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2019년 12월10일 KT&G 서울사옥 앞에서 장점마을 주민들이 비료를 뿌리며 항의하고 있다.

임형택 익산시의원 지역구(영등2동·삼성동·부송동)는 산업단지 옆에 붙어 있는 아파트 단지가 많아 악취 민원이 빈번했다. 의정 활동을 하는 동안 악취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임 의원은 2013년 ‘익산 악취해결 시민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2017년 장점마을 문제가 본격적으로 이슈가 될 무렵 임 의원은 장점마을 민관협의회 위원들과 여러 차례 마을과 금강농산을 찾아갔다. 그의 지역구는 아니었지만 익산 지역 내 환경문제를 모른 척 외면할 수 없었다. 민관협의회 위원들이 각자 분야에서 문제 원인을 찾는 동안 그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자료를 모았다. 수백 장에 달하는 서류 더미 속에서 17년 동안 장점마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물론 금강농산의 무지와 익산시의 무능이 주원인이었지만, 한 줄 한 줄 서류에 밑줄을 그어가던 임 의원의 눈에 들어온 또 다른 이름이 있었다. ‘풍농’이었다. 풍농은 업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비료 제조업체다. 국내를 넘어 일본과 동남아시아에 비료를 수출하기도 한다. 비료공장과 연구실뿐만 아니라 화물 운송업체와 골프장도 운영하고 있고, 장학재단도 가지고 있다.

2009년 6월1일 풍농은 금강농산과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임대차 계약서에 등장하는 ‘갑’은 뜻밖에도 금강농산이다. 전북 익산시 함라면 산기슭에 위치한 영세 업체가 비료업계 대기업인 풍농에게 생산 공장을 빌려준 것이다. ‘을’이 된 풍농이 금강농산으로부터 빌린 시설은 건조기, 열풍기, 냉각기 등 유기질비료 생산과 관련된 설비다. ‘퇴비 제조시설’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특별히 따로 명시돼 있다. 즉 유기질비료 생산 라인은 풍농이 빌려 담당하고, 연초박이 들어가는 퇴비 생산 라인은 기존대로 금강농산이 운영한다는 의미다.

퇴비는 발효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수분이 많고, 영양분 요소에 대한 규정이 거의 없다. 반면 유기질비료는 발효 과정이 없기 때문에 수분이 적고 모든 제품 성분이 최소한의 공정 규격에 맞춰져 있다. 당연히 유기질비료가 퇴비보다 더 비싸다.

퇴비를 만들 수 있는 재료와 유기질비료를 만들 수 있는 재료는 다르다. 비료관리법 행정규칙에 따르면 ‘담배 제조업에서 발생하는 동식물성 잔재물’로는 퇴비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금강농산은 2009년 풍농과의 계약 이전부터 연초박을 썩혀서 퇴비를 만드는 대신 300℃가 넘는 고열에 건조시켜 유기질비료를 제조했다. 전국 어느 비료업체에서도 쓰지 않는 기상천외한 공정이었다. 이 불법적인 생산 과정에서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제1군 발암물질이 발생했다. 연기는 굴뚝을 통해 가까운 장점마을로 퍼졌고, 이는 장점마을 주민들이 각종 암을 겪게 된 원인이 됐다.

2009년 6월1일 임대차 계약을 맺은 풍농은 나흘 뒤 익산시에 제조공정 시설을 확장하겠다는 신고서를 제출했다. 열흘 뒤 익산시는 풍농에 설치를 허가하는 문서를 발급해줬다. 금강농산은 풍농의 후광을 등에 업고 수월하게 공장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임형택 익산시의원 제공금강농산 공장 내 퇴비 제조 시설. 회사의 신고서류와는 달리 퇴비 제조 기계도 없고, 제조한 흔적도 없다.

수상한 임대차 계약을 맺은 풍농

시의 허가가 나온 지 약 한 달 만인 7월20일 두 회사는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고, 위탁생산(OEM) 관계로 전환했다. 두 달이 채 안 되는 동안에 금강농산은 대규모로 유기질비료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얻었고, 풍농은 직접적인 운영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유기질비료를 공급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후 금강농산은 풍농이 운영하던 임대 시설을 직접 가동하며 풍농에 비료를 납품했다. 두 업체 간 임대차 계약이 ‘치고 빠지기’ 전략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풍농 관계자는 “당시 계약을 맺은 대표가 사망했기 때문에 왜 계약이 2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해지됐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계약과 관련된 직원은 모두 퇴사한 상태다”라고 말했다.

금강농산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은 “우리가 비료를 만들면 군산에 있는 풍농 장항공장에서 큰 화물트럭이 와서 싣고 갔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풍농 관계자는 “금강농산에 위탁생산을 준 건 맞지만 다른 큰 업체도 금강농산에 위탁을 많이 줬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금강농산에서 만들어진 비료가 농촌진흥청의 안전검사를 모두 통과했다. 검사에서 연초박을 감지하지 못한 건 당연하다. 연초박이 들어간 걸 감지하려면 니코틴 검사를 해야 하는데, 애초에 유기질비료엔 연초박을 넣으면 안 되기 때문에 니코틴 검사를 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도 최근에 금강농산 문제가 불거지며 연초박 사용에 대해 알게 됐다. 우리도 피해자다.”

금강농산으로 수년간 이익을 벌어들인 업체는 풍농만이 아니다. KT&G는 금강농산에 연초박을 팔았다. 담배를 만들고 난 뒤 남은 연초박은 비료업체의 원료가 됐다. 폐기물 처리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환경부 ‘올바로’ 시스템이 도입된 2009년부터 2018년까지 KT&G가 전국 12개 비료업체에 판매한 연초박은 약 5369t에 달한다. 이 중 약 42%를 차지하는 2242t이 장점마을에 위치한 금강농산으로 갔다.

올바로 시스템 기록이 시작된 2009년 이전에도 금강농산은 연초박을 사용하고 있었다. 2006년 전라북도 비료 등록 서류에도 연초박이 등장한다. 퇴비를 만드는 데 쓰이는 연료 중 20%가 연초박이라는 내용이었다. 다만 연초박의 출처는 기록돼 있지 않다. 즉 KT&G에서 배출된 연초박임을 확인할 수 있는 2242t은 올바로 시스템이 시작된 2009년부터 누적된 최소량일 뿐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수 있다.

KT&G에서 연초박을 사들인 12개 업체 중 금강농산을 제외한 11개 업체는 모두 연초박을 부숙(썩힘)시켜 ‘퇴비’를 만들었다. 금강농산은 연초박을 연소(태움)시켜 ‘유기질비료’를 제조했다. KT&G 홍보팀 관계자는 “우리는 법적인 기준(퇴비 시설)을 갖춘 비료공장에 연초박을 매각했다. 금강농산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금강농산이 서류상으로는 연초박으로 퇴비를 만들 수 있는 시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믿고 판매했고, 그 이후의 처리 과정은 금강농산 몫이라는 뜻이다. 실제 금강농산은 ‘퇴비화 시설’을 신고한 상태였고, 공장 설계도에도 퇴비 생산 라인을 표시해놓았다.

현실에서 퇴비는 생산되지 않았다. 임형택 익산시의원은 “금강농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이후 수차례 공장을 방문했지만 공장 내부에 퇴비 시설이 없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금강농산이 문을 닫기 전까지 8년 동안 공장에서 일했던 한 직원은 “공장에서 퇴비를 만든 적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2009년 6월 체결된 금강농산과 풍농 간 계약서를 보더라도 금강농산이 퇴비를 제조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임차 항목을 세세하게 적어놓은 임차 명세표에 따르면, 풍농이 유기질비료 생산 시설만 빌리는 동시에 ‘생산 인원 전원’을 빌린다고도 쓰여 있다. 풍농의 유기질비료 공정에 ‘생산 인원 전원’이 투입되면, 금강농산의 퇴비 공정을 운영할 인력은 없다. 앞뒤가 맞지 않는 임대차 계약서는 최소한 해당 기간에 금강농산에서는 퇴비를 생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KT&G는 연초박 위험성 몰랐나

장점마을 환경비상대책 민관협의회 위원 중 한 사람인 김세훈 박사(전북대 환경공학과)는 “어마어마한 담배 소송을 해본 KT&G가 연초박이 위험한 물질이라는 사실을 정말 몰랐을까. 만약 KT&G가 연초박을 자체적으로 처리하기 어려웠다면 외부 업체에 돈을 주고 안전하게 폐기했어야 했다. 그런데 오히려 처리능력도 확인되지 않은 업체에다 돈을 받고 팔았다”라고 지적했다.

법이 놓친 사각지대를 잡아내는 건 행정의 몫이다. 그러나 익산시는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임형택 의원은 “주민이 민원을 제기했을 때, 현장에 나온 공무원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서류와 현장을 대조하는 것이다. 업체에서 신고한 설비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그중 어디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현장 관리·감독의 기본이다. 결국 공장이 가동되는 17년 동안 시는 기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금강농산이 문을 닫은 후에야 전라북도는 소속 시군에 앞으로 연초박 반입을 전면 금지하라는 공문을 보내고, 이미 들어와 있는 폐기물에 대해서는 전수조사를 시행하기로 했다. 또 전라북도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연초박을 재활용할 수 없게 폐기하도록 하자는 내용을 담은 관련 법 개정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장점마을 주민들이 죽어가는 사이 비료 원료를 제공하고, 비료를 생산하고, 생산된 비료를 전국으로 판매하는 단계마다 각 기업들은 이윤을 거뒀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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