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변호사는 2017년에 충남 홍성으로 귀촌해 농촌·농민·농업을 위한 법률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시사IN 윤무영

하승수 변호사(53)는 최근 변호사 개업을 신청했다. ‘하승수 변호사’라고 불렸지만 그동안 ‘변호사 휴업 상태’였다. 2006년에 휴업하고서 변호사 개업은 15년 만이다. 그동안 시민운동에 매진했다. 참여연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녹색당, 비례민주주의연대, 시민단체 ‘세금도둑 잡아라’에서 일했다. 제주대 법대 교수도 지냈다. 변호사 개업을 신청하면서, 사무실은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있는 자택으로 정했다. 일은 주로 홍동면 갓골에 있는 공익법률센터 농본 사무실에서 본다. 변호사 ‘개업’을 다시 한 것은 농본의 정보공개 소송을 위해서였다.

지난 4월, 농촌·농민·농업을 위한 공익법률센터 농본 개소식을 했다. 이름은 ‘농자천하지대본’에서, 고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농본주의’에서 따왔다. 농본 사무실은 6평짜리 컨테이너 사무실이다. 산업폐기물 매립장 반대운동을 해온 홍성군 갈산면 오두리 폐기물처리장 반대 대책위가 농본의 설립 취지에 공감해 기증한 것이다. 대책위의 농성장으로 쓰던 컨테이너를 트럭에 싣고 와, 지붕을 용접하고 컨테이너 안과 밖에 나무 패널을 붙여 기증했다. 농본 사무실 안에는 전국 읍면 지도가 걸려 있다. 장화를 신고 나타난 하승수 변호사는 컨테이너 사무실 옆 텃밭에서 채소 공심채를 키우고 있었다. 하승수 변호사는 왜 홍성으로 갔을까? 고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만든 녹색전환연구소 기획이사를 겸하고 있으니 농업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은 알고 있었는데, ‘농본’이라는 새 단체를 만들었다니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지 궁금했다. 컨테이너 사무실 안팎의 풍경에 그 답이 숨겨져 있었다. 7월6일, 홍성에서 하승수 변호사를 만났다.

왜 홍성으로 갔는지?

녹색당 활동을 할 때, 친환경농업 지역인 홍성으로 귀농·귀촌한 이들이 당원 가입을 많이 했다. 의정 감시를 주제로 한 풀뿌리정치학교 일을 하면서 3년 동안 자주 오갔고, ‘여기 와서 사는 게 괜찮겠다’ 싶어서 2017년에 집을 짓고 ‘귀촌’했다.

농본은 한국 최초의 ‘농촌·농민·농업을 위한 공익법률센터’라는데?

올해 2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서울에 인권이나 노동 쪽으로 공익법률센터가 있다. 인권 쪽의 ‘공감’이나 ‘희망법’ 같은. 노동 쪽은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법률원이 있다. 돈을 받고 할 수 없는, 법률 관련 현안들이 농촌과 농사 관련해서도 많다. 지금까지는 개별 지역에서 대응하는 정도였는데, 지난해 농촌·농민·농업을 위해 체계적으로 법률 지원 활동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이상선 충남시민재단 이사장, 이상훈 변호사가 ‘농본’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사무실에 걸린 전국 읍면 지도가 독특하다.

한국에는 면이 1100개가 넘는다. 그 면들의 면적이 국토의 73%를 차지한다. 농촌 공간에 다양한 사람이 살고 그 공동체를 위협하는 많은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에 주목하는 곳이 별로 없다. 농본 사무실을 열었더니 전국에서 연락이 온다. 일반적인 지도는 도시와 도로 중심이라 농본에 연락하는 분들이 사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농촌이 잘 보이는 지도를 구해 붙였다.

농촌은 점점 살기 어려운 공간이 되어간다. 위는 2014년 9월16일 청도송전탑 반대 농성 현장. ⓒ시사IN 이명익

어떤 일로 연락이 많이 오나?

농촌에 송전탑, 대규모 태양광, LNG발전소, 폐기물처리장이 들어서는 문제로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게 연락해온 지역에 스티커를 붙였다. 폐기물처리장 같은 경우는 스티커에 ‘폐’라고 적어두었다(벽에 걸린 지도에는 18개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 컨테이너 사무실도 이 근처의 폐기물처리장 반대 대책위에서 기증했다던데, 농촌에서 폐기물처리장 문제가 심각한가?

지역에 저 말고도 다른 변호사 둘(송영섭·이상훈 변호사)이 자주 오간다고 하니 마을 주민들이 찾아와 폐기물처리장 문제를 상의했다. 가보니 폐기물처리장이 들어설 곳이 아닌데, 사업 진행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국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더라. 지역에 내려오면서 알게 되었다.

폐기물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보통 집에서 종량제 봉투에 버리는 생활폐기물, 그리고 나머지는 산업폐기물이다. 한국 전체 폐기물 양의 88~89%가 산업폐기물이다. 정부에서 생활폐기물을 줄이고 재활용하자고 캠페인을 하는데, 산업폐기물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폐기물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산업폐기물에는 건설폐기물, 일반산업폐기물, 석면처럼 유해성이 강한 지정폐기물이 있다. 이런 산업폐기물은 중간처리해서 재활용하기도 하고 소각하거나 매립한다. 그런데 이런 소각장·매립장이 농촌으로 들어오고 있다.

산업폐기물 매립장, 어떻게 만드나?

대규모 부지를 지하 30~40m 깊이로 파고, 침출수 외부 유출을 막는 차수시설을 만든다. 거기에 계속 쏟아붓는 식이다. 대략 지상 10~15m에 이를 때까지 매립한다. 그런데 아무리 차수시설을 한다고 해도 침출수 문제가 안 생길 수 없다. 매립이 끝나고 사후관리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매립장 사업이 엄청난 돈이 된다. 매립장 사업 회사들의 재무제표를 보았는데, 영업이익률이 50%가 넘는다. 쉽게 말해 매출이 100이면 영업이익이 50 이상이다. 예전에는 폐기물 업체들이 주로 이 사업을 했는데, 돈이 된다고 하니 대기업·건설업체·사모펀드 등이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얼마나 돈이 되기에?

폐기물 종류에 따라 다른데 요새 단가가 계속 오르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t당 20만원이라고 하면, 100만t짜리 매립장이면 2000억원이다. 충남 당진에 있는 매립장은 600만t짜리도 있다. 그 정도면 거의 조 단위 돈이 들어온다. 돈이 되는 사업이니까 법적 분쟁에 대비해 대형 로펌을 쓰더라. 전북 김제에 있는 매립장 관련 분쟁을 봤는데, 서울의 대형 로펌 세 군데에 의뢰한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장차 들어올 이익을 생각하면 그 정도 법률 비용은 아깝지 않은 거다.

농민·주민뿐만 아니라 지자체들도 반대할 것 같은데?

이런 사업이 행정절차가 복잡하다. 지자체, 환경청, 중앙부처 등으로 권한이 다 흩어져 있다. 농민들은 누구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또 사업 진행 단계마다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도 달라진다. 산업폐기물 처리장 문제는 전국에 유사 사례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는 어떻게 대응하는지 농본에서 자문을 하고 있다.

지자체들도 요즘에는 반대하는 추세다. 주민들이 반대하고 매립이 끝나면 사후 관리가 안 되니까. 그래서 업체들이 어떻게 머리를 쓰느냐면, 산업단지와 패키지로 들어오려 한다. 산업단지 안에는 일정 규모 이상이면 매립장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지자체에서 산업단지는 반대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매립장을 만들고 나서 그 산업단지의 폐기물만 처리하는 게 아니고 전국의 산업폐기물을 받는 거다. 이런 일들이 지금 농촌에서 벌어지고 있다.

컨테이너 사무실을 기증한 오두리 마을도 산업폐기물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100만t이 넘는 일반산업폐기물 처리장을 만들려고 하다가 올해 2월에 ‘불허가’로 결정되었다.

6월14일 서산시청 앞에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대법원의 오토밸리 산업폐기물 매립장 소송 관련 사업자 승소 2심 확정판결에 대해 투쟁 의지를 다지고 있다. ⓒ연합뉴스

폐기물 매립장 말고 다른 이슈는?

요즘 LNG발전소가 내륙으로 들어오고 있다. LNG발전소는 전기 소비지나 산업단지 인근에 지으면 되는데, 발전사업 허가권을 가진 산업부가 ‘내륙으로 가도 된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합천의 한 마을에 LNG발전소가 들어서는데, 그 지역이 분지다. 냉각탑에서 냉각시키면서 수증기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농촌 지역에선 농사에 당장 영향을 미친다. 농민들 입장에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는데, 어디에 어떻게 항의할지 몰라 답답해한다. 이런 환경오염시설이 농촌을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공간으로 만든다.

최근에 국회의원들의 농지 소유 실태를 전수조사해 공개했는데?

국회의원들이 투기를 했느냐 안 했느냐의 문제를 보자는 게 아니다. 놀랍게도 한국은 농지에 대한 실태조사가 안 되어 있다. 누가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지, 그 농지는 어떻게 관리되고 이용되는지에 대한 실태조사 자료가 없다. 비농민이 농지를 절반 넘게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추정치에 불과하다. 대통령 직속 농특위와 충남연구원에서 샘플 조사한 게 전부다. 헌법에 ‘경자유전’의 원칙이 있다. 농지법이 ‘경자유전’의 원칙을 관철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비록 비농민이 농지를 소유하더라도 농지은행 같은 곳을 이용해 농민이 10년, 20년 장기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법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개인 간 사적 거래에만 맡겨서는 지속적 농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의 농지 보유를 샘플로 삼아보자는 거다. 국회의원들의 농지 소유 실태는 현행 농지법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표본자료다. 지금 국회에서 농지법 개정안이 농림해양수산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런데 그 농지법 개정안은 국회의원들의 농지 소유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농지법 개정 논의의 실효성을 국회의원들의 농지를 표본으로 삼아서 판단해보자는 것이다. 지금의 농지법은, 헌법상의 경자유전 원칙을 실현할 의지가 없다.

국회의원의 농지취득증명신청서, 농지취득증명서, 농업경영계획서 등을 비공개한 지자체를 상대로 행정심판을 제기했는데?

32개 지방자치단체들은 자료를 공개했는데, 5개 지자체(평창군·부천시·화성시·남양주시·진천군)가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비공개 결정을 했다. 이에 대해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농촌 지역 현안을 다루다 보면 정보공개가 안 되어 있는 게 너무 많다. 예를 들어 농지법 개정과 관련해 법안심사 소위원회의 회의록을 보면 회의자료 쪽수를 언급한다. 그 회의자료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를 했는데 안 주는 거다. 정보공개 소송을 해야 하는데, 제도적으로 문제가 있다. 정보공개 소송은 돈이 되는 소송이 아닌데, 패소할 경우에 공공기관 쪽 변호사 비용을 물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만약 내가 당사자(원고)가 되어 소송을 하면, 소송에서 이겨도 돈을 받지 못한다. 변호사 개업을 하고 대리인이 되어서 정보공개 소송을 하면, 이길 경우 공공기관으로부터 돈을 받고, 질 경우 상대편 변호사 비용을 주는 식으로 리스크를 줄이려고 한다. 사실 변호사 개업은 안 하고 싶었는데, 정보공개 소송의 위험 부담이 커서 정말 어쩔 수 없이 했다(웃음). 15년 만에 변호사 개업을 한 이유다. 정보공개 소송 말고 일반 소송은 하지 않는다.

농촌 주변의 환경오염시설 문제, 농지법 개정 관련 활동 말고 다른 일은?

기후위기로 인한 작물 피해를 조사하고 있다. 통계청에서 지난해 쌀 생산량이 6.4%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홍성 지역 농민들 말을 들어보면 긴 장마와 도열병 등으로 20% 이상 줄었다는 것이다. 태풍 같은 가시적 재난으로 인한 피해는 그나마 보상을 받는다. 그런데 긴 장마 같은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매년 반복될 가능성이 많은데 현재로서는 농작물재해보험 외에는 방법이 없다. 보험금 지급의 조건도 까다롭고, 실제 손해액에도 미치지 못한다.

LH 직원들이 개발 정보를 이용해 신도시 발표 이전 매입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의 토지. 현재 향나무를 심어놓았다. ⓒ시사IN 조남진

정부 통계가 맞는지부터 의문이다. 전국의 3000필지에서 6㎡씩 샘플로 해서 낟알을 세는 방식으로 수확량 조사를 한다고 한다. 실제 수확량 조사를 하는 게 아니다. 정확한 실태조사가 우선이다. 지금도 농민들이 고령화하고,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농사짓기 어렵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까지 겹치고 이에 대한 보상이 없다면 농사를 포기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가칭 ‘기후위기 농업 피해 보상법’ 같은 게 필요하다. 지금은 농본의 활동가가 기후위기로 인한 작물 피해 실태조사부터 시작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농업·농촌 관련 예산을 다 들여다볼 계획이다. 농산물시장 개방 이후에 농업 쪽 예산이 늘어났다고 하는데, 정말로 농촌과 농민을 위해 쓰이는지 봐야겠다. 농지 문제나 기후위기로 인한 농업 피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결국 예산이 들어가야 하니까.

귀촌해 ‘농본’ 일을 하고서 달라진 점은?

귀촌하면서 산업폐기물 매립장 문제를 알게 되었다. 회계사 자격증이 있어서 재무제표를 볼 수가 있는데, 이게 너무 큰돈이 되는 사업이다. 땅에 폐기물 묻고 큰돈을 버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문제가 여러 지역에서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다. 단순한 지역 사안이 아니다. 구조적이고 국가적인 문제다. 산업폐기물 문제는 국가가 관리하는 게 맞다. 서울에만 있었다면 이런 현실을 알 수 있었을까. 농본 활동을 하면서 배우는 게 많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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