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야간 근무였다. 아침에야 퇴근했고 오후 2시쯤에는 잠을 자고 있었다. 급하게 아내가 깨웠다. 텔레비전 뉴스 자막으로 어떤 이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2003년 10월17일,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 화면만 봤다. 그해는 노동자들의 자결과 죽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는 며칠 동안 근조 리본을 단 노조 간부 하나 볼 수가 없었다. 민주노총은 총파업 결의를 포함한 투쟁을 준비하면서 각 기업 노조의 의견을 듣는 중이었다. 쌍용차 또한 입장을 내야 했고 대의원들의 의견이 절대적인 상황이었다. 주·야간 대의원들을 만나 설득에 나섰다. 입사 초년인 나를 아는 사람도 없었지만 무턱대고 잡고서 얘기를 했다. 당시 왜 그리 절박하게 호소하고 현장을 뛰어다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2014~2015년에 올랐던 겨울 굴뚝은 차가웠지만 푸근했다. 가로로 눕히면 쌍용차에서 일하는 현장 동료들과 70m 거리가 되기 때문이었다. 2009년 해고된 이후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고 생각하자 설움만 흘러넘쳤다. 증오와 미움도 하얀 굴뚝 연기처럼 사라지고 옅어졌다. 수많은 고공 농성자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닿을 것 같은 거리감에 아찔한 순간도 많았다. 외견상 사고 없이 내려왔지만 올랐던 문과는 다른 문으로 내려와 버렸다. 흔들림이 덜한 굴뚝에서의 짧은 고공 농성이 이 정도면 온종일 빙빙 도는 크레인 농성은 어떨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것도 김주익 지회장이 자결한 85호 크레인 위에서는 말이다.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309일 동안 크레인 위에서 고공 농성을 벌인 그 김진숙 지도위원이 정년인 올해 복직을 목표로 다시 공장 정문 앞에 섰다.
지난 6월 중순, 기자회견 소식을 들었다. 정년 전에 복직하겠다는 기자회견이었다. 당사자는 한진중공업에서 가장 오래된 해고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올해가 육십이니 정년이다. 올해라고는 하지만 이제 반도 채 남지 않은 시간. 최초의 여성 용접공보다는 추도사를 쓰는 사람으로 먼저 알려진 사람. 수많은 추도사와 동료들의 이어진 죽음. 2003년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 이후 그는 보일러를 켜지 않고 냉골에서만 생활했다. 지난 시간을 ‘모질다’고 할 때면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 아프지 않다는 게 더 이상할 정도로 아픈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김진숙 지도위원은 현재 항암 치료 중이다. 말라 보이지만 부기도 약간 느껴지는 모습에서 예전의 강단 있고 카랑카랑하던 모습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에 선한 웃음은 여전한 것 같은데, 김진숙 지도위원은 복직할 수 있을까.
모질게도 냉골에서만 살았다
한진 일가는 대한민국 재벌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였다. ‘땅콩 회항’으로 유명세를 치렀지만 그 속내는 더 가관이었다. 재벌의 아내는 ‘갑질 폭언·폭행’으로 집행유예를 받았고, 자식들은 재산 분쟁으로 또다시 언론 지면을 차지한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화도 나지만 허무하다. 바뀌지 않는 현실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이라도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고 확인해야겠다.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갈아 넣은 지난 40년의 투쟁에 응답하길 원한다. 왜 매일 결과 없는 과정만 반복되는가. 그 종지부를 찍었으면 좋겠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 투쟁은 매주 아침 6시30분 출근 선전전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몸이 좋지 않은 김 지도위원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만 나선다. 2011년 김진숙 지도위원을 응원하고 함께했던 희망버스가 이제 10년을 맞았다.
“저는 이 싸움이 제 인생의 마지막 싸움이었으면 좋겠어요. 복직해서 월급도 받고, 환갑날은 환갑잔치도 하고 그렇게 살고 싶어요. 노동운동, 여성운동 하는 동지들과 만나면 뜨거운 국밥 한 그릇 사 먹고요.” 김진숙 지도위원이 정년 전에 꼭 복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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