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중구 을지로6가 국립중앙의료원 연구동 2층에 ‘코로나19 공동대응 상황실’이라는 사무실이 생겼다. 전에 없던 곳이다. 새로 마련한 티가 나는 책상과 컴퓨터 앞에서 직원 20여 명이 엑셀 파일을 만지거나 전화기를 붙들고 어딘가와 통화를 한다. 이들은 한 기관 소속이 아니다. 국립중앙의료원 기존 직원과 함께 중앙정부의 보건복지부, 서울시·인천시·경기도 세 지자체에서 각각 파견 나온 공무원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다.

사무실 중앙에 위치한 대형 텔레비전 화면에는 엑셀 표들이 띄워져 있다. 지역별, 의료기관별 병상수와 확진자 데이터 등 여러 숫자가 그 표들을 채우고 있다. 수도권 병상 공동대응을 위한 기초 자료들이다. 그 수치들이 취합되고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어 현장 기관들과 쌍방향으로 공유되는 순간, ‘코로나19 수도권 병상 공동대응’은 실제 환자를 살릴 수 있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기능한다. 어쩌면 잘 만든 엑셀 표 하나에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공공보건의료 체계의 중심에 서 있는 국립중앙의료원(NMC)이 코로나19 2차 대유행 앞에서 지휘권을 잡았다. 국립중앙의료원은 국가가 책임지는 필수 의료부문을 총괄하는 국가중앙병원이자 메르스나 코로나19 확산 같은 국가적 보건 위기 앞에서 환자 치료체계를 만들고 운용하는 기관이다. 국립중앙의료원 정기현 원장을 만나 코로나19 2차 유행 앞에 선 국가 의료 대응체계의 현주소와 과제를 물었다. 인터뷰는 8월20일 국립중앙의료원 연구동 3층 원장실에서 이루어졌다.

ⓒ시사IN 조남진정기현 원장은 “산소 공급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상태가 아니면 확진자가 생활치료센터나 자택에서 격리, 관찰해도 된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코로나19 수도권 유행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대구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몇 가지 점이 우려된다. 첫 번째, 수도권 인구 규모가 굉장히 크다. 두 번째, 대구는 확진자 중 젊은 연령층이 상대적으로 많았는데 이번 수도권엔 치명률 높은 고령층이 많다. 세 번째, 대구 때는 신천지라는 집단 하나가 중심이었다. 이번 수도권에선 사랑제일교회가 크긴 해도 클러스터(발병 집단)가 여러 군데서 관찰된다. 집단발병 유형이 다양하다는 것은 지역사회 감염이 꽤 진행됐다는 뜻이다. 네 번째, 같은 교회발이라 해도 신천지는 그 내부에서 바깥세상으론 비교적 많이 퍼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바이러스가) 집회 등을 통해 전국으로 흩어져나가는 형국이다. 지방에서 전세버스들이 수도권으로 잔뜩 들어왔다가 나갔다. 이런 네 가지를 고려해볼 때, 지금은 방역과 진료 두 체계가 잘 연결이 돼야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엄중한 시기다.

당분간 확산세가 이어질까?

전파력을 결정짓는 2가지 요소는 기초감염재생산지수(R0)와 세대기(serial interval)다. 기초감염재생산지수는 환자 1명이 몇 명에게 질병을 전파하는지를 수치화한 것이다. 세대기는 1차 환자 발병 시점과 2차 환자 발병 시점의 차이다. 코로나19는 기초감염재생산지수가 2.5 정도로 높은 편이다. 세대기도 4~6일로 (다른 감염병에 비해) 매우 짧다. 사스의 8일이나 메르스의 14일과 비교된다. 질병 확산에서는 세대기가 기초감염재생산지수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기초감염재생산지수가 100이면서 세대기가 100일인 경우엔 한 명의 환자가 100일 후에 100명의 추가 환자를 만들어낸다. 기초감염재생산지수가 50이면서 세대기가 50일인 경우엔 한 명의 환자가 100일 후엔 총 2550명의 추가 환자를 발생시키게 된다.

이런 빠른 확산 속도 탓에 코로나19는 한번 퍼지기 시작하면 잡기가 매우 힘들다. 6월께 시뮬레이션한 어떤 예측모델에 ‘8월 중순경 2차 대유행이 시작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있었다. 그에 따르면 확진자 수가 계속 올라가다가 11월 초 들어서야 피크에 도달한 뒤 꺾인다. 이번 유행이 그 시나리오의 시작인지 아니면 일시적으로 조금 올랐다가 내릴지는 이번 주말(8월22~23일) 혹은 다음 주 중반을 지나야 판가름 날 듯하다. 주말 데이터를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현 시점에서 국립중앙의료원이 맡은 역할과 대응 방향은?

국립중앙의료원은 기본적으로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대유행 시기 때 중앙 감염병 병원으로 지정돼 기능한다. 기존의 진료, 연구, 임상시험 등의 영역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런 시국에서는 감염병 관리와 치료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수도권 중심의 유행이 벌어졌을 때 전체 수도권 의료 자원의 배분체계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수도권 병상 공동대응의 컨트롤타워를 맡았다. 어떤 목표 아래 무엇을 가장 먼저 해나갈 계획인가?

이번 팬데믹의 성격 자체에 비춰볼 때, 확진자 수가 0명으로 유지되는 ‘종식’을 목표로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코로나19는 무증상 감염자가 많아서 모든 환자를 찾아내는 게 불가능하다. 인구의 60% 이상 감염되거나 획기적인 백신이 나와야 비로소 유행이 종료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위험요인을 잘 관리하고 (자원을 필요한 곳에) 집중시켜 사회·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 가운데 사망자를 최소화하는 게 바로 국립중앙의료원의 목표다. 그러려면 1차적으로 병상과 인력 자원을 효율성 있게 활용해야 한다. 트리아지(Triage:우선순위)라는 환자 분류체계도 중요하다. 환자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중환자 병상 수요를 예측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시사IN 윤무영8월15일 서울 광화문에서 많은 인파가 모여 ‘문재인 정권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를 아울러 공동의 시스템을 만든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일 것 같다.

사실 감염병이 발생하면 지역 내에서 완결성을 갖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감염병이 해당 지역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조치한다는 의미). 대구 유행 당시엔 급격하게 ‘서지(surge:확진자 수 증가)’가 일어나면서 그 지역의 최대 ‘의료 캐퍼시티(capacity:환자들에 대응할 수 있는 의료시스템의 인적·물적 역량)’를 넘어버렸다. 우리 기관이 ‘전원(환자를 증상의 심각성에 따라 이 병상에서 저 병상으로 옮기는 일)’을 조정하는 역할을 일부 수행했다. 그러나 중앙과 지역, 지역과 지역 의료기관 사이를 연계하고 조정하는 일이 굉장히 어려웠다. 협력과 조정이라는 게 말이 쉽지 실제로는 매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당시보다는 이 병의 성격을 더 많이 알고 있다. 정보를 취합하고 체계를 구축하며 대응하기 위한 지식을 빨리 만들어내는 요령도 어느 정도 터득했다.

이번에는 진짜 ‘서지’가 닥치기 전에 공동대응 체계를 먼저 만들어 선제적으로 대비해볼 계획이다. 특히 수도권은 사실상 시민들이 출퇴근하며 각 지역을 매일 넘나드는 하나의 생활권이지만, 중환자 병상은 서울에 몰려 있다. (의료)자원의 배분이 균등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공동대응이 꼭 필요하다.

병상 공동대응을 진행하는 중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나?

병상과 환자 정보를 관리하는 방식과 자원 투입 정도가 지자체별로 많이 달랐다. 지자체마다 익숙한 방식들이 있어서 바꾸기가 쉽지 않다. 지금까지 각자 해왔던 방식들을 모두 부수는 게 아니라 나름 존중하면서 통일된 지침과 기준이 현장에서 잘 적용되도록 지원하고 있다.

사실 지침과 현장 적용 사이에 괴리가 없지 않다. 예를 들면, 입원 환자들이 증상이 나아지면 생활치료센터로 옮겨가야 하는데 그 통보를 어떤 지자체는 공무원이, 다른 곳은 전공의가 한다. 그때 환자가 ‘나는 불안하니까 계속 병원에 있을래요’ 하면 설득하지 못하고 병상에 머물도록 하는 경우도 여전히 많다. 이렇게 되면 병실이 위중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자원이 아닌 격리를 위한 시설로 낭비된다. 대구 유행의 초기에 이런 일들이 많이 발생했고, 해결이 안 되니, 정작 병원에 입원해서 진짜 치료받아야 할 환자들이 못 들어가고 대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렇게 상황이 꼬이면 시스템이 붕괴된다. 이번에는 꼼꼼하되 과감하게 기준들을 적용해야 한다.

많은 국민들이 여전히 코로나19에 확진되면 무조건 음압병상에 입원해 완치될 때까지 머무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완치될 때까지 머무르는’ 형태로 시작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임상적 특성이 알려진 현재, 모든 환자들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무증상·경증 비율이 상당히 높고, 바이러스 전염 가능 기간도 증상이 발현되기 3일 전부터 발현 이후 5일 사이다. 증상이 나타난 첫날 진단검사를 받는다 해도, 우리나라의 평균 ‘격리 조치 소요 기간(증상 발현부터 입원하기까지의 기간)’이 4일이다. 결국 격리, 즉 입원이 의미 있는 기간은 사실상 하루 정도밖에 안 된다. 산소 공급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상태가 아니면 생활치료센터나 자택에서 격리, 관찰해도 된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이 말을 하기가 사실 쉽지 않다. 지자체 공무원 입장에서도 확진자 당사자나 이웃 주민들 민원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확진자가 나오면 관행적으로 음압병상에 입원시키고 있다. 이제 이것(반드시 입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빨리 이야기해야 한다. 같이 힘을 합쳐서 이 비효율을 고쳐나가야 한다. 언론의 역할도 여기에서 매우 중요하다.

지금 병상수가 얼마가 남았고 의료 자원이 얼마나 부족한지 정보가 공유돼야 그런 설득도 가능할 것 같다.

컨트롤타워에서 여러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해 독점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면 안 된다. 끊임없이 밑(현장)으로 정보를 환류(feedback)시켜 상황을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모두가 ‘상황이 이러하고 이렇게 돌아가고 있구나’라고 알아야 문제의식을 함께하고 머리를 맞대 해결책도 낼 수 있다. 환자를 증상에 적합한 병상으로 옮기려 할 때 알음알음 전화해서 “○○병원 누구 알아?” 이러면서 개인적으로 부탁하는 방식으로 유지하기 힘들다. 정부, 지자체, 공공의료기관, 민간의료기관 할 것 없이 모두 같은 자료를 보고 서로 빈 곳을 알아채야 한다. 같은 자료, ‘세임 페이지(same page:같은 정보)’를 함께 보고 있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게 돼야 서울 소재 빅5 병원에서도 상황을 파악하고 예측하며 몇 병상이라도 내놓을 수 있다.

ⓒ시사IN 조남진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코로나19 공동대응 상황실에서 8월20일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정부, 지자체, 의료기관뿐 아니라 시민들도 병상 공동대응의 한 주체가 돼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정부나 의료기관 누구 하나가 짐을 지고 갈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돼도 증상이 경미하면 일정한 프로세스에 의해 생활치료센터나 집에 있을 수 있고, 뭘 주의하면 될지 충분히 전달받고, 혹시 위험해지면 중환자 치료를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걸 시민들이 충분히 알고 이 과정을 같이 들여다보고 참여해야 한다. 이런 적극적인 협조와 참여 속에서 시민들도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대응능력의 부족으로 붕괴되는 사태를 막아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물론 일방적으로 국민들에게 협조해달라고 할 일은 아니다. 정확한 정보를 주고 신뢰관계를 쌓아야 한다. 지금까지 방역 당국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당부해왔다면 이제는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 특히 코로나19 환자 치료체계를 총괄하는 우리 국립중앙의료원이 먼저 이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우리나라 공공의료 부문의 중추에 서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다시 생각해보는 공공의료의 존재 의미는?

국가의 책임이 있는 필수의료 영역이 그간 민간에 많이 의존돼왔다. 감염병, 응급 외상 등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것들, 혹은 여성·어린이 건강 같은 국민보건의 근간을 이루는 부분들이다. 이런 부분에 국가의 투자가 너무 없었고 그 투자 부족에 따르는 문제점들이 특히 지금처럼 감염병과 같은 보건의료 위기를 만났을 때 터져 나오고 있다. 공공의료에 대한 보완과 보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금 의대생들과 의사들이 의사 정원 확대에 반대하며 파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사실 의사 정원 확대는 정부 여러 정책 가운데 하나다. 크게 공공의대 설립, 지역의사제, 의사 정원 확대, 이 세 가지 정책을 함께 봐야 한다. 공공의대 신설은 공공부문 의료의 질을 높이겠다는 정책이다. 지역의사제는 지역 불균형이라는 분포의 문제를 다루고, 의사 정원 확대는 양의 문제를 다룬다. 이 세 가지 정책이 나온 이유와 관점을 각각 따로 봐야 하는데 현재 뒤죽박죽 섞여 있다.

특히 공공의대 설립은 실질적으로 공공의료의 질을 높이고 의사들의 향후 진로 스펙트럼을 넓혀주는 굉장히 획기적인 안이라고 생각한다. 공공의대를 ‘저질 의료’라는 프레임으로 공격하며 서남대 의대 사례를 드는데, 서남대 의대는 사립재단의 비리와 난맥상, 돈의 논리로 망가진 곳이다. 국가가 돈을 투자해서 공공부문 의사들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왜 의사들이 나서서 반대하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지금처럼 의료가 돈의 논리로만 굴러가면 환자와 의사 모두가 불행해진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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