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입에 ‘소수인종 우대정책(어퍼머티브 액션, Affirmative Action)’이라는 제도가 있다. 입학생 인종을 안배하는 제도다. 평균 성적이 높은 아시아계 학생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수혜 대상이 아니다. 아프리카계(흑인)·히스패닉이 주로 혜택을 받는다. 시초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1961년 행정명령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62년간 미국 연방 대법원은 세 차례 이 법을 심사했는데, 세 번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아시아계 학생들이 주축인 단체 ‘공정한 입시를 위한 학생들(SFFA)’이 하버드 대학과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을 상대로 또 한번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6월29일 판결에서 연방 대법원은 처음으로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미국 연방 대법원의 현직 재판관들. 보수 성향 우위로 평가된다. ⓒAP Photo
미국 연방 대법원의 현직 재판관들. 보수 성향 우위로 평가된다. ⓒAP Photo

연방 대법관은 9명인데 현재 보수 성향이 우세다. 3명은 민주당 정권 때, 6명은 공화당 정권 때 임명됐다. 그중 3명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했다. 대법관들의 판결이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의 정치 성향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어퍼머티브 액션 사건에서는 그런 모양새가 됐고, 6대 3으로 위헌 판결이 났다. 판결 당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연방 대법원은 오늘, 판례와 중대한 진전을 거스르는 결정을 내렸다”라고 말했다.

개요만 살피면 ‘돌출 판결’이라고 여길 수 있다. 반세기 넘게 미국 사회의 공감대와 헌법의 인정을 얻었던 어퍼머티브 액션이, 우연히도 보수적 대법관이 많아진 바람에 갑자기 뒤집혔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전개된 법정 안팎 논쟁의 속살을 살피면 이번 사건은 갑작스럽지도 않고, 우연한 해프닝은 더욱 아니다. 연방 대법원이 그간 가까스로 합의해 유지되어온 법리는 사실 미봉책에 가까웠다. 미국 사회는 62년간 그 흔들리는 합의 기반 위에서 논쟁해왔다.

이전 세 차례 재판에서 연방 대법원은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매번 대법관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나뉘었다. 1978년 사건에서는 4(합헌) 대 1(절충) 대 4(위헌)로 팽팽히 맞섰다. 2003년 사건에서도 5(합헌) 대 4(위헌)로 갈렸다. 가장 최근인 2016년에도 마찬가지였다. 4(합헌) 대 3(위헌)으로, 가까스로 합헌 의견이 앞섰다. 이번 판결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법관 3명을 임명해 벌어진 일”이라는 설명은 그래서 절반만 사실이다. 위헌 의견이 3분의 2에 달한 데에는 분명 대법관 인적 구성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언제 뒤집혀도 이상하지 않을 간발의 격차로 이 판례는 이어져왔다.

무엇이 ‘전선’이었는지 세심히 살펴야 한다.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공정’이 아니다. 예컨대 ‘기회의 평등’과 ‘능력에 따른 선발’의 충돌은, 적어도 이전의 판결들과 이번 판결을 가르는 결정적 논점이 아니었다. 어퍼머티브 액션이 허용된다고 판결한 이전의 재판부들도, 그 정당성이 ‘노예제나 인종차별에서 비롯된 사회 불평등 개선 효과’에서 나온다고 인정한 적은 없다. 일류 대학에서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정책이 결과적으로 사회 불평등을 개선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조치를 옹호한 연방 대법원의 논리에서 공정은 핵심이 아니었다.

세 차례 재판 모두 간발의 차로 ‘합헌’

대학이 주장하고 앞선 재판부들이 인정한 어퍼머티브 액션의 주된 목적은 ‘다양성’이다. 이번 사건에서 하버드 대학과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은, 대입에서 인종을 안배하면 “미래의 리더를 양성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며, 탄탄한 발상을 촉진”하는 등의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연방 대법원 다수의견은 대학의 주장을 두고 “칭찬할 만한 목표이지만, 그 측정 방법과 효과가 모호하다”라고 평했다. 인종차별이나 사회 불평등에 대한 관점이 아니라 이 대목 때문에 판례가 바뀌었다.

6월29일 미국 연방 대법원 앞에 선 ‘어퍼머티브 액션’ 찬성·반대 시위자들. ⓒAP Photo
6월29일 미국 연방 대법원 앞에 선 ‘어퍼머티브 액션’ 찬성·반대 시위자들. ⓒAP Photo

1978년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한 최초의 재판은 이후 45년간 중요한 이정표였다. 6월29일 재판부는 판결문에 “파월 대법관 홀로 제시한 의견은, 인종을 고려한 입학 제도에 대한 헌법적 분석의 시금석”이라고 적었다. 1978년 사건은 백인 남성 앨런 배키가 제기해 ‘배키 사건’이라고 불린다. 그가 지원해 낙방한 UC 데이비스 의학전문대학원은 입학 정원 100자리 중 16개를 사회적 약자에게 배정하고 있었다. 사실상 아프리카계 등 소수인종의 자리였다. ‘파월 대법관 홀로 제시한 의견’이라는 표현은 이 재판 다수의견이 도출된 과정을 뜻한다. 미국 연방 대법원 재판은 한국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과정이 다르다. 나머지 대법관들이 동수(4대 4)로 맞서면 절충적 입장을 낸 대법관이 캐스팅보트가 된다. 해당 대법관이 절충안을 토대로 판결문을 작성하면 나머지 8명이 그 동참 여부를 정하는 것이다. 4대 1대 4로 나뉜 구도에서 절충적 입장을 제시한 게 파월 대법관의 의견이었고 그게 재판부 최종 판결이 되었다.

파월 대법관이 작성하고 45년간 틀이 유지된 1978년 판결의 요지는 이렇다. 첫째, ‘소수인종 할당제’는 위헌이다. 수정헌법 제14조(평등권 보호 조항)는 인종에 기반한 차별 모두를 부정한다. 소수인종에게 혜택을 주는 것 역시 이 차별에 속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등에 대한 미국의) 역사적 과오에서 비롯된 사회 불평등의 개선이라는 명분은 비정형적이고 추상적 손해이며 차별의 정당한 근거가 아니다.” 둘째, 그럼에도 대학은 입학 과정에서 인종을 고려할 수 있다. 모든 교육기관은 학문의 자유를 누리며 여기에는 ‘누구를 받아들일지’도 포함된다. 교육적 목적을 위해 다양한 구성원을 받는 것은 ‘강력한 공익(compelling state interest)’으로 인정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할당제가 아닌 인종을 긍정적 요소로 평가하는 형태의 차별은 허용된다.

미국 정부 정책으로서 어퍼머티브 액션은 인종 간 불공정을 시정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소수인종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 정부 사업 용역 혜택을 주었다. 1965년 존슨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수년간 쇠사슬에 묶인 사람을 풀어주고 경주 출발선에 데려다 놓은 뒤, ‘당신은 다른 사람 모두와 경쟁할 자유가 있다’고 말해선 안 된다. 그건 공정이 아니다.” UC 데이비스를 비롯해 소수인종 할당제를 시행한 미국 대학도 정부의 이런 기조를 따랐다. 그런데 배키 사건 재판부는 불공정 시정이 이 ‘(역)차별’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보면서, 다양성을 이유로 한 어퍼머티브 액션은 허용한 것이다.

왜 공정은 탈락하고 다양성만 살아남았을까? 어퍼머티브 액션 판례를 연구해온 정일영 울산대 법학과 교수는 찬반 대법관들의 동의를 이끌어낸 파월 대법관 개인의 성향에 주목했다. 재직 중 관여한 여러 판결에서 파월 대법관은 아프리카계를 비롯한 유색인종의 대우에 우호적 입장에 선 적이 거의 없었다. 배키 재판에서는 ‘역사적으로 아일랜드계나 이탈리아계 이민자도 차별받은 적이 있다며, 왜 아프리카계만 특별히 보호해야 하는지’ 의문을 표했다. 인종차별 문제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던 파월 재판관이 다양성을 ‘강력한 공익’으로 내세워 어퍼머티브 액션을 정당화한 배경으로 정일영 교수는 그의 ‘반공 성향’을 든다. 정 교수의 말이다. “1950년대 소련을 방문한 파월 대법관은 학생들이 세뇌 교육을 받는 모습에 경악했다. 그래서 다원주의가 교육에 중요하다는 신념이 강했다.”

안전하지만 취약한, 다양성이라는 논거

2003년 재판에서도 연방 대법원은 1978년 판결의 기본 입장을 따랐다. ‘소수인종이라는 이유로 가산점을 일괄 부여하는 것은 위헌이다. 그러나 구성원 다양성이라는 교육적 목적을 위해 개별 판단 요소 중 하나로 고려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런데 이 사건 판결문은 한 가지 전제조건을 추가했다. “인종을 고려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잠정적 조치여야 한다. 학내 구성원 다양성이 확보된 25년 후에는 어퍼머티브 액션이 필요 없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25년은 1978년 재판부터 2003년까지의 기간이다. 그만큼의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어퍼머티브 액션 없이도 다양성이 확보되리라고 당시 연방 대법원은 본 것이다. 2016년 같은 사건을 다룬 재판부 역시 앞선 두 차례 재판의 논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합헌 결정의 가장 강력한 논거는 다양성 추구였다.

‘학내 다양성을 위해 소수자를 우대한다’는 논거는 안전하다. 이 견해는 인종차별이라는 뜨거운 뇌관을 직접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소수인종에게 실질적 이익을 안긴다. 연방 대법원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배상해야 할지 묻지 않는다. 이 질문은 건너뛰고 ‘학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명분만 남겼다. 소수인종이 유리한 대입 구조로 백인 학생이 피해를 본다고 해서, 그 학생에게 역사적 과오나 불평등 개선 책임을 지운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누구를 뽑을지는 대학 자율이며 다양한 학생을 뽑기 위해서라면 정당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논거는 보기보다 공격에 취약하다. 명확성이 떨어진다. 교육학에서 다양성은 전 세계 학자들이 인정하는 가치다. 그러나 어퍼머티브 액션이 ‘목적이 아닌 수단만 보면 헌법·법률상 차별’이라는 앞선 판결들을 살피면, 의문이 꼬리를 문다. 예컨대 다양성을 추구해 얻는 교육적 실익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계층과 인종 중 어느 쪽을 중시하는 게 다양성 추구에 가까운가? 어떤 인종이 소수집단인지 다수집단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2008년 ‘어퍼머티브 액션 탓에 대학에 떨어졌다’며 소송을 제기한 애비게일 피셔. 판결은 2016년에 났다. ⓒAP Photo

6월29일 판결문에서 연방 대법원은 핵심적이지만 취약한 다양성 관련 논거를 끈질기게 공략했다. “대학이 주장하는 (어퍼머티브 액션의) 이익은 사법적으로 엄격하게 검토하기 어렵다. (…) 소수인종 학생들을 혼합한다고 해서 효과적으로 ‘참여적이고 생산적인 시민’이나 ‘미래의 지도자를 훈련’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 그 밖의 논의에서는 기존 판결 논리를 따랐다. “평등한 보호는 인종에 따라 달리 적용되지 않는다”라는 구절은 배키 재판에서 인용했다. ‘25년 후 폐지’를 제안한 2003년 판결을 바탕으로 “20년이 흘렀으나 인종 기반 대입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 어느 시점에는 종료되어야 할 정책”이라고 밝혔다. 히스패닉 출신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노예제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며 어퍼머티브 액션을 옹호했으나, 소수의견으로 남았다.

따라서 지난 6월29일의 사건은 인종차별적 전 대통령이나 그가 임명한 보수적 재판관들이 밀어붙인 정치적 반동이 아니다. ‘누란지위’로 간신히 명맥을 이어온 절충안이 공세를 받고 결국 무너진 데에 더 가깝다. 판결 당일 하버드 대학은 입장문을 내고 “다양성과 차이는 학문적 우수성에 필수적이다. (…) 새로운 판례에 따라 우리의 핵심 가치를 어떻게 보존할지 정하겠다”라고 밝혔다. 하버드 대학을 비롯해 다양성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미국 교육기관은 새로운 전형을 모색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번 판결은 국내에도 장단기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한국이 미국만큼 다인종 사회는 아니다. 그러나 다양성은 여러 갈래로 나뉜 한국 대입 전형의 명분이기도 하며, 일부 직역은 사회적 소수자를 위해 할당제를 시행한다. 오랜 기간 유지해온 어퍼머티브 액션이 무너지면서, 국내의 소수자 우대책을 둘러싼 논쟁에도 불이 붙을 가능성이 커졌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