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제공8월17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회원들이 국회 앞에서 연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평등버스 출발 기자회견.

차별금지법은 이름 그대로 금지되는 차별이 무엇인지 규정한 법이다. 고용·교육 등의 영역(차별금지영역)에서 성별 등을 이유(차별금지사유)로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가 바로 이 법이 금지하는 차별이다. 그런데 형식상 여기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해서 무조건 다 차별인 것은 아니다.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우대나 구별하는 행위가 허용될 수 있다. 지난번에도 언급했듯이 차별 개념은 일종의 ‘경고등’이다. 차별금지영역에서 차별금지사유로 사람을 구분하려고 하면 일단 경고가 울리는 것이다. “꼭 그렇게 구분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재고해봐라.” 경고등이 울렸으니 일단 멈추고 검토해야 한다.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되면 구분을 중지해야 한다. 이때 분리·구분의 정당성은 그렇게 하고자 하는 사람이 스스로 검토하고 입증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이렇게 시민들에게 고민거리를 하나 던져주는 법이다.

실제로 차별금지법안의 차별 개념에는 “합리적 이유 없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거꾸로 얘기하면 합리적 이유가 있으면 차별이 아니라는 뜻이다. 여기에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 예외적인 경우 두 가지를 별도의 조문으로 규정해놓았다. 하나는 ‘진정직업자격’이고 다른 하나는 ‘적극적 평등화 조치’다. 진정직업자격에 대해,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는 “특정 직무나 사업 수행의 성질상 그 핵심적인 부분을 특정 집단의 모든 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행할 수 없고, 그러한 요건을 적용하지 않으면 사업의 본질적인 기능이 위태롭게 된다는 점이 인정되는 경우. 다만, 과도한 부담 없이 수용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다소 복잡하게 적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평등법 예시 법안에는 “특정 직무나 사업 수행의 성질상 불가피한 경우”라고 간명하게 규정되어 있다. 예컨대, 사람을 채용할 때 특정한 성별만이 수행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성별에 한정해서 뽑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영업을 할 때 특정한 집단에 속하는 손님의 출입을 제한해야만 그 음식점의 영업이 가능하다면 손님을 가려 받아도 괜찮다는 뜻이다. 그런데 ‘불가피하다’는 이유가 자의적으로 확장 해석되어 남용되면 차별금지의 원칙이 무력화될 수 있다. 그래서 평등법안에는 “성질상 불가피한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차별금지법안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본질적인 기능이 위태롭게 된다는 점이 인정되는 경우”라고 규정해놓았다. 예외가 적용되는 문턱을 최대한 높여서 남용을 막으려는 것이다.

몇 가지 사례를 생각해보자. 타워크레인 기사를 모집할 때 여성을 배제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을까? 당연히 차별이다. 여성에겐 부적합하다든가 남성다운 일이라는 따위의 이유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다. 여성 기사가 타워크레인 사업의 ‘본질적인 기능’을 위태롭게 할 리도 없다. 경찰 채용 시 남녀 분리 모집은 어떨까? 경찰의 업무 특성상 일정한 육체적 능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일정한 체력검사를 실시하여 적격자가 아닌 사람을 탈락시키는 것은 정당한 분리·구분에 해당한다. 그런데 여기서 남녀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남성도 일정한 체력이 안 되면 탈락시키고, 여성이 일정한 체력이 되면 합격시키면 될 뿐 애초에 성별을 따질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경찰은 결국 남녀 분리 모집 폐지라는 결단을 내렸다.

ⓒ연합뉴스7월14일 인천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2020 인천시 소방공무원 채용 체력시험’이 열리고 있다.

‘나이’가 아닌 직무수행 ‘자질’을 기준으로

연령 차별 문제는 좀 더 복잡하다. 예전에는 공무원 시험 응시연령 제한이 있었다. 5급은 20~32세, 6·7급은 20~35세, 8·9급은 18~28세만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불가피한 연령 제한일까?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임용했을 때 직업공무원 양성에 심각한 어려움이 생기고, 직업공무원 제도가 와해된다면 연령 상한선을 두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나이를 제한할 불가피한 사유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2009년부터 공무원 연령 상한선은 없어졌다. 여전히 40~50대 신입 공무원이 업무 적응력이 떨어진다거나 조직 내 상하관계가 혼선을 빚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용된 지 얼마 안 되어 퇴직하는 사람이 늘면 공무원 선발·교육에 드는 비용이 커진다는 문제도 있다. 하지만 이건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고 해결해야 할 문제일 뿐, 일정한 연령대의 사람을 무조건 배제해야 하는 정당한 이유라고 보긴 어렵다.

소방관이나 경찰관의 경우 30세 이하만 응시할 수 있었다. 인권위가 응시연령 제한이 차별이라며 개선을 권고했지만, 소방방재청과 경찰청은 완강하게 버텼다. 40~50대 신입 경찰·소방관이 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급격히 체력이 떨어진다면, 경찰이나 소방관 고유의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응시연령 제한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공무원 직군보다는 연령 제한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좀 더 설득력이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일본이나 프랑스에는 연령 상한이 있지만, 미국은 없다. 쉽지 않은 문제라는 얘기다. 결국 2012년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경찰청과 소방청은 응시연령 제한을 40세로 10년 상향 조정했다. 40세 상한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일정한 체력 요건이 요구되는 이상 어차피 40세 이상이 합격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을까? 50세, 60세에도 일정한 체력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률적으로 응시연령을 제한하는 것 자체가 차별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이에 따른 일률적인 제한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경찰·소방관 직무수행에 적합한 자질이나 체력 기준을 정교하게 마련하여 엄격히 집행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한 놀이공원에서 시각장애인의 롤러코스터 탑승을 거부했다. 위급상황 시 탈출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언뜻 정당해 보이지만, 정말 그러한지 따져봐야 한다. 이 사안은 법원으로 갔다. 재판부가 직접 현장으로 가 롤러코스터를 타보고 시각장애인이 탈출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지 꼼꼼히 살폈지만 특별한 위험은 발견되지 않았다. 차별금지법은 이렇게 막연한 생각으로 누적되어온 수많은 차별적 관행이 정말 불가피한 것인지 다시 한번 따져보게 하는 의미가 있다.

차별금지법의 또 다른 예외규정은 흔히 ‘적극적 평등화 조치(affirmative action)’라고 불리는 조항이다. 평등법안과 차별금지법안에는 “현존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하여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행위”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 목적이 ‘차별 해소’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장애인 의무고용제, 공기업 지역인재 채용제도, 시각장애인 안마사 자격 부여, 여성할당제 같은 조치가 대표적이다. 차별을 없애고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차별금지정책의 기본이지만, 거꾸로 차별받는 집단을 우대하는 식으로 ‘적극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어디까지나 형식적 기회 균등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를 풀기 위한 임시 조치여야 한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은 이것이 ‘잠정적’ 조치라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정말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면  

종종 적극적 평등화 조치에 대해 ‘역차별’이라는 혐의를 씌우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동성애자의 입학이나 채용을 기관이 거부할 수 없게 돼 오히려 역차별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를 투명하게 비춰보면 결국 “동성애자를 차별할 자유를 보장해달라”는 것에 불과하다. 현존하는 차별의 해소를 위한 조치는 당연히 역차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통시민 중 차별할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물론 어떤 집단에 대한 잠정적 우대가 불필요한 상황이 되었는데도 계속 우대 조치를 취하고 있다면 그때 가서 역차별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그동안 익숙했던 관행들을 하나하나 되돌아보게 만들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만드는 세상이 편하고 쉬운 것이라며 속이고 싶진 않다. 인사행정의 효율성이나 단기적인 이익 창출의 관점에서만 생각하면 한 명 한 명의 개별적인 특성을 따지기보다는 성별로, 나이로, 장애 여부로 사람을 일률적으로 분리·배제·구분하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일지 모른다. 잠정적 우대 조치를 어떻게 할지 궁리하기보다는 형식적 기회균등만 제공하고 손을 놓아버리는 쪽이 속 편한 일일 수도 있다.

몇 년 전 문제가 되었던 노키즈존만 해도 그렇다. 식당에서 조용히 식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로 인해 이런저런 번잡한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식당 주인에게 가장 쉬운 선택지는 특정 연령대의 아이 출입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사실, 아이들과 함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면서도 안전하고 조용한 장소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아이의 보호자가 신경을 쓰고 협조해야 하며, 식당 주인도 필요한 설비나 환경을 갖춰야 하고, 다른 손님들도 어느 정도 양해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어렵고 힘들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차별금지법은 조금 힘들고 신경 쓰이고 비용이 들더라도 차별하지 않는 길을 택해야 한다고 요청한다. 우리 사회가 손쉽게 차별과 배제와 분리의 길을 택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각자 존엄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서로의 견해와 처지를 배려해가며 살아가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각자가 더 행복하고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해질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배제보다는 포용을, 차별보다는 연대의 길을 택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그것이 차별금지법의 비용과 부담이라면, 우리 사회는 기꺼이 그 비용을 치르고 마땅히 그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

기자명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