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5월20일 경기도 광주시청 관계자가 나눔의집 방문 후 돌아가고 있다. 광주시청은 시설 감사 권한이 있다.

수십억원대 후원금을 부정한 방식으로 운용한 ‘나눔의집’ 문제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나눔의집 법인 이사진은 지난 6월2일 서울 광진구 영화사에서 2020년도 제2차 정기 이사회를 열어 나눔의집 실무를 이끌었던 안신권 소장을 사직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나눔의집 운영 과정에서 각종 논란을 일으켰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후원금 운용 방향을 지시한 이사회는 정작 책임을 회피하고 있어서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위치한 나눔의집은 지난 5월 직원들의 내부고발(〈시사IN〉 제663호 ‘나눔의집에서 그들만 배가 불렀다’ 참조)로 그 실태가 드러났다. 시민들이 보낸 후원금 수십억원은 대부분 법인에 적립되었고 실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거주·요양 중인 시설에는 극히 일부만 넘어가고 있었다. 〈시사IN〉을 비롯한 언론 보도를 통해 나눔의집 법인 이사회가 추후 이 시설을 요양원으로 바꿀 계획이며, 이를 위해 후원금을 100억원 가까이 적립하려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5월18일 〈시사IN〉 첫 보도 이후 나눔의집은 몇 차례 내홍을 겪었다. 법인 이사회는 당분간 나눔의집 실무를 맡을 임시 직원 두 사람을 파견했다. 두 임시 직원 중 한 명은 기존 이사 중 한 명(승려)의 조카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사의를 표한 채 잠적한 김정숙 사무국장과 이번에 사직 처리된 안신권 소장을 대신해 법인 이사회의 입김이 닿는 인사들이 나눔의집 운영 책임을 일시적으로 맡은 셈이다.

지자체의 점검·감사도 뒤따랐다. 형식상 나눔의집은 법인과 시설이 나뉘어 있지만 ‘돈 문제’만은 법인과 시설 회계가 뒤엉켜 집행되어왔다. 시설로 보내는 줄 알았던 후원금이 법인으로 향하고, 법인에서 월급을 받는 직원(운영진)이 시설 회계를 전담하는 식이었다. 법인은 경기도청이, 시설은 광주시청이 감사 권한을 갖지만 후원금을 방만 운영케 한 이사회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결국 경기도청의 감사 결론이 나와야 한다. 시설 운영을 감사하는 광주시청과 나눔의집 시설 운영위원회 역시 경기도청의 감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내부고발과 사회적 공론화가 이뤄졌지만, 문제 해결은 지지부진하다. 오히려 공론화 이후에도 후원금 남용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나눔의집 인근 땅(퇴촌면 68번지)을 안신권 소장 개인 명의로 구입한 것이 논란이 되자, 이 땅을 나눔의집 명의로 바꾸는 과정에서 또다시 후원금이 사용된 것이다. 이사회에서 보낸 임시 직원들이 등기 변경에 필요한 법무사 수수료를 후원금으로 지급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6월10일 나눔의집 직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나눔의집을 할머니와 국민 품으로 되돌려주세요’라는 청원을 올리며 “할머님들은 월 10만원을 받는 대신 후원금에 대해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는 약정서에 지장을 찍어야 했다”라고 밝혔다. 이 약정서 서류는 내부고발자 중 한 명이 과거 자료를 찾던 중 우연히 발견했다. 해당 약정서에는 “나눔의집 입소 할머님들은 나눔의집에 들어오는 후원금에 대하여는 일절 관여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해당 약정서는 2000년대 초반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사진과 운영진이 10여 년 전부터 후원금 집행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지우려 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눔의집 운영진이 사망한 ‘위안부’ 피해자 유가족에게 현금을 요구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나눔의집은 시설에 머무르던 ‘위안부’ 피해자가 사망할 경우 사십구재를 시설 내 법당에서 치렀다. 운영진들이 사십구재 비용 명목으로 유가족에게 매번 현금 100만원을 요구했다는 것이 추가로 드러났다. 나눔의집 관계자는 “운영진에게서 직접 현금 100만원을 받아내라고 지시받은 직원이 이 같은 내용을 증언했다. 피해를 입은 유가족들도 필요할 경우 증언해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6월2일 서인렬 상임이사가 안신권 소장 징계 등을 논의하기 위한 이사회를 마치고 이사회장인 서울 광진구 영화사에서 나오고 있다.

이사회의 최종 목표는 ‘이사진 유지’

운영진과 이사회의 위법 사항에 대한 수사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6월10일 나눔의집 직원들은 운영진(안신권 소장, 김정숙 사무국장) 외에도 전·현직 법인 이사를 추가 고발했다. 송현섭 대표이사(법명 월주), 이규정 전 상임이사(법명 원행, 현 조계종 총무원장), 최광식 이사(법명 화평), 서인렬 현 상임이사(법명 성우) 등 총 4명이다. 기부금품법 위반, 업무상 횡령 및 배임 혐의가 제기됐다. 이번 추가 고발은 경찰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김정숙 사무국장에 대한 횡령·배임 혐의를 수사 중인 광주경찰서가 수사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며 요청한 것이다. 추가 고발을 접수한 광주경찰서는 6월11일 나눔의집 법인·시설 사무실과 안신권·김정숙 두 사람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수사망이 넓어지고 있지만, 아직 이사회는 말을 아끼고 있다. 2018년까지 나눔의집 상임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후원금 적립을 직접 지시한 이규정 조계종 총무원장(법명 원행)은 나눔의집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다른 이사들도 논평을 내거나 취재에 응하는 등의 행위를 일절 삼가고 있다. 이사회 측이 돈으로 직원들을 회유하려 했다는 증언까지 나온다. 나눔의집 한 관계자는 “언론 보도 직후 이사회 측 인사가 찾아와 합의를 하자며 돈 얘기를 꺼냈다. 우리가 돈을 바라고 내부고발 한 것 같으냐고 화를 냈더니 ‘이사진 전면 교체만 아니면 직원들의 제안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더라”라고 말했다.

이사회 측은 일단 경기도청의 감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방침이다. 6월2일 열린 이사회에서 이사진은 문제시된 법인 정관과 운영규정을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눔의집 법인 이사회는 법인 정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사업을 한다”라는 내용을 삭제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 내용을 다시 되살리고 각종 부대사업(독거노인을 위한 양로시설 설치 등) 내용을 삭제했다는 것이 이사회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개정된 법인 정관과 운영규정, 법인 이사회 회의록 등이 아직 공개되지 않아 변경 내용을 상세하게 확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법인 이사회를 법률 대리하고 있는 양태정 변호사는 6월11일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이날 변경한 법인 정관과 운영 규정 등은 추후 경기도청의 승인이 마무리되면 공개할 예정이다. 법인 정관 변경과는 별개로 이사회 측은 ‘광주시청과 경기도청 감사 결과를 수용하여 법령 위반의 재발 방지를 위해 만전을 기할 것이다’라는 내용을 의결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결론은 이사회가 지자체에 책임을 미룬 것과 다름없다. 경기도청이 추후 ‘운영상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발표하면 이사회는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된다. 이사회 측이 직원들에게 이미 얘기한 것처럼 현재 이사회의 최종적인 목표는 ‘이사진 유지’다. 실무진(안신권 소장, 김정숙 사무국장) 사퇴가 꼬리 자르기로 비치는 이유다.

경기도청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강수는 사회복지법인 설립허가 취소다. 이 경우 현재 나눔의집에 누적되어 있는 후원금 72억여 원과 각종 자산은 지자체에 귀속된다. 지자체는 그 자산을 다른 단체나 조직에게 운영토록 할 권한을 갖는다. 반면 경기도청의 감사 결론이 단순 경고나 권고 등에 그칠 경우, 나눔의집 문제 해결은 이사회의 ‘자발적인 반성’에 의지해야 한다. 경기도청이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에 따라 그동안 시민들이 낸 후원금이 ‘위안부’ 피해 당사자에게 전달될지가 결정된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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