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9월21일, 붙잡힌 지존파 일당이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취재진 앞에 섰다. ⓒ연합뉴스

영화 〈인질〉은 여러모로 색다른 영화였다. 주연 황정민이 실제 자신의 본모습, 즉 영화배우 황정민으로 실명 등장하는 설정이었으니까. 이 영화의 각본·연출을 맡은 필감성 감독은 실제 사건을 다룬 외국 다큐를 보고 영화를 구상했다고 하더구나. 2004년 중국 배우 우뤄푸(오약보) 납치 사건이었지. 이 사건은 류더화(유덕화) 주연의 영화 〈세이빙 미스터 우〉로도 만들어졌어.

그런데 아빠는 영화 〈인질〉을 보면서 또 다른 사건을 떠올렸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악한들의 모습에서 1994년 한국을 뒤흔들었던 지존파 사건을 소환하게 된 것이지. 영화 속 악한들처럼 지존파 일당 6명은 사람을 납치해 돈을 뜯어내고 죽이는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다. 영화 〈인질〉에서처럼 다이너마이트나 사제총을 사용했고, 시신 소각장까지 갖춘 살인 공장을 차리고 있었어. 이 엽기적인 살인범들의 손에 5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자들을 증오한다던 그들이 은행 직원과 가난한 악사, 어렵게 사업을 일구던 중소기업인 부부, 양심의 가책을 못 이겨 조직에서 이탈한 동료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은 실로 어이없는 일이었어.

아빠는 이 지존파를 체포하는 데 결정적 수훈을 세웠고 체포 후 그들을 지켜봤던 당시 서울 서초경찰서 강력1반장 고병천의 증언을 주의 깊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고병천 당시 반장은 지존파를 두고 이렇게 말하고 있어. “그들은 사이코패스가 아니었어요. 우리 사회의 엄청난 상대적 빈곤이 괴물을 만든 겁니다.” 지존파를 두고 우리 속 괴물 같은 사이코패스로 치부하기 쉽지만 그들을 지켜본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으며 되레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그들을 괴물로 만들었다고 얘기하는 거야.

물론 개인의 범죄를 사회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은 또 하나의 무책임한 행위야. 하지만 온전히 사회에서 벗어난 개인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범죄의 사회적 성격은 항상 주목해봐야 할 거야. 죄를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고리타분한 도덕률만은 아니란다. 죄인을 미워하기 시작하면 죄의 실체를 명확히 보지 못하고 그 배경과 맥락을 생략하게 되기 때문이야. 누군가를 인간 이하의 범죄자로 낙인찍고 책임을 지우는 건 쉽지만 범죄를 낳은 환경을 개선하고 재발을 방지해야 하는 노력은 그만큼 어려운 법이거든.

지존파가 등장하던 무렵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자. 극소수를 제외하면 골고루 가난했던 나라 한국은 급속한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상상할 수 없던 빈부격차를 경험하게 돼. 그 이전에는 언론이 앞장서 ‘상류층의 사치 풍조’를 개탄하고 나라도 국민 간의 ‘위화감’을 걱정했지만 이런 ‘부자 몸조심’은 옛말이 됐고 자신의 부를 거리낌 없이, 그리고 남 보란 듯이 향유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압구정동 오렌지족으로 대변되는 상류층 젊은이들의 일탈은 그 한 단면이었지. 부(富)의 중요한 동력 중 하나는 부동산 열풍이었어.

197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화두였던 부동산은 1990년대에 접어면서 광풍이 돼 한국 사회를 휩쓸었다. 1991년 12월27일 〈한겨레〉가 보도한 ‘졸부의 전성시대’라는 기사에는 평범한 은행 차장으로 근무하다가 땅을 사고파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1억원을 번 뒤 본격 투기꾼으로 전업한 이가 등장한다. “1억원을 단번에 버니 200만원 월급이 우스워졌다.” 1991년 9월 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 심포지엄에서는 1989년 기준 토지매매를 통해 실현된 자본이득이 국민총생산의 38%에 이르며 당시 토지공사 추정으로는 국민총생산의 총 77%인 85조원에 달했다고 보고하고 있어. 이 열풍을 잡아타고 터무니없는 부를 거머쥔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자세로 사회를 깔아보기 시작했고 사회적 허탈함은 커졌다. 여기에 더해 “초등학생 때 가난한 살림 때문에 준비물을 준비해오지 못하자 발가벗겨진 채 복도로 쫓겨났던” 지존파 두목 김기환 같은 ‘땅 밑의 사람들’은 “압구정동 야타족들 내 손에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다(지존파 강동은)”라는 증오로 이를 악물게 됐지. 지존파 사건은 한국이라는 폭주기관차의 줄에 매인 채 살갗 찢어지며 끌려가던 이들이 그 눈앞에 보이는 1등칸 귀빈들을 향해 터뜨린 분노에 3등칸 손님들이 희생된 사건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거야.

지존파 사건 당시만 해도 지존파들의 악행에 치를 떠는 한편으로 “상류층은 대중적 반감을 일으키거나 타인을 자극하는 지나친 소비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동아일보〉 1994년 9월23일)”라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그 이후로도 한국의 불평등은 심화됐고, 가진 사람들의 못 가진 이들에 대한 배려는 희소해졌으며, 부(富)에 대한 문제 제기 자체를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게 된다.

목표도 같고 박탈한 것도 같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지존파 사건을 두고 “평준화라는 이름으로 기계적인 교육을 시켜온 탓에 이상스러운 사상이 침투했다(〈한겨레〉 1994년 9월24일)”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지존파는 부자를 증오하고 가난한 자들의 불만을 정당화하는 사상의 소산이었던 거야. “사지가 멀쩡한 사람으로 건강하게 태어난 것, 기아와 내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에 태어나지 않았고, 북한이 아닌 남한에 태어났다는 것에 고마워할 줄 알아야 건전한 사람이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지존파를 사회의 잘못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같은 땅에 태어난 사람들의 삶이 왜 달라지는지, 왜 한쪽은 태어나면서부터 여유롭고 다른 편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허덕여야 하는지, 지존파가 악마였다 쳐도 그 악은 어디에서 왔는지 등등의 문제의식을 모조리 탈각시키는 말이었지.

그러나 27년이 흐른 지금, 김종필의 말은 부인할 수 없는 대세가 됐다고 해야 할 것 같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부동산 회사에서 월급 250만원을 받고 6년 근무한 청년이 퇴직금 50억원을 받고 그걸 ‘정당하다’고 우기는 일이 어떻게 벌어지겠니. 지존파 시절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진 불평등의 벽을 해소해보자고 하면 “사회주의 하자는 거냐?” 하는 힐난이 날아드는 나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니. 최저임금 알바에 목숨 걸어야 하는 청춘들 앞에서 돈 1000억원을 단번에 챙기는 능력자들, 그들의 호위무사 노릇으로 돈 받아 챙긴 전직 법관들이 어떻게 ‘불법은 없다’고 당당할 수 있겠니.

지존파를 수사했던 고병천 전 서초경찰서 강력반장. ⓒ연합뉴스

지존파를 체포했던 고병천 반장은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어. “지존파는 각각 10억원을 채우자는 목표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삼풍백화점 회장도 돈 벌겠다고 백화점 운영하다가 미필적 고의로 사람을 죽였어요. 목표도 같고 박탈한 것도 같아요. 둘이 차이가 없어요.” 지존파는 5명을 죽였지만 삼풍백화점에서는 500명이 죽었다. “돈 있는 놈들 죽여라”라는 발악도 무섭지만 “억울하면 돈 벌어라”라는 비아냥은 더 잔인했고 “돈 버는 게 장땡”이라는 구호는 지존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지존파는 교수대에서 이슬로 사라졌고 그들의 살인 아지트도 공원으로 바뀌었지만 그들을 악마로 만든 세상의 독기는 결코 줄어들지도 잦아들지도 않고 있다. 지존파만큼이나 무서운 일이 아닐까.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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