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9일 한국전쟁 후 남한으로 피란 온 김옥순씨가 이산가족 영상편지를 남기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험한 세상에 살아 있다면 동생들아, 나는 여기서 잘살고 있으니 내 걱정 말고 이걸 보면 어머니 아버지 산소에 가서 꼭 이야기해다오.”

김옥순씨(88)가 이산가족 영상편지 제작팀 카메라 앞에서 결국 눈물을 쏟아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을 것이다. 여든의 노인이 됐을 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인사를 남겼다. 이 말은 영상편지의 가장 끝에 담긴다.

평안남도 안주군이 고향인 김씨는 6·25전쟁이 터지자 피란길에 올랐다가 가족과 헤어졌다. 7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김씨는 여전히 희망을 품는다.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것도 이 영상을 누군가가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와 통일부가 진행하는 ‘이산가족 영상편지 제작 사업’은 2005년부터 시작해 2020년까지 모두 2만3000여 편을 만들었다. 올해도 희망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제작된 편수에 비해 북한과의 교환 기회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생존자들이 고령화되고 상봉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영상편지는 당사자들의 ‘마지막 인사’를 기록할 유일한 방법이 되었다.

이산가족 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등록된 이산가족 13만여 명 가운데 64%인 8만5000여 명이 사망하고, 생존자의 66%가 80대 이상으로 집계됐다. 2013년부터 이산가족 영상편지를 제작 중인 KP커뮤니케이션 한준구 PD는 “촬영 후 영상파일을 받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분이 있었습니다”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남북관계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이산가족의 전하지 못한 말은 지금도 사라지고 있다.

평안북도 신의주가 고향인 남편이 생전에 보관하고 있던 남동생의 편지(왼쪽). 김옥순씨가 남편과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찍은 사진. 20대 초반의 사진이 북한의 가족을 찾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영상편지 제작팀에 건넸다(오른쪽). ⓒ시사IN 신선영
북한에 있을 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남기며 눈물을 쏟은 김옥순씨(오른쪽). ⓒ시사IN 신선영
기자명 신선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ssy@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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