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감염되면 병원비는 얼마나 들까?
  • 전혜원 기자
  • 호수 661
  • 승인 2020.05.2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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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은 한국의 방역 전략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과거 건강보험 통합을 이뤄낸 동력은 ‘노동-시민사회 연대’였다. 반면 의료보장 체계가 부족한 미국에서는 취약계층이 죽어간다.
ⓒ시사IN 이명익4월8일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환자가 병실로 이동하고 있다.

코로나19에 걸리면 병원비는 얼마나 들까? 증상이 가벼운 환자는 330만원, 중증이면 1200만원, 위중한 환자는 7000만원이다. 하지만 통장 잔액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코로나19 진료비는 ‘0원’이다. 검사비 16만원도 방역 당국의 검사 대상이거나 의사 소견이 있으면 안 내도 된다.

만약 코로나19가 의심되는 사람이 돈 때문에 검사를 주저해야 한다면 어땠을까. 그게 실제로 일어난 나라가 있다. 미국이다. 3월5일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며칠 뒤 양성 판정을 받은 대니 아스키니는 검사비만 907달러(약 111만원)를 청구받았다고 3월13일 자신의 트위터에 공개했다. 그에게 청구된 총 진료비는 3만4927달러(약 4257만원)였다. 미국 연방의회는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되던 3월18일, 코로나19 검사비를 무료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 시민들이 전체 진료비 중 어느 정도를 부담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확실하지 않다.

“방역에서 가장 중요한 게 속도다. 결정을 고민하는 순간에도 바이러스는 확산된다. 아직 나라별 코로나19 대응을 비교하기엔 이르지만, 한국의 경우 전 국민을 포괄하는 건강보험이 있어서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했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예방의학)의 이야기다. “이를테면 당장 ‘검사비를 환자 본인이 부담하지 않도록 하자’는 결정을 미국 정부는 쉽게 내리지 못한다. (의료비 결정에 관련되어 있는) 민간 보험회사에게 강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은 ‘유니버설 헬스케어’, 즉 보편적 건강보장 체계가 없다.”

국민건강보험은 한국의 방역 전략인 이른바 3T, 추적(Trace)·검사(Test)·치료(Treat)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코로나19 진료비의 80%를 건강보험공단이, 20%를 국가가 낸다. 검사비도 건강보험이 부담한다. 한국에서 건강보험을 적용받는 인구는 사실상 전 국민이다(건강보험 가입자 97.2%, 기초생활보장제도상 의료급여 수급자 2.8%). 정부가 진료비와 검사비 부담 방법을 감염 확산 전인 1월 말~2월 초에 일찌감치 결정하고, 일선 의료기관이 일사불란하게 따를 수 있었던 배경이다.

보험 들었어도 부담액 4700만원에 달해

미국은 다르다. 국가는 일부 저소득층에게 메디케이드(Medicaid, 2018년 미국인의 17.9%가 가입), 65세 이상이거나 장애인인 시민에게 메디케어(Medicare, 미국인의 17.8%가 가입)라는 이름의 건강보험을 제공할 뿐이다. 이 범주에 속하지 않은 시민 대다수는 각각 민간 의료보험을 ‘구입’해야 한다. 자신이 다니는 직장을 통해 사는 경우가 55.1%로 가장 많다. 본인이 직접 보험을 구입하는 경우는 10.8%다.

문제는 보험에 들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사실이다. 직장 제공 의료보험에 가입한 미국인은 2019년 기준 평균적으로 1년에 1655달러(약 202만원)를 지출한 후에야 의료보험 혜택을 볼 수 있다. 보험에 들었어도 매년 202만원까지는 병원비를 환자 본인의 돈으로 내야 한다는 얘기다. 매번 병원에 갈 때마다 지급해야 하는 비용도 따로 있다. 게다가 자신이 가입한 보험회사와 계약되어 있지 않은, 즉 ‘네트워크 밖’에 있는 의료진이나 기관으로부터 의료 서비스를 받게 되면 예상치 못한 진료비 청구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비용 장벽이 높다 보니, 2018년 현재 미국인의 8.5%(2750만명)가 어떤 형태의 의료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2018년 가계소득 기준으로 연간 2만5000달러(약 3049만원) 미만인 계층의 의료보험 미가입률이 13.8%다. 히스패닉(17.8%)과 흑인(9.7%)의 미가입률이 높다. 멀쩡히 의료보험을 갖고 있다가도 직장을 잃으면 보험까지 잃는다. 코로나19로 인한 대량 실업에 따라 미국인 최대 3500만명이 의료보험을 상실할 것으로 추정된다.

ⓒAP Photo2015년 6월 오바마케어 정부 보조금에 대해 합법 판결이 내려지자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미국 비영리단체 페어헬스에 따르면, 의료보험이 없거나 ‘네트워크 밖’에서 진료를 받은 코로나19 환자가 부담해야 할 진료비는 4만2486달러(약 5181만원)에서 7만4310달러(약 9062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의료보험 가입자의 경우에도 자기부담금이 2만1936달러(약 2675만원)에서 3만8755달러(약 4726만원)에 이를 것으로 이 단체는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감염되고 죽어가는 것은 취약계층이다. 미국 시카고에서 흑인 인구 비중은 30% 정도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중 흑인 비율은 절반을 넘는다. 루이지애나주 인구 중 흑인은 3분의 1이다. 코로나19 사망자 가운데 흑인 비율은 60%에 가깝다.

일부 보험회사들은 코로나19 진료비를 환자에게 부담시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직장 제공 의료보험 가입자들의 경우 고용주가 각 보험회사의 방침을 따를지 지켜봐야 한다. 최근 연방의회는 보험 미가입자의 진료비를 지원하기 위한 법안을 추가로 통과시켰다. 책정된 예산이 어느 주에 얼마만큼 지원될지는 불분명하다. 보험에 가입한 미국인 역시 일단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상당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인 조지프 바이든 전 부통령은 코로나19 진료비에 시민들이 한 푼도 내지 않도록 지원하는 법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본인부담금 0원’이 미국에서 정말 실현 가능할지는 불투명하다.

미국과 한국의 이 같은 차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왜 감염병 국면에서 어떤 나라는 각자도생하고, 다른 나라는 보편적 시스템으로 대응하는가? 미국은 서구 국가들 중 의료보장을 시장에 맡기는 사실상 유일한 나라다. 미국에서 보편적 의료보장을 위한 시도는 거의 한 세기 동안 계속되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1939년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1945년에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보편적 의료보장을 시도했다. 보수파와 의사단체의 반발에 좌절되고 말았다. 냉전과 맞물리면서 ‘공산주의자’로 몰리기도 했다. 1965년에 린든 존슨 대통령이 ‘위대한 사회’ 프로젝트의 일부로, 노인과 장애인·저소득층을 위한 메디케어·메디케이드를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0년, ‘모든 미국인이 어떤 형태의 의료보험에라도 가입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오바마케어’를 도입했다. 저소득층에게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집권 첫해인 2017년 이 벌금을 없애 의료보험 의무화를 무력화했다. 오바마케어 시행 후 절반으로 줄어들었던 보험 미가입자는 최근 2년간 증가 추세다.

ⓒ연합뉴스1997년 11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의료보험 통합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미국과 달리 의료보장을 시장에 맡기지 않는 나라들은 크게 두 가지 시스템을 갖고 있다. 하나는 사회보험이다. 직장·업종·지역에 기반한 여러 조합이 보험료를 거둬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공적 보험이다. 독일이 대표적이다. 다른 하나는 국영의료서비스(NHS)다. 국가가 세금으로 운영하는 의료기관에서 공무원인 의사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국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사회보험 유형에 속하는데, 보험을 여러 조합이 운영하는 게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단일 기관(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방식이다. 사회보험이면서도 보편적 성격이 강한 모델이다. 한국은 어떻게 이런 시스템을 갖게 되었을까?

가장 먼저 만나는 이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1963년 의료보험법이 처음 시행되었을 때는 의무가입이 아닌 임의가입이었다. 1977년 의무가입 의료보험이 5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시작되었다. 권위주의 정권인 박정희 정권이 의료보험을 도입한 것은 당시 사회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1972년 8월 민간병원에서 보증금이 없다는 이유로 응급환자를 거부하는 사건이 발생해 ‘유전무병 무전유병’이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불평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경제성장의 성과를 분배하라는 대중의 요구가 높아졌다. 남북대화가 진행되면서 북한의 무상의료가 소개되는 등 남북한 체제 경쟁도 요인이었다(윤홍식, 〈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 이후 의료보험은 공무원과 교직원, 30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되었다. 전두환 정부 때인 1981년 10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된 의료보험은, 여전히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는 계층’만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88년 농어민과 5인 이상 사업장, 1989년 도시 자영업자에게 확대되면서 비로소 ‘전 국민 의료보험 시대’가 열린다. 첫눈에 이것은 그저 의료보험의 범위를 또 한 번 확대한 정도로만 보이지만, 질적인 도약이었다. 왜 그런가.

“사실 농어민이나 자영업자에게까지 의료보험을 확대하는 것은 보험의 원칙인 ‘자조의 원리’에 잘 안 맞는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보건학)는 말했다. “농어민이나 자영업자는 소득 파악도 어렵고, 고용주가 절반을 부담해주는 것도 안 된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다. 한국과 타이완, 일본 같은 동아시아 국가 정도만 의료보험을 자영업자와 농어민을 포함한 전 국민에게 신속히 확대했다. 왜 그럴 수 있었을까? 국가 통치 차원에서 불가피했다고 본다. 전쟁을 위해, 경제성장을 위해 국민을 ‘총동원’하는 체제 아래 일부 유리한 계층에게만 의료보험을 제공해 1등 시민과 2등 시민을 차별해서는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었다. 의료 불평등에 대한 국가 개입만큼 가시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게 없다.”

이렇게 해서 ‘전 국민 의료보험 시대’가 열렸지만, 의료보험이 우리가 아는 지금의 ‘국민건강보험’으로 탄생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기존 의료보험은 지역과 직장, 공무원·교원 등으로 나뉘어 각자 조합을 만드는 식으로 운영되었다. 지역별·직장별로 재정 격차가 심각했다. 돈이 남아도는 조합일수록 더 적은 보험료를, 돈이 부족할수록 더 많은 보험료를 냈다. 부자 조합, 가난한 조합이 따로 있다 보니 의료보험 혜택을 강화하기도 힘들었다. ‘사회적 위험에 대비한 연대’라는 보험의 원리가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의료보험 통합 운동은 1988년 과다 보험료에 대한 농민들의 항의로 시작해 시민사회에서 줄기차게 전개되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노태우 정권 때 ‘국민의료보험법’이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조합 수백 곳으로 쪼개진 의료보험을 국민건강보험으로 통합하겠다고 공약했다. 통합은 격렬한 반발에 부딪혔다. 수백억원에 이르는 적립금을 기업 의료보험조합에 쌓아두고 ‘사금고’처럼 사용하던 기업들과 이들을 대변하는 전경련·경총 등이 강력하게 저항했다. 의료보험 재정이 넉넉한 편이던 직장 의료보험조합들과 한국노총도 반대했다. 직장 노동자들의 보험료 부담이 높아진다는 이유였다. 1999년, 직장 의료보험조합 등은 건강보험 통합이 헌법에 규정된 평등권과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까지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지역·직장 가입자 간 평등한 부담을 위한 정책과 제도 개선은 필요하지만 통합이 위헌은 아니라고 결정했다. 2000년 7월 수백 곳으로 쪼개졌던 의료보험조합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출범했다.

복지는 어떻게 방역이 되는가

결코 쉽지 않았던 건강보험 통합을 이룬 중요한 동력은 ‘노동·시민사회 연대’였다. 특히 조직노동 중에서도 민주노총이 통합에 적극 연대했다. 현대자동차, 대우조선 노조 등 민주노총 산하 대기업 노조들은 직장 의료보험조합을 통해 비교적 양질의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었고 농어민이나 영세 자영업자만큼 보험료 부담도 크지 않았지만, 건강보험 통합에 찬성했다.

김태현 당시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이익을 넘어 전체 국민의 시각에서 사회개혁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직장 노동자의 보험료가 올라간다는 한국노총의 주장에 대해서는, 통합하면 오히려 관리비용을 줄일 수 있고, 만약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고 해도 노동자들 역시 나중에 퇴직하면 지역 의료보험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고, 모두 부모자식 관계인데 시민들을 쪼개고 나눠선 안 된다고 조합원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한국 사회보험 중에서 가장 이견이 없고 포용력이 높은 지금의 건강보험이 탄생할 수 있었다.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농민과 도시 빈민을 아우른,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복지동맹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해서 건강보험은 또 한 번 질적 도약에 성공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강보험 통합 과정을 연구한 책 〈노동-시민 연대는 언제 작동하는가〉에서 이철승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당시의 건강보험 통합이 “스웨덴에서 복지국가의 발전을 뒷받침한 농민과 노동계급 사이의 동맹에 거의 상응하는 것이었다”라고 썼다.

한국 의료보장 체계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OECD 평균보다 낮은 공공병원의 비율이 어떤 사태를 가져오는지 드러났다. 병상수는 많지만 중환자 병상수는 부족하다. 그 때문에 대구에서 병원 문턱을 밟지 못하고 사망한 이들이 있었다. 과제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국민 건강보험이라는 독특한 체제 덕분에 코로나19 재난의 초기 국면을 버틸 수 있었다. 다시 김창엽 교수의 설명이다. “건강보험이라는 완충장치가 있었기에 비용 부담으로 인한 불평등을 상당히 줄일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사태 초기부터 진단시약 제조업체를 빠르게 지정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제품이 괜찮기만 하면 건강보험이라는 공동구매자가 구매할 것이라는, 안정적인 공적 시장에 대한 예측과 신뢰가 작동했기에 가능했다.”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은 “예컨대 에이즈 환자의 진료비를 본인에게 부담시키지 않는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과도한 복지라는 공격이 있다. 그러나 이는 복지 프로그램이 아니라 방역 프로그램이다. 이 환자를 치료함으로써 추가 감염자를 막겠다는 것이니까. 코로나19 진료비 장벽을 낮추는 것 역시 복지 프로그램일 뿐 아니라 방역 프로그램이다”라고 말했다. 복지는 방역이 된다. 건강보험이 알려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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