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6월9일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대검 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검찰 수사를 중단하고 불기소할 것을 권고했다. 9시간 회의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위원회 총원 15명, 총 투표인 13명 가운데 10명이 불기소 권고에 손을 들어주었다.

6월26일 수사심의위는 이 부회장 측에서 요청해 열리게 됐다. 이날 ‘불기소 권고’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이 부회장 측의 ‘수사심의위 회부 신청’은 다소 무리한 선택으로 평가받았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바이오 회계 처리 문제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불법 개입한 혐의로 지난 1년7개월간 검찰 수사를 받아왔다. 6월9일 구속영장은 기각되었지만,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원정숙 부장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덧붙였다.

자연스럽게 영장전담 판사와 상반된 결론을 내놓은 수사심의위가 어떤 기구인지, 참여한 사람들은 어떤 면면을 가지고 있는지, ‘불기소 권고’의 효력과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논란이 뒤따랐다.

수사심의위는 문무일 검찰총장 시절인 2018년 1월에 도입되었다. 일종의 ‘검찰 기소독점권 견제기구’다. 법조·학계·언론계·시민사회 인사들(150명 이상 250명 이하)을 위원으로 두고, 이 가운데 15명을 무작위로 추출해 개별 사건의 수사·기소·구속영장 청구 여부 등을 살펴보게 한다. 여기서 나온 결론은 일종의 권고사항이고, 수사심의위가 기소 여부를 최종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동안은 ‘권고’가 대체로 실제 기소 여부에 반영되어왔다. 지금까지 여덟 차례 위원회가 소집되었고, 각 사건에 대한 권고 결정 사항을 검찰이 수용했기 때문에 수사심의위의 결정에 대해 사회적 논란이 불거진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달랐다. 수사심의위가 이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처럼 첨예하고 전문적인 문제를 다루기에 적합한 기구인지부터가 분명치 않다. 대검찰청 예규에 따르면 사건 당사자(주임검사와 수사심의위 신청인)는 30쪽 이내로 의견서를 작성해 제출하며, 위원회에 출석해 30분 이내에 사건에 대한 설명이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는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을 승계받기 위해 불법행위를 지시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수사 기간이 길었던 만큼 사안도 복잡다단하다. 검찰이 이 부회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당시 법원에 제출한 수사 기록만 400권, 20만 쪽 분량이다.

앞서 수사심의위가 심의했던 사안은 업무상 과실치사(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 구조·지휘 소홀 책임), 피의사실 공표, 불법파견 등 상대적으로 단순한 사안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번 심의에서는 복잡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다루었다. 아무리 ‘덕망과 식견이 풍부한 사회 각계 전문가(대검 예규 제4조)’를 위원으로 구성한다 하더라도 물리적으로 제한된 틀(시간, 자료 분량) 내에서 위원들이 사안을 깊이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연합뉴스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위원장인 양창수 전 대법관(가운데)이 6월26일 대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기소독점 견제 어려운 반쪽짜리 장치

위원 구성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기본 풀(최대 250명)에서 누구를 어떤 방식으로 뽑는지, 뽑힌 사람은 누구이며 어떤 전문성을 가졌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대검에서는 해당 위원에 대한 사전 로비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며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위원의 면면이 공개되며 논란이 뒤따랐다. 심의위원장을 맡았던 양창수 전 대법관은 최지성 삼성그룹 옛 미래전략실 실장과 고등학교 동창 관계인 것으로 드러나 결국 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검사만 기소 가능)와 기소편의주의(검사가 불기소 선택 가능)를 시민참여를 통해 견제하자는 논의는 2010년부터 구체화되었다. 당시 검사 성접대 사건 이후 검찰 권력에 대한 시민의 통제권 논의가 불거졌고, 검찰의 기소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유사한 스폰서 사건이 계속되리라는 우려가 커졌다. 특히 검찰의 무리한 기소에 어떤 대응이 가능할지 논의가 이어졌다. 검찰이 불기소를 결정한 사안에 관해서는 고소·고발인이 법원에 재정신청을 할 수 있지만, 검찰이 기소를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는 반박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부재했다. 형사 사법절차에 대한 시민참여 방식이 논의되었고 그 결과 2010년 6월에 검찰시민위원회 제도가 도입된다. 수사심의위와 달리 대검찰청 대신 일선 검찰청에 설치되었다. 평범한 시민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이번 이재용 부회장 사건도 수사심의위에 부의할 것인지를 서울고등검찰청 시민위원회에서 결정했다.

2010년 당시에는 미국의 기소대배심, 일본의 검찰심사회 등 ‘검찰 기소권에 대한 시민참여형 견제 기구’를 벤치마크하자는 논의가 활발했다. 특히 기소독점주의에 대한 견제책으로 기소대배심 제도가 언급되었고, 이에 상응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일었다. 하지만 검찰은 이 같은 요구를 검찰 자구책에 담긴 검찰시민위-수사심의위 조합으로 차단할 수 있었다. 이들 위원회의 ‘권고 기능’을 받아들이는 선에서 기소권 독점에 대한 근본적 개선 요구를 무마한 셈이다. 지금의 수사심의위는 기소독점주의를 제대로 견제하기 어려운 반쪽짜리 내부장치 수준으로 평가된다.

미국 대배심으로 대표되는 기소배심제도는 배심원 선정과 운영에 관한 법률을 따로 만들고, 이에 근거해 배심원을 선발한다. 반면 현행 수사심의위의 설치 근거는 대검 예규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범주의 사건까지 회부가 가능한지에 대한 기준도 불명확하다. 기소권 독점에 대한 비판을 에둘러 수습하려 한 검찰이 결국 일을 키운 셈이 됐다.

수사심의위가 ‘미완성 제도’라서 생기는 부작용은 이 부회장 사건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수사심의위가 폭넓게 오남용될 가능성도 커졌다. 현재 대검찰청 지휘부와 일선 수사팀 사이에서 갈등이 증폭된 ‘검·언 유착 의혹 사건’도 수사심의위에 회부되었다.

효력과 책임이 모호한 수사심의위를 검찰이 여론의 방패막이로 삼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여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을 다룰 때, 검찰이 외부 의견을 수렴했다는 명분을 만들기 쉬운 기구가 될 수 있다.

검찰 처지에서는 딜레마다. 권고안대로 불기소 처분할 경우 1년7개월 동안 끌어온 수사가 무의미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재차 구속 기소 방침을 밀어붙일 경우 수사심의위 권고를 무시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무죄 판단은 법정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운영이 불투명한 위원회에서 판단한 권고 사항이 불법 승계 의혹에 면죄부를 씌워준 형국이 되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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