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정유엽 군 부모님 정성재(오른쪽)·이지연 부부.

정성재(53)·이지연(51) 부부는 올해 자식을 잃었다. 삼형제 중 막내아들이었다. 17세. 살아 있으면 12월3일 수능을 치렀을 것이다. 아들은 해군장교를 꿈꿨다. 학교에서 방송반 실장이었고 성당 밴드에서 보컬을 맡았다. 조용하고 잔잔한 눈웃음을 지녔고 “PC방에 갈 때도 부모님께 꼭 물어보고 갈 정도로” 순한 아들이었다. 가족들과 여행 다니기를 좋아했다. 지난해 추석에는 일본 후쿠오카를 여행했다. 모자 상점에서 베레모 하나를 머리에 쓰고 아버지를 바라봤다. “어때?” 아버지 휴대전화에 담긴, 혼자, 크게 나온 그 사진은 반년 뒤 아들의 영정사진이 되었다. 고 정유엽 군. 3월18일 오전 11시16분 대구 영남대병원에서 사망. ‘코로나 의심 고3 사망 충격’ ‘대구 17세 소년 폐렴 증세 보이다 숨져’ ‘첫 10대 코로나 사망자 나오나’ 기사 속의 그 고3, 소년, 10대 남성, 코로나19 의심 환자.

유엽이가 떠난 3월은 모두가 겁에 질려 있던 시기였다. 대구와 경북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환자 수가 급증했다. 환자가 집에서 죽고 응급실이 폐쇄되고 거리에 인적이 끊겼다. 경북 경산시에 사는 유엽이는 얼마 전 항암 치료를 마친 아버지를 걱정해 3주간 외출을 하지 않다가, 3월10일 온종일 동네를 돌아다녔다.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약국 7군데에서 허탕을 치고 오후 늦게 가랑비를 맞으며 한 시간 줄을 선 끝에 KF94 마스크 2장을 구했다. 유엽이는 그날 밤부터 열이 났다.

ⓒ시사IN 이명익정유엽 군 자택에 있는 영정사진.

유엽이와 가족은 일단 기다렸다. “의심 증상이 있을 때 무조건 병원을 찾지 말고 3~4일 경과를 지켜보세요”라는 방역지침을 따랐다. 열은 점점 올랐다. 3월12일 오후 체온계가 40℃를 찍었다. 유엽이와 부모님은 경산중앙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에는 ‘국민안심병원’이라는 문구가 크게 적혀 있었다. 유엽이는 병원 출입을 거부당했다. 선별진료소도 이미 문을 닫아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없었다. 병원은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항생제와 해열제만 처방해주고 유엽이를 집에 돌려보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경산중앙병원에 갔다. 밤새 고열과 구토, 호흡곤란을 겪은 뒤였다. 코로나19 검사와 폐 엑스레이 검사를 마친 뒤 병원은 열이 41℃가 넘는 유엽이를 다시 집으로 돌려보냈다. 폐에 음영이 많이 보인다고 했다. 유엽이가 몸을 못 가눌 정도로 힘들어하자 어머니는 1339와 경산보건소에 전화했다. 답은 같았다.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떠한 조치도 해줄 수 없습니다.” 갔던 병원에 다시 문의해보라는 조언에 옷을 챙겨 입고 또 경산중앙병원에 갔다. 병원 건물 밖 주차장에서 만난 병원 관계자는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오늘 밤을 못 넘기겠네요.” 소견서를 써줄 테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구급차는 내줄 수 없으니 부모님이 직접 운전해가라고 했다.

저녁 퇴근시간이었다. 차들이 많았고 자꾸 신호에 걸렸다. 비상등을 켜고, 아버지는 다리를 덜덜덜 떨면서 대구 영남대병원까지 차를 몰았다. 어머니는 창문을 열고 열이 끓는 아들 얼굴에 연방 손부채질을 했다. 끙끙 앓던 유엽이가 입을 열었다. “엄마, 나 너무 아프다.” 그게 정성재씨와 이지연씨가 들은 아들의 마지막 말이었다.

ⓒ시사IN 이명익강아지 잼잼이. 유엽이가 없는 집에서 가족들에게 위로를 주는 존재다.
ⓒ시사IN 이명익어머니는 유엽이가 떠난 뒤 모자상을 빚으며 아들을 추도하고 있다.

“드디어 양성반응이 나왔어요”

3월13일 저녁 영남대병원에 도착한 뒤 부모는 엿새 동안 차 안에서 지냈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아들의 소식을 기다렸다. 음압카트에 누워 병원 안으로 들어간 유엽이는 3월18일 사망 전까지 총 13번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계속 음성이 나왔지만 의사들은 “99% 코로나19를 확신한다”며 검사를 반복했다. 3월18일에는 의사가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드디어 양성반응이 나왔어요. 이건 세계 학회에 논문으로 보고해야 할 변종 바이러스예요!” 유엽이 부모님은 밀접접촉자니 검사를 받고 집에 가서 격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집으로 운전해가는 길에 다시 전화가 왔다. 유엽이가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이었다.

유엽이의 사망 소식이 언론에 도배됐다. 기저질환이 없던 10대 청소년이 폐렴으로 사망했다, 코로나19 의심 증세를 보였다, 마지막 검사 결과 일부 양성으로 해석할 수 있는 ‘미결정’ 소견이 나왔다는 내용의 뉴스 제목 앞에 ‘충격’ ‘공포’ ‘경악’ 말머리가 붙었다. 검사 결과에 관해 영남대병원과 질병관리본부와 의료계에서 각자 내놓는 말들이 언론지상에서 어지럽게 섞이는 가운데, 유엽이 죽음에 관한 사람들의 의문은 단 하나로 모아졌다. ‘그 소년은 코로나19 음성인가, 양성인가.’

의견들은 묘하게 정치세력에 따라 갈렸다. 현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양성’ 쪽에 무게를 뒀다. 첫 10대 코로나19 사망자를 근거로 정부의 방역 실패를 증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유엽이가 ‘음성’이기를 좀 더 바랐다. 총선을 한 달 앞둔 시기였다. 질병관리본부,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의 교차검증 결과 유엽이의 검체는 최종 음성 판정이 났다. 잠시 음모론이 떠올랐지만 총선이 끝나면서 힘을 잃었다. 사회는 유엽이의 죽음에서 관심을 끊었다.

유엽이의 죽음이 정치적으로 활용되다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동안, 유엽이 부모는 다른 의문들을 품어갔다. ‘음성이냐 양성이냐’는 애당초 중요하지 않았다. 부모는 유엽이의 죽음이 무언가에 쓰일 수 있다면, 그것은 ‘감염병 위기 시 의료시스템 개선’이기를 바랐다. 유엽이는 왜 죽었을까, 지천에 병원이 깔렸는데 왜 아무 데도 유엽이를 받아주지 않았을까, 열이 41℃를 넘는데 왜 집으로 돌아가야 했을까,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정말 아무 처치도 받을 수 없는 지금의 시스템이 온당한가, 비(非)코로나19 응급환자는 이런 감염병 재난 시기에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고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을까, 그저 혼란한 시기에 어쩔 수 없는 불운이었을까, 어딘가 무언가를 개선하면 살 수도 있었던, 우리 의료시스템의 빈 구멍을 보여주는 인재(人災)인가.

유엽이 부모는 이 질문들의 답을 찾는 일에 아들의 죽음 이후 9개월을 매진해왔다. 병원 관계자, 공무원, 시의원, 지역구 국회의원, 변호사, 의료인, 기자들을 만났다. 인터뷰를 하고 기자회견을 열고 토론회에 참석하고 서명운동을 벌였다. 아버지 정성재씨는 ‘이걸 왜 해야 하나’ ‘굳이 이걸 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자주 물었고,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유엽이의 죽음에 대해 명확한 진상조사가 필요합니다. 거기에서 발견한 문제점을 토대로, 유엽이와 비슷한 죽음이 또 발생하지 않도록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시사IN 이명익
ⓒ시사IN 이명익
ⓒ시사IN 이명익유엽이가 남긴 유품들. 올해 고3이었던 유엽이는 작은형을 따라 해양대에 진학하고 싶어 했다. 도서관에서 마지막으로 빌린 책도 해양학자에 관한 책이었다.

“3월과 지금 무엇이 달라졌나요?”

사회는 아직 유엽이 죽음에 의미를 부여할 생각이 없다. 한 정부 관계자는 유엽이 부모에게 “안타깝지만, 유엽이는 하나의 사건이고, 하나의 사례로는 (대책 마련을 위해) 부족하다”라는 말을 했다. 부부는 아직 아들의 죽음 자체에 온전히 슬픔을 쏟아내지 못한다. 아들의 죽음보다, 아들의 죽음으로 개선된 점이 없다는 사실에 더 가슴을 친다. “유엽이가 죽던 3월과 지금 무엇이 달라졌나요? 열이 나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안심병원이 도대체 무엇이고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일반 환자와 코로나19 환자를 어떻게 구분해서 진료해야 하는지, 코로나 의심 환자를 자기 병원에서 보지 못하더라도 다른 병원 어디로 어떻게 전달하면 되는지 그 체계와 매뉴얼이 이제는 의료계 사람들과 일반 시민들에게 제대로 숙지되어야 하지 않나요? 우리 아이는 이미 죽었지만, 또 아프고 열날 아이들이 너무 많잖아요. 그 아이들이 유엽이처럼 또 희생되면 안 되잖아요.” 아들을 잃은 부부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들을 잡아 세운다.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며 혹시 놓치고 가는 생명과 가치들은 없을지 살피길 권한다. 2020년을 되짚어볼 때 유엽이의 죽음은 그러한 이유로 사회적 의미가 깊다.

〈2020 올해의 인물올해의 정은경과 내년의 우리들
〈2020 올해의 인물유엽이의 죽음은 무엇을 말하는가
〈2020 올해의 인물〉 “왜 사춘기를 갖다 붙이는 거지?”
〈2020 올해의 인물여성 택배 노동자로 사는 것
〈2020 올해의 인물코로나19 전부터 감염자로 살았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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