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술래 인형. ⓒ넷플릭스 제공

9월17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세계적으로 인기다. 스트리밍 집계 업체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9월28일 현재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장 많이 시청한 영상물이 〈오징어게임〉이다. 넷플릭스 측은 이를 ‘반짝 인기’로 보지 않는다. 9월27일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오징어게임〉은 분명 비영어권 드라마 중 최대 흥행작이 될 것이며, (영어권 드라마를 포함해) 역대 최고 흥행 드라마가 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라고 말했다. 드라마 업계에서는 향후 지각변동을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9부작 〈오징어게임〉은 ‘서바이벌 게임’이 소재인 스릴러 드라마다. 빚에 시달리는 수백 명이 참가해 게임을 하고, 최후의 승자는 상금 456억원을 얻는다. 종목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구슬치기’ ‘줄다리기’ 등이다. 다만 일반적 게임과 달리 탈락자는 실제로 죽는다. 게임은 전부 비밀리에 진행되며 참가자는 ‘관리자’들의 통제를 받는다. 주인공은 위기를 해결해나갈 특별한 능력이 없다. 작품 분위기는 몹시 어둡고 유혈이 낭자하다.

해외 시청자들은 왜 열광할까. 〈오징어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9월28일 언론 인터뷰에서 ‘단순함’을 꼽았다. 쉽고 유치해 보이기까지 한 게임을 수백 명이 목숨 걸고 하는 게 몰입하게 만든다는 것. “어느 문화의 사람이 봐도 30초 안에 놀이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게임이 심플하기에 감정이입하기 좋고, 휴먼드라마처럼 볼 수 있어 인종과 문화를 넘어 인기를 얻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게임은 원초적이지만 그 구도는 현실처럼 치열하고 각박하다. 게임에 동원되는 형형색색 세트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소품 덕에 드라마는 일종의 우화처럼 보인다. 황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2009년께 시나리오를 완성했을 때는 낯설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투자를 거절당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분위기도 커졌다.”

국내에서 불거진 ‘표절’ 논란도 해외에서는 달리 설명한다. 황동혁 감독은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 영화 〈헝거게임〉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라고 말한 바 있지만 영국 매체 〈가디언〉은, 이들 작품과 달리 〈오징어게임〉이 한국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9월28일 기사에서 〈가디언〉은 “〈헝거게임〉과 〈배틀로얄〉에 빠져든 세대에게 〈오징어게임〉의 성공은 놀랍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전제했다. 다만 〈오징어게임〉은 ‘한국에 실재하는 부의 불평등’이 배경에 있다고 썼다. 이 점에서 볼 때 〈오징어게임〉은 ‘시대정신을 포착한 영화’ 〈기생충〉과 일맥상통한다고 이 매체는 덧붙였다. “한국의 계급 분열이 피비린내 나는 결과를 가져오는 점에서 그렇다. 〈기생충〉처럼 이 드라마의 비유는 때로 지나쳐 보이기도 한다. (…) 하지만 끝도 없는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의 인생보다 나쁜가?”

비슷한 맥락에서 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해외에서 흥행하거나 평단의 주목을 받는 몇몇 작품들에 공통점이 있다고 진단한다. “한국 사회에 유난히 도드라진, 자본화된 사회나 공고한 위계구조, 사회 부조리를 고발한 작품들이 특히 해외에서 인기를 끈다. 〈기생충〉이 대표 사례다. ‘우리식’ 반지하를 등장시켜 사는 공간 자체가 분리된 계급화를 보여줬다. 해외 관객 입장에서는 ‘어 우리랑 비슷하네?’ 소리가 나온다. (〈변신〉이나 〈심판〉 같은) 일종의 카프카식 상황극처럼 느끼는 것이다.”

한국 사회라는 배경이 세계 콘텐츠 시장에서 기이한 경쟁력을 발휘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오징어게임〉 속에 등장하는 각 게임은 아무 의미가 없다. 게임을 통해 사회가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특히 자본화되어 있고 위계가 공고하며 생존경쟁이 심한 곳이다. 이걸 바탕으로 창작물을 만들면, 상대적으로 이 감각이 옅은 해외 관객들은 ‘아 우리 사회도 사실은 저런 모습이구나’라는 공감대가 생긴다.”

중국 시장 겨냥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오징어게임〉과 같은 작품이 한국에서도 흔한 드라마는 아니다. 그간 한국에서 히트했던 드라마들의 면면과는 궤가 좀 다르다. 지상파에서 인기를 끈 현대물은 대개 가족이나 연애가 중심 소재였다. 〈오징어게임〉 같은 스릴러나 액션, 공포물은 한데 묶어 ‘장르물’이라고 불렸다. 대개 ‘비주류’라는 의미가 내포된 용어였다. 드라마 업계 종사자는 장르물이 비주류인 이유를 들려줬다. “우선 제작비 충당이 어렵다. 상대적으로 소품이나 무대에 돈은 더 드는데 장르 특성상 간접광고(PPL)를 넣기는 마땅찮다. 시청률도 문제다. 대중적이지 않고 마니악하다. 애정 관계가 들어가지 않으면 계속 보지 않는 시청자들이 많다. 그래서 삼각관계, 사각관계로 엮으면 특수한 소재만 따온 애정물이 돼 마니아들이 떨어져나간다.” 아시아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 열풍을 일으킨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중국에서 한류를 일으킨 〈별에서 온 그대〉 등 아시아권에서 히트 친 작품은 대다수가 멜로드라마였다.

2010년대 들어 텔레비전 시청률이 떨어지자 드라마 업계는 동아시아, 특히 중국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별에서 온 그대〉가 대성공을 거두자 중국 자본도 호응했다. 이 과정에서 해프닝도 벌어졌다. 〈여신강림〉과 〈빈센조〉는 과도한 중국 제품 PPL로 입길에 올랐고, 〈조선구마사〉는 ‘역사 왜곡’ 논란을 불러 조기 종영했다(〈시사IN〉 제709호 ‘역사 드라마 응징은 중국이 더 잘한다’ 참조). 중국 시장을 겨냥해야 하는 창작자들의 고충은 보이는 곳보다 보이지 않는 데에 더 흩어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중 삼중으로 거쳐야 하는 검열 때문이다. 문화 콘텐츠 전반에 해당하는 문제다. 9월24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페이지컴퍼니(카카오페이지)는 웹툰·웹소설 관리자들에게 ‘부적절한 발언 자율심의 가이드’를 전달했다. 한·중 역사에 대한 논쟁, 타이완·홍콩 독립 지지 등에 대한 내용이다.

넷플릭스는 이 판도를 두 가지 측면에서 바꾼다. 우선 ‘장르물’의 입지가 넓어질 수 있다. 넷플릭스는 각자 원하는 시간대에 접속해, 보고 싶은 영상을 골라서 본다. 유튜브 알고리즘 시스템과 닮아 있다. 마니아들은 SNS로 입소문을 낸다. 개중에 작품성이 뛰어난 것은 종전에 관심이 없던 시청자까지 끌어들인다. ‘황금시간대’에 리모컨 주도권을 쥔 이들이 공통적으로 보고 싶어 하던 드라마는 힘을 잃는다. 선택지는 너무 많고 각 개인이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전 세계 송출과 연관이 있다. 정확하게는 〈오징어게임〉이 동아시아권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인기를 끌며 가능성이 열렸다. 우선 중국 자본이나 검열에서 자유로워진다. 창작자들이 더 ‘글로벌’한 소재를 유행에 맞는 방식으로 제작할 여지가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캐스팅의 폭도 더 넓어진다”라고 귀띔했다. 서구 시장이 목표라면 ‘한류 스타’가 필요하지 않다. 중화권에서 인기를 모은 배우들은 회당 천문학적 출연료를 지급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적은 비용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고액의 제작비를 쓰더라도 출연료가 줄어든다면 각본이나 소품에 더 공을 들일 수 있다.

글로벌 OTT에 최적화된 드라마

한국 창작자들이 넷플릭스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것처럼, 넷플릭스 또한 한국 콘텐츠 섭렵에 매우 적극적이다.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CEO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오징어게임〉의 인기를 언급했고,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계정은 또 다른 공동 CEO 리드 헤이스팅스가 〈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트레이닝복을 입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 드라마의 넷플릭스 진출은 넷플릭스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진다. 우선 5000만명에 달하는 한국 시장 공략이다. 한국에는 왓챠와 아마존프라임이 진출해 있고, 웨이브·티빙 등 국내 OTT 업체도 서서히 콘텐츠를 늘려가고 있다. 11월에는 디즈니플러스가 들어올 예정이며, HBO맥스도 론칭 움직임이 있다. 그런데 지난 8월 〈D.P.〉 등 한국 콘텐츠가 급부상하면서, 넷플릭스는 국내 월간 결제금액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424억원)의 2배 가까운 753억원이다. 여타 OTT 서비스의 반란을 잠재운 셈이 됐다.

한국 콘텐츠가 상대적으로 블루오션인 점 또한 넷플릭스에 매력적이다. 최근 들어 넷플릭스는 콘텐츠가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스타워즈〉 〈어벤져스〉 시리즈로 무장한 디즈니, 〈왕좌의 게임〉을 만들어낸 HBO가 각각 디즈니플러스와 HBO맥스를 만들어 직접 OTT 서비스를 운영하면서부터다. 비영어권 국가 제작자들과 협업해 다양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어 아성을 지키는 게 넷플릭스의 활로가 될 수 있다.

코로나19의 여파와 변화된 콘텐츠 환경 탓에 앞으로 한국에서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드라마가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 〈오징어게임〉의 인기몰이는 여기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런데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에 최적화된 드라마는 어떤 작품들일까? 정덕현 평론가는 ‘이른바 HBO식’이라고 표현했다. “자극적인 소재를 선정적 묘사를 곁들여 질 높게 만드는 것이다.” 〈오징어게임〉과 마찬가지로 이전에 등장한 〈킹덤〉 〈스위트홈〉 〈D.P.〉 등은 작품성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적나라하고 자극적인 묘사로 ‘넷플릭스라서 가능한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2021년은 훗날 ‘새로운 한국 드라마’의 태동기로 평가될지 모른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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