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착취의 지옥도
남보라 외 지음, 글항아리 펴냄

“‘진짜’ 사장님은 누구일까.”

왜 아파트 경비원들은 목장갑 한 켤레로 한 달을 버텨야 할까. 왜 짐을 나르는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그늘 아래에서 일하지 못하는 걸까. 왜 은행 경비원들은 마스크 한 장 지급받지 못하는 걸까. 그들이 응당 누려야 하는 노동자의 권리는 어떤 명목으로 어떻게 떼인 걸까.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이 간접고용 노동자 100명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의 월급명세서를 분석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월급에서 알게 모르게 떼여진 돈이 한푼 두푼 모이고 쌓여서 누구의 주머니에 흘러들어 갔는지를 추적한다. 출판사는 이 책에 대해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사악한 착취 구조를 가장 디테일하고도 광대하게 담아낸 이 시대의 아픈 벽화 같은 책’이라고 적었다.

 

 

 

오답이라는 해답
김태호 지음, 창비 펴냄

“과학은 인간이 일구어낸 다른 학문 분야들보다 더도 덜도 없이 인간적이다.”

‘과학사’라는 말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유명 과학자들을 연상한다. 뉴턴과 아인슈타인, 그들의 이론을 떠올릴 것이다. 과학사란, 몇몇 천재들이 자연에 대한 결론을 ‘발견’해낸 과정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과학은 인류 공통의 자산이고, 이를 쌓아올리는 데에는 이름조차 남아 있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역할도 적지 않다는 것. 책은 ‘구석구석에서 끄집어낸’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특히 서구 과학자들에 비해 이름이 덜 알려진 한국인 과학자들의 일화가 눈길을 끈다. 한글 타자기의 개발과 보급을 주도한 송기주, 박정희 유신독재에 비판적이었음에도 각종 소설에서 정권에 협력했던 것처럼 왜곡된 이휘소 등의 일화가 흥미롭다.

 

 

 

거짓의 조금
유진목 지음, 책읽는수요일 펴냄

“다른 것이 되지 못한 나는 나인 채로 살고 있다.”

‘나는 부모가 싫었다’라는 문장 앞에 오래 서 있게 된다. 부모를 사랑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를 사랑해야 한다고(심지어 공경해야 한다고) 배운다. 시인은 그러한 가르침에 어떤 권위도 부여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처음으로 잘한 일이 집을 떠난 일이라고 적는다. 세상에는 가족을 떠나야 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해준다. 그 덕분에 ‘어떤 독자’는 후련해진다. 용기를 얻는다. 집을 떠날 수 있는 힘을 내본다. 세상 어딘가에는 정말 그런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부모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 자식을 아끼고 보살피는 부모들. 그래서 작가가 좋아한다는 방식으로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책 슬퍼 뒤짐.”

 

 

 

 

남의 나라 흑역사
위민복 지음, 글항아리 펴냄

“맥주는 몸을 날씬하게 해줘요. 다만 안주는 먹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가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면 수도원은 물로 맥주를 만든다. 이 오래된 전통은 신성로마제국 오토 1세 시절까지 무려 1000년을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물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시대였다. 수도원 맥주(Klosterbier)는 믿고 마실 수 있는 물이기도 했다. 현재 독일에서 맥주를 제조하는 수도원은 대부분 바이에른주에 있으며 아홉 곳 남짓 남았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저자는 말러스도르프 수녀원을 반드시 가봐야 할 곳으로 꼽는다. 바이에른 맥주협회의 유일한 여성 브루마스터인 도리스 엥겔하르트 수녀는 지난 40년간 맥주 양조 외길을 걸어왔다. 그가 만드는 맥주는 수녀원 주변 동네에서만 판매한다. 현직 외교관인 저자가 쓴 이 책에는 이처럼 ‘맛있는’ 이야기들이 빼곡하다.

 

 

 

이토록 매혹적인 아랍이라니
손원호 지음, 부키 펴냄

“아랍인의 과거를 알고 그 바탕에 있는 것을 알아야 현재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1970년대 이스라엘에 군사지원을 감행한 미국은 아랍 세계에서 석유를 공급받지 못하게 된다. 이 일로 2년간 미국 GDP는 6%나 감소한다. 미국 경제와 밀접한 한국도 연쇄 타격을 맞았고, ‘오일쇼크’라는 말이 수입되었다. 저자의 사우디아라비아 친구는 이 표현이 아랍인의 입장에서는 부적합하다고 말한다. “아랍 세계가 이렇게 정치적 힘을 발휘하고 경제성장을 이룩한 적이 없다”는 것. 그들에게 오일쇼크는 ‘오일 승리’다. 2003년 처음 이집트에 간 저자는 아랍 세계의 매혹적 역사와 문화에 빠져들었다. 그들이 간직한 영광과 애환을 상세히 소개하는 책이다. 폭탄테러의 배경, 아랍인들의 사업 마인드, 정치체제에 대한 생각 등도 적었다. 단순한 기행문으로만 읽어도 흥미로운 책이다.

 

 

 

믿을 수 없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게 억지스러운
콜센터상담원 지음, 코난북스 펴냄

“얼마나 심한 진상이 있는지 까발리는 게 아니라 ‘전화기 너머의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콜센터에서 10년 넘게 일해온 필자의 경험이 생생히 담겼다. 책을 읽다 보면 새 학기 선물 주문과 반품 요청이 나란히 쏟아진다는 봄부터 난방가전을 둘러싼 클레임이 유독 거세다는 겨울까지, 상담사의 사계절을 함께 겪은 양 숨이 가빠진다. 어떻게든 상담사를 모멸하려 드는 ‘진상 고객’들의 단골 레퍼토리엔 숨이 턱 막히기도 한다. “네가 그러니까 콜센터 같은 데서 일하지.”
서류 한 장으로 취업이 가능하지만 한 달 내에 취업자의 절반이 그만두는 기간제 노동의 최전선. 스스로를 ‘욕받이 무녀’라 칭하는 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인으로서 자긍심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회사는 물론 고객의 부당한 요구를 단칼에 잘라버리는 상담사들의 이야기가 더 많아지길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책이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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