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8월17일 임시공휴일을 끼고 15~17일 황금연휴를 보낸 귀경객으로 서울역이 붐비고 있다.

8월 말인 지금의 상황은 예측 불가능했나? 그렇지 않다. ‘전광훈’ 변수를 빼고 보더라도 이번 수도권발 코로나19 대유행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대구 유행’에 맞먹는 2차 파도가 올해 내 반드시 닥칠 것이라는 경고가 지난 수개월 동안 수많은 전문가들을 통해 울려나온 바 있다. 일종의 ‘휴지기’였던 그동안에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특징과 전파력은 그대로였다.

바뀐 것은 ‘숙주’들의 행동이었다. 최근 주말마다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집회가 열렸다. 7월24일부터 교회 소모임 금지 조처가 해제됐다. 숙박·외식 할인쿠폰이 뿌려졌다. 휴가철을 맞아 피서객들이 해수욕장과 워터파크에 몰렸다. 시민들은 마스크만 썼을 뿐 마치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 듯 여름날을 잠시 즐겼다. ‘방역을 위해 사회적 거리를 둬라’와 ‘경제를 위해 나가서 돈 써라’라는, 팬데믹 시대의 상충하지만 공존하는 두 가지 시민윤리 사이에서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였다. 시민들은 각자 선택했고 그 대가가 돌아왔다.

2차는 1차 때와 다르다. 또한 달라야 한다. 2차를 다르게 맞기 위한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국내 확진자 증가세가 주춤하던 4~6월 보건의료계에서는 2차 대유행을 전망하고 대비하는 세미나, 포럼, 토론회 등이 숱하게 열렸다. 중대본, 중수본, 질본, 공공·민간 병원, 학회, 보건소, 시민사회 등의 웬만한 전문가들은 한 번 이상씩 이 주제에 관해 고민하고 논의할 기회와 책무를 안았다.

‘대구 유행’을 경험하고 미국·이탈리아·스페인도 목격하면서 한국 사회는 좀 더 ‘최악의 경우’를 상상할 용기도 갖게 되었다. 감염자 수 증가에 따른 경증·중등도·중증 병상 수요예측 모델을 돌려보고 현실의 병상 현황과 대조해봤다. 확진자가 폭증할 때 지방자치단체 단위로는 해결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기에 서울·경기·인천을 묶는 ‘수도권 병상 공동대응’ 같은 전략도 마련했다. ‘트리아지(Triage)’라 불리는 치료의 우선순위 논의도 전에 없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바이러스가 조금이라도 검출되면 음압병실에서 나가지 못하는 ‘메르스식’ 대응 지침을 완화해서 코로나19에 맞게 바꿨다. 1차 유행의 시행착오가 없었으면 쉽지 않았을 결정이다. 다만 이런 논의와 검토, 개선은 한 발자국씩 더디게 진행되는데, 코로나19가 훨씬 빠른 속도로 다시 우리 삶을 덮친 것이다.

이번에는 수도권이다. 8월16일부터 20일까지 확진자 수가 하루 300명 가까이 치솟았다. 그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발생했다. 확진자가 발생한 교회, 공공청사, 국회, 언론사 등이 임시 폐쇄되거나 업무가 중지됐다. 텔레비전과 포털사이트는 코로나19 뉴스로 도배되었다. 개학을 앞둔 학교의 등교일이 또다시 미뤄졌다. 2월 말 대구의 데자뷔인가?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많다. 하지만 다른 점도 많다. 불행하게도 훨씬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다르다. 8월의 수도권이 2월의 대구보다 더 위태롭다.

■ 대구는 대구에서 끝났지만…

그 이유는 첫 번째, 공간적 특성 때문이다. 1차 유행지였던 대구는 인구 250만명의 대도시다. 하지만 서울·경기·인천이 묶인 수도권은 총인구 2700만명의 메가시티다. 대한민국 사람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살고 있다. 인구밀도도 훨씬 높고 각 지역은 광역 교통망으로 촘촘히 연결돼 있다. ‘접촉량’과 이어질 수 있는 대중교통 이용량에서도 차이가 크다. 지난해 기준 대구의 평일 하루 평균 대중교통 이용 건수는 113만3150건(대구시 대중교통 활성화 정책포럼)인 데 비해 서울은 하루 평균 1236만 건(서울시 교통수단별 통행분석)이다. 수도권은 전국 그 어느 지역보다 감염전파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제공8월19일 경기도에서 지자체, 소방서, 의료기관 등이 음압 구급차를 활용해 코로나19 중환자를 이송하는 시뮬레이션 훈련을 실시했다.

대구 유행은 대구에서 끝날 수 있었지만 수도권은 아니기 쉽다. ‘수도권발 전국 유행’으로 번질 수 있다. 임시공휴일이 붙은 사흘 연휴가 시작된 지난 8월14일, 하루 동안 차량 157만5744대가 고속도로를 통해 수도권을 빠져나갔다. 8월15일 전세버스 79대를 나눠 타고 서울 광화문으로 집결한 집회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음식을 나눠 먹은 뒤 다시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벌써 부산·대전·대구·광주·천안·원주 등 전국 곳곳에서 그간 뜸하던 신규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신천지발 대구 유행이 고층빌딩 화재라면, 이번 유행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점점이 타오르는 산불과도 같다. 곳곳에 불씨가 뿌려졌고, 앞으로 어디로 번질지 종잡기가 힘들다.

■ 노인 감염자 폭증, 치명률이 위태롭다

8월의 수도권이 2월의 대구보다 위태로운 이유 두 번째. 환자 평균연령대가 너무 높다. 2월 말~3월 초 대구 환자가 폭증하던 시기 신규로 발생하는 환자 대다수는 20대였다. 당시 ‘감염 클러스터’였던 신천지 교단에 젊은 층 교인 비중이 높았다. 하루 신규 환자가 909명 발생한 2월29일의 누적 확진자 2931명을 연령별로 나눠 살펴보면 20~29세가 856명으로 가장 높은 비율(약 30%)을 차지한다. 당시 환자 폭증 정도에 비해 사망률이 크게 치솟지 않은 이유다.

코로나19는 다른 감염병들에 비해 연령대별 사망률 차이가 특히 크다. 8월20일까지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20대는 3879명인데 그 가운데 사망자는 0명이다. 똑같은 기간 코로나19에 감염된 70대는 1109명인데 91명이 사망했다. 80대는 645명 가운데 153명이 숨졌다. 60대 1.81%, 70대 8.21%, 80대 이상 23.72%에 이르는 코로나19 치명률은 우리 사회가 그 어떤 때보다 노인들을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불행히도 최근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신규 환자 대다수가 고령층이다. 경기도의 경우 8월15일부터 8월19일까지 79~ 90명의 신규 환자가 발생할 때 그 가운데 36~48%가 60대 이상이었다.

고령 환자 증가는 곧 중환자 병상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 젊은 무증상·경증 환자는 생활치료센터에 보낼 수 있다. 생활치료센터는 공공기관과 기업의 연수원 등을 물색해 협의를 이끌어내면 된다. 비교적 확보가 용이하다. 일반 병상도 수도권의 경우 거의 턱밑까지 차올랐지만(16쪽 표 참조) 긴급한 경우 예전처럼 민간병원들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추가 지정해 어떻게든 병상 수를 늘릴 수 있다. 문제는 고령 환자들에게 절실할 확률이 높은 중환자 병상이다.

8월19일 중대본은 “수도권 중증 치료 병상은 71개로 아직 여유가 있다”라고 밝혔다. 그 수는 고정값인 데 비해, 고령 환자는 매일 불확실성 속에서 수십 명씩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 중환자 병상은 단순히 병실과 침대만 갖춰선 완성되지 않는다. 에크모 같은 장비를 다룰 줄 알고 죽음의 고비 앞에 선 중환자를 전문으로 치료할 수 있는 인력이 함께 세팅돼야 한다. 중환자 병상 1개 추가가 생활치료센터 1개소 개설보다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이런 사실을 알고 그동안의 휴지기에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을 늘리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들이 노력해왔지만 드라마틱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중환자 병상은 대개 상급 종합병원에 몰려 있고, 그곳 경영진이 수익 악화를 감수한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강제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 신뢰와 연대 끊긴 코로나19 최전선

8월의 수도권이 2월의 대구보다 위태로운 이유 세 번째는 ‘사람’에서 찾아야 한다. 그때보다 사람들이 많이 지쳤다. 대구 유행 시기, 국민들은 공포에 질렸지만 비교적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다. 대다수가 방역 당국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고 의료진을 격려했다. 모두가 몸가짐을 조심하던 시기여서 ‘돌발행동’이 드물었다. 최근 병원 노동자들은 병실에 기거하며 온갖 음모론을 설파하고 의료진 초상권 침해를 서슴지 않는 보수 유튜버 확진자와 싸워야 한다. 보건소 공무원들은 ‘내가 왜 검사를 받아야 하느냐’며 화내는 접촉자를 설득해야 한다. 경찰은 병원을 몰래 빠져나와 시내 곳곳으로 도주하는 사랑제일교회 교인 확진자를 잡으러 다녀야 한다. 이렇게 보건·행정의 역량과 에너지가 낭비되는 일이 1차 대유행 때는 많지 않았다.

ⓒ시사IN 조남진8월19일 확진자가 폭증하는 가운데 서울 광진구보건소에 감염 여부를 확인하려는 시민이 줄지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이 의료진의 ‘번아웃’이다. 반년 이상 이어지는 격무와 긴장 속에서 체력적·정신적으로 많이 지쳤다. 무엇보다 용기와 연대의식이 약화됐다. 정부와 의료인 사이, 의료인과 의료기관 사이, 의료인과 의료인 사이, 의료인과 시민들 사이 신뢰도 많이 깨졌다. 지난 2월부터 3개월간 대구의 한 감염병 전담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들을 돌보던 한 간호사는 말했다. “그때 너무 힘들어서, 만약 다시 코로나19 병동이 열리면 모두 다시는 그곳으로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환자가 늘었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엄청 불안해하면서 ‘아무도 우리 안전과 처우를 책임지지 않을 건데 또 그곳으로 가라고 하면 어떡하지, 그러면 그땐 아예 그만둬버릴 거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전공의협의회 등 젊은 의사를 주축으로 ‘#덕분에’ 챌린지를 비꼰 ‘#덕분이라며’ 챌린지가 유행하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영웅이라고 치켜세우더니 갑자기 의사 정원 확대 등의 정책을 내밀며 (예비)의사들의 뒤통수를 쳤다는 것이다. 8월21일 전공의 파업, 8월26일 전임의 파업, 8월26~28일 대한의사협회 총파업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8월19일 의협 등과 정부의 마지막 협상 자리가 열렸지만 서로 ‘강 대 강’으로 맞서다가 결렬됐다.

파업을 앞둔 의사들을 보는 간호사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말했다. "솔직히 전공의들이 좀 빠진다고 코로나19  중환자 진료에 엄청난 차질이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제까지도 격리실에 출입하는 건 대부분 간호사들이었고 치료 행위 또한 전문의들이 전담했기 때문에, 업무 부담이 좀 늘어날 뿐 큰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거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간호사들 한번 편들어준 적 없고 간호사들 처우 개선에 관한 정책에는 한결같이 반대해왔으면서 간호사들에게 자기들 파업 지지하라 을러대고 공식적으로 연대해달라고 요청해오는 의사들이 썩 예뻐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의사들을 보는 간호사들 여론은 매우 좋지 않다."

국민들도 의사 파업을 ‘밥그릇 지키기’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의사들이 파업의 명분으로 내세운 의대 정원 확대 방안에 찬성하는 여론이 60%에 달한다(7월28일 리얼미터 조사).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의사 파업에 대해 “병마와 싸우는 것만으로도 벅찬 환자를 방패막이 삼아 정부를 협박하는 집단행동은 아무리 명분이 타당해도 지지받지 못할 것”이라며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행위다”라고 비판했다. 1차 대유행 때보다 훨씬 서로가 서로에게 섭섭하고 화가 난 상태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시민들의 경각심 약화다. 같은 ‘일일 신규 확진자 100명’을 대하는 사회의 반응이 처음과 많이 달라졌다.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지역사회 감염자 수가 늘어나던 6~7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여러 차례의 브리핑에서 ‘위기’ ‘중대 기로’ 같은 단어를 사용했지만 국민들의 일상에 그리 스며들지는 못했다. 건국대 수학과 정은옥 교수팀의 수학 모델링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회적 접촉량은 2~3월경 기존의 2% 수준까지 확 줄었다가 8월 들어 다시 50%까지 늘었다(18~19쪽 기사 참조). 우리 국민들이 실제 행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것인데, 수도권의 거리두기가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해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 3T를 다시 작동시키려면

첫 번째보다 더 난도가 높아진 2차 위기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당장은 환자를 치료할 병상 확보가 급선무다. 앞서 말했듯이 무작정 아무 병상이나 수만 늘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최대한 가용 병상을 늘리되, 어디에 어떤 병상이 얼마나 있는지 정부·지자체·의료기관 간 실시간 정보가 공유되어야 한다.

국립중앙의료원 정기현 원장은 “각 주체들이 ‘세임 페이지(same page)’를 같이 보고 있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말했다(20~23쪽 인터뷰 참조). 국립중앙의료원이 키를 잡은 ‘수도권 병상 공동대응’의 이상적 목표는 수도권 내 모든 생활치료센터, 전담병원, 민간병원의 코로나19 병상 정보를 실시간으로 통합·공유하는 것이다. 그래야 환자 한 명이 발생했을 때 무작정 비어 있는 병상에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위험도, 중증 정도, 그 외 특성 등에 따라 가장 적합한 병상에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대구에서 코로나19 비상대응본부 상황관리반장을 맡았던 이경수 영남대 교수(예방의학과)는 “‘환자 중증도를 분류해서 적절한 곳에 입소시키면 된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환자가 이쪽저쪽 동시다발로 쏟아져 나오면 전체적으로 무슨 분류 방식으로 누가 조정하고 어떻게 정리하느냐부터 기준을 정하는 데까지만 며칠이 걸린다. 무지무지 어렵다. 그걸 정하는 사이 환자 30~50명이 집에도 못 가고 병원에도 못 가고 앰뷸런스를 타고 시내를 빙빙 도는 아찔한 시기가 있었다. 수도권에서 당장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실시간으로 환자 발생과 이송 흐름을 파악하고 소통하는 컨소시엄과 컨트롤타워 구축이 가장 어렵지만 가장 시급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병상 확보와 조정의 목표는 더 이상 ‘확진자 전수 입원’에 도달하지 못한다. 여러 전문가들은 이제 확진자 ‘자택격리’ 혹은 ‘가정 치료’를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고는 이 위기를 넘기 힘들다고 말한다. 이미 해외 국가 대다수에서 시행되고 있는 정책이다. ‘확진돼도 경증이고 고위험군이 아닌 경우 원격 관리를 받으면서 집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설득해내려면 정부가 먼저 ‘병상 부족’이라는 위기를 인정해야 한다.

ⓒ연합뉴스8월7일 서울 여의도공원 앞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 소속 의대생들이 정부의 의사 정원 확대안에 반대하며 시위하고 있다.

임승관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장(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원장)은 “대구가 실패한 이유가 위기를 뒤쫓아가서다. 차라리 먼저 위기를 인정하고 제대로 관리하는 게 좋은 전략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병상이 부족한 위기가 닥쳤음을 미리 공유하고 아래 단계부터 채워야 그 윗단계에 여유분을 둘 수 있다. 응급 상황을 맞은 환자가 발생했을 때 원활히 상급 병상으로 옮기기 위해서다. 그래야 사망자를 줄일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전략은 ‘방치되는 자택 대기’가 아니라 ‘잘 관리되고 조금이라도 증상이 나빠질 경우 바로 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는 자택 관리 시스템’이 원활히 굴러간다는 전제 아래서 작동 가능하다.

한편으로는 비(非)코로나19 환자의 피해도 끊임없이 신경 써야 한다.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 분석에 따르면 올해 3월 대구에서 187.2명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다. 대구의 병원들이 코로나19 대응으로 혼란을 겪던 시기 응급환자들이 제대로 된 처치를 받지 못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지난 3월18일 영남대병원에서 사망한 정유엽군의 경우가 바로 그런 사례다. 급성폐렴 증세가 심했으나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된다며 병원 진입 자체를 거부당해 결국 손을 써보지 못할 단계에 이르러서야 병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유족과 시민사회계에서 꾸린 정유엽 사망대책위원회는 지난 몇 달간 코로나19로 인해 의료 공백을 일으키는 지금 시스템의 한계를 조사해왔다. 권정훈 공동집행위원장은 ‘선별진료소’와 ‘안심병원’의 현행 운영 목적을 조금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두 대응 기관의 운영 목적이 ‘코로나19 확산 차단’에만 맞춰져 있다. 그래서 아무리 응급환자라도 코로나19가 의심되는 순간 치료체계 속에 진입 자체를 할 수 없다. 진단검사와 결과가 나오는 순서에서도 ‘확진자 접촉력이 없는 응급환자’는 ‘확진자 접촉력이 있는 무증상자’에 밀린다. 선별진료소와 안심병원의 운영 목적과 방식에 ‘응급환자들의 코로나19 빠른 진단을 통한 의료 공백 예방’도 추가해야 한다.”

그간 K방역의 자랑은 3T였다. Test(진단)·Trace(추적)·Treat(치료)의 삼박자가 훌륭했고, 팬데믹 속에서 최소한의 국민 일상을 지켜내는 힘이었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폭증하고 역학조사와 접촉자 관리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병상 수가 부족해지고 중환자 치료에 경고음이 울리면서 3T의 삼박자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김탁 순천향대 부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사실 그간 인력을 무한히 소진시키는 방식의 3T만 믿고 별다른 대비를 안 한 측면이 있다. 자유로운 일상을 누리게 해준 3T를 다시 작동시키려면 1단계 수준으로 환자 수를 낮추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려면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그 시점이 빠르면 빠를수록 통제 시간이 짧아지고 피해도 줄어들 것이다. 정부가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늦어질수록 사회·경제적 피해가 오히려 커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부도 모르지 않는다. 김강립 중대본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8월18일 브리핑에서 “반나절 빠른 판단이 일주일 뒤 확진자 수가 배가 되는 걸 막는다”라고 말했다. 이건 방역 당국뿐 아니라 2차 대유행 앞에 선 시민 개개인에게 모두 해당되는 말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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