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4일 차, 기자의 아바타가 제페토의 ‘벚꽃카페’ 맵에서 소풍을 즐기고 있다. ⓒ김다은 제페토 화면 갈무리

‘제페토’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나? 〈피노키오〉 동화책을 읽어준 초등학생 학부모라면, 피노키오를 만든 목수 할아버지를 연상한다. 그 할아버지 이름이 제페토다. 10대라면 ‘메타버스’ 열풍과 함께 주목받는 아바타 플랫폼을 떠올릴 가능성이 높다. 메타버스의 메타(meta)는 그리스어로, ‘넘어서(beyond)’ 혹은 ‘이후(after)’를 뜻하는 접두사다. 메타버스(metaverse)는 현실세계(universe)를 넘어선 ‘더 높은 차원의’, ‘초월의’ 세계를 뜻한다.

2018년에 출시된 네이버Z의 증강현실 아바타 서비스인 제페토는 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GenZ)의 놀이터’로 불리며 성장 중이다. 제페토는 7월 초 기준으로 글로벌 누적 다운로드 수 2억8000만 건을 기록했다.

기자는 국내 대표 메타버스 서비스인 제페토를 체험해보기로 했다. 전 세계 2억명이 쓴다는 서비스이건만 주위에 제페토를 잘 아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출시된 지 3년을 맞이한 제페토의 유저는 전 세계 2억명인데, 그중 80%가 10대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초등학생 때 처음 야후를 접하고 중학생이 되어 싸이월드 파도를 탔던 밀레니얼 세대로서 어렵지 않게 제페토 세상을 즐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10대들의 3D 놀이터, 제페토를 설치했다.

제페토에 가입한 뒤 카메라로 자신의 얼굴을 촬영하면 그 얼굴 정보를 토대로 아바타가 생성된다. 유저가 코 모양부터 눈썹의 기울기, 턱 선까지 세밀하게 다듬을 수 있다. 나의 얼굴 그대로를 반영할 것인지,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나’의 모습으로 그릴 것인지 자주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다. 얼굴과 체형을 선택하고 옷과 액세서리까지 고르다 보니 어느새 30여 분이 지나 있었다. 공들여 만드는 동안 이미 내 아바타와 정이 든 것 같았다.

자신을 닮은 아바타가 완성되면 디지털 화폐 8500코인이 주어진다. 아바타에 투자할 수 있는 초기 자본금이다. 제페토에서는 코인과 젬을 이용해 각종 코스튬과 물품을 구입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유료 아이템을 이용자들 역시 직접 제작해 판매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2020년 4월에 론칭한 제페토 스튜디오는 유저들의 창작활동을 돕는다. 네이버 관계자는 “제페토 스튜디오를 통해 유저들이 직접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여 제페토에 출시하고, 수익도 올릴 수 있는 구조를 확립했다. 내가 만든 것이 남들에게 보여지고, 그것을 판매할 수 있다는 선순환 구조가 제페토의 큰 차별화 포인트 중 하나다”라고 말한다.

‘맞팔’하며 친해진 친구와 포토 부스를 이용해 사진을 찍고(맨위) 월드에서 만난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피드에 올렸다(위). ⓒ김다은 제페토 화면 갈무리

15세 아바타 친구, “반모 할래요?”

1세대 제페토 크리에이터 렌지(닉네임)는 현재 월 1500만원가량 수익을 얻고 있다. “제페토 스튜디오를 통해서 자기가 생각했던 아바타의 옷을 직접 만들 수 있으니까 저도 해봐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유튜브 보고 독학을 하다가 나중엔 더 잘 만들고 싶어서 3D 모델링을 과외로 배우기도 했고요. 지금은 크리에이터를 가르치는 매니지먼트 일도 하고 있어요.” 현재 제페토 스튜디오에 가입한 크리에이터는 총 70만명. 그들이 만든 누적 아이템 판매 개수는 2500만 개다.

크리에이터가 만든 아이템은 젬을 통해 구입해야 한다. 무료로도 얻을 수 있는 코인과 달리 젬은 대부분 유저가 유료로 구입해야 하는 화폐다. 아바타 꾸미는 데 무슨 돈을 쓰나. 절대 ‘현질(유료 아이템을 현금으로 사는 것)’은 안 하겠다는 것이 기자의 다짐이었다. 하지만 ‘제페토 월드 탐험’ 3일째 되던 날, 현질의 욕구를 참지 못했다. 개성 있는 옷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018년부터 제페토를 시작해 3만6000여 명의 팔로어가 있는 황필선(닉네임)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요?” 그의 답은 명쾌했다. “아바타를 예쁘게 잘 꾸며야 돼요. 제 아바타가 저를 표현해주고, 저를 대신해서 관계도 맺는 거잖아요. 구찌 아이템을 산 적이 있는데 제가 현실에서 갖지 못하는 게 있으면 아바타에게라도 입혀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가상의 저를 가꿔주는 거죠.” 그 말을 듣고 다른 아바타들을 살펴보았다. 하얀 얼굴에 커다란 눈, 마른 몸과 반짝거리는 원피스. 흡사 TV에 나오는 걸그룹 같은 모습의 여성 아바타가 많았다. 그에 비해 남성 아바타는 좀 더 다양한 외모인 점이 눈에 띄었다.

제페토 월드에는 총 2만 개 맵이 존재한다. 이곳에서 친구를 사귀고 사진도 찍고 게임이나 낚시 같은 액티비티를 즐긴다. 해외여행이 그리운 사람들이라면 공항 맵이나 세계 각국의 관광지 맵을 방문해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현실감 넘치는 한강공원 맵, 지하철 맵, 교실 맵도 늘 인기다. 정치에 관심이 많다면 원희룡 제주도지사,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같은 정치인들이 만든 사무실 맵을 추천한다.

하지만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건 ‘벚꽃카페’ 맵이다. 체험 4일 차. 제페토의 ‘벚꽃카페’ 맵에 푹 빠지고 말았다. 맵에 입장하면 하늘을 가득 채운 폭신한 꽃이불이 눈을 사로잡는다. 몸을 쭉 뻗고 빈둥거릴 수 있는 아름드리 벚나무 아래는 내 아바타의 지정석이었다. 유유자적 벚꽃길을 거닐던 기자에게 한 아바타가 다가와 “맞팔할래요?” 하고 말을 걸었다.

같이 셀카도 찍고 꽃길도 달리며 놀던 중에 열다섯 살인 그가 ‘반모(반말 모드)’를 제안했다. 제페토 월드에서 아바타들이 친분을 맺는 방식은 대개 맞팔과 반모, 상황극, 사진찍기 등이다. 그렇게 조금씩 다른 아바타들이 하는 것을 모방하며, 맵의 구석구석 즐길 거리를 찾아가며 제페토 주민이 되어갔다. 함께 찍은 사진을 내 아바타 피드에 올리고 포토 부스에 가서 다양한 콘셉트로 사진을 찍고 휴대전화에 따로 저장했다. 괜히 옆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제페토는 종합 SNS 서비스라고 볼 만하다. 아바타의 셀카, 혹은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을 피드에 올리는 것은 인스타그램을 연상케 한다. 비디오 부스에서 케이팝 안무를 따라 하고 그것을 편집해 올리는 것은 틱톡을, 아바타들 간 대화를 나눌 때 음성과 메시지를 이용하는 것은 클럽하우스나 카톡 같은 메신저 서비스를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체험 1주일이 지나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3D로 구현된 아름다운 공간도, 예쁘고 멋있는 아바타들도 문득 다 비슷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굳이 가상공간에 머물면서 맞팔 친구들의 대화나 사진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일상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써야 하는 에너지를 가상세계 아바타들에게 써야 한다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왜?’라는 질문에 좀처럼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기자의 의문에 대해 김상균 교수(강원대 산업공학과)는 “경쟁을 하거나 무언가를 달성하는 등 성과에 초점을 맞춘 행위를 해야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Z세대들이 제페토를 즐기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현실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나를 드러내고, 사회적 연결성을 회복하는 것이 재미다. 코로나19로 학생들이 학교에 가기 싫어한다고들 하는데 실제 제페토에서는 교실 맵이 엄청나게 인기가 많았다. 이곳에서 친구를 사귀며 관계를 맺고 서로의 안부를 챙기면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별다른 것을 하지 않고 그 안에서 휴식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다.”

2019년 제페토 서비스는 빅히트·YG·JYP 엔터테인먼트 3사로부터 170억원을 투자받았다. 당시 제페토는 1500억원의 ‘기업가치’가 있다고 평가됐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기업가치가 올랐으리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미국에서도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하는 3D 가상 플랫폼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온라인 게임회사 로블록스(Roblox)가 대표적이다. 로블록스는 미국의 10대들이 틱톡과 유튜브보다 많이 쓰는 앱이다. 지난 3월 미국 뉴욕증시에 데뷔한 로블록스는 상장과 함께 시가총액 452억 달러(약 51조3200억원)의 기업이 되었다.

제페토에서 이용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아바타. ⓒ이낙연 의원실 제공

디지털과 피지컬이 결합된 ‘피지털’

‘메타버스’라는 단어는 1992년에 출간된 닐 스티븐스의 SF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 처음 등장했다. 30년 전 출간된 사이버펑크 소설의 상상력은 VR, AR, IoT, 5G 같은 기술혁신,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을 만나 현재로 다시 소환되었다.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메타버스라는 단어 앞에 ‘기회의 땅’ 혹은 ‘신대륙’이라는 비유가 붙었다는 점이다. 이 가상의 신대륙 위에서 낯선 디지털 문명을 일구는 이들은 유저들이 세세하게 ‘직조한’ 아바타들이다. 가상현실과 다른 메타버스의 특징은 현실과 가상세계가 상호 연동된다는 점이다. 디지털문화를 연구하는 이광석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대학원)는 “순천향대에서는 가상공간에서 입학식을 열었고, 아바타가 그 입학식에 참석하면 ‘실제 참석’으로 인정했다. 아바타로 현현된 사람들이 가상공간에서 어떤 활동을 하면 그것이 현실에서 인정되는 것이다. 즉 메타버스는 디지털과 피지컬이 결합된 혼합 현실, ‘피지털’이라 할 수 있다.”

구글 트렌드를 통해 검색어 ‘metaverse’에 대한 지난 1년간의 검색 유입 데이터를 살펴보면 국가별로는 1위가 중국, 2위가 한국이다. ‘메타버스’라는 한글로 바꿔 데이터를 살펴보면 메타버스 관련 검색어 5위 중 3개가 ‘메타버스 관련주’ ‘메타버스 코인’ ‘메타버스 주식’이다. 이광석 교수는 현재 메타버스가 투자 대상으로 과잉 주목받고 있는 점을 우려했다.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의 유재연 연구원은 “아바타 서비스 플랫폼에서 유저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아바타에 너무 많은 자본주의적 투입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만약 한 학급에서 25명이 ‘현질’ 하며 서비스를 즐기는데 그렇지 못한 10명이 있다면 어떨까? 여기서도 계급 격차와 소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제페토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이 10대만의 놀이터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10대들이 그 서비스를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세대라 해도 플랫폼을 만들어 수익을 내고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것은 기성세대라는 얘기다. 메타버스는 특정 세대만을 대변하지 않는다. 기계와 인간, 사람과 사람이 상호작용함으로써 완성되는 메타버스는 공동체를 투영하는 새로운 거울이다. 이 낯선 가상공간에는 우려와 기대가 공존한다. 유재연 연구원은 이렇게 말했다. “아바타 성범죄, 혹은 자본주의에 기댄 경쟁적인 자기표현은 여타의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Z세대는 뛰어난 능력이 있고 문제들을 정화할 만한 힘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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