코 닿으려는 저자의 노력과 안간힘이 이 책을 읽는 모두의 마음이 된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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