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2000년대 말부터 ‘위안화 국제화’ 정책을 추진했지만, 국제결제에서 사용되는 위안화의 비중은 2% 내외다. 사진은 2015년 서울 중구의 한 은행이 운영했던 각국 화폐 전시물 게시판. ⓒ연합뉴스

신필(神筆)로 불리는 홍콩 무협작가 김용의 작품엔 드물지 않게 개그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자신을 ‘꽃잎이나 낙엽으로 능히 적을 물리치고’ ‘눈 위를 달려도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 ‘최고수’로 내세웁니다. 그러나 이런 주관적 평가에 비해 객관적 실력은 형편없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독자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고 말지요. 중국 정부가 거대한 인구와 자원, 문화적 전통의 이 나라를 ‘개그 포지션’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 같아서 몹시 안타깝습니다.

그런 사례 가운데, 경제 기사를 계속 써온 저에게 가장 눈에 띄는 중국의 정책 기조는 ‘위안화 국제화’입니다. 중국은 2000년대 말, 자국 통화인 ‘위안’을 글로벌 인기 통화(기축통화)로 만들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바 있습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통화스와프로 위안화를 해외에 방출시키고, 무역에서 위안화 결제를 장려하며, 심지어 위안화로 거래하는 금융상품을 해외시장에 ‘론칭’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국제결제에서 지불할 때 사용하는 통화(payments currency)’ 가운데 위안화의 비중은 2010년대 초나 지금이나 2% 내외로 큰 변동이 없습니다. 미국 달러화는 여전히 40%대 초중반으로 부동의 1위입니다. 무협소설의 주인공들은 기연(奇緣, 기묘한 인연)을 만나 삽시간에 무림의 패권을 장악합니다만 현실의 글로벌 사회는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그가 속한 위계적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 시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위상 높이기(예컨대 글로벌 패권국가)’ 자체를 편집증적으로 추구하며 ‘단기간에 이루겠노라’고 악을 쓰다 보면 웃음거리로 전락하기 십상입니다.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 역시 ‘생산에서 미국과 영국을 따라잡겠다’는 슬로건 아래 재앙에 가까운 정책을 강행하다가 대참사를 초래했습니다. 위안화 국제화, 동계올림픽 판정 시비 등의 배경엔 역대 중국 정부의 글로벌 패권에 대한 강박이 진하게 깔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글로벌 패권을 추구한다는 중국의 민주주의와 법치는 매우 미숙한 수준입니다. 공산당이 법률 위에서 통치합니다. 사회주의라기엔 부끄러운 불평등도와 소수민족에 대한 섬뜩한 탄압은 어떻습니까. 중국은 매력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아득바득 노력한다 해도 패권에 가까워지기는 어렵습니다. 달러화가 20세기 초중반을 거치며 기축통화 지위를 획득한 것은 미국 정부의 인위적 노력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기자명 이종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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