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학교 수학과 정은옥 교수팀은 올해 초부터 수학 모델링을 활용한 코로나19 확산 시뮬레이션을 연구해왔다. 보통 감염병 확산을 예측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리 모델은 ‘SEIR’이다. 인구집단을 ‘감수성군(Susceptible:비감염자이지만 감염 가능성이 있는 집단)’ ‘감염 노출군(Exposed:잠복기 상태 혹은 타인 전파 가능성이 없는 바이러스 감염군)’ ‘감염 환자군(Infectious)’ ‘회복 환자군(Recovered)’으로 나누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환자 발생을 예측하는 모형이다.

연구팀은 이 모델에 한 가지 모수(母數)를 더 추가했다. 바로 ‘행동변화 감수성군’이다. 똑같은 사회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행동변화 감수성군은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 바로 손 씻기, 마스크 쓰기, 사람 적게 만나기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행동변화다.

팬데믹이 심각해지면 기존의 일반 감수성군은 행동변화 감수성군으로 옮겨간다. 한마디로, 몸을 사린다. 지난 2월 말 대구 신천지발 대유행이 발생한 뒤 국민 대다수가 그 변화를 행했다. 외출 때마다 마스크를 쓰고, 손 씻기 횟수를 늘리고, 약속과 모임을 취소했다. 기존 일상을 상당 부분 포기했다. 한참을 그렇게 노력하니 그래프는 2월29일 꼭짓점(813명)을 찍고 하강 추세를 보여줬다.

대구 대유행 후 처음으로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100명 아래로 떨어진 3월 중순경, 연구팀은 그간 시민들이 행해왔던 ‘일상의 포기’ 정도를 숫자로 환산해 수리 모델에 적용해봤다. 이를 ‘행동변화 그룹의 전파감소비율’이라 부르고 그래프 상에서 델타(δ)로 표현했다. 시민들이 일상을 얼마만큼 포기했기에 그만큼의 하강 그래프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처음엔 시민들이 일상의 2분의 1(50%)만 유지하는 경우, 다음엔 5분의 1(20%)만 유지하는 경우, 그다음엔 10분의 1(10%)만 유지하는 경우를 가정하면서 계속 그래프를 그렸다. 그러던 중 일상의 50분의 1 (2%)만 유지하는 경우를 입력하니 해당 그래프가 한국의 실제 확진자 수 추이와 엇비슷해지는 것이었다. 기존(2월16일 기준)에 한국 시민들이 누리던 일상의 정도가 1이라면,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진 뒤 누린 일상은 그 2% 수준에 불과했다는 말이 된다. 2~3월 우리나라 국민들의 인내와 희생이 얼마나 대단했는지가 수학적으로 증명된 셈이다.

당시 연구팀의 수리 모델은 일상의 50분의 1(2%) 수준까지 떨어진 전파감소비율, 즉 ‘일상생활을 포기한 정도’가 이후로도 계속 유지된다면 4월 말쯤엔 누적 확진자 수의 증가세가 크게 둔화될 것이라 예상했다. 이는 실제로 거의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4월23일부터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한 자릿수에 머무는 날들이 이어졌다.

문제는, 행동변화 감수성군은 언제든 반대 방향으로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확진자 수가 줄어들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 속 거리두기’로 완화되면서 슬슬 경각심이 풀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다시 마스크를 벗고 손을 덜 씻고 모임을 잡았다. 이러면 수학 모델 속에서도 한 사람이 가지는 감염전파률이 높아지고, 그에 따른 감염자 수도 늘어난다.

연구팀은 7월 초 다시 몇 가지 가정들을 놓고 앞날을 예측해봤다. 감수성군이 일상의 5.5분의 1(약 18%)을 누리는 경우, 5.3분의 1(약 19%)을 누리는 경우, 다시 5분의 1(20%)을 누리는 경우 등을 가정했다(〈그림 1〉 참조). 전파감소비율을 조금씩 늘린 것이다. 언뜻 보기에 기존 일상의 18%를 누리는 것과 20%를 누리는 것 사이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결과(감염자 수)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연구팀은 올해의 전파감소비율이 5.5분의 1(18%) 이하로 계속 유지된다면 연말까지 큰 규모의 유행은 겪지 않을 수 있으리라 예측했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반 뒤, 가장 나쁜 시나리오 쪽이 현실이 되었다. 아니, 8월 중순 이후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300여 명에 이르는 지금은 7월 초에 만들어본 시뮬레이션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다. 연구팀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5분의 1, 그러니까 20% 정도의 일상만 누려왔어도, 8월 말의 일일 확진자 수는 100명을 넘지 않을 터였다. 시민들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이해져서 사회적 접촉량이 얼마나 늘었기에 지금 같은 결과가 나타난 것일까?

2~3월과 8월 초의 사회적 거리두기 차이

8월19일, 연구팀은 다시 여러 가지 전파감소비율(δ)을 시뮬레이션 모델에 입력해 현실의 값과 비교해봤다. 20%, 30%, 40%…. 지난번과 반대로 이번엔 전파감소비율을 조금씩이나마 점점 올렸다.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라 확정된 수치는 아니지만 40~50% 사이의 전파감소비율을 적용할 때 시뮬레이션 그래프와 현실의 확진자 동향이 비슷해졌다(〈그림 2〉 참조).

지난 5월 이후의 전파감소비율이 40~ 50%라는 의미는, 한국인들이 기준일(2월16일)에 비해 40~50%의 일상을 누려왔다는 이야기다. 2~4월 한국인이 누린 일상은 기준일의 2%에 불과했다. 예컨대 3월 말의 한국인들은 100가지 사회활동 중 2가지만 행하고 98가지를 포기했다. 그러나 8월 초의 한국인들은 100가지 중 절반 정도만 포기한 것이다.

ⓒ시사IN 조남진8월19일 건국대 정은옥 교수 연구팀이 코로나19 확산 수리모델을 분석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전국 그래프다. 수도권만 놓고 보면 그 변화는 더 드라마틱하다. 전파감소비율을 1.5까지 올려야 수도권의 실제 데이터와 비슷해진다(〈그림 3〉 참조). 앞서 말했지만 ‘1’은 2월16일경의 행동 수준이다. 8월 초의 수도권 시민들은, 일일 확진자 수가 띄엄띄엄 한두 명씩 나오던 2월 중순보다 오히려 1.5배 더 활발한 사회활동을 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연구팀은 “아직 수치 보정이 마무리되지 않은 단계라 정확한 수치라고 말할 순 없지만, 최근 2주 사이 예전에 비해 훨씬, 또 전국보다 수도권에서 훨씬 더 사회적 거리두기가 느슨해져 있었다는 사실을 이 모델로 확인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수학 모델은 미래를 예측해준다. 8월 초중순의 해이해진 행동 수준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전국 확진자 수는 9월 초순께 하루 1000명 수준으로 치솟는다. 그 가운데 절반 정도가 수도권에서 발생할 수 있다. 아마도 시민들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다시 코에 마스크를 꼭꼭 누르고 손에 비누칠을 하고 모임 약속을 취소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감염전파율이 낮아질수록 모델링 속 그래프 역시 조금씩 밑으로 내려간다. 당장 앞으로 1, 2주 뒤 확진자 수의 예측치를 바꿔놓을 수 있다. 방역 당국이 “이번 주말이 중대한 고비” 같은 메시지를 계속 강조하는 이유다.

굳이 복잡한 수학 모델링을 갖다 쓰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체감하거나 예측할 수 있다. 우리가 누린 일상의 정도를 많이 포기하면 2차, 3차, 4차 대유행은 뒤로 미뤄지고 파도의 최대 높이도 작아진다. 다시 해이해져서 예전처럼 살아보려고 시도하면 파도는 더 빨리, 더 높이 온다. 오늘 내가 행한 행동이 내일, 다음 주, 2주 뒤 코로나19 확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수학 모델링은 그 점을 한 번 더 확인시켜준다. 정은옥 교수는 “수학 모델링을 통해 시민들의 생활 방역과 방역 당국의 선제적 중재 전략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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