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부터 경기도 시흥에서 라이노 볼링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이현영씨. 코로나19 이후 이뤄진 정부의 행정 조치에 반발하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시사IN 신선영

지난해 겨울 내내 ‘라이노 볼링장’의 레인 24개는 멈춰있었다.

실내체육시설은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는 기간, ‘영업제한’보다 한 단계 높은 ‘집합금지’ 대상이 됐다. 이에 따라 수도권 소재 실내체육시설인 ‘라이노 볼링센터’는 2차 유행 시기였던 지난해 9월에 2주 동안, 그리고 3차 대유행이 찾아왔던 지난해 12월 초부터 올해 1월 중순까지 6주 동안 문을 열지 못했다. 이 사장은 3차 대유행 당시를 회상하며 “진짜 죽을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휘발유 통을 짊어지고 국회 앞에 가서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처음 2주를 예고했던 집합금지가 언제 끝난다는 기약도, 손실보전에 대한 약속도 없이 연장되고 또 연장될 때마다 숨통이 조여오는 기분이었다.

이현영씨는 2018년 시흥에 왔다. 그전까지 서울에서 3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했다. 같은 직장에서 만난 아내와 맞벌이를 했다. 부부는 그동안 저축한 돈과 퇴직금에 금융권에서 받은 시설자금 대출을 얹어 2018년 12월 볼링장을 차렸다. 점점 압박이 심해지는 회사를 떠나 노후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더 늦기 전에 인생 2막을 열어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볼링장은 초기 시설투자에는 거액이 들지만 이후에는 유지보수만 잘하면 무리 없이 운영할 수 있으니 자영업 경험이 없는 이들 부부가 해볼 만한 업종이라고 판단했다. 볼링장은 레인 규격이 있어 아무 곳에나 개업할 수 없다. 마침 경기도 시흥의 배곧신도시에 알맞은 신축 상가가 나왔다. 꼭대기 층인 8층에 월세 3000만원 계약을 맺고 입주했다.

본래는 상호명을 ‘코뿔소 볼링센터’라고 지으려 했다. “볼링공을 탁 굴리면 두두두 뛰어가서 핀 10개를 들이받는 모습”에서 코뿔소를 떠올렸다. 볼링공뿐만 아니라 볼링장 역시 코뿔소처럼 여러 난관을 뚫고 ‘스트라이크’를 쳤으면 하는 바람도 얼마쯤은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큰아들이 “좀 없어 보인다”라고 일침을 놔서 코뿔소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라이노’가 볼링센터의 이름이 되었다.

개업 직후에는 손님이 뜸했지만 점차 입소문이 났다. 0에서 시작한 매출은 2019년 한 해 동안 조금씩 상승 곡선을 그려나갔다. 오전 10시에 볼링장 문을 열어 새벽 6시까지 영업을 했다. 볼링 한 게임을 치는 데 1인당 이용료는 4500원이다. 볼링은 한 팀당 최대 4인까지 칠 수 있으니 한 게임당 많이 벌어도 1만8000원이다. 약 3600㎡(1100평) 규모 볼링장의 운영비를 감당하고, 시설에 들어간 대출금을 갚으려면 24개 레인이 쉼 없이 돌아가야 한다.

2020년 1월 정점을 찍은 이후 매출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부부는 마음을 졸이며 매일 발표되는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를 확인했다. 확진자 수에 따라 볼링장을 찾는 손님 수도 확연히 달라졌다. “매달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사람들은 이런 심정을 절대 모를 겁니다.” 볼링장을 오픈하고 안정기에 접어들 무렵 찾아온 위기라 더욱 타격이 컸다. 모아둔 여윳돈이 없으니 “받을 수 있는 대출이란 대출은 모조리” 알아보는 게 중요한 일과가 됐다. 그렇게 빌린 돈으로 급한 대로 임차료를 내고, 앞서 대출한 원리금을 갚고, 생활비를 쓰고, 관리비를 지불하고, 몇 명 남지 않은 직원들 임금을 줬다. 그 사이 지난해 7월 이후 받은 신규 대출금은 2억원으로 불어났다.

이현영 사장에게도 가장 큰 부담은 임차료다. 집합금지로 가게 문을 닫은 기간에도 월 3000만원씩 쉼 없이 나갔다. 건물주가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감면하는 ‘착한 임대인 운동’이 일어난다는 소식이 들리고, 정부는 이를 장려하기 위해 인하액의 일부를 세액공제 해주는 등 건물주에 대한 혜택도 마련했다지만 그에게는 뉴스 속 이야기였다. 이씨는 최근 건물주에게 상황이 너무 어려우니 월세를 좀 깎아달라고 사정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조상이 나라를 팔아먹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자영업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왜 이렇게 일방적으로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까? 저로서는 땅을 칠 노릇이에요.”

코로나19로 직격탄 맞은 ‘부상자들’

코로나19 대응은 흔히 전쟁에 비유되고,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피해를 입은 이들은 부상자로 표현된다. 이현영 사장은 요즘 자신에게 부상을 입힌 것이 코로나19 팬데믹인지 정부인지 헷갈린다. ‘라이노 볼링센터’는 자영업자 대상으로 지급된 4차례 재난지원금 가운데 1차와 2차를 받지 못했다. 상시근로자 수 4인 이하 조건에 맞지 않아 수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올해 초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중소상인단체, 시민단체와 함께 자영업자들에 내려진 방역 조치에 대해 두 차례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현영씨는 2차 헌법소원(집합금지) 청구인 5명 가운데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자영업자들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헌법소원 심판청구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한다는 공공의 필요에 따라 재산권을 침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보상을 지급받지 못하였으므로, 청구인들의 재산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감염병 예방법과 이를 근거로 한 지자체의 고시가 집합제한이나 금지 규정만을 두었을 뿐 그에 따른 손실보상은 보장하고 있지 않기에 평등권, 재산권 등의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헌법은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제23조 3항)’라고 명시하고 있다.

7월1일 오랜 논의 끝에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손실보상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여당과 정부안대로 그동안 피해에 대한 소급적용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법이 공포된 올해 7월7일 이후부터 발생하는 손실에만 해당 법률이 적용된다. 손실보상금은 10월 말부터 지급될 예정이다. 대신 정부는 2차 추가경정예산으로 자영업자들에게 지급되는 4차 재난지원금(소상공인 희망회복자금)을 두껍게 편성해 소급적용이 되지 않는 빈틈을 채우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7월23일 2차 추경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소상공인 희망회복자금’의 세부 내용도 이날 확정됐다. 집합금지 업종은 400만원에서 최대 2000만원까지, 영업제한 업종은 200만원부터 최대 900만원까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희망회복자금은 손실보상금보다 신속하게 집행해 8월에 지급된다. 이현영 사장은 이 지원금으로 재기를 꿈꿔볼 수 있을까. 최대 금액 2000만원을 받더라도 한 달 치에 월세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헌법소원 심리는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다. 자영업자들을 대리하는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의 김남주 변호사는 “정부 측 의견이 제출됐고 우리도 반박 준비 서면을 준비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중요한 사건에 한해서만 공개변론을 진행하는데 이 사건은 아직 공개변론이 잡히지 않았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반년 전과 달리 손실보상법이 생겼고, 곧이어 얼마간의 지원금도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 사장은 여전히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국가와 사회가 할 수 있는 최선인지, 대한민국 헌법에 부합하는 정의인지 말이다. 이는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직격탄을 맞은 부상자들이 동료 시민들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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