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플레이에서 방송되는 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부부를 소재로 한 콩트를 선보였다. ⓒSNL코리아 유튜브 갈무리

지구가 혜성과 충돌해 멸망할 위기에 처했다. 남은 시간은 6개월. 이 사실을 처음 발견한 천문학자가 충돌 가능성이 99.78%라고 백악관에 보고하자 미국 대통령은 대뜸 그래서 돈이 얼마 드느냐고 묻는다. 대통령 아들인 비서관은 확률이 100%는 아니지 않냐고 말한다. 영화 〈돈 룩 업〉 초반에 나오는 내용이다. 인류 멸망의 위기 앞에서 잇속만 차리는 정치판과 언론의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 이 작품은 봉준호 감독이 꼽은 ‘2021년 영화’ 중 하나다. 〈뉴욕타임스〉는 불안정한 미국을 포착한 영화라고 평가했고 천체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은 다큐멘터리 같다고 말했다.

기후위기를 혜성에 은유해 이 작품을 만든 애덤 매케이 감독은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작가 출신이다. NBC에서 45년 넘게 방영 중인 미국의 생방송 코미디 쇼 SNL은 정치 현실과 세태를 직접적으로 풍자한다. 그 영향인지 영화에 대한 혹평 중엔 이런 말도 있다. ‘145분짜리 SNL 콩트 같다(〈가디언〉).’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 SNL 출연진이었던 배우 알렉 볼드윈이 그의 흉내를 내서 큰 호응을 얻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못 봐주겠다며 편향됐다고 SNS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바이든 현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배우 짐 캐리에 이어 제임스 오스틴이 그를 풍자하고 있다.

한국 대선을 앞두고 유일하게 정치풍자 코미디를 선보이는 프로그램 또한 SNL이다. 2011년 SNL 판권을 들여와 tvN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던 〈SNL 코리아〉는 종영 4년 만인 지난해,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쿠팡플레이를 통해 시즌 2로 돌아왔다. 대선을 코앞에 둔 요즘, SNL은 오프닝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부부를 소재로 콩트를 선보인다. 인물의 옷차림과 특유의 말투 등을 재치 있게 포착해 웃음을 주고 있다. 배우 허성태가 호스트로 출연한 편에서는 두 부부가 설날 선물을 주고받는다. 윤석열 후보를 연상시키는 배우 김민교는 부적을 받고 이재명 후보와 흡사한 배우 권혁수는 영화 DVD ‘대장(동) 김창수’를 받는 식이다. 김건희씨의 학력 위조 의혹과 7시간 통화, 이재명 후보의 욕설 통화, 대장동 의혹 등 민감한 이슈를 건드린다.

〈SNL 코리아〉의 인기를 견인하는 주역은 김건희씨를 성대모사하는 연기자 주현영이다. 그는 또 다른 코너 ‘주기자가 간다’에서 정치인을 일대일로 인터뷰한다. 대선후보가 출연했을 때 정치풍자 코미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 두 가지 중에 하나를 고르는 밸런스 게임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재명 후보에게는 ‘다시 태어나면 지금 사모님과 또다시 결혼하기 vs 대통령 되기’, 윤석열 후보에게는 ‘이재명이 내 캠프에서 일하기 vs 내가 이재명 캠프에서 일하기’ 중에 고르라는 식이다.

〈SNL 코리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정치풍자 콘텐츠는 ‘여의도 텔레토비’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 캐릭터를 각 정당 후보에 대입해 현실 정치를 비틀었다. 신랄한 풍자에 시청자의 반응이 뜨거웠지만 일부 정당에서 불편한 기색을 보였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때 KBS 〈개그콘서트〉에도 ‘사마귀 유치원’ ‘민상토론’ 같은 정치풍자 코너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시청률 부진으로 프로그램 자체가 폐지됐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SNL이 유일한 정치 코미디물이 된 배경이다.

양당 중심의 정치 지형에서 예민한 이슈를 다루는 데 대한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코미디언 황현희는 정치 코미디에 대해 “국민의 반을 등지고 시작해야 하는 개그다.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거 두 정당의 행사에 모두 참여했다가 ‘너는 어느 편이냐’고 비난받은 경험을 한 유튜브 채널에서 털어놓았다. 〈SNL 코리아〉의 안상휘 PD 역시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프로그램을 만들 때 고려하는 두 가지에 대해 밝혔다. ‘핫한 이슈를 고르되 정곡은 찌르지 않기’와 ‘양쪽 진영의 균형감 유지하기’. “정치 팬덤이 극과 극으로 나뉜 환경이라 균형감에 신경을 쓰고 있다”라는 말에서 제작의 어려움과 한계가 동시에 느껴진다.

‘정치 토크쇼’, 하긴 하는데 화제성이…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가 최근 가장 눈여겨본 정치풍자 콘텐츠는 오히려 드라마다. OTT 플랫폼 웨이브에 공개된 정치 블랙코미디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가 현실 정치를 절묘하게 녹여내 호평을 받았다. 그는 풍자가 오히려 한국 코미디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치·시사 풍자가 고사 상태의 코미디를 살릴 수 있는 길이다. 한국 코미디가 죽은 이유는 풍자의 대상이 위를 향하지 않고 약자를 향했기 때문이다. 웃음의 대상이 권력자나 위를 향하면 개그가 살아날 수 있다. 물론 이런 의식을 가지고 리스크를 감수하며 판 벌여줄 제작자가 필요하다.” 공교롭게도 〈SNL 코리아〉는 최근 수어 통역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했고  논란이 일자 사과했다. 〈SNL 코리아〉 작가이자 크루 출신의 방송인 유병재도 “한국에서 코미디를 할 때 장점은, 나쁘고 못되고 멍청하고 재미있는 정치인이 많다는 점 같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정치풍자 말고 약해진 분야가 또 있다. 정치 예능이다. 지난 대선 당시 종합편성채널을 중심으로 정치·시사 이슈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이 강세였다. JTBC 〈썰전〉이 대표적이다. TV조선 〈강적들〉, 채널A 〈외부자들〉, MBN 〈판도라〉도 있다. 소수의 패널이 등장해 선거 국면의 정치 지형을 분석했다. 대선후보가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그보다 앞서 2012년 즈음에는 정치 콘텐츠가 엔터테인먼트와 결합한 정치·시사 팟캐스트가 크게 인기를 끌었다. 정치 뉴스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유희로 접근하거나 이해하기 쉽게 해석하는 콘텐츠가 대거 나타나면서 정치 예능 프로그램의 등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정치 예능’은 예능과 교양 사이 어디쯤에 위치했다.

현재도 지상파와 종편 채널을 중심으로 정치·시사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지만 지난 대선 때만큼 화제성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다. KBS는 평일 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시사 토크쇼 〈더 라이브〉, 〈썰전〉의 시청률을 견인했던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전원책 변호사 등이 출연하는 〈정치합시다 2〉를 선보이고 있다. TV조선 〈강적들〉과 MBN 〈판도라〉도 여전하다. JTBC는 가면을 쓰고 음성변조를 한 패널이 토론을 진행하는 콘셉트의 〈가면 토론회〉를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내보였다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출연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후 2회 만에 종영했다. 대선후보들의 관심은 ‘정치 예능’보다 그냥 ‘예능’에 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KBS 〈옥탑방의 문제아들〉, SBS 〈집사부일체〉,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과 같이 정치와 상관없는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해 정치인보다 개인의 면모를 부각했다.

지상파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한 지상파 시사교양 PD는 지난해 정치인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충격을 받았다. 한 정당의 대선후보 경선 당시 유력 주자의 섭외를 추진했는데 일정을 조율하던 중 구독자가 많은 유튜브 방송에 밀렸다. 결국 섭외에 실패했다. “당내 경선이라 같은 진영에서 좀 더 이슈가 될 만한 곳을 선호한 것 같다. 정치·시사 프로그램을 만드는 입장에서 씁쓸하다. 지난 대선에선 (유튜브가) 이 정도 영향력은 아니었다. ‘양세형의 숏터뷰(개그맨 양세형이 진행했던 짧은 인터뷰 형식의 웹 예능. 2017년 안희정·이재명 등의 정치인이 출연했다)’가 있었지만 이벤트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느낌이다.” 게다가 규정상 대선후보는 선거일 전 90일부터 보도·토론 방송을 제외한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없다. 정치판의 관심은 시간, 규제 등 여러 면에서 제약이 덜한 유튜브로 쏠린다.

이번 대선 국면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정치 콘텐츠도 경제 전문 채널 ‘삼프로TV’를 비롯한 유튜브였다. 최근엔 방송인 홍진경이 운영하는 공부 예능 유튜브 채널 ‘공부왕 찐천재’에 대선 후보들이 출연했다. 진행자에게 직접 수학을 가르치는 콘셉트다.

방송인 홍진경이 운영하는 공부 예능 유튜브 채널 ‘공부왕 찐천재’에 대선후보들이 출연했다. ⓒ카카오TV 갈무리

정치 유튜브 채널과 ‘정치적 양극화’

각종 정치·시사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고 있는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유튜브 영향력의 확대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유튜브 채널은 타깃이 분명하다. 설득할 수 있는 대상 역시 명확하다. 어린이 채널, 경제 채널, 여성 채널 등 특화된 시청자를 대상으로 맞춤형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설득 효과가 커서 대선주자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다. 공중파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데다 심의규정 등 제약을 많이 받는다”라고 말했다. 또한 “과거엔 레거시 미디어가 의제를 설정했다면 최근엔 SNS에서 나온 의제들이 지상파에 전파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화제성이 옮아갔기 때문이다. 역 의제 설정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정치 유튜브 채널 자체도 늘어났다. 지난 대선 이후 기존 미디어가 현 정부에 우호적이라고 여긴 보수층이 대안으로 유튜브를 선택했다. 최근 몇 년 진영을 가리지 않고 전체 파이가 커졌다. 더 이상 정치인이나 시사평론가 등 시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들만의 영역이 아니다. 최근 KBS가 제작하고 방송인 김구라가 진행하는 웹 예능 〈구라철〉에 코미디언 출신의 정치 유튜버가 출연했다. 강성범과 최국, 김영민은 각자 정치적 성향이 뚜렷한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 뉴스 소비가 늘면서 시장도 확대되고 있다.

정치 콘텐츠를 접하는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그만큼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의 폭도 넓어졌지만 부작용도 뚜렷하다. 지난해 8월 장승진 국민대 교수(정치외교학과)와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현대정치연구〉 제14권에 ‘유튜브는 사용자들을 정치적으로 양극화시키는가’라는 글을 실었다. 진보 성향을 대표하는 3개 채널(알릴레오, 김용민TV,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보수 성향을 대표하는 3개 채널(홍카콜라, 신의한수, 펜앤마이크) 시청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여성보다 남성이, 청년층보다 중장년층이, 지지 정당이 있거나 이념적으로 비중도층인 이들이 유튜브를 통해 정치·시사 정보를 획득하는 경향이 강했고, 그중에서도 60세 이상은 보수 채널만 시청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특정한 이념적 성향을 대변하는 정치 유튜브 채널의 시청이 한국 사회의 이념적·정서적 양극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 해당 연구의 결론이다. 정치적 지향이 뚜렷할수록 그에 맞는 왜곡된 정보가 유통될 위험도 커진다. 이미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