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가늘게 길게 애틋하게〉 북토크가 열렸다. 왼쪽부터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 변진경 기자, 진행을 도운 김영화 기자.

‘주간 코로나19’ 멤버들이 다시 뭉쳤다. 길고 차분한 호흡으로 코로나19가 불러일으킨 사회의 여러 모습을 톺아보자는 취지 아래 〈시사IN〉은 지난 3월부터 총 아홉 차례 전문가 대담을 진행했다. 팬데믹, 마음건강, 대구, 교육, 언론, 외교, 노동, 공공의료, 인권 등이 그 주제였다. 지면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더 보태 단행본으로도 출판했다. 〈시사IN〉이 만든 새 출판 시리즈 ‘시사IN 저널북(SJB)’의 첫 책, 〈가늘게 길게 애틋하게〉이다.

〈가늘게 길게 애틋하게〉는 정식 출간 전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통해 사전주문 예약을 받았다. 책 출간을 후원해준 독자들을 초대해, 8월12일 〈시사IN〉 편집국에서 ‘랜선 북토크’를 열었다. 주간 코로나19 고정 멤버인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예방의학 전문의)과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감염내과 전문의)이 화상회의 앱 ‘줌’을 통해 독자들과 만났다. 그간 사회자 역할만 맡아오던 기자도 이번에는 공동저자 자격으로 간간이 질의응답 사이에 끼어들었다. 북토크를 빙자해 열린, 주간 코로나19 ‘번외 편’이다.

주간 코로나19 대담이 끝난 이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저는 코로나19와 교육, 코로나19와 아동, 의료진의 번아웃 문제 등에 관한 기사를 마감하며 여전히 코로나19 속에서 헤매었습니다.

임승관:저도 경기도에서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의료자원을 확보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중환자 병상을 확대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코로나19 중증 환자를 병원 간에 안전하게 이송하는 방법에 관한 작은 연구과제를 동료들과 진행 중입니다. 보건복지부에서 주최한 코로나19 중간평가 콘퍼런스에도 토론자로 참여하면서 지난 과정을 리뷰하고 있어요.

김명희:코로나와 관련된 연구를 계속 진행하고 있어요. 3~5월에 예정됐다가 미뤄진 각종 학술대회와 토론회에 나가 발표도 많이 했네요. 주간 코로나19 대담에 처음 참여할 때부터 주말마다 전북 임실 텃밭에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농작물이 거의 다 자랐는데 최근 물난리 속에서 모두 침수돼버렸어요. 토마토·감자·수박 등 모두 물에 잠겼습니다(일동 탄식).

역병과 수해로 심란한 시절 속에서 그간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들을 담은 책 〈가늘게 길게 애틋하게〉가 출간되었습니다. 9가지 주제 중 어떤 대담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중이 제 머리 깎으려 시도한, ‘언론 편’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대안이 나올까 회의적이었는데 ‘문제제기형에서 문제해결형 언론으로’라는 결론에 도달하면서 한 사람의 뉴스 생산자로서도 좋은 팁을 얻었어요.

임승관:제가 이 대담 기획을 처음 제안한 사람이기도 한데, 이제 와 고백하면(웃음) 일련의 과정에서 솔직히 사익을 취한 부분이 있어요. 평소에 만나보고 싶었던 분들을 게스트로 초대하고 공부하고 싶은 주제들을 배우려던 제 욕심을 그 자리를 통해 좀 채웠지요. 그 가운데 ‘공공의료 편’에서 만난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님의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보건의료 공공성 강화의 핵심은 탈상품화다(〈가늘게 길게 애틋하게〉 183쪽)”라는 문장이에요.

김명희: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애틋함’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던 마지막 ‘인권 편’ 대담도 재미있었어요. 서보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카인드니스(kindness), 공자의 인(仁)과 같은 개념이다(205쪽)”라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아요.

(독자 질문 1) 코로나 이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변진경:저도 고민하는 질문이에요. 최근 몇 개월 사이, 주변의 워킹맘 동지들이 줄줄이 사표를 쓰고 있어요. 안 그래도 간당간당하게 일해오던 아이 엄마들이 연차, 재택근무, 시부모님·친정 부모님 찬스 등으로 코로나 초기를 근근이 버텨오다가 6월, 7월이 되면서 ‘도저히 안 되겠다’며 무너지고 있어요. 마찬가지 신세인데, 가슴이 아팠어요. 대담 ‘노동 편’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이 실제로 통계에 잡힐까?” 이야기를 나눴는데, 제 생각엔 아마 올해 하반기쯤엔 고용보험 통계에서도 잡힐 것 같아요.

(독자 질문 2) 입시학원 강사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와 학원이 두 달 가까이 쉬었고, 지금은 방역 수칙을 지키며 수업을 진행하지만 학원가에서 또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염려로 예민한 상태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잦은 학사일정 변경 탓에 입시에도 많은 변수가 발생했는데요, 올해 고3 수험생들이 참 안타깝게 느껴져요. 현장에서 입시와 방역이 함께 가려면 어떤 논의를 더 해야 할까요?

변진경:지난번 교육 기사를 쓸 때 ‘학교 안에서 배움과 방역을 어떻게 함께 이뤄낼 수 있을까’란 질문을 다뤘는데요, 사실 두 가지를 완벽히 추구하는 건 불가능하더라고요. 그걸 인정하는 순간 오히려 해답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간 대담에서 여러 차례 이야기 나눴듯이 완벽한 안전이라는 건 있을 수 없잖아요. 학교 혹은 학원 현장에서도 각자의 ‘억셉터블 리스크(acceptable risk:수용 가능한 위험 수준)’를 설정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학생이든, 교사든, 강사든, 누구든 감염될 수 있어요.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선 안 돼’에만 집착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예요. 오히려 일이 벌어졌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할지 위기 대응 매뉴얼을 작성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또 하나, ‘아프면 쉬기’. 이게 학원에도 적용돼야 해요. 지금 학교는 학생 자가진단 체크 등으로 아프면 쉬는 의무와 권리가 부여돼 있지만, 학원은 사실상 자율과 양심에 맡겨져 있잖아요. 발열 체크로 걸러지지 않는 유증상 학생들이 많을지도 몰라요. 열이 나도 학생들 스스로 ‘내가 이번 수업을 빼먹으면 성적을 낼 수 없어’라는 생각에 해열제를 털어 먹고 학원에 나갈 수도 있어요. 학원 수강료가 아까워 기침과 콧물이 나도 출석할 수 있고요. 학생 개개인을 비난하고 감시하는 방법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학원에서 아픈 수강생들을 위해 온라인 수업을 개설해주든지, 수강료 환불 규정을 유연하게 바꿔주든지 하는 게 학원 입장에서도 길게 보면 득이 될 수 있어요. 근본적으로는 해열제를 먹고라도 학원에 나가는 상황 자체가 우리 사회의 아픈 구석이지만, 그 문제를 하루아침에 풀기는 어려우니, 단기적인 유연함을 학원가에서도 발휘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연합뉴스8월4일 대전 서구 수해 현장에 자매도시인 경남 함양군 주민 등이 찾아와 복구 작업을 도왔다.

김명희:병원 종사자들 인터뷰를 하고 돌아다니면서 상당히 놀랐어요. 코로나19가 ‘설마 여기까지 오겠어?’라는 바람이 객관적인 현실 파악을 의외로 강하게 방해하더라고요. 학교나 학원 같은 현장도 마찬가지예요. 수능 날에도 아픈 학생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플랜 B를 세워놓아야 해요.

(독자 질문 3) 공공의료의 필요성을 어느 때보다 절실히 느끼고 있는데, 최근 지역의사제 같은 정부 정책들은 본질을 피해가고 있어 결국 의사 파업으로까지 치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부는 늘 대화할 자세가 되어 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소통이 안 될까요? 의협의 목소리가 모든 의사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파업 일변도의 저항도 피로하긴 합니다.

김명희:정부가 이번에 낸 안에 대해서는, 저도 굉장히 아쉽고 사회적 합의가 불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의사 수를 늘려야 하는 건 맞지만 어느 부분에 얼마만큼 늘릴 거냐, 의사 양성 과정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등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이 없어요. 비슷한 문제의식으로 의학전문대학원을 만들었지만 실패했잖아요. 지역에 의사 보내는 방안도 갖은 시도를 했지만 안 됐어요. 왜 실패했는지 이유를 분석한 뒤 다른 무언가를 내놓아야 하는데, ‘또 다른 똑같은’ 방식만 내놓고 있어요. 여기에 전공의나 대한의사협회 파업은 그 문제 제기와 대응 방법이 맞아떨어지지 않아요. 전공의가 힘들고 인력이 모자란다고 하는데, 의사가 많아지면 그분들에게 좋은 일 아닌가요? 그게 왜 안 되는 일인지 구체적 분석 없이 마치 의사 허락 안 받고 정책을 내고, 우리도 먹고살기 힘든데 권리 침해한다는 논리는 잘 와닿지 않아요. 어느 쪽도 선뜻 편을 들어주기 힘들어요.

임승관:지금 정부로 대변되는 이른바 진보 진영과 대한의사협회로 대변되는 보수 진영 사이에서 공공의료 확충, 의사 수 증원 등의 문제가 정치 슬로건화되고 있어요. 진영 논리로 쉽게 빠져드는 한국 사회의 오류이기도 하지만, 저는 정부의 역할이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정부가 이 문제를 깃발이 올라간 광장이 아닌 정책의 공론장에서 다뤄지도록 관리했어야 해요. 공공의과대학,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걸 어떤 모습과 방식으로 만들 건지 제대로 된 정보가 없어요. 이런 빈 부분들이 반대 진영의 투쟁을 불러와요. 가치에 동의해도 방법론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어요. 자료를 놓고 학술적으로 토론하고 시민사회 속에서 담론화하는 과정으로 각론을 만들어가야죠. 그렇게 차분하게 정책을 설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2020년은 여러모로 재난의 해입니다. 코로나19에 여름철 수해, 기후위기 피해도 겹쳤어요. 겨울이 오면 또 코로나19 위기 속 한파와 폭설이 걱정되는데요. 재난과 살아가는 삶, 어떻게 각오해야 할까요?

임승관:감염병과 기후위기, 두 재난이 겹칠 때의 대응은 지금 의료계 화두이기도 해요. 미국 의학 저널에도 코로나19 상황 속 허리케인 피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논문이 나와요. 우리나라에서도 수해로 인한 이재민들이 발생했고요. 지금 이재민 쉼터에서 누가 기침을 하면 당장 어떡해야 할까요? 집단지성이 필요한 문제들이 많이 발생할 거예요. 특히 팬데믹과 기후위기로 인한 건강 문제에서는 위험군이 겹쳐요. 사회경제적 약자, 집단시설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가난한 노인들이 가장 취약합니다. 특별한 보호대책을 집중적으로 세울 그룹을 설정하고 과감히 정책과 예산을 투입해야 해요.

김명희:지구의 역사가 45억 년 정도 된다고 추정하는데 그사이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어요. 마지막이 6600만 년 전 공룡 멸종이었어요. 대개 소행성 충돌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공룡들이 소행성에 맞아 죽은 게 아니에요. 소행성 충돌로 인한 지구의 기후변화 때문에 죽었어요. 지금,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에 나타난 이후 최고의 위기 상황이라고 많은 과학자들이 얘기하고 있어요.

전 그래도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막을 수 있는 무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 같은 게 올 거다 올 거다 하다가 진짜 온 것처럼, 기후위기로 인한 대형 재난도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대비해면 돼요. 당장 내가 일회용 물건 덜 쓰고 에어컨 덜 켜는 것도 필요하지만, 대규모 화석에너지를 쓰며 이윤을 얻는 기업 하나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끊임없이 경계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전체적인 삶의 체계를 생태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어요. 1980년대부터 나온 이야기들이에요. 참신한 대안은 아니지만, 현명하게 돌파할 수 있는 수단이 우리에게 없진 않아요.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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