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웹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주요 장면들. 현실 정치판과 닮은 듯하면서도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펼쳐진다.

‘충분히 아이러니한가?’ 검열의 잣대는 이것이었다. 충분히 올바른지, 충분히 비판적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왕이면 웃기고 현실적이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아이러니’가 더 중요했다. 그 기준을 뚫고 탄생한 캐릭터가 보수 야당 국회의원 출신의 진보 여권 정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정은(김성령 분)이다. 혹은, 자신은 신자유주의 구조적 모순 속에서 진보 담론을 지켜내는 ‘뇌섹남’ 지식인을 자처하지만 남들은 “유시민 되고픈 잔잔바리”로 평가하는 장관 남편 김성남(백현진 분)이다.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이하 〈이상청〉)의 주요 등장인물 중 일부이다.

아이러니의 잣대를 통과한 〈이상청〉의 장면들은 또 이런 것들이다. 손에 아메리카노 테이크아웃 잔을 하나씩 들고 장관 후보를 고르러 모인 청와대 수석들. 아들 군면제, 다주택, 위장전입, 탈세 등 결격 후보들을 한 명씩 제거하는 ‘손병호 게임’을 하다가 결국 남는 후보가 없게 되자 이런 대화를 나눈다. “일단 다주택부터 펴볼까요? 팔라고 하면 되잖아요.” “요즘 어떤 ‘늘공(직업 공무원)’이 장관 시켜준다고 집을 판답니까?” 혹은 국회에서 벌어진 장관 청문회 장면. 서로 치고받고 싸우다가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여의도 생고기’ 식당 회식에 참석했던 밀접접촉자를 솎아내는 영등포보건소 방역요원 앞에서는 여야 구분 없이 국회의원들이 나란히 줄을 선다.

주어진 조건은 단 하나였다. ‘정치 블랙코미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웨이브는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면서 다른 OTT와 차별화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정치 드라마’를 잡았다. 누가 잘 만들까 물색한 끝에 〈은하해방전선〉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등을 연출한 윤성호 감독을 선택했다. 그게 지난해 8월 말이었다. 윤 감독은 부랴부랴 작가진을 꾸렸다. ‘정치’ ‘블랙코미디’라는 장르, 그리고 ‘남들 하는 거 말고’라는 콘셉트 외에는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소거법을 사용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종이 위에 쭉 써놓고 ‘아닌’ 것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제일 먼저 ‘정치 혐오’를 지웠다. “정치는 다 더럽고 정치인은 다 사기꾼이라는 사고는 세상에 별 도움이 안 되니까.” 그다음 ‘정치 영웅 서사’도 하지 말자고 정했다. “누군가 구세주처럼 나타나 모두를 구해주는 이야기”는 진짜 말도 안 되니까. ‘정치 계몽 서사’도 싫었다. “시민들에게 가르치려 들지 말자고요.” 정치를 로맨스의 배경으로 써먹는 ‘로맨틱코미디’도 지우고, 무인도에 15명 국회의원이 표류하면서 펼쳐지는 ‘정치 우화’는 저예산으로 가능하다는 매력이 있음에도 꾹 참고 제외했다. 차례차례 지우고 보니 막상 남는 게 없었다.

윤 감독과 작가들은 여집합에서 찾기 시작했다. ‘정치’라 불리는 집합의 경계선 바깥에 있는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하면 정치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정부 부처 공무원들, 임명직 장관, 시사평론가, 유튜버, 인터넷 언론사 기자, 사이비 종교단체 목사 같은 캐릭터가 여집합 안에서 차례차례 탄생했다. 그 인물들의 관계도를 그려나가다 보니 블랙코미디에서 출발한 드라마는 누아르, 미스터리, 스릴러, 호러 장르로까지 나아갔다. 윤 감독 표현을 빌리자면 “엄마한테 떡볶이·순대 사먹으라고 용돈을 받았는데 자꾸 오첩반상을 차리려고 하는” 과정을 거쳐, 30분짜리 12편의 ‘정치공학 서사’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가 완성됐다.

ⓒ웨이브 제공


실존 인물·용어가 튀어나오는 블랙코미디

11월12일 〈이상청〉이 업로드된 뒤 시청자들은 주로 드라마의 ‘현실감’을 칭송했다. 배경은 임기가 1년 남은 진보 성향 정권의 말기. 유시민·진중권· 나꼼수·MB·고건·손학규·창조경제·503 같은 실존 인물과 용어가 드라마 대사 속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검사장들이 추근대는 것 참고, 말썽 일으키는 시가 식구들 손절하고, 이혼하고, 시장 돌며 여섯 끼 먹다 토해가며 4선에 성공해온 검사 출신 국회의원 차정원(배해선 분), 보수세력뿐 아니라 청와대·기업·북한·운동권·젠더 이슈·K팝, 심지어 떡볶이와 평양냉면에까지 찌르는 말들을 해온 ‘모두 까기’ 시사평론가 김성남, 신도들은 물론이고 여성 국회의원에게까지 성추행을 일삼지만 비상대책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영입해온 뒤 지지율이 2% 올랐다며 정당에서 비호해주는 보수 우파 아이콘 팽길탄 목사(권태원 분), 모두 언젠가 어디선가 본 듯하고 알 듯한 인물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이상청〉을 특정 세력을 비판하는 정치풍자 드라마로 읽는다. 각자 동상이몽으로. 어떤 사람들은 보수 우파 팽길탄 목사의 해괴한 ‘좌파 척결’ 집회 장면이나, 세상 민감한 용어 ‘한남’이 대사로 등장하는 장면 등의 캡처 사진을 공유하며 이 드라마의 ‘PC함(정치적 올바름)’에 흐뭇해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번 정부의 인사 행적을 너무 잘 풍자했다”라며 현 정권에 대한 비판 정신을 높이 사고 진보 지식인들의 ‘내로남불’ 행적 묘사에 무릎을 친다.

그러다가 다시 멈칫한다. 윤 감독은 〈이상청〉에 제동장치를 두었다. 네 편 내 편을 판단하며 즉물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어느 한 편이 통쾌해지지 않도록 모든 대상에 적당한 감정이입과 거리두기를 실천했다. 노린 게 있다면 진보든 보수든, 민주당 지지자든 국민의힘 지지자든 ‘어?’ 하고 잠시 동공 지진이 일어나는 상태. 특정 정치인, 특정 유튜버, 특정 언론사가 분명 머릿속에 떠도는데 그들을 미화하는 듯하다가 풍자하고, 비판하는 듯하다가 너그러이 봐주는 장면들이 엎치락뒤치락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 대체 누구 편인데?’에 〈이상청〉은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윤 감독은 “어떤 메시지나 프로파간다를 전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아이러니의 풍년을 즐겨달라”고 말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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