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고등학교 1학년 사회 정치 단원에서 모의 대선 블라인드 투표를 한 적이 있었다. 정책을 분석하고 후보자의 이름은 모른 채 기호만 적어서 투표를 하게 했다. 흰 종이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름들이 등장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 ‘기분 좋다’는 표현, 전두환씨의 광주 폭동 발언 등 ‘일베’ 회원들이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 범람했다. 익명성을 토대로 한 백지 모의 투표에서 몇몇 아이들은 이러한 표현으로 장난을 쳤다.
올해 1학기, 퀴즈 애플리케이션으로 팀명을 만들어 모둠 퀴즈에 참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 ‘전라 노이어’라는 팀명이 등장했다. 월드컵 독일 국가대표 팀 골키퍼 노이어를 빗대, 지역 비하가 섞인 단어를 만든 것이다. 노이어 골키퍼는 한국 대표 팀과 경기 때 골대를 비워 독일 팬들로부터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해당 학생들은 그 외에도 여러 ‘일베발 용어’를 계속 사용했고, 교사의 지적에 수차례 팀명을 다시 만들었다.
다른 교사들의 경험담을 들었다. 한 교사는 아이돌의 노래 가사를 바꾸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한 ‘봉하 친구의 시간을 달려서’라는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을 보았다. 교사가 지적하자 학생은 “일베가 죄인가요?”라고 되물었단다. 이를 말리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노래를 한 학생들은 행동을 쉬이 멈추지 않았다. 다른 교사는 한 학생으로부터 ‘노알라(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을 코알라와 합성한 것)’ 그림이 그려진 수행평가지를 건네받았다.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자 교사는 해당 학생과 면담을 했다. 학생은 그런 행동이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했다.
얼마 전 어느 학생이 재미있는 영상이라며 틀어줬던 한 인터넷 방송이 떠올랐다. 여러 명의 BJ가 진행했던 이 방송은 BJ 중 한 명이 상대방의 볼을 때린 다음 이유가 그럴듯하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인터넷 방송이 매우 많다고 했다. 이미 많은 콘텐츠 생산자들이 내용의 질보다는 관심을 끌기 위한 극단적인 내용을 내보내고 있다. 아이들은 ‘이런 것도 재미의 소재가 될 수 있구나. 재미를 위해서라면 이래도 되는구나’라고까지 느낀다. 예전에는 ‘벨튀(모르는 집 벨을 누르고 도망가는 행위)’를 통해 친구들의 인정을 받으며 짜릿함을 느꼈다면, 이제는 그것을 실시간으로 방송하며 누리꾼의 반응에서 쾌감을 느끼는 식이다. 일베에서 회원들의 폭발적 반응을 가져올 수 있는 패러디물과 게시글을 올리는 것도 남들의 반응을 즐기기 때문일 것이다.
온라인상에서 관심받고 싶어 하는 내면에는…
관심을 받고 싶은 것은 이상한 게 아니다. 다만 그것을 위한 행동이 인간의 존엄이라는 선을 넘어선 안 된다. 학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비상식적인 콘텐츠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학교와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문화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실제로 수업 때 문화 비평 수업을 진행한 후 학생들에게 대중문화 비평을 하게 하면, 기대 이상으로 대중문화를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학생들이 많다. 자신들이 평소 접하던 문화를 다른 시각으로 다시 보게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일베 회원 중에는 10대와 20대가 많은데, 막상 신고당해서 경찰 조사를 받으면 범죄인지 몰랐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로 하여금 타인의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는 것과, 지나칠 경우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음을 알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이때 왜 아이들이 이러한 문화에 빠지고 있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온라인상에서 관심을 많이 받고 싶어 하는 내면에는 외로움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것을 인지하고 접근한다면 변화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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