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적녹 연대’가 절실하다
  • 장정일 (소설가)
  • 호수 659
  • 승인 2020.05.08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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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자본주의의 모순이 낳은 재난〉
마이크 데이비스· 알렉스 캘리니코스· 마이클 로버츠· 우석균·장호종 지음
책갈피 펴냄
ⓒ이지영 그림

코로나19(공식 명칭 COVID-19)는 2019년 12월31일 중국이 세계보건기구(WHO)에 첫 공식 보고를 하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2020년 2월26일에는 브라질까지 확산되었다. WHO는 3월11일 팬데믹(pandemic)을 선언했다. 어떤 공동체(도시, 주, 국가 또는 대륙) 내에서 특정 질병으로 확진자 수가 예기치 않게 급증할 때에는 ‘감염병 유행(epidemic)’이라는 용어를 쓰고, 그것이 세계적 대유행을 일으켰을 때는 팬데믹이라는 용어를 쓴다. 하지만 역사자료는 두 용어를 섞어 쓰기도 한다.

올해 3월 말부터 ‘코로나19’가 제목 안에 든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온 타일러 J. 모리슨의 〈코로나19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들〉(열린책들, 2020)은 중국에서 시작해 여러 나라로 퍼지고 있는 현재의 세계적 위기상황을 시간별로 재구성해 기록하는 한편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간략한 이해와 감염을 예방하는 안전 수칙을 담고 있다. 그러나 변진경·김연희·김영화·나경희·전혜원 기자 등이 쓴 코로나19 특집기사를 빠뜨리지 않고 읽은 〈시사IN〉 독자라면 굳이 이 책을 손에 들 필요는 없다. 최종적으로 3월18일까지의 상황을 정리한 지은이는 더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될 것이라는 나쁜 소식과 함께 이렇게 책을 마무리했다.

“좋은 소식은 바이러스가 생존을 위해 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더 많이 퍼지기 위해서 스스로 치명도를 낮춘다. 이러한 종류의 바이러스의 목표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확산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 너무 치명적이어서는 안 된다.” 손 씻기, 마스크 착용, 물리적 거리두기(WHO는 3월1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대신 이 용어를 사용한다)가 코로나 시대의 ‘정상 예절’로 자리 잡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앞으로 연이어 생겨날 무수한 ‘코로나-n’ 바이러스를 방지할 수 없다.

바이러스는 ‘독(毒), 식물의 수액, 점액’을 뜻하는 라틴어 ‘virus’를 그대로 따온 것으로, 영어에서는 1728년부터 ‘병원체’라는 의미로 이 단어를 쓰고 있다. 바이러스는 세균과 같은 용법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세균과 바이러스는 엄연히 다르다. 간단하게 말하면 세균과 바이러스는 크기의 차이로, 평균적인 바이러스는 평균적인 세균의 약 10분의 1 크기다. 더 중요한 점은, 세균은 실험실의 페트리 접시에서 인공배양이 가능한 데 비해 바이러스는 오로지 살아 있는 세포 속에서만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전문용어로 ‘절대 세포내 기생체’라고 하는데, 바이러스는 자가복제 장치가 아예 없이 남에게 빌붙어 살아야 하기 때문에 기생에 필요한 최소한의 유전자만 갖고 있다.

남의 것을 훔쳐야만 살 수 있는 바이러스는 자신이 기생할 수 있는 숙주가 필요하다. 이 말을 뒤집으면 모든 생물체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바이러스를 하나 이상씩 품고 있는 것이 된다. 이를테면 박쥐는 사스(SARS, 2003)·메르스(MERS, 2015) 그리고 코로나19 등의 바이러스가 기생하고 있는 숙주다. 이런 숙주를 전문용어로 ‘보유숙주’ 혹은 ‘자연숙주’라고 부르는데, 보유숙주란 자기 몸 안에 고유의 바이러스(병원체)를 장기적으로 보유하면서도 거의 또는 전혀 증상을 나타내지 않는 동물종을 말한다. 박쥐가 인간을 치사에 빠트리는 맹독(바이러스)을 세포 안에 기르고 있으면서도 아무 탈이 없는 것은, 박쥐와 박쥐의 세포에 깃들인 여러 종류의 바이러스가 오랜 세월에 걸쳐 상호의존적인 공생관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가 보유숙주를 뛰쳐나와 종이 다른 동물에게 옮아가는 것을 ‘종간 전파’라고 한다. 바이러스 처지에서 보면, 현재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인수공통감염병(zoonosis)이 바로 종간 장벽을 뛰어넘어 종간 전파에 성공한 경우다. 종간 전파는 보유숙주에서 인간으로 직접 전파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중간 매개를 거친다. 사스는 사향고양이가, 메르스는 단봉낙타가 그 역할을 했는데, 이 또한 ‘증식숙주’라는 전문용어를 갖고 있다. 코로나19의 증식숙주로 천산갑이 지목되기도 했지만 확실치는 않다(없을 수도 있다).

“자본과 무관한 병원체는 없다”

동식물계에는 그 숫자보다 많은 엄청난 종류의 바이러스가 있고, 이 바이러스들은 흔히 풍토병이라 일컫는 자잘한 인수공통감염병을 일으킨다. 아프리카나 남미의 오지뿐 아니라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 같은 이른바 문명국에서도 한 마을이나 지역에서 발생한 소규모 인수공통감염병으로 사람과 가축이 죽는 일이 있다. 인수공통감염병이 감염병 유행이나 팬데믹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한 지역을 뛰어넘는 증폭장치가 필요하다.

데이비드 콰먼은 2013년에 출간한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꿈꿀자유, 2020)에서 “인수공통감염병의 전성시대”가 이제 막 열렸다면서, 지난 50년 동안 바이러스·보유숙주·증식숙주·희생자(인간)가 한자리에 모이는 환경이 갖추어졌다고 말한다. “생태계가 너무나 많이 파괴되어 미생물이 점점 널리 퍼지고 있다. 나무가 벌목되고 토종 동물이 도살될 때마다, 마치 건물을 철거할 때 먼지가 날리는 것처럼 그들의 몸에 깃들어 살던 미생물이 주변으로 확산된다. 밀리고 쫓겨나 서식지를 빼앗긴 기생적 미생물 앞에는 두 가지 길이 놓여 있다. 새로운 종류의 숙주를 찾든지, 멸종하는 것이다. 이들이 특별히 우리를 표적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너무 많이 존재하고, 너무 주제넘게 침범하는 것이다.” 인간이 생태계를 포위하고 말살해온 것이 최근에 나타난 몇몇 인수공통감염병의 증폭장치였다.

질병은 지극히 개인적 경험인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정치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팬데믹은 누구에게나 공평할 것 같지만, 계급·인종·연령·젠더·정체(政體)·지역에 따라 경험의 양상과 질이 다르다. 장호종이 엮은 〈코로나19, 자본주의의 모순이 낳은 재난〉(책갈피, 2020)은 국내외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와 활동가들이 긴급하게 제출한 글과 논평을 모았다. 코로나19와 팬데믹을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철저히 분석하고 있는 필자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현재 자본과 무관한 병원체는 없다”라고 한입으로 말한다. 삼림 파괴, 세계화한 농업, 공장식 축산은 인수공통감염병의 원인이면서 인간을 바이러스의 공격에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거기다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시장은 공공의료를 잠식하고 국민의 보편적 의료보험을 가로막으며, 의약 산업은 노골적인 투기장이 되어간다. 팬데믹은 적녹(赤綠) 연대의 절실함을 새삼 입증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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