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

이해찬을 만났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대표 임기를 8월에 마치고 은퇴했다. 4월 총선에서 180석(비례위성정당 성적 포함)을 가져오면서, 직업정치가 인생 마지막 선거를 역사적인 압승으로 마무리했다. 8월28일 퇴임 기자간담회 말고는 일절 언론에 나서지 않던 그를, 9월9일 여의도 개인 사무실에서 독점으로 만났다. 2시간을 예정한 인터뷰는 20분 더 길어져 140분 만에 끝났다.

‘버럭 해찬’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맡은 과업을 잘 끝내 홀가분한, 유쾌하고 배려 많은 정치가가 있었다. 그는 줄담배로 유명하다. 이날도 담배를 연이어 다섯 대 피웠다가, 취재진이 창문을 여는 걸 보고는 딱 멈췄다. 무심코 담뱃갑을 잡다 멈칫하고 내려놓는 동작을 인터뷰 내내 반복하면서도 끝내 다음 담배를 물지 않았다. 농담도 자주 했고 ‘자학 개그’도 했다. 초선 의원 시절이던 1991년 탈당했다 돌아온 일을 회고하다 “한 짓 봐서는 날아갔어야 마땅한데”라고 말해 기자를 웃겼다.

딱 하나만 물어보겠다고 해서 성사된 인터뷰였다. 20년 집권론. 이해찬은 당 대표가 된 2018년 8월 전당대회 때도 20년 집권론을 내걸었고, 올해 8월28일 퇴임 기자간담회에서도 20년 집권을 당부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 문재인 정부에서 집권당 대표를 지냈다. 각 대통령과 관계가 그보다 긴밀했던 사람은 있었을지라도, 세 정부 모두에서 이 정도로 핵심이었던 사람은 그밖에 없다. 그에 동의하든 반대하든, 지금 집권세력의 세계관과 사고구조를 그보다 잘 보여줄 적임자는 없다. ‘20년 집권론’이라는 슬로건은 그 세계관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왜 20년 집권인가. 뭘 하려고 20년 집권이 필요한가. 민주당은 무엇을 해야 20년 집권을 해낼 수 있나. 당 대표 2년 동안 어떤 준비를 했나. 2022년 대선이 요구할 리더십은 무엇인가. 이 모든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화두다. 그래서 딱 하나를 물어보는 인터뷰가 140분 걸렸다.

 

ⓒ시사IN 조남진2018년 8월25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해찬 대표 후보가 인사하고 있다.

2018년 전당대회 때 ‘20년 집권론’을 들고나왔습니다.

사실은 전당대회 이전에, 2017년 대선 유세 때 처음 그 얘기를 했어요. 이번 대선 승리를 넘어서 앞으로 계속 집권을 해야 한다고. 얼마나 해야 한다는 거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하다 보니 그게 20년 집권론으로 발전을 했지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역사의 지형을 보면 정조 대왕이 1800년에 돌아가십니다. 그 이후로 220년 동안 개혁 세력이 집권한 적이 없어요. 조선 말기는 수구 쇄국 세력이 집권했고, 일제강점기 거쳤지, 분단됐지, 4·19는 바로 뒤집어졌지, 군사독재 했지, 김대중 노무현 10년 빼면 210년을 전부 수구보수 세력이 집권한 역사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 경제나 사회가 굉장히 불균형 성장을 해요. 우리 사회를 크게 규정하는 몇 가지 영역들이 있습니다. 분단 구조, 계층 간·지역 간 균형발전 문제, 부동산 문제, 또 요즘 이슈인 검찰개혁 문제 등이 그렇죠. 이런 영역들이 다 규모는 커졌는데 구조는 굉장히 편향된 사회로 흘러온 겁니다.

편향을 복원하려면 20년은 집권해야 한다는 뜻이군요.

복원도 아니고, 복원을 시도해볼 틈새. 그 틈새 정도만 만들려고 해도 20년은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분단구조에 틈새를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그게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5·24 조치(천안함 침몰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내놓은 대북 교류 단절 및 봉쇄 조치) 하고 개성공단 폐쇄하고 하면서 다 무너지지 않습니까. 부동산도 그래요. 노무현 정부 시절 제가 총리를 할 때 국민소득이 2만 달러고 가계부채가 600조원이었습니다. 그때도 유동성 때문에 부동산 투기가 심하다고 그랬는데, 지금은 국민소득 3만 달러에 가계부채가 1500조원이 넘어요. 소득은 50% 올랐는데 가계부채는 150% 늘어난 겁니다. 노무현 정부 때 LTV와 DTI를 처음 만들어서 부채를 컨트롤하니까 2008년 금융위기 때 같이 쓸려가지 않고 살아남았잖아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부터 초과이익환수제 풀고 다주택 보유 풀고 하면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버렸어요. 이런 게 균형이 깨진다는 겁니다.

20년을 연속 집권하면 다릅니까?

개혁 정책이 뿌리내리려면 그 정도는 걸립니다. 미국의 사회제도는 참고할 만한 게 별로 없어요. 독일이나 영국이나 또는 북유럽 국가들에서 자리 잡은 개혁정책을 보면 사민당이나 노동당이 20~30년씩 집권하면서 만들어낸 겁니다.

보수가 너무 약해 보여서 승리를 과신하는 건 아닌가요?

보수가 너무 세기 때문에 20년 집권이 필요합니다. 제도정치권 딱 한 군데만 보수가 약해요. 220년 중에 210년을 집권한 세력이 보수입니다. 경제, 금융, 언론, 이데올로기, 검찰… 사회 거의 모든 영역을 보수가 쥐고 있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이렇게 균형이 무너진 나라가 없어요.

어째서 제도정치는 예외인가요?

한국의 큰 역설입니다. 보수에 하도 시달리다 보니 역설적으로 국민의 정치의식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는 군이 나왔는데 1987년엔 못 나왔어요. 전국이 다 들끓으면서 군이 나왔을 때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이길 수 있다는 경험, 폭력 없이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경험을 하니 정치적 효능감이 올라갔습니다. 결국 대통령 탄핵까지 시켰잖아요. 1987년 6월항쟁부터 2016년 촛불까지가 하나의 흐름인 겁니다. 국민들 정치의식이 굉장히 높아졌기 때문에 다른 분야가 다 보수인 와중에도 제도정치만 섬처럼 예외가 되었습니다. 그것마저 없었으면 일본처럼 되었겠죠.

민주당이 이제는 집권세력인데도 아직 민주화 투쟁 중이라고 착각한다는 냉소도 있습니다.

그렇지가 않아요. 경제, 사법, 언론 이런 곳이 민주화가 안 돼 있잖아요. 사회 제반 영역이 다 민주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강하고, 시민사회가 강하고, 언론이 강해져야 해요. 사회의 나머지 영역이 민주화되어 있으면 우리가 선거 한두 번 국민 선택을 못 받아도 사회는 회복이 가능해요. 지금은 제도정치 한 곳에서 정당만 섬처럼 있으니까, 노조·시민사회·언론이 다 취약하니까, 정당이 밀려나면 다 밀려나는 겁니다.

 

ⓒ시사IN 이명익2016년 12월3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6차 촛불집회.

민주화의 의미를 일반적 용법보다 훨씬 넓게 쓰는 것 같습니다.

민주화는 투표나 직선제 같은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와 주체의 문제입니다. 투명성이 높아야 하고, 참여의 공간이 있어야 하고,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게 총체적으로 달성되는 게 민주화인데, 지금은 사회 각 영역이 불투명하고 참여가 제약되어 있고, 그 결과로 균형이 무너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경제가 재벌 위주 아닙니까. 재벌이 흔들리면 나라가 흔들리는 것처럼 아우성을 치는데, 실제 현실이 그런 면도 있어요. 워낙 독점이 돼 있으니까. 이런 곳들이 속속들이 민주화되어야 정권을 놓쳐도 사회가 후진하지 않고 균형을 잡을 수 있지요.

재벌이 민주화된다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기업 이사회에 주주 말고 다른 이해관계자가 들어가야죠. 그런 참여가 의사결정구조를 개방적이고 투명하게 해주거든요. 그 결과로 균형 잡힌 결정이 나오는 것입니다. 개혁 세력이 장기 집권한 나라에서는 이사회에 노조가 참여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제가 교육부 장관을 할 때 사학재단을 보면, 교육법인이라 증여세나 상속세를 면제받아요. 공익 기관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런데 재단 이사회는 공익성이 없어요. 이건 이상하다 해서 개방형 이사제 도입해서 재단 운영을 투명화시켰습니다. 사기업도 마찬가지죠. 기업 활동에 이해관계가 있는 주체는 자본과 노동과 소비 아닙니까. 주주도 노동도 이사로 들어가는 게 맞습니다. 소비 쪽에서도 공익이사 같은 식으로 들어갈 수 있지요. 이러면 기업의 의사결정구조가 투명해집니다. 지금은 투명하지 않으니까 사업 방향이나 투자 결정이 개방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것이죠.

기업은 주주의 것인데 주주의 소유권을 침해한다는 반론이 많겠는데요?

재산권만 중시하니까 그런 사고가 나오는 겁니다. 어느 나라든 이해관계자들이 두루 참여하는 의사결정구조를 만듭니다. 어느 정도로 들어오느냐 차이지.

비슷한 맥락에서, 민주당의 부동산 정책이 집주인의 소유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곤 합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토지공개념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국민적 동의가 있어요. 토지는 확장할 수 없는데 땅은 좁고 인구는 많으니 토지공개념 없이는 유지가 안 되는 나라입니다. 이게 공식화된 게 노태우 정부 때입니다. 그때부터 토지공개념을 잘 발전시켜왔으면 지금 이런 꼴이 안  되죠. 반포에 재개발을 하겠다고 조감도 만들어놓은 걸 보니까 호화판도 이런 호화판이 없습니다. 5층짜리를 35층으로 올리는데 그중에 일부라도 공공주택으로 하자니까, 그냥 안 하겠다 해버리잖아요. 은마아파트도 지금 그런 거잖습니까. 정부가 용적률을 준다는 건 공적 자원을 준다는 뜻이거든요. 하늘은 개인 소유가 아니잖아요. 공적 자원을 줘서 고층으로 올릴 수 있게 해주되, 거기서 나오는 초과이익은 공공의 것이니까 환수하라는 것이지요.

 

ⓒ연합뉴스1987년 6월 연세대 학생들이 호헌 철폐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해찬에게 ‘민주화’란 군사독재를 종식하고 주기적으로 선거를 치르고 대통령을 직접 뽑는 것, 그 이상이다. 그에게 민주화란 의사결정구조가 개방적이고 투명하고 이해관계자 모두의 참여가 보장되는 것이다. 그 결과로 균형이 복원되고 더 나은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규모만 커진 불균형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민주화는 투명성·개방성·참여를 무기로 이 불균형 구조를 치유하는 것이다. 이러면 소유권이라는 개념도 재구성되기에 이르는데, 기업 이사회에 노동과 소비의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것은 주주의 소유권을 신성불가침에서 끌어내려 상대화한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통과시킨 임대차 3법은 세입자의 권리를 강화하여 집주인의 소유권을 상대화한다. 이렇게 개념을 확장하면 경제계, 시민사회, 학계, 언론계, 법조계 등 사회 전 영역이 민주화라는 과제를 안게 된다.

이러면 ‘보수’의 의미도 확장된다. 이해찬에게 보수란 특정한 세력을 뜻하기도 하지만, 민주화된 의사결정구조의 반대말이기도 하다. 효율, 선택과 집중, 상명하복, 권위주의로 작동하는 의사결정구조 그 자체다. 그러므로 정치세력으로서의 보수가 쪼그라든 후에도 보수적 의사결정구조는 사회 제 영역에서 여전히 표준으로 통한다. 정치적 보수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그 표준을 내면화한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서 의사결정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수가 너무 세기 때문에 20년 집권이 필요한 겁니다”라는, 얼핏 현실과 반대로 보이는 진단은 그래서 나왔다.

 

모든 사회 영역에서 민주화가 여전히 핵심 과제라는 뜻입니까?

쉽게 말해서 검찰을 보세요. 민주화된 검찰이 아니잖아요. 검찰총장이 신임 검사 신고식에서 뭐라고 말했냐면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해요. 자세히 보세요. “허울을 쓰고 있는” 현재형이야. “쓴”도 아니고 “쓸”도 아니고, 미래권력도 과거권력도 아닌 현재권력을 말하는 겁니다. 그게 헌법정신이라고 했어요. 검찰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이 이런 데서 나오는 겁니다.

‘조국 대란’의 본질이 뭐라고 보십니까?

조국 대란은 검찰개혁과 그에 대한 검찰의 저항 문제이기 때문에 피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조국 장관 후보자 지명 전과 후에 검찰의 기조가 달라집니다. 지명 전에는 지명을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검찰이 저항을 합니다. 지명 후에는 검찰이 힘을 총동원해서 ‘사건을 만드는’ 쪽으로 갑니다. 그게 본질입니다.

 

ⓒ연합뉴스윤석열 검찰총장이 1월7일 추미애 장관을 만나기 위해 법무부로 들어서고 있다.

지명 직전에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통령 독대를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습니다.

사실입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세 번을 요청했어요. 내가 다 얘기는 안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사안입니다.

당의 판단은 뭐였습니까?

나는 지명해야 한다고 봤어요. 이인영 당시 원내대표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이 지명이 검찰개혁 의지의 바로미터라고 봤습니다.

여론이 나빠진 계기는 딸의 입시 관련 문제였습니다.

표창장 문제는 비례 균형이 안 맞아요. 그렇게까지 검찰을 투입해서 수사한다는 것 자체가 검찰의 의도를 보여줍니다. 의학 논문 저자 문제는, 이공계나 의학 공부 하는 사람들은 전혀 문제가 아니라고 말해요. 결국 본질은 조국이라는 사람을 임명하게 하느냐 주저앉히느냐에 있는 거지 딸 문제는 핵심이 아니에요.

지지자들 중에는 조국 전 장관의 명예회복을 위해 부산시장 후보로 내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건 아니죠. 둘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본인도 생각이 없고.

임기 중 가장 큰 일은 총선이었습니다. 어떻게 준비했습니까?

총선의 핵심도 의사결정구조를 잘 만드는 겁니다. 결국 당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문제죠. 그거 하려고 당 대표를 했다고 봐도 됩니다. 공천규칙을 1년 전에 결정했습니다. 그게 정당에서 제일 중요한 의사결정구조니까. 핵심은 당원과 일반 국민 여론이 대략 5대 5로 반영되도록 하는 겁니다. 규칙으로 딱 박아놓으니까 출마할 사람들이 그에 맞춰서 준비를 하죠. 전 당원 투표에 부쳐서 의결해버렸어요. 끝까지 규칙을 흔들어보려는 사람이 있었지만 제가 막았어요. 그러니 공천 잡음이 없고, 현역 의원 중에 공천 불복이 없었어요. 그리고 전 당원 투표가 가능하도록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그걸로 이번 전당대회까지 치렀지요. 대의원에게 돈 뿌리고 자기 친인척 데려다 대의원으로 넣고 하는 일이 덕분에 사라졌어요.

옛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의사결정구조를 계속 강조한 이유는 뭔가요?

개인 리더십에 의존하면 어쩔 수 없이 연속성이 떨어집니다. 20년 집권 못하죠. 우리가 김대중 대통령 때까지는 개인 리더십이었습니다. 당내 경선을 처음 제대로 해본 게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후보가 된 2002년 경선입니다. 그렇지만 현대화가 덜 된 부분이 있어서 종이 당원, 가짜 당원 이런 문제가 계속 있었지요. 이제는 플랫폼을 만들어서 당원들이 의사결정을 하게 만드는 데까지 온 것입니다. 유럽의 해적당처럼 작은 정당은 있어도, 한 나라의 집권당이 전면적으로 플랫폼 정당으로 전환한 경우는 처음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제 이 플랫폼에서 당원 명부도 제대로 관리되고, 정책 토론도 하도록 해서 실질적인 정당 활동이 가능하도록 더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차기 지도부가 해주리라 기대합니다.

총선 전략은 뭐였습니까?

선거 쟁점이 5개라고 봤어요. 코로나19, ‘미투’, 부동산, 경기 부진, 그리고 미세먼지. 봄이니까. 미세먼지는 석탄발전소 가동을 줄일 각오까지 하고 있었는데 중국에서 코로나19로 공장이 멈추면서 미세먼지 문제가 사라졌습니다. 부동산과 경기 문제는 최대한 쟁점을 안 만드는 쪽으로 관리하고, ‘미투’는 공천 단계에서 선제적으로 다 싹을 날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이건 약인지 독인지 우리 하기에 달린 문제였으니까 방역에 최선을 다한 것이지요.

중국발 입국을 봉쇄해야 한다는 주장이 당시에 많았는데요?

우리는 봉쇄로 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수출 주도 경제라 테이블에 올릴 수 없는 카드예요.

180석은 예상했습니까?

2월까지 1당은 유지할 수 있겠다고 봤습니다. 그때는 우호적인 정당과 연립해서 과반수를 만들 목표였지요. 3월쯤 되니까 단독으로 과반수를 할 수 있겠다고 봤습니다. 막판에는 160석이 가능해 보였고, 우호적인 야당과 연립해서 170석까지 간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비례연합정당을 만들면 더 나오고요.

 

ⓒ시사IN 조남진4월15일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선거상황실에서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과 이해찬 대표(앞줄 왼쪽 세 번째, 네 번째) 등이 총선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비례위성정당에 대한 지도부 판단은?

명분상으론 위성정당 만든다는 게 말이 안 되고, 그건 소수당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대형마트 들어서라고 만든 제도가 아니니까. 그런데 저쪽 대형마트가 먼저 들어서서 소수당도 별 보호가 안 되는 상황이 되니까 전략적 판단을 안 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만들기로 하되, 우리는 7석 이상은 안 가져온다고. 전 당원 투표에서 통과가 됐지요. 그 문제하고, 재난지원금을 하위 50%에 주느냐, 70%에 주느냐, 다 주느냐의 문제. 이 둘이 총선 막판에 큰 결정이었습니다.

2차 재난지원금 논의 과정에서, 1차 재난지원금은 “선거를 고려한 것”이라는 여당 의원 발언도 나와서 논란이 됐습니다.

용어가 잘못됐어요. 둘은 개념과 목적이 다릅니다. 그때 지급한 재난지원금은 경기 활성화를 위한 거였습니다. 코로나19는 진정세였고 소비를 진작시킬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경기부양 목적이니까 긴급성이 중요했고 분류할 시간이 없으니 100% 지급이 맞다고 당은 본 겁니다. 이번 건 목적이 소비 진작이 아니라 재난구조입니다. 방역전이 벌써 8개월째라 한계에 다다른 영세 소상공인이 많이 생겼어요. 이번엔 이분들 구조가 목적입니다. 그래서 1차, 2차 이런 식으로 부르면 안 돼요. 그 용어 구분을 안 해주는 바람에 잘못된 논란이 일었다고 봅니다. 몇 번 이런 이야기를 전달했는데 전당대회 과정이라 그랬는지 제대로 전해지질 않았어요.  

2차 유행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을 두고도 논란이 있었습니다.

3단계 논의가 있었습니다. 3단계는 준전시나 마찬가지예요. 다 통제하고, 사실상 셧다운에 가깝습니다. 실업, 폐업, 일감 증발… 긴급재정명령까지 꺼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필요하다면 가야겠지만 우리가 판단하기에는 너무 이르니 차기 지도부가 판단하는 게 맞겠다고 봤습니다. 8·15 집회 참여한 사람들의 2주 잠복기까지 고려하면 8월 말까지 봐야 판단할 수 있다고 보고 보류를 시켰어요.

민주화 이후 3연속 집권도 없습니다. 20년 집권이면 4연속인데, 어떻게 가능할까요?

비법이야 있겠습니까.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당의 철학에 맞게 정책을 꾸준히 만들어 집행하고, 당을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인재를 영입만 하지 말고 당에서 길러내는 육성 구조를 갖춰야겠지요. 2022년에 대선과 지방선거가 있는데, 일단은 거길 통과하느냐 못하느냐 싸움입니다. 그걸 통과하면 우리는 더 강해지고 야당은 더 약해질 것 아닙니까(2022년 전국선거 두 번을 더 지면 야당은 전국선거 6연패로 몰린다). 이번에 총선을 치르면서 보니까 상대가 너무 약해요. 32년 동안 선거를 스무 번 넘게 치렀는데 이번처럼 편한 적이 없었습니다. 전략도 없고 자세도 없고, 공천을 몇 번씩 뒤집어서 ‘호떡공천’이라고도 불리고.

차기 주자 중 하나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크게 갈립니다.

그분이 입지전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성격이 굉장히 강하죠. 그런 건 뭐 정치권에서는 있을 수 있는 논란이에요. 그런 게 없으면 되나. 대법원에서 무죄 받고 나서 인터뷰한 걸 보면, 본인도 일련의 과정 속에서 생각을 많이 했을 거 아닙니까. 본인 생각이 깊어진 거 같아요. 과거에 여러 논란을 만들 때와 비교해보면 그래요.

‘양강’이라 볼 수 있는 이낙연 당 대표는 어떻습니까?

경험이 아주 풍부한 분이지요. 기자도 해봤고 국회의원도 해봤고 도지사로 지방행정을 오래 했고. 총리를 한 2년 하면 많은 걸 알게 돼요(웃음). 그런 게 묻어나오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살아 있는 카드’입니까?

본인이 안 하겠다는 거 아녜요? 받아들여야지. 책 쓰고 이런 쪽을 원래 더 좋아하는 사람이죠.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물려줄 때, 차기를 준비시킬 의도라는 해석도 많았습니다.

그런 거 아닙니다. 나는 당 대표가 되었으니 빨리 물려줄 사람을 찾아야 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잘 알면서 재단을 이끌 역량이 되는 사람을 찾다가, 차기 준비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1순위가 유시민도 아니었어요. 그분이 고사를 해서, 다음으로 연락을 했죠, 저녁이나 먹자고. 그랬더니 안 나오려고 그래. 왜 먹자는지 뻔히 아니까(웃음). 결국 자리가 돼서 만났더니 저한테 그래요. “형님,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오늘은 술이나 하시지요.” 나왔다는 건 하겠다고 자기가 정리를 하고 온 거지.

 

ⓒ연합뉴스2019년 9월4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서 노무현시민센터 기공식이 열렸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차기 주자라는 평가도 있고 너무 젊다는 평가도 있는데요?

일단 재판 결과를 봐야겠죠. 만약 살아 돌아온다면, 지켜봐야 할 주자는 맞습니다. 동안이라 그렇지 대선 때 55세면 어리지도 않습니다. 이재명 지사하고 별 차이도 안 나요.

인물을 쭉 여쭤본 이유는, 20년 집권을 위해 어떤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궁금해서였습니다.

카리스마적인 리더가 먹히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이제. 당이든 정부든 민주적으로 운영할 줄 아는 리더가 갈수록 중요해질 거라고 봅니다.

퇴임 기자간담회 때 “새로운 인물이 부상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는데, 무슨 뜻입니까?

정치가 얼마나 다이내믹합니까. 노무현이 그렇게 갑자기 떠오를 거라고 누가 생각했어요. 아직 대선까지 1년6개월 남았으니 시간이 많죠.

민주당이 배출한 대통령 세 명과 모두 근접해 일했습니다. 세 리더십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일단 공통점은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합니다.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 보니까, 생각하고 사람 만나고 일하는 양이 나보다 두 배는 됩니다. 그때 그분이 70대이고 제가 40대 중반일 때인데도 그래요. 세 분 다 마찬가지입니다. 차이라고 하면, 김대중 대통령은 진짜 인동초입니다. 참고 참고 또 참아요. 하도 억압을 받아서 그런가 싶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격정적이고 직선적이죠. 문재인 대통령은 또 굉장히 인내심이 강하고 균형을 잡으려 노력합니다. 대통령 되고 나서 더 그러는 것 같아요. 싫은 소리를 거의 안 해요. 요즘 의사 진료 거부 때 하는 얘기가 그분 성정으로 제일 센 축에 들어갑니다. 도덕적으로 수용이 안 되는 거겠죠. 코로나19 시기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응급실을 비워버린 게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죠. 그건 본인들을 위해서라도 하면 안 되는 겁니다.

20년 집권을 위협할 요소를 짚어보겠습니다. 청년층, 특히 20대 남성이 지지층에서 이탈하는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일부가 그렇지요. 무슨 큰 흐름이라는 건 과장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서 거기가 약한 것이지, 저쪽(야당)은 더 심하지 않습니까. 오늘날 청년의 삶의 조건이 4050 세대에 비해서 나빠요. 4050은 어디에 취직하느냐가 문제지 취직 자체는 걱정을 안 했고, 집도 대개 10년 일하면 장만했고 한데, 지금은 둘 다 어림없죠. 취직을 해도 종신고용도 아니고. 청년 세대가 4050의 청년 시절보다 더 불안감이 커요.

성별 차이는 왜 날까요?

옛날에는 여성이 경제활동을 많이 안 했지요. 지금은 안 하는 여성이 거의 없고. 남자들이 차지했던 자리가 여성들로 넘어가지 않겠습니까. 무슨 특별한 수를 내려고 하면 안 되고 정공법으로, 결국 일자리와 주거 둘을 풀어내야 합니다. 우리와 같은 소득수준에서 우리만큼 공공주택 비중이 낮은 나라가 없습니다. 공공임대주택 살면 하층민처럼 보는 이런 상태로는 곤란하지요. ‘휴거’(주택공사 브랜드인 ‘휴먼시아’와 ‘거지’의 합성어)라고 하잖아요. 이런 상태로는 안 되죠.

젠더 문제로 광역단체장 셋을 잃었습니다.

시대가 자꾸 변해가니까 우리도 변해야 하는데 그걸 못한 거 아니겠어요. 우리보다 윗세대 정치인들이 어떻게 살았든, 이제 가치관이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사실 우리는 깜짝깜짝 놀라죠. 젊은 사람들의 의식이 저렇게 발전해가는구나 놀라죠.  

고 박원순 시장 사건은 위기라고 느꼈습니까?

위기라기보다는, 당일에는 사실 자체를 파악을 못했으니까. 일단 사실을 파악하자고 했는데, 정작 본인이 그리 되어버렸으니 사실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죠. 한 가지 우리가 반성하는 점은 광역단체장이 세 번이나 연이어 이리 되다 보니까, 뭐랄까 당의 기강이 해이해진 거 아니냐는 반성은 했지요.

서울과 부산 보궐선거 후보는 내야 합니까?

정당이 선거에 후보를 안 낸다는 건 무책임한 겁니다. 그건 논란거리가 아닙니다. 어떤 후보를 내느냐,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후보를 내느냐가 중요하지, 내느니 마느니 논란은 정당의 역할을 포기하는 겁니다.

박원순 시장을 조문하던 날 한 기자와 설전을 벌였는데?

장례식장이잖습니까. 예의가 아니라고 했어요. ‘나쁜 자식’이라고 한 건 그 기자한테 한 말이 아니고 돌아 나오면서 혼잣말을 한 건데, 또 어떤 기자는 ‘호로자식’이라고 했다고 쓰고, 언론이 안 좋은 태도를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임기 초만큼 전망이 밝지 않은데요?

하나 강조하면, 한반도 평화체제는 필수입니다. 가고 말고 선택할 일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죠. 하노이(2019년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일이 꼬인 게 아주 아쉽지요.

20년 집권을 책임져야 할 후배 정치가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습니까? 눈에 띄는 재목은요?

이름을 거론할 건 아니지만 내가 볼 땐 많이 있어요. 지금까지 결과만 갖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뒤늦게 발전하는 사람이 있고 먼저 가다가 발전 못하는 사람도 있고 하지 않겠어요? 제일 중요하게 보는 건 ‘퍼블릭 마인드’입니다. 생각, 정책, 생활 모든 게 총체적으로 공적인 사고방식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모든 걸 구조적으로 볼 줄 알고, 통시적으로도 공시적으로도 다 보고, 균형을 잡을 줄 알고. 생각도 중요하지만 자세도 중요해요. 제가 공무원 교육을 가면 늘 하는 이야기가 ‘삼실’입니다. 진실·성실·절실. 이 자세가 퍼블릭 마인드의 기본입니다.

현실정치를 은퇴하기에 이른 나이는 아닙니까?

은퇴 선언 벌써 했잖아요. 얼마나 오래 했는데요. 32년을 했어요. 회고록을 쓰려고 합니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해서도 일을 하려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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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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