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
김수현 지음, 민음사 펴냄

“주식의 세계에서 개인투자자는 수익률의 꼬리표로서 존재한다.”

20대 여성인 저자의 인류학 석사논문을 책으로 재가공했다. 연구자인 저자는 2018년 가을, 50대 남성 전업 투자자들이 모여 있는 ‘주식매매방’에 들어가 이들의 삶을 참여관찰했다. 주식매매방이란 개인투자자가 모이는 일종의 공유 오피스다. 이곳에서 만난 중년 남성 개인투자자의 생애와 주식거래 경험, 이들의 반복적인 일상을 관찰·연구하며 우리가 흔히 ‘개미’라고 부르는 개인투자자의 모습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행동경제학 이론으로 개인투자자의 실패를 분석하는 초반부도 재미있지만, 매매방이라는 공간이 중년 남성들에게 어떤 사회적 매개체가 되는지 분석한 후반부가 특히 흥미롭다.

 

 

 

 

 

슬로다운
대니 돌링 지음, 김필규 옮김, 지식의날개 펴냄

“슬로다운은 우리 눈앞에 있다. 그리고 이를 감사해야 한다.”

세계 인구는 계속 늘어날 것인가. 2019년 유엔은 2100년에 세계 인구가 109억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지난해 미국 워싱턴대 의과대학 산하 보건계량분석연구소는 2064년에 97억명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영국의 사회지리학자인 저자는 세계 인구가 더 빨리 감소하리라고 전망한다. 출산율이 급격하게 ‘슬로다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우 긍정적인 결론을 도출한다. 경제적 평등지수가 높아지고, 지구는 온난화를 멈추며, 공해를 일으키지 않는 동력원을 쓰게 될 것이라고. 지나치게 낙관적이지만, 다가올 미래를 ‘인구’라는 시각으로 조망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미쳐 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하미나 지음, 동아시아 펴냄

“남성 치료사들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어렵게 털어놓았을 여자들을 생각한다.”

우울증을 겪는 20대 동료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쩐지 부럽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리 아파 보이지 않는 이들이 쉽게 힘든 상황을 피하고 주위의 돌봄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유병률이 높은 질병이 현대 의학 안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고, 제대로 된 병명을 진단받지 못해 우울과 불안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엄살로 여겨지고 여전히 제대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고통이 있다. 작가는 이 고통의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책을 썼다.
이 정도는 다 겪는 일이라며 내 고통을 마주하지 못해 타인의 고통도 의심하는 것 아닐까? 반성하게 하는 책이다.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지음, 이나경 옮김, 블랙피쉬 펴냄

“헌법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과거 배제된 사람들에게 권리와 보호를 부여한 과정이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 이 책은 지난해 사망한 미국 연방 대법원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주요 판결문과 의견서를 모았다. 성평등과 여성의 권리, 임신·출산의 자유, 선거권과 시민권으로 분류한 재판 13개를 다뤘다. 특히 임신과 관련된 판결이 눈에 띈다. 1972년 ‘스트럭 대 국방부’ 사건에서 그는 “임신은 여성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다른 의료적 상황과 유사하므로, 그와 같이 취급하지 않을 합리적 근거가 없다”라고 적었다. 촘촘하고 합리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의견을 개진해 나간다. 웬만한 한국 법원 판결문보다 더 가독성이 높아 읽기 어렵지 않다. 긴즈버그 ‘사상’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책.

 

 

 

 

 

먼 길로 돌아갈까?
게일 콜드웰 지음, 이승민 옮김, 문학동네 펴냄

“강가에 선 캐럴라인이 눈에 아직도 선하다. 목에는 수건을 두르고, 손에는 운동 후 담배 한 개비를 든 모습.”

두 사람이 울창한 숲을 걸으며 긴 대화를 나눈다. 오랜 산책 후에 차에 오르면 한 사람이 말한다. “집까지 먼 길로 돌아갈까?” 둘은 천천히 헤어지려고 도시의 혼잡한 도로로 접어든다. 문인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게일 콜드웰과 캐럴라인 냅. 문학평론가와 뛰어난 작가로 모임에 참석했지만 어색한 인사만 나누고 헤어진다. 이후 산책길에서 다시 마주친 두 사람은 개와 열렬한 사랑에 빠져 있는 서로를 알아본다. 그렇게 묵묵하고 종요로운 우정이 시작된다. 하지만 캐럴라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7년의 우정은 텅 빈 흔적이 된다. 저자는 글쓰기에 기대 ‘먼 길을 걷듯’ 느린 애도를 시작한다.

 

 

 

 

 

57번 버스
대슈카 슬레이터 지음, 김충선 옮김, 돌베개 펴냄

“사샤는 치마를 입었을 뿐이다.”

책의 첫 장에 작은 글씨로 쓰인 ‘일러두기’에 먼저 시선이 간다. “이 이야기에 관한 상세한 정보는 각종 인터뷰와 문서, 편지, 영상, 일기, 소셜미디어 게시물, 공적 기록물 등에서 하나둘 모아 취합했습니다. (중략) 사건의 중심인물인 리처드는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탓에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하고 철자를 자주 틀립니다. 우리말로 옮길 때도 리처드의 편지나 대화문에 나오는 오탈자 및 문법 오류를 최대한 반영했습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2013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를 가로지르는 57번 버스에서 한 흑인 소년이 백인 에이젠더 학생이 입고 있는 치마에 불을 붙였다’는, 단순해 보이는 사건의 이면을 3년 동안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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