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11일 ‘재개발사업 정상화 지원방안’을 발표하는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연합뉴스

최근 이뤄지는 부동산 개발사업은 대부분 민간과 공공의 합작품이다. 민간사업자는 개발사업에 필요한 돈과 경험을, 공공은 인허가와 토지수용 등 행정력을 각각 투입해 이익을 나눠 가진다. 공공이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만큼 100% 민간개발보다 공익성이 강한 사업으로 분류된다.

속살이 벗겨진 대장동 민관합동 개발사업의 모습은 다르다. 공익과 사익의 균형이 무너졌고 그 결과 막대한 이익을 소수의 사업 설계자와 민간사업자가 챙겼다. 대장동 사업이 ‘공공의 탈을 쓴 민간개발’이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성남시의 사정

2004년부터 지지부진했던 대장동 개발사업이 6년 만에 고개를 들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010년 성남시장에 취임하면서다. 그는 성남시 주도의 공공개발을 추진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주도권을 쥐고 개발을 추진해야 전체 도시계획에 걸맞은 개발이 가능하다는 취지였다. 지역에서 나오는 개발이익은 정부와 민간개발자가 아닌 지역민이 가져가야 한다는 아이디어도 이때 처음 나왔다.

그러나 시의회가 공공개발을 반대했다. 예산이 문제였다.

“LH든 민간사업자든 참여할 때는 사업성에 메리트를 갖고 오는 겁니다. 개발이익이에요. 그런데 그 주체들이 계획을 제안했다가 손을 뗐어요. 거기에는 사업성 문제도 있고 자금조달 문제도 있습니다. 우리 시가 지금 현재 사업성 문제와 재원조달 문제에 대해서 과연 LH보다 자유로울 수 있느냐. 이게 굉장히 근본적인 문제예요. 자신 있습니까?”(이재호 성남시의원, 2011년 7월12일 성남시의회 도시건설위원회 회의)

당시 성남시는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었다. 2010년 누적된 빚이 7000억원을 넘어섰다. 이재명 당시 시장은 모라토리엄(채무지급유예)을 선언, 시의 대형 사업을 축소·폐지하고 불필요한 경비를 줄이는 등 긴축경영에 돌입했다.

시의회 반대에 가로막히자 성남시는 새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방채 발행이었다. 대장동과 위례 신도시 개발사업 등을 명목으로 4년간 총 1조287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하겠다고 했다. 성남시는 각 사업별 타당성 조사를 통해 분양 후 수익금을 계산해 시의회를 설득했다.

그러나 시의회는 지방채 발행에도 반대 의견을 냈다. 수익을 확신할 수 없고, 부채를 또 만들 수 없다는 이유였다. 행정안전부 역시 전국 지자체의 부채율 등을 우려하며 지방채 발행 심사부터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성남시 주도의 100% 공공개발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2013년 1월3일 성남시의회 모습. 공공개발과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에 반대했던 일부 시의원이 2013년 입장을 바꾸었다. ⓒ연합뉴스

이때 나온 아이디어가 민관합동 개발이다. 사업의 공공성은 유지하면서도, 개발사업에 참여한 민간에 자금조달 역할을 맡겨 막대한 재정 부담을 해결하겠다는 복안이었다. 성남시는 이 같은 내용을 담아 2012년 말 시의회에 민간과 함께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어 대장동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제안했다. SPC 설립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 출자도 성남시가 돈을 대는 ‘직접 출자’ 대신 성남도시개발공사를 설립해 이 공사 명의로 하겠다고 주장했다.

2013년 공공개발은 물론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에도 반대했던 일부 시의회 의원이 입장을 바꿨다. 이듬해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출범했고, 2015년 2월 대장동 사업에 참여할 민간사업자가 선정됐다. 화천대유가 포함된 하나은행 컨소시엄이었다.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유동규씨와 소수의 민간사업자, 일부 시의원이 2012년부터 결탁해 성남도개공 설립부터 민관합동 개발 전반을 주도했다는 의혹이 나온 건 그로부터 8년 뒤인 2021년의 일이다.

■ 민간개발자들의 사정

2009년부터 이미 대장동 개발을 추진해온 세력이 있었다. 지금은 화천대유의 자회사 천화동인 4호와 5호의 소유주로 알려져 있는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 등이다. 이들은 100% 민간개발을 원하던 일부 땅주인과 계약을 맺은 부동산 개발업체 ‘씨세븐’의 자문 역할을 맡으면서 대장동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사IN〉이 입수한 씨세븐의 민간개발 사업 관련 문건들을 종합하면, 회사는 당시 주민들의 협조를 등에 업고 빠르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개발사업에 참여할 건설사, 금융사 등과 사업 협약을 맺는 한편 저축은행들로부터 1805억원의 대규모 자금을 대출받았다.

씨세븐은 2009년 11월부터 이 자금을 대장동 땅주인과 건물주 등으로부터 ‘토지를 개발에 사용할 수 있다(토지사용권)’는 동의를 얻어내기 위한 ‘계약금’ 등으로 썼다. 결국 전체 대장동 개발지구 필지의 70%에 대한 토지사용권을 얻어냈다. 그러나 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터졌다. 그동안 애써 확보해둔 대장동 토지사용권을 예금보험공사에 가압류당했다(24~29쪽 기사 참조).

정 회계사와 남 변호사 등은 민간개발을 추진할 동력을 잃었다. 대장동 토지 사용 권리를 예보가 가져가면서, 땅에 대한 법적 권한을 갖지 못하게 됐다. 사실상 개발사업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활로를 뚫어냈다. 민관합동 개발 방식이었다. 민관합동 방식으로 대장동 개발이 이뤄지고 이 사업의 민간사업자로 들어갈 수 있다면 잃어버린 토지사용권과 개발 주도권을 ‘되찾아올 수’ 있었다. 당시 상황에서 민간사업자들에게 가장 유리하고 이상적인 방식이 바로 민관합동 개발이었던 셈이다.

화천대유 핵심 인물들은 자신들만의 ‘무기’를 갖고 있었다. 로비를 통해 ‘내 사람’으로 만들어놓은 정치인들, 그리고 앞선 민간개발 추진 과정에서 얻어낸 주민들의 ‘동의’다. 민간사업자들은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장동 일부 땅주인들을 적극적으로 동원했다. 씨세븐 사업 문건들을 보면, 일부 땅주인들은 2009~2010년엔 LH 주도의 공공개발을 반대한다며 성남시와 시의회, 국회, 청와대 등에 탄원서를 보냈다. 2012~2013년엔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민관합동 개발 등에 찬성한다는 입장문을 일부 주민 명의로 냈다. 심지어 2015년에는 남욱 변호사가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지자 재판부에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개발사업에서 주민들의 동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공공기관이 관련법에 근거해 수용할 때도 막무가내로 땅을 빼앗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협의와 설득 과정을 거쳐야 한다. 주민들의 찬성과 동의를 확보해야 사업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다. 대장동 사업을 안정적이고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했던 당시 성남시로서는 ‘땅주인 동원력’을 가진 민간개발자들과 손을 잡을 이유가 충분했던 셈이다.

성남도시개발공사와 민간사업자인 화천대유(하나은행 컨소시엄) 등이 함께 설립한 ‘성남의뜰’은 개발사업을 진행하면서 땅주인과 예금보험공사를 다시 설득하고 보상 협의를 했다. 대장동 등기부등본을 보면, 성남의뜰은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 사이에 대장동 일대 토지 수용, 협의 취득 등을 모두 마무리한다. 사업이 시작된 지 1년 남짓 지난 시점이었다.

■ 공익성 잃은 민관합동 개발사업

2015년 7월, 성남도시개발공사와 화천대유 컨소시엄은 자본금 50억원의 특수목적법인(SPC)인 성남의뜰을 설립했다.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대주주(자본금의 50%+1주)이고 나머지 지분은 화천대유 등 민간사업자가 나눠 갖는 민관합작법인이었다. 대장동 사업에서 나오는 개발이익 가운데 5500억여 원을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먼저 무조건 가져가고 나머지 이익은 민간투자자들이 받는 방식이다. 만약 개발이익이 5500억여 원 이하였다면, 민간투자자들은 한 푼도 건지지 못한다.

2009년부터 대장동 개발을 추진한 씨세븐은 부산저축은행 등으로부터 1805억원을 대출받았다. 위는 2012년 11월 서울고등법원 앞에 모인 부산저축은행 사태의 피해자들. ⓒ연합뉴스

2015년 성남의뜰 출범 당시 계약 내용은 성남시에 유리해 보인다. 그러나 대장동 사업을 자세히 뜯어보면 공익과 사익의 균형이 당초부터 무너져 있었다는 의혹이 나온다. 대장동 의혹의 핵심 쟁점으로 꼽히는 ‘초과이익 환수 조항 삭제’뿐 아니라, 사업 곳곳에 민간사업자 즉 화천대유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려고 했던 의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토지수용과 분양가 산정부터 결과적으로 민간사업자(화천대유)의 배를 불리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국회 정무위 소속 박수영 의원실에 따르면, 성남의뜰은 토지를 평(3.3㎡)당 250만원(평균)에 수용했다. 당시 고시된 ‘성남판교대장 도시개발사업 개발계획변경(안)’에 따르면, 성남의뜰 측이 땅주인들에게 지급한 토지 보상비용은 6184억6200만원이었다. 그런데 하나은행 컨소시엄이 민간사업자로 지정되기 위해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제출한 사업계획서는 (앞으로 지급할) 토지 보상비용을 1조141억6100만원으로 책정했다. 당초 예상한 것보다 보상비용을 30~40% 아낀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수수료 등을 감안하면 토지보상비는 합리적인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화천대유가 산정한 분양가를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화천대유가 확보한 대장동 개발구역 5개 필지 주택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현재 약 2500만원이다. 〈시사IN〉 취재 결과, 성남도시개발공사가 2015년 1월 계산한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을 통해 설립될 85㎡ 초과 아파트의 3.3㎡당 분양가는 968만원, 85㎡ 이하 아파트는 941만원이었다.

사업 초기 계산보다 토지보상비는 내리고, 분양가는 크게 올렸다. 땅 보상 금액이 줄어든 만큼의 혜택이 분양자들에게 돌아간 것도 아니라는 의미다. 이는 대장지구 택지를 특수목적법인인 성남의뜰이 조성하면서 민간사업자가 챙기게 된 ‘이점’이다. 일반적으로 ‘공공택지’에 짓는 아파트엔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다. 그러나 법률적으로 대장지구 택지는 공공택지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분양가상한제의 적용을 받지 않았다. 대장지구의 법률적 사업시행자인 성남의뜰은 공공이 아닌 민간으로 분류되는 특수목적법인이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화천대유는 자유롭게 분양가를 책정할 수 있었다. 아파트 분양에 따른 이익금은 화천대유가 챙긴 개발수익의 핵심이다. 논란이 된 배당금과는 별개다. 화천대유는 5개 택지 모두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받았다.

또한 당초 씨세븐에 대한 가압류로 대장동 부지 70%에 대한 토지사용권을 넘겨받았던 예금보험공사(예보)는 ‘성남의뜰이 부지를 수용하는 데 따른 보상 협의’에 참여하지 못했다. 당시 예보는 저축은행이 파산하면서 은행이 가진 자산을 압류한 뒤 이를 처분해 만든 돈을 고객들에게 돌려주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씨세븐이 2000년대 말에 확보했던 대장동 토지사용권 역시 이 회사가 저축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바람에 예보로 넘어가 있었다. 예보는 이 사용권을 처분해서 파산한 저축은행의 예금자들에게 돌려줘야 했지만 보상 협의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했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예보는 당시 토지보상을 위한 보상협의회 위원으로 선임되지 못했다. 보상협의회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임명하거나 위촉한다. 당시 성남시 지방자치단체장은 이재명 현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다.

예보는 성남의뜰 보상업무를 대행한 한국감정원으로부터 보상금을 지급받는 데 그쳤다. 2021년 9월 현재까지 예보가 회수하지 못한 과거 대장동 민간사업자들의 저축은행 대출 원금은 383억원에 이른다. 지금은 이자가 붙어 예보가 받아야 할 총 원리금은 2628억원으로 늘어났다.

민관합동 개발사업에 ‘관’이 들어가는 이유가 ‘공공성 유지’라면, 일정 비율 이상의 임대주택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임대주택 부지는 당초 계획보다 절반가량 줄었다. 대장동 개발계획이 승인된 2015년 6월 당시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대장동 공동주택용지(37만8635㎡)에 조성하기로 목표한 임대 비율은 15.29%(5만7889㎡)였다. 그러나 2019년 10월 개발계획이 바뀌면서 비율이 6.72%(2만5449㎡)로 줄었다.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지역주민의 숙원사항 해소”를 목적으로 2016년 A9·A10 구역에 임대주택을 마련하기로 했다. 2017년부터 이 구역의 토지를 매입해서 임대주택을 지을 사업자를 9차례에 걸쳐 모집했으나 매번 유찰됐다. 누구도 ‘30년 동안 임대주택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은 토지를 매입해서 사업하려고 하지 않아서다.

10월15일 검찰 수사팀이 대장동 개발 의혹과 관련해 성남시청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도시개발법상 성남의뜰처럼 공공(성남도개공)이 50% 이상 출자한 시행사는 건설 물량의 25% 이상을 임대주택으로 공급해야 한다. 국토교통부 도시개발업무처리지침은 이 비율을 ±10%포인트 사이(15~35%)에서 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임대주택 건설용지로 개발사업을 하겠다는 업체가 최초 공고일 뒤 6개월 내에 나타나지 않을 경우엔 해당 부지를 ‘분양주택’을 건설할 수 있는 구역으로 변경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대장동의 경우 토지공급계획 변경 작업이 이뤄졌다. 결국 법이 허용하는 최저 수준(15%)으로 임대주택 비율을 낮췄고, 이후 임대주택 부지 일부를 성남시가 공공분양으로 전환하면서 이마저도 절반 이하(6.72%)로 줄었다.

A10 구역은 결국 LH가 매입했다. 성남도시개발공사는 토지 매각에 따른 배당금 1800억원을 받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주장하는 약 5500억원 개발이익 환수 금액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이 배당금이다.

대장동 개발을 둘러싼 의혹이 불거진 이후 밝혀진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성남시가 도시개발공사를 설립(2013년 2월)하기 전부터 ‘민관합동 개발이라는 사업추진 방식’ 그리고 ‘민간 파트너로서 화천대유 관련자들 선정’은 정해져 있었다. 민관합동 개발이라는 방식이 성남시와 민간사업자 사이에 먼저 암묵적으로 합의되고, 실제로 추진됐다. 사업은 민간사업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됐다. 함께 참여한 공공 측은 이익을 스스로 제한했다. 대장동 개발사업이 ‘공공의 탈을 쓴 민간개발’이었다는 뼈아픈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