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7일 저녁 서울시 대현동 이화여자대학교 인근 거리. 불 꺼진 가게가 눈에 띈다. ⓒ시사IN 신선영

7월24일 토요일 오후 3시. 서울시 대현동 이화여자대학교(이대) 앞 거리는 주말 오후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적막이 흘렀다. ‘이대 앞’은 오랫동안 서울의 대표적 상권이었다. 작지만 특색 있는 옷가게와 식당들이 많아 젊은 층과 해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 중 하나였다. 특히 이화여대 7길에서 3길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은 패션잡화 매장이 밀집해 일명 ‘이대 옷가게 사거리’라고 불렸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이 1년 반을 지나던 7월 말, 사거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풍경은 텅 빈 가게들이었다. 유리창에 ‘임대’ 안내문이 연이어 붙어 있었다.

팬데믹은 서울 도심 곳곳의 풍경을 뒤바꿔놓았다. 〈시사IN〉은 도시 데이터 분석·시각화 전문업체 브이더블유엘(VWL)과 함께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자영업자들에게 미친 영향을 공간 중심으로 파악해보았다. 행정안전부가 제공하는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에 등록된 190개 업종 중 일상생활과 가까운 식품·생활·문화 관련 업종, 그중에서도 미용업, 노래연습장, 일반음식점 등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방문하는 63개 업종을 추려 개·폐업 실태를 조사했다(그 결과가 위 〈그림 1〉이다). 서울 내 지난해 1월 이후 개업이 많았던 지역(노란색)과 폐업이 많았던 지역(파란색)을 지도에 각각 표시했다. 폐업하는 가게가 유독 많았던 지역은 검은색으로 나타냈다. 강북 지역에서는 이대 앞, 신촌, 명동, 용산역 부근 등에, 한강 이남 지역에서는 고속터미널역, 목동, 코엑스 인근 등에 폐업이 집중되었다.

이 가운데 지역 상권 전반의 몰락이 한 골목길 안에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들이 있다. 이대 앞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상점들이 비교적 좁은 구역에 밀집돼 있고, 인근 학교 학생들과 외국인 관광객 등 외부 유입객의 지출에 주로 의존해왔다. 학교가 사실상 문을 닫고 외출·모임·여행이 급감한 코로나19 시대의 그림자가 한 골목길 안에 길고 깊게 드리워진 곳이다.

먼저 통계를 들여다봤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이대역, 이대 정문, 경의중앙선 신촌 기차역, 신촌 기차역 입구 교차로를 잇는 사각형 약 10만㎡ 넓이 지역을 ‘이대 상권’(〈그림 2〉 참조)으로 보고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에 나타난 점포 수 변화를 살폈다. 2019년 12월 564개였던 점포 수는 지난해 12월 540개로 감소했다. 그때부터 올해 6월 말까지는 반년 만에 503개로 다시 줄어들었다.

현장에서 확인한 자영업의 붕괴는 통계 수치 이상이다. 7월22일부터 24일까지 사흘간 이대 정문부터 신촌 기차역까지 이어지는 약 200m 거리를 따라 형성된 190개 가게(병원·학원 제외)의 영업 상태를 살폈다. 절반 가까운 91개 업소가 폐업하거나 휴업 중이었다(〈그림 3〉 참조). 공식 통계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이다. 앞서 확인한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에는 이대 앞의 주 업종인 화장품과 옷가게 점포들의 등록이 제외되어 있다. 사실상 가게 문을 닫았지만 폐업 신고를 곧바로 하지 않고 연말에 하는 업체들도 많아, 통계상 폐업 숫자와 차이가 크다.

한눈에 보기에도 상황은 심각했다. 이대 정문 바로 옆에 위치한 2층 건물은 전체가 통으로 비어 있었다. 원래 화장품 가게가 크게 자리 잡고 있던 곳이었다. 맞은편 3층짜리 건물도 1~3층 화장품 가게와 지하 미용실까지 문을 닫아 텅 비어 있었다. 대형 프랜차이즈업체도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이대 정문에서 경의중앙선 신촌역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한 KFC 이대점은 “(2020년) 8월16일까지 영업 후 휴점을 실시한다”라는 안내문을 붙인 지 1년이 되어 가도록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 문을 닫은 매장에는 식탁, 의자뿐만 아니라 키오스크, 물티슈함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2011년부터 이대 옷가게 사거리에서 의류 매장 ‘바람난 고양이’를 운영하는 김지연씨(45)는 지난 1년 6개월간 주변 옷가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걸 지켜봐왔다. “여기가 완전 번화가였는데 다 죽었다. 이대에서 옷가게가 빈 적은 없었는데, 지금은 살아남은 가게가 훨씬 적다. 옆집 신발 가게 사장님이랑 나중에는 우리만 남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나눌 정도다.” 7월에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가며 스트레스가 커진 김씨의 (전에 앓았던) 대상포진이 재발했다. “작년에는 아예 포기를 했는데 올해는 단골들이 좀 와줘서 나았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안 온다.”

화장품 가게 사장 김 아무개씨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누가 이렇게 반바지 입고 슬리퍼 끌고 장사하러 나오겠냐.” 김씨는 손님을 마주할 거란 기대 없이 습관처럼 나와 가게에 앉아 있었다. 건너편에서 식당을 하던 60대 사장은 한 달 전 배달업체 배달을 시작했다가 교통사고로 무릎을 다쳤다고 한다. 가게 월세를 내기 위해 오토바이 배달 일을 시작했는데 교통사고 후유증 치료 때문에 결국 가게 문을 닫고 휴업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이야기를 기자에게 전해줬다.

“학생 생각하면 유지만 돼도 하겠는데”

1994년에 문을 연 이탤리언 레스토랑 ‘파스타 부오노 이대점’도 지난 3월 27년간의 영업을 마쳤다. 이곳을 기억하는 이대 졸업생 하민경씨(25)는 “파스타 부오노의 지붕 간판은 이대의 오래된 상징이었는데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작은 골목길에 위치한 수제버거집 ‘루이스번스’ 사장은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더 이상의 운영이 힘들어져 (2020년) 8월6일을 마지막으로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미흡했음에도 넘치는 사랑으로 찾아와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는 마지막 인사말을 가게 문 앞에 붙였다.

7월27일 이대 앞 분식점 ‘빵 사이에 낀 과일’에서 손님이 홀로 식사를 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1997년부터 테이블 4~5개의 작은 분식점 ‘빵 사이에 낀 과일’을 운영해온 박춘희씨(70)는 아직까지 가게 문을 닫지는 않았다. 하지만 폐업을 고민 중이다. 적자가 쌓이는 걸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문을 닫고 싶지만, “버텨주세요”라는 학생들의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박씨와 인근 지역 학생들의 사이는 각별하다. 상호명처럼 원래 샌드위치를 팔던 가게에 김치볶음밥, 떡볶이 등 식사 메뉴가 생긴 것도 “밥 해주세요, 이모”라며 조르던 학생 손님들 때문이다.

가게가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지난해 4월 학생들 사이에서 ‘빵 사이에 낀 과일’을 지키자는 ‘구매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학생 손님에게 “너무 힘들어 그만둬야겠다”라고 말하고 나서 2시간 뒤부터 갑자기 손님이 밀려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학생들은 생글생글 웃으며 먹기만 할 뿐이었다. 알고 보니 학생들 사이에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가게를 도와주자는 이야기가 오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난해 잠깐 동안엔 기운을 내며 버틸 수 있었다.

단골들의 온정으로 극복하기에 이 위기는 너무 길다. 이미 바닥을 친 줄 알았는데 7월12일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격상 이후 가게 매출은 다시 또 ‘최악’을 기록 중이다. 2인 모임 제한 시간대인 저녁 6시 이후 가게를 찾는 손님이 하루에 3~4명 남짓이다. 박씨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학생들 생각하면 유지만 돼도 하겠는데 적자 영업이 너무 길어지니까, 많이 속상하다.”

동료 자영업자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거리 속에서 남아 가게를 지키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버티는 이유를 어떻게든 찾고 싶어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에게 거꾸로 질문을 던지고, 확인받고자 했다. 한 가지 동일한 물음이었다. “이런 상황이 끝이 날까요? 끝이 나겠죠? 그렇죠?”

기자명 이은기 수습기자 다른기사 보기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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