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13일 ‘세월호 특별법 반대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여성의 나체 사진을 스마트폰에 띄운 채 춤을 추고 있다. 그가 들고 있는 인형은 일베 마스코트 ‘베츙’이다. ⓒ시사IN 김동인

대학 시절 친구 한 명은 일베저장소(일베)를 한다. 2010년대 초반부터 종종 일베 이야길 했으니 ‘올드 멤버’에 속한다. 이 커뮤니티 성격이 어떤지, 어떻게 변해왔고 현재 어떤 상태인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친구는 일베가 변했다고 투덜거렸다. “재미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기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다. ‘박사모’로 추정되는 고연령대 회원(실제로는 더 비하적 표현을 사용했다)들이 대거 유입된 것. 박 전 대통령 무죄 주장이나 총선 부정선거론이 게시판에 도배되는 바람에 ‘재미’있는 글은 묻힌다고 했다. 재미없는 일베에 질린 젊은 층이 ‘디시인사이드’ 등 다른 커뮤니티로 이주했다는 게 친구의 생각이다. 재미와 보수가 맞붙자 후자를 버렸다는 이야기다.

재미를 찾던 젊은이들은 어떻게 놀고 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을 합성하거나 세월호 사건 희생자를 조롱하는 등 선을 넘는 유머는 일베 밖에서 찾기 어렵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관찰해온 20대 취재원은 ‘좌표 공격’이 오늘날의 놀이문화라고 말했다. 주된 공격 대상은 페미니즘이다. 창작물에 ‘메갈 코드’를 몰래 숨겨놨다거나 ‘워마드 용어’를 사용했다며 비난하는 것이다. 온라인 홈페이지에 몰려가 시정을 요구하거나 단체로 이메일을 보낸다. ‘자 드가자~’라는, 예의 ‘공격 신호’에는 즐기는 듯한 기색이 보인다.

페미니즘만 전선은 아니다. 사람들의 ‘의분’은 더 사적인 일에도 쉽게 터진다. 여자친구와 메신저로 싸운 일, 아파트 주차장에서 벌어진 시비, 개에게 물린 사람, 배달음식을 둘러싼 말다툼 등 사사로운 갈등이 삽시간에 일파만파 커진다. 인터넷 언론은 이 ‘사건’을 보도하는 데 열을 올린다. 온라인 커뮤니티 내부 논쟁이 갑자기 공론의 영역에 떠오른다. SNS를 타고 이슈는 몹시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그라진다.

사람은 새롭고 재미있는 것에 끌린다. 일베의 반사회성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재미를 위한 도구였다. ‘보수’ 입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극단으로 치달았다. 일베 대신 떠오른 커뮤니티들은 문제 집단이라는 꼬리표를 피하면서도 새롭고 재밌는(?) 정보를 제공한다. 이 환경에서 언론은, 온라인을 장악한 갈등보다 더 중요한 공적 문제가 있다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좌표 공격을 행하는 누리꾼들이 ‘효능감’을 얻어가는 동안 기성 언론의 존재감은 점점 옅어지는 모양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