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파기환송심 이것이 쟁점이다
  • 이상원 기자
  • 호수 626
  • 승인 2019.09.1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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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단번에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판결문 속 논리를 살펴보면 역사적 재판의 결말을 짐작할 수 있다.
ⓒ시사IN 신선영2018년 2월5일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개명 최서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세 사람 모두 파기환송으로 같았다. 피고인들의 구체적 형량은 이어질 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에서 결정된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의 사실관계와 법률 적용 판단을 따라야 한다. 파기환송이라는 결론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판단한 까닭이다. 판결문 속 대법원의 논리 흐름을 살피면 역사적 재판의 결말을 짐작할 수 있다.

재판의 쟁점이 다양하고 복잡한 탓에 대법원 판단을 단번에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 모인 ‘태극기 부대’ 일부는 박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판결로 오인해 환호하기도 했다. 이번 선고의 구체적 의미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Q 파기환송의 의미는?

A 상급법원이 하급심 판결을 깨트리는 것이 ‘파기(破棄)’다. 민형사 소송법에 규정되어 있다. 원심을 파기한 대법원은 하급심에서 조사된 증거를 바탕으로 직접 종국판결을 할 수도 있고, 원심 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진행하도록 결정할 수도 있다. 후자를 파기환송이라고 부른다. 파기 판단의 기초가 된 증거에 변동이 생기지 않는 이상, 파기환송심 판결은 대법원 판단을 따라야 한다(민사소송법에는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고, 형사소송에도 적용된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Q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결과인가, 불리한 결과인가?

A 불리할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은 원심이 양형을 결정한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여러 개의 죄목을 판단하는 경합범에 대해서는 유죄 부분 중 가장 무거운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각각 징역 10년형, 9년형에 해당하는 죄목이 인정된다면, 두 형량을 단순히 합한 19년형이 아니라 최대 15년형까지만 선고된다. 그런데 공직선거법에 따라 공무원의 뇌물죄는 반드시 다른 죄와 분리해서 선고해야 한다. 형량에 따라 선거권·피선거권이 제한될 수 있기에, 다른 죄가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양형을 분리해 합산하면 최종 형량은 2심보다 늘어날 수 있다.

Q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접 수수했다고 밝혀진 돈은 없다. 그런데도 뇌물죄가 인정된 이유는?

A ‘직접 받은 돈이 없다’는 것은 박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줄곧 내세우는 주장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 직후 최순실씨 측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 역시 이렇게 주장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원심과 대법원 재판부는 입장이 일치한다. “뇌물수수죄의 공동정범이 성립한 이후에 실제로 공동정범이 공무원 또는 비공무원 중 누구에게 귀속되었는지는 이미 성립한 뇌물수수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런 뜻이다. 삼성이 제공한 마필이나 후원금이 누구에게 들어갔는지는 문제가 아니다. 최순실씨만 자금을 수수했다고 하더라도 공동정범인 박 전 대통령 역시 뇌물수수 혐의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연합뉴스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23일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Q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와 ‘공동정범’이라고 판단한 대법원의 근거는?

A “박 전 대통령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최순실씨에 대한 승마 지원이라는 뇌물을 요구했고, 최순실씨는 그 핵심 경과를 조종하거나 저지·촉진”했다. 두 사람이 ‘공모관계’를 통해 뇌물을 요구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친소 관계, 이른바 ‘경제공동체’ 형성 여부를 밝히는 일은 이 논리에서 필요치 않다.

Q 정유라씨는 승마 선수였다. 기업이 선수에게 말을 후원하는 게 왜 문제인가?

A 승마 지원 자체가 아니라 그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이 문제다.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전자가 말을 지원한 까닭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어서였고, 대통령의 직무는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박 전 대통령은(…) 형식적으로는 피고인 이재용에게 대한승마협회 회장사 인수, 승마 종목의 올림픽 출전 지원 등을 요구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최서원(최순실)과 공모에 따른 정유라 개인에 대한 승마 지원을 요구하였고, 피고인들도 이러한 점을 알고 있었다.” 힘을 가진 대통령이 기업에 사적 요구를 들이밀었다.

Q 이재용 부회장 2심의 판단은 달랐는데?

A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뇌물 공여까지 인정하려면 추가 요건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중 핵심이 ‘말 소유권’이다. 항소심은 “피고인들이 최서원에게 마필들의 소유권을 이전해줬다고 인정하기에 증거가 부족하다”라고 봤다. ‘이재용 부회장 등이 대통령에게 바라는 게 있어서 최순실 모녀에게 말을 쓰도록 했는데, 말 소유권이 넘어간 건 입증이 안 된다’는 인식이다. 이를 바탕으로 항소심은 이렇게 판단했다. “마필이나 그 구입대금이 아니라, 무상 사용이익을 뇌물로 제공했다. (이는) 무형의 이익으로서 (…) 특검이 규정하는 사건의 본질이나 의미와 거리가 있다.” 항소심 재판부가 피고인들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법리다.

Q 대법원은 최순실씨 모녀가 말 소유권을 넘겨받았다고 보나?

A 맞다. ‘정유라가 탈 말의 소유권을 갖길 원한다는 의사를 전달받자 이재용 등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게 근거다. “이후 양측 사이에 말을 반환할 필요가 없었고, 실질적 사용·처분 권한을 이전한다는 의사 합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연합뉴스2017년 7월 최순실씨가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Q 말 소유권이 왜 그렇게 중요했나?

A 말 소유권을 인정하는지 여부는 뇌물죄뿐만 아니라 다른 공소사실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줬다. 우선 말 3필을 뇌물로 제공하는 데 삼성전자 자금을 쓴 것은 횡령죄가 된다. ‘말 값’ 마련 과정이 횡령죄에 해당한다면 그 자금 출처와 행방을 꾸며내는 일은 범죄수익은닉죄다. 대법원 판단대로라면 이재용 부회장의 횡령액은 2심의 36억원에서 86억원으로 는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액 50억원 이상이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해진다. 말 소유권 판단은 그래서 대법원의 국정농단 판결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대목이다.

Q 이재용 부회장의 1, 2, 3심에 승계 작업이라는 개념이 누차 등장한다. 사법부가 기업 내부 사정에 주목하는 이유는?

A 제3자 뇌물죄와 관련이 있다. 단순 수뢰죄는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 요구, 약속’하면 성립한다. 반면 제3자 뇌물죄는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부정한 청탁’을 받아야 인정된다. ‘제3자’에게 뇌물을 건네는 이유가 이 ‘공무원 또는 중재인’에게 기대하는 민원 해결 때문이라는 게 증명되어야 해서다. 박영수 특검은 삼성의 승계 작업이 이 부정한 청탁에 해당한다고 본다. ‘제3자’에 해당하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2800만원을 후원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그룹 승계 작업에 우호적 태도를 취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다. 1심은 승계 작업을 인정했으나 2심은 “명확하게 정의된 내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2심과 달리 대법원은 “부정한 청탁은 묵시적 의사표시로도 가능하고 그 내용이 구체적일 필요도 없다”라고 판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승계 작업의 개별 현안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않았더라도, “박 전 대통령의 직무와 피고인 이재용 등의 자금 지원 사이 대가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정도”면 부정한 청탁이라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그래서 대법원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이 부정한 청탁이라고 판결했다.

Q 최순실씨의 강요죄 일부가 인정되지 않았다. 형량이 줄어드나?

A 강요죄 형량 범위에서 줄어들 수 있지만 전체 형량 가운데 그 비중이 크지는 않다. 강요죄 유죄판결을 일부 파기한 과정을 살피면, 최순실 개인의 양형보다 더 중요한 포인트가 눈에 띈다. 재판부가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본 행위는 전경련 소속 대기업들에 대한 재단 출연 요구, 현대자동차그룹의 납품 계약, 롯데그룹의 K스포츠재단 추가 지원 요구, 삼성그룹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요구 등 7가지다. 이들의 자금 지원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강요에 따른 게 아니라면, ‘자발적 뇌물 공여’가 인정될 여지가 있다. 직권남용·강요 등을 판단한 상고심 판결문에서 대법원은 이런 시각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는 뇌물 요구에 해당하고, 이재용 피고인이 그 요구에 따른 것은 전 대통령의 뇌물 요구에 편승하여 직무와 관련된 이익을 위하여 직무 행위를 매수하려는 의사로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한 것이다.” 반면 이재용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2심 재판부의 논리는 이랬다.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피고인들이 이 사건 뇌물을 공여한 대가로 박 전 대통령에게 어떠한 이익이나 특혜를 요구하였다거나 이를 실제로 취득하였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은 (…) 지위와 권한을 사인에게 나눠준 박 전 대통령과 그 위세를 등에 업어 국정을 농단하고 사익을 추구한 최서원으로 봐야 한다.” 2심에서 ‘수동적인 강요 피해자’로 인정되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신동빈 롯데 회장 역시 대법원에서는 다른 결과를 받게 될 수 있다.

Q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에 이어 대법원도 안종범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A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을 원칙적으로 배제하는 형사소송법에 따랐다. 대법원은 안종범 업무수첩의 내용을 ‘지시 사항 부분’과 ‘대화 내용 부분’으로 나눈다. 이 중 대법원이 ‘전문증거’라고 판단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후자이다. 박 전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과 독대한 뒤 안 전 수석에게 불러준 면담 내용을 적었다. 대법원은 이 수첩 내용이 대통령과 면담자 사이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증명하려는 용도로 쓰인다면, 원 진술자(박근혜 전 대통령)가 사망, 질병, 소재불명 등 사유로 진술할 수 없게 되더라도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따라 조희대·안철상·이동원 대법관은 직권남용 재판 별개 의견에서 “안종범 업무수첩 등 외에는 부정한 청탁을 입증할 만한 결정적 증거가 없다. 증거능력이 없는 안종범 업무수첩 내용이 머릿속에 잔영으로 남아 심증을 형성하는 데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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