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수어통역센터에서 일하는 이목화씨(오른쪽)가 비대면 시대에 농인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농인 이목화씨(45)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커피를 사 마시는 횟수가 줄었다.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면서 점원의 입모양을 읽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 ‘글로 써달라’고 점원에게 필담(글로 써서 묻고 답함)을 요청하기도 한다. 어떤 점원은 친절하게 응대해주지만, 당황하거나 귀찮다며 필담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커피 한잔 구입하기가 이처럼 어려워졌다. 이씨는 “먹고 싶어도 대체로 그냥 포기한다”라고 말했다. 수어(手語:수화 언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는 농인인 이씨에게 그 불편함은, 코로나19로 바뀐 일상 중 하나일 뿐이다(청각장애인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문화적인 집단’을 농인이라고 한다. 의사소통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청각장애인과 농인을 혼용해 쓰기도 한다).

마스크가 차단한 건 공기만이 아니었다. 호흡곤란이나 두통 증상엔 이럭저럭 적응하거나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 이상이 가려지면서, 농인들은 다른 농인과의 의사소통에서도 차단되었다. “저는 세상을 눈으로 보는 사람이니까요.” 이목화씨가 말했다. 마스크를 착용한 이후부터는 심지어 ‘수어 통역사’와의 대화도 “100 중 30 정도”만 이뤄지는 것 같다는 것이다. ‘수어’는 손으로 표현하는 ‘시각언어’다. 그러나 손동작만으론 부족하다. 입모양과 몸의 방향은 물론이고 눈썹 움직임 등 미세한 안면 근육과 주름까지 수어라는 시각언어를 구성한다. 청인(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억양’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는 것처럼 농인들은 ‘표정’을 통해 희로애락을 표현한다.

기자와 이씨의 인터뷰를 통역한 ‘수어 통역사’ 윤남씨(46)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여기에 형용사, 부사, 의문사, 감탄사 등이 다 들어가 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정부 브리핑에서 수어 통역사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목화씨는 서울의 한 수어통역센터에서 농인들을 대상으로 상담 일을 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센터가 거의 문을 열지 못하면서 비대면 영상 상담이 급격히 늘었다. 농인 대다수가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집 밖을 나서지 못하는 실정이다. “병에 걸려 아플까 봐서가 아니라 그 이후에 벌어질 상황 때문에요. 병원이나 생활치료센터에 격리되면 수어 통역을 해줄 사람이 있을지,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면 구청 직원과 당장 어떻게 소통할지 막막하거든요.”

올 3월 이후로는 ‘열이 나는데 보건소에 연락이 안 된다’는 민원이 가장 많았다. 1339 콜센터에서 제공하는 문자 상담과 120 다산콜센터 ‘보이는 ARS’ 서비스가 있지만 먹통이거나 평소보다 2~3배 시간이 걸렸다. 글을 읽지 못하는 고령층 농인에게는 재난 정보가 제대로 가닿지 않은 것이다. 이목화씨가 매일 영상전화를 50여 건씩 받고 있는 이유였다. “문자언어는 하나하나 해독하느라 시간이 필요하지만, 수어는 상황을 한눈에 그리는 언어거든요.” 오후 2시 질병관리본부의 정례 브리핑이 끝나면, 거리두기 2.5단계가 무엇인지, 태풍이 언제 상륙하는지 등에 대한 ‘보충 설명’을 해달라는 콜이 이씨가 일하는 수어통역센터로 빗발친다.

ⓒ시사IN 신선영대학에서 수어통역학을 전공하는 최은수씨는 자막이 달린 녹화 강의로 수업을 듣는다.

‘싱크홀’처럼 커지는 청각장애인의 재난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 정부의 방역 조치가 어떤 시민에겐 생채기 정도일 수 있지만 다른 시민에겐 ‘싱크홀’처럼 커다란 위기를 만든다. 지난 학기 비대면 원격으로 진행된 초·중·고·대학교 수업 이후로도 각자가 치러야 하는 비용은 달랐다. 그중 장애 학생이 겪는 어려움은 잘 드러나지도, 해결되지도 않았다.

2학기에도 농학생들의 학습권은 여전히 가려져 있다. 9월9일 만난 최은수씨(가명·20)는 온라인 강의가 올라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막이 달린 강의는 보통 2~3일 후에 올라왔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의 최씨는 구화(口話:입술 모양으로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고, 자기도 소리내어 말함)로 남들과 소통해왔다. 수어통역학과로 진학한 이후엔 “‘농 정체성’을 키우기 위해” 수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양한 몸짓과 표정, 그리고 피드백이 필요한 수어를 녹화 강의와 자막만으로 익히기란 쉽지 않았다. “교수님에게 틀린 수어가 있는지 피드백을 받고 싶은데 아쉽다”라고 최씨는 말했다.

그나마 농학생이 다수를 차지하는 학과나 대학은 수어 통역, 자막, 속기 등 온라인 강의를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대학에서는, 청각장애 학생이 수업권을 보장받으려면 장애학생지원센터, 학과 사무실, 교수 연구실 등을 전전해야 한다. 김은하씨(가명·24)는 대학에서 중등특수교육학을 전공한 후 임용고시를 준비 중이다. 수어를 배우지 않은 김씨는 구화로 의사소통하기 때문에 수어 통역이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학교에서 속기 지원을 해주지 않아 따로 속기사를 알아봤더니 비용이 꽤 들더라고요.” 결국 김씨는 가족에게 한 학기 동안 속기를 부탁해야 했다. “이러한 문제가 단순히 코로나19로 인해 생긴 문제일까요?” 김씨는 묻는다.

특히 ‘줌(Zoom)’ 화상회의 플랫폼을 통해 진행된 실시간 원격 수업에서 문제가 가장 많이 나왔다. 인공지능 음성자막 시스템은 교수의 사투리나 외국어를 인식하지 못해 말도 안 되는 글자를 영상에 표시했다. 인공지능은 원격 수업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 ‘교수의 것’인지 ‘학생의 것’인지 구별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더욱이 원격 수업을 돕는 수어 통역사가 농학생의 ‘질문 신호’를 지나쳐버릴 때도 많다. 수화언어통번역학과 석사생인 호예원씨(25)는 “저희도 대학교에 등록금 환불을 요구하고 싶은 심정이다”라고 호소했다. 강의 영상과 속기 화면을 동시에 켜놓고 눈을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수업 집중도가 크게 떨어졌다. 잠시 눈을 깜빡하면 흐름을 놓치기 때문에 화면을 계속 바라봐야 한다. 실제로 많은 농학생들이 비대면 학기 이후 눈 피로를 많이 호소했다. 수어통역센터에는 비대면 공부를 포기하고 싶다는 상담도 늘었다.

2018년 국립국어원이 청각장애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 수어 사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1순위로 사용하는 의사소통 방법’이 수어라고 응답한 비율은 69.3%로 매우 높았다. 구화(15.4%), 몸짓(10.2%), 필담(4.4%) 순서였다.

그러나 관공서와 금융기관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 1순위는 필담(각각 42.3%, 45.7%)으로 나타났다. 수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그만큼 척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농인들 대부분이 병원, 은행, 공공기관 등에서 수어 통역이 지원되지 않아 불편을 겪는다. 더욱이 청각장애인들이 수어만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청력 상태와 상황에 따라 수어, 필담, 구화를 섞어서 타인과 소통한다. 보청기를 착용해도 음성언어를 변별할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하게 들리진 않는다. 이목화씨는 “자동차 클랙슨 소리와 쾅 하는 소리 정도만 들려요. 보청기는 신변보호를 위해 끼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개인마다 다양한 의사소통 방식을 사용하는 농인들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비대면 시대’는 정보권을 각자도생의 임무로 남겼다.

ⓒ연합뉴스지난 2월18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청각·시각장애인의 재난 및 감염병 안전대책 촉구 기자회견’.

입모양 보이는 ‘립뷰’ 마스크가 대안인데

동두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특수학급을 맡고 있는 특수교사 전영선씨(30)는 농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어 듣기와 말하기를 가르친다. 비대면 원격 강의 이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음(말소리를 만들어내는) 훈련이라는 게 혀를 어디다가 대는지 직접 가르쳐주어야 하거든요.” 대면 수업을 할 때도 비닐장갑을 낀 채 아이스크림 막대를 들고 직접 혀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1학기 때 잡았던 아이들의 발음이 원격 수업 이후엔 뭉개지고 있다. 더욱이 보청기를 사용하는 학생들이 전자음을 잘 알아듣기는 힘들다.

입모양이 보이는 립뷰(lip view) 마스크가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일반 마스크를 잘라 필름을 붙이는 등 수작업이 필요한데, 현재는 청각장애인 지원 단체나 사회적 기업 등에서만 제작하고 있다. 특수교사 전씨는 투명 마스크를 쓸 때 학생들의 반응이 훨씬 빨라지는 것을 체감한다. 하지만 특수학급 수업 외에는 교내에서 투명 마스크를 쓰는 사람을 볼 수 없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만나는 다른 담임선생님, 돌봄 선생님, 급식실 선생님들도 있잖아요. 그분들이 ‘누구야 안녕’ 해도 자기한테 하는 말인 줄 몰라요.” 결국 입모양이 보이는 마스크가 필요한 곳은 농인 당사자, 농학교, 수어통역센터가 아니라 카페와 은행, 병원과 같은 일반 시설인 셈이다.

그러나 마스크를 구하는 일도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당사자들에게 내맡겨져 있다. 이목화씨도 2개월 전에 주문한 립뷰 마스크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2월4일 코로나19 브리핑 현장에 수어 통역사가 공식 배치된 이후 이씨는 뉴스를 보는 농인이 주변에 많아진 것을 체감했다고 한다. 질문이 전보다 다양해지고 많아졌다. 여전히 비대면 시대의 정보 격차를 줄이기 위한 과제들이 남았다. ‘들리는  언어’만으로는 모든 시민과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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